
안녕하세요, 신간 모니터링 요원 박현철입니다.
지난 12월이 워낙 분주해 11월 신간 소개를 건너뛴 탓인지, 이번에는 눈에 띄는 책이 유독 많아 읽고 고르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연말연초에 나오는 책들은 그 출간 시기 때문에 약간 묻히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런 책들을 좀 더 주목하고 싶었지만 지면과 육신의 한계(?)로 인해 건너뛸 수밖에 없는 책들이 많아 아쉽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연말연초의 분주함 속에서도 내면의 묵은땅을 갈아엎고 새 숨을 불어넣는 쟁기질을 멈추지 않아야겠지요. 그런 쟁기질에 책만큼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책은 견고하고 오래된 세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게 해주지요. 이번에 소개하는 책들은 남성적 언어에 갇혀있던 바울에게서 ‘어머니’를 발견하고, 오래된 메시지로 공고했던 강단을 낯설고 새로운 목소리들로 덧입히며, 100년 전의 외침에서 오늘의 길을 묻고, 거룩한 것과 아름다운 것들의 의미를 탐구하는 책들입니다. 이 책들이 우리 신앙과 사고를 쟁기질하는 좋은 도구가 되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이 불러일으키는 낯설고도 거룩한 흔들림이 여러분의 일상에도 신선한 바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 우리 어머니
베벌리 로버츠 가벤타 지음, 정동현 옮김, 학영 펴냄, 448쪽
제목에서 ‘으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도 바울은 당연히 생물학적 남성일뿐 아니라 신학자로서 그의 이미지 역시 남성적이다. 적지 않은 여성신학자들은 바울을 기독교 가부장의 원흉으로 비판한다. 그런 바울이 ‘우리 어머니’라고? 저명한 여성 성서학자 베벌리 로버츠 가벤타는 바울 서신에 있는 몇 가지 여성적 은유(예를 들면 ‘해산하는 수고’(갈 4:19) 라든지 ‘젖먹이는 유모’(고전 3:1-2)라든지)에 착안해 바울이 가진 ‘어머니성’을 탐색한다. 바울이 스스로 여성적 은유를 택하면서 의도한 것이 무엇이고,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성서 본문을 기반으로 차분하게 살핀다.
책이 소위 말하는 ‘여성신학적 의도와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울의 모성을 ‘묵시론적 바울 해석’으로 끌고 가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에 이 책을 바울의 여성적 해석의 입문서 혹은 교과서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바울을 남성성의 언어로만 독해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꼈거나, 그를 여성혐오의 원흉으로 여겨왔던 독자들은 한번 살펴보기를 권한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쨌거나 바울을 ‘젠더 밴딩’하는 과감한 시도는 묘한 재미가 있다.
페미니즘 설교집(전자책)
구아름 외 지음, 믿는생각 펴냄, 359쪽
제목이 더할 나위 없이 직관적이라 더 설명이 필요할까 생각이 드는데, 제목 그대로 ‘페미니즘 설교집’이다. 근데 이제 ‘퀴어리즘’도 곁들인. 한국예수교회연대가 기획 편집하고, 목회자, 학생, 신학자, 해외 디아스포라 학자, 게다가 평신도까지 무려 28명의 저자가 정성스럽게 작성한 설교문을 담았다. ‘페미니즘’이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내용은 특정 성별의 날 선 투쟁기라기보다는 교회 내 ‘보이지 않는 자리’를 더듬는 이야기에 가깝다. 여성, 퀴어, 그리고 소외된 모든 존재와 동행하고픈 마음을 구약 13편, 신약 15편의 설교로 균형 있게 꽉 채웠다. 당연히 여성들이 주를 이루지만 남성 목회자도 포함되어 있고, 이 설교집을 위해 새로 작성한 설교와 특정 장소와 맥락에서 직접 했던 설교가 섞여 있다. 여러 저자들이 함께 작업한 책이 다 그렇듯이 일관성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같은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모으고 아카이빙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소중한 일이다. 특히 기획자들이 공개한 소개영상을 보다가 ‘개방적 상호 표절’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들었는데, 실제로 이 책의 설교를 적극 참고하고 인용해 교회 현장에서 재설교 하는 운동을 해보는 것도 책 이후에 이어질 운동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주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목회자들에게도, 새로운 혹은 균형 잡힌 관점에 목마른 성도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교신 백년의 외침
류동규 지음, 비아토르 펴냄, 344쪽, 전자책 있음
내가 김교신 선생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2015년이었다. 당시 청어람은 교회를 넘어선 새로운 신앙운동에 대한 고민을 한참 시작하던 무렵이었는데, 김교신 선생의 성서조선 운동과 무교회주의, ‘전적인 기독교’ 개념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때마침 김교신 선생 서거 70주년을 맞았던 김교신 기념사업회와 기획강좌를 열었고, 그의 사상을 ‘한국 교회가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개인적으로 김교신 선생에 대한 책은 거의 빠짐없이 읽었고, 김교신 선생은 내 신앙의 지표 중 하나가 되었다.
『김교신 백년의 외침』은 내가 살펴본 김교신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손꼽을 만한 책이다. 성서조선을 중심으로 김교신 선생의 사상과 운동을 조목조목 소개하는데 구성과 내용이 충실하고, 문장과 흐름도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럽고 단정해 읽기 편하다. 무엇보다 김교신 선생의 삶과 사상을 설명하고 소개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무교회주의자라고 고백하는 저자의 무교회주의를 향한 애정과 단단한 신앙이 페이지마다 뜨겁게 녹아있어 좋았다. 오늘날 기독교의 허울뿐인 껍데기와 빈약한 깊이에 절망감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저자가 김교신에 관해 쓴 다른 책도 출간 준비 중이며, 국내 무교회주의의 대표적 계승자인 박상익 교수님이 쓰신 김교신 평전도 근래에 출간 예정이라고 들었다. 김교신 붐이 다시(?) 오면 좋겠다.
종교학 강의 - 더 나은 종교이해를 위하여
성해영 지음, 북튜브 펴냄, 432쪽
최근 교회와 사회 모두에서 ‘종교 문해력’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대중적인 유튜브 채널에서도 종교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다룬다. 한국 사회는 외국처럼 종교 간의 직접적인 갈등과 충돌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종교가 사회의 여러 문제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사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은 빈 말이 아니다. 교양을 위한 종교 개론서의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종교학 강의』는 매우 반갑다. 따로 명확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대학 강의와 대중 강연록을 바탕으로 저술된 듯하며, 저자의 이후 강의를 위한 교재로 쓰일 것도 염두에 두고 쓰인 책 같아 보인다. 종교학의 기본 개념에서부터 주요 종교들에 대한 개관, 종교 심리학과 신비주의까지도 빠짐없이, 충실하게 다루는 종교학 입문서다. 비종교인들에게는 종교의 의미와 현황에 대해서, 종교인들에게는 자신의 종교와 타종교의 비교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게 해 준다. 사실 비슷한 책들은 여럿 있지만, 신비주의 전공자인 성해영 교수의 종교경험과 영성에 대한 통찰이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유익할 것이다. 아래에 단평으로 언급할 김학철 교수의 『교양으로 읽는 기독교』, 하비 콕스의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과 비교해서 읽어도 좋겠다.
거룩한 행운
유진피터슨 지음, 권혁일 옮김, 너머서 펴냄, 196쪽, 전자책 있음
『거룩한 행운』은 유진 피터슨의 유일무이한 ‘시집’이다. 55년의 결혼생활을 기념하며 아내에게 헌정한 시라니 꽤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용이 로맨틱한 서정시는 아니다. 그렇다고 상투적인 기도시집도 아니고. 유진 피터슨의 문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이 시와 어울린다는 기대를 쉽게 가질 수 있을 텐데, 딱 그 기대를 만족시켜 주는 영성시집이라고 하면 될까. 아무튼 시집이다. 번역 시집이 갖는 한계가 분명히 있는데, 『메시지 성경』도 그랬지만 유진피터슨의 작업은 그런 한계를 감안하고서도 분명한 장점과 유익이 있다. 나는 ‘기독교적인 것’은 일면 ‘시적인 것’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점점 그 생각은 선명해져가고 있다. 이 책을 디딤돌 삼아 시의 가치와 효용을 알고, 시적 언어를 신앙의 언어와 결합시키는 기독교인이 더 많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시집은 영문원본이 포함되어 있고, 별도의 라이팅 북도 출간되었다.
한 줄 보태는 책들
몇가지 책을 단평으로 소개합니다.

- 『여자목사』(나디아 볼즈 웨버)는 도발적이면서도 급진적으로 은혜로운 책이다. 책에 실린 추천사가 워낙에 작품들이라 내 소감이 더 필요 없을 것 같아 단평으로 소개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추천사 전문을 찾아 읽어보시고, 나디아 볼즈 웨버가 누군지 모른다면 인터넷에서 사진도 꼭 찾아보시길.
- 『교양으로 읽는 기독교』와 『예수 하버드에 오다』는 이번에 소개한 『종교학 강의』와 함께 기억해 두면 좋다. 전자는 김학철 교수의 연세대 강의, 후자는 세속화 신학으로 유명한 하비 콕스가 하버드 대학에서 했던 강의에 기반하고 있는데, 성해영 교수의 책이 외부자의 시선으로 종교를 살핀다면 이 책들은 내부자의 시선으로 기독교의 의미를 살피며 종교 문해력을 풍성하게 해 준다.
- 『신에 관하여』는 시몬 베유의 사상을 한병철 스타일로 다시 읽어냈다. 확실히 한병철에게는 영성적 베이스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유익하게 읽었다. 아마도 이 책은 시몬 베유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한병철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좋아할 것 같다.

- 『황금률』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에 대한 백과사전적 해설서이자,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의 가치를 선명히 하며 기독교의 특수성과 가치를 변증하는 책이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읽기 힘들지 않다.
- 『장애 입으신 하나님』은 장애 해방 신학의 고전이다. 84년 출간되어 장애 신학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책이었는데 드디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런 책은 한 권쯤 기억해 두는 게 좋다.
✍️ 박현철 | 종교/역학 신간 모니터요원
연말에 소개드린 '38호: 2025년, 출판사가 고른 올해의 책'에 애정어린 답장들을 남겨주셨습니다.
- 한 해 동안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마지막 메일이 화룡점정이라는 생각을 하며 보내주신 책 소개글을 읽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청어람 분들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이번 호엔 출판사분들의 애정이 뚝뚝 묻어있는 글들이 가득하네요. 이분들의 수고 덕분에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애정도 수고도 소개도 모두 감사합니다. 새해 복&북 많이 받으세요 :)
- 꼭 필요한 책목록 자료였습니다. 이중에 몇권은 읽고있고, 몇 권은 더 사서 읽어보려고요.
12월의 신간은 어떻게 보셨을까요? 신앙의 지평을 넓히는 독서하기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다음호는 우리 곁 사람을 살펴볼 수 있는 인터뷰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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