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쫄쫄보의 유서

제4화 살았는지 죽었는지

2024.08.13 | 조회 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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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실종경보문자가 한 통 이상 도착합니다. 오늘은 퇴근길에 실종아동을 찾는 현수막을 스쳤습니다. 아이 사진 옆에 부모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실종 무렵과 가장 가까운 시점에 찍은 과거 사진들. 서로 잃어버린 당시 표정을 짓기 전 얼굴들. 나날이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일 텐데. 각자 어디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그 즉시 그 자리에서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빨리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이제 더는 어린 나이도 아니지만, 왔던 길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거든요.

얼마 전부터 살아생이별이라는 시를 쓰고 있어요. 죽음이라는 이별의 슬픔도 깊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라 철렁이는 슬픔도 가늠이 안 돼요. 가늠할 수 없는 것을 쓰고 있으면 두려운데 지금의 실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어서 뭐라도 붙들게 되는 심정으로 쓰고 있습니다.

요즘엔 대체로 모두가 근황을 게시할 수 있는 시대라 여차하면 생사 정도의 소식은 알 수 있지요. 그래서 딱히 아주 그리운 게 드물어요. 차단이라는 기능을 쓸 수도 있지만, 그러한 기능조차 쓰지 않고 의식에서 단절될 때가 있어요. 그 단절 끝에 문득 그리운 순간이 오기도 해요.

정말로 어딘가에 잘 살아 있길 바라는 동시에 그리운 사람이 있으신가요? 살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누구와 한 번씩은 헤어지게 되어 있는데 그 모든 헤어짐이 그리움으로 거듭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종종 이별과 동시에 그리워지는 사람이 생기면 사람 귀하다는 게 뭔지 체감할 수 있어요.

이별 없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죽음 없는 삶일까요. 실존으로 계속해서 포화하는 세계에서 귀한 숨을 나뉘어 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그런 세계에서 사랑은 어떤 가치일까요. 그런 게 궁금한 밤입니다.

제가 아는 이 세계는 죽음이라는 끝이 있어서 언젠가 모두가 그리워할 수 있는 세계인데. 죽음 이후에 느끼는 그리움이 어떤 형태로든 꿈으로 발현되는 현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게 어렴풋해서 좀처럼 나아가기 힘들 때. 그런 때에는 지금의 현실이 죽은 내가 꾸는 꿈의 형태라는 생각으로 지내봐도 좋지 않을까요.

죽은 내가 생동하는 감각을 잃지 않는 유일한 세계. 그런 세계를 지금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생생하게 살아 있고 싶어지기도 해요.

죽음 이후에 죽음을 생각하는 게 너무 지겨워서 삶을 발명해버린 작은 신들의 구전처럼. 하루하루 있던 일들을 생각하며 일기를 써보기도 하고, 몇 가지 인사말을 추임새처럼 뱉기도 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이라는 말은 살아 있어도 죽어 있어도 쓸 수 있고 마음의 깊이를 담아 쓸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삶과 죽음의 공통어 같은 안녕이라는 말을 2024814일자 유서에 적어봅니다.


어딘가 닮아 보이는 나무 언저리와 구름 언저리
어딘가 닮아 보이는 나무 언저리와 구름 언저리

추신, 오늘 레터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딱 한 달 뒤에 출간이 예정되어 있는 첫 시집도 "안녕"에 가까운 이미지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 쓰고 있는 시들은 그 다음 시집에 묶이겠지만, 계속해서 삶과 죽음의 공통어 같은 "안녕"이라는 말에 포갤 수 있는 심상들을 계속 응집하고 싶다는 바람을 적고 갑니다. 오늘 레터 끝에 두는 노래는 샤이니의 〈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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