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쫄쫄보의 유서

제8화 앞날을 향하여

2024.09.12 | 조회 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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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생로병사. 사람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생로병사는 그 네 가지 고통을 뜻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저는 불교 용어를 좋아해요. 살아 겪는 고통을 언어로나마 짧게 통찰할 수 있게 하니까.

괴로움을 뜻하는 고(苦)라는 한자도 불교 용어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때 윤회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롭죠. 언제까지 괴로울 거냐. 인생은 괴롭기만 한 거냐. 글쎄요. 괴로움이 없고 편안함만 있으면 그건 편안함일까요. 이미 고통을 안 사람이어서 편안하기만 한 평생이 좀처럼 그려지지 않네요. 그렇다고 마냥 괴롭지만은 않아요. 이런 말을 살포시 해둬야 앞날을 향하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나 겪는다는 그 네 가지 고통을 이어서 줄줄이 겪는 건 싫은데. 그중에서도 병사. 그러니까 병들어 죽는 것은 은연 중에 생각해왔던 오랜 결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정도로 늙었을 때 죽게 될까요. 사는 동안 건강하고 무탈하기. 저도 그렇지만 제 주변 모두가 그렇기를 바라는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져요.

명절이면 병원부터 갔던 시절이 있었어요. 집안 어른이 편찮으시면 명절 풍경이 그렇게 바뀌곤 했어요. 병원 특유의 미지근한 공기가 있는데 이맘때 불쑥  여러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이제 곧 추석이지요. 얼마 전 점심 회식 때 한 직장 동료가 말했어요. 명절 때 아프지 마시고 다치지 말라고요. 그 말이 덕담인가 싶어 잠시 아리송했지만 이해가 됐어요. 꼭 명절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병원 진료받기가 참 힘드니까. 

이제 곧 추석이라는데. 날이 여전히 무더워 실감이 안 납니다. 그래도 어젯밤 하늘을 보니 달이 부지런히 차오르고 있더군요. 그제는 엄마가 동네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주워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어요. 자연은 여전히 정직하게 가을을 데려오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애써서 마주한 보름달에 어떤 소원을 빌까. 오늘부터 하루이틀은 그런 생각을 해봐도 좋겠어요.  그 생각을 하기 전에 읽은 김종삼 시인의 「앞날을 향하여」를 여기에 다시 받아 적습니다.  

 

나는 입원하여도 곧 죽을 줄 알았다./ 십여 일 여러 갈래의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나 있었다./ 현기증이 심했다./ 마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시체실 주위를 배회하거나/ 죽어가는 사람의 침대 옆에 가 죽어가는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긴 복도를 왔다갔다 하였다./ 특별치료 병동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 놀러 가곤 했다./ 시체실로 직결된 후문 옆에 있었다./ 중환자실 후문인 철문이 덜커덩 소릴 내이며 열리면 모두 후다닥 몰려 나가는 곳이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이었다./ 한 아낙과 어린 것을 안은 여인이 나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나는 냉큼 손짓으로 인사하였다./ 그들은 차츰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말벗이 되었다./ 그인 살아나야만 한다고 하였고 오래된 저혈압인데 친구분들과 술추렴하다가 쓰러졌다./ 산소호흡 마스크를 입에 댄 채 이틀이 지나며 산소 호흡기 사용료는 한 시간에 오천 원이며 보증금은 삼만 원 들여놓았다며/ 팔려고 내놓은 판잣집이 팔리더라도 진료비 절반도 못된다며, 살아나 주기만 바란다고 하였다./ 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반겼다. 그들도 나를 그랬다./ 십구 일 동안이나 의식 불명이 되었다가 살아난 사람도 있는데 뭘 그러느냐고 큰소리치면 그들은 그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며칠이 지난 새벽녘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어둠한 계단 벽에 기대고 앉아 잠든 아낙이 낯익었다./ 가망이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이가 생존할 때까지 돈이 아무리 들어도/ 그이에게서 산소호흡기를 떼어서는 안 된다고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되풀이하여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다시 받아 적으면서 언젠가 "되풀이하여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었"던 마음을 간신히 떠올렸다고. 그 마음 생각하며 앞날을 향하여 가겠다고. 2024년 9월 11일 유서에 적어봅니다. 


이번 추석도 엄마와 밤 줍기를
이번 추석도 엄마와 밤 줍기를
추신, 더도 말고 덜도 말도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이 꼭 어울리는 명절이면 좋겠어요. 무리 없이 풍성할 수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주어지길 달님에게 빌겠습니다. 저는 근래에 연일 야근을 하고 있느라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데요. 그래도 이렇게 글을 써서 보내고 나면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요.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의미를 담아 여느 때처럼 레터 끝에 노래 하나 놓고 갑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듣기 좋은 달총 목소리입니다.
가을바람 불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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