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 사람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생로병사는 그 네 가지 고통을 뜻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저는 불교 용어를 좋아해요. 살아 겪는 고통을 언어로나마 짧게 통찰할 수 있게 하니까.
괴로움을 뜻하는 고(苦)라는 한자도 불교 용어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때 윤회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롭죠. 언제까지 괴로울 거냐. 인생은 괴롭기만 한 거냐. 글쎄요. 괴로움이 없고 편안함만 있으면 그건 편안함일까요. 이미 고통을 안 사람이어서 편안하기만 한 평생이 좀처럼 그려지지 않네요. 그렇다고 마냥 괴롭지만은 않아요. 이런 말을 살포시 해둬야 앞날을 향하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나 겪는다는 그 네 가지 고통을 이어서 줄줄이 겪는 건 싫은데. 그중에서도 병사. 그러니까 병들어 죽는 것은 은연 중에 생각해왔던 오랜 결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정도로 늙었을 때 죽게 될까요. 사는 동안 건강하고 무탈하기. 저도 그렇지만 제 주변 모두가 그렇기를 바라는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져요.
명절이면 병원부터 갔던 시절이 있었어요. 집안 어른이 편찮으시면 명절 풍경이 그렇게 바뀌곤 했어요. 병원 특유의 미지근한 공기가 있는데 이맘때 불쑥 여러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이제 곧 추석이지요. 얼마 전 점심 회식 때 한 직장 동료가 말했어요. 명절 때 아프지 마시고 다치지 말라고요. 그 말이 덕담인가 싶어 잠시 아리송했지만 이해가 됐어요. 꼭 명절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병원 진료받기가 참 힘드니까.
이제 곧 추석이라는데. 날이 여전히 무더워 실감이 안 납니다. 그래도 어젯밤 하늘을 보니 달이 부지런히 차오르고 있더군요. 그제는 엄마가 동네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주워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어요. 자연은 여전히 정직하게 가을을 데려오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애써서 마주한 보름달에 어떤 소원을 빌까. 오늘부터 하루이틀은 그런 생각을 해봐도 좋겠어요. 그 생각을 하기 전에 읽은 김종삼 시인의 「앞날을 향하여」를 여기에 다시 받아 적습니다.
다시 받아 적으면서 언젠가 "되풀이하여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었"던 마음을 간신히 떠올렸다고. 그 마음 생각하며 앞날을 향하여 가겠다고. 2024년 9월 11일 유서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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