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쫄쫄보의 유서

제5화 바다와 바닥

2024.08.21 | 조회 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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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친구 따라 이틀 동안 여름 바다 보고 왔어요. 난생처음 스노클링 마스크도 써보고 구름도 등대도 선명한 한낮에 서핑을 배웠어요. 넘실대는 바다. 보드 위에 납작 엎드렸다가 아슬아슬 일어나기. 보드 앞머리에 작은 조개 하나 놓으며 떨어뜨리지 말라는 강사분의 당부가 있었어요.

당부대로 하고 싶었는데. 작은 조개와 함께 입을 벌리며 바다에 빠졌죠. 수심이 얕은 지점에서 고꾸라졌는데도 몸과 마음에 힘 빼는 게 쉽지 않아 깊이 빠진 듯 허우적거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 순간 저 웃고 있더라고요.

수영은커녕 헤엄도 못 치는데 괜찮더라고요. 어릴 때 수영장에서 죽을 뻔한 적이 있어서 심히 걱정했었는데 얼마간 안전하게 물속에 머무를 수 있었어요. 친구가 알려줬거든요. 몸에 힘을 빼고 잠시 숨을 참는 방법을요. 방향 잡기는 아직 서툴지만, 그날 그렇게 바다에 있으면서 영영 떠밀려가지도 가라앉지도 않았어요.

지금 이 글을 쓰다가 웃음이 났어요. 분명 맨손인데 갈색 장갑을 끼고 있는 것처럼 손이 탔거든요. 서핑복을 입고 한껏 해를 쬐니 손목까지만 피부가 그을렸더라고요. 평소 같으면 원래대로 안 돌아올까 싶어 전전긍긍일 텐데 자꾸 웃음이 나네요. 살아 있는 한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어렴풋한 확신 같은 게 불쑥 생겨난 걸까요.

사실 바다 갔다 돌아오는 길이 쉽지 않았어요. 그동안 잘못 산 것 같은 기분에 한껏 휩싸여서 함께 가는 친구한테 푸념을 쏟았어요. 저는 늘 이래요. 알고 있었는데 고쳐지지는 않았어요. 운전하던 친구가 말했어요. 대체 언제 행복할 거냐고요.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당부에도 저는 입을 벌리고 또 혼자만의 다이빙을 시작했죠.

몇 년 전, 이제 죽어도 아니 언제 죽어도 스스로 싸다 싶을 때 유쾌하면서도 적당히 따뜻한 방식으로 저를 말려주던 친구와 차도 위를 달리며 나누던 대화. 다른 것 없이 여전히 더 말하고 보는 사람이지만 친구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그 순간이 참 소중했어요.

저는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이거 하나만 해결되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한껏 기도를 올리며 살다가도 뭐 하나 해결되면 그다음 바라는 게 생기고, 막상 주어지면 제대로 만족하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삶을 즐길 줄 모르는 불안과 권태를 시소의 양 끝에 앉히고 전전긍긍 종종걸음으로 시소 위를 짧게 오가던 날들. 이제 그런 날들과는 작별해야지 싶어서 오는 기쁨을 나지막이 표현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래 봐야 사흘째지만 계속해보려고요.

행복하다. 이 말을 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그 행복이 모두 마음의 빚처럼 느껴졌든요. 언젠가 상환해야 할 것처럼 끌어다 써야 하는 순간 같아서.

그 오랜 부채감의 근거지를 부지런히 찾아보면 결국 어린 시절이어서. 근데 또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걸 체감하는 어른으로 자라서. 뭐 하나 쉽게 적을 수가 없는 진심들이 있네요.

언젠가 죽고 나면, 만약 그때에도 지금 품고 있는 삶의 문제를 제가 해결하지 못했다면 이거 하나만 알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싶은데. 하루하루 너무 많은 글을 남기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그래도 이거 하나. 바다와 바닥. 그러한 차마 닿지 않음. 저는 아마도 그게 수심을 가장한 또 다른 하늘이라고 말하고 싶나봐요. 그래서 이렇게 많은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2024821일자 유서에 적어봅니다.


하늘보다 짙고 푸르러 보이던 바다에서
하늘보다 짙고 푸르러 보이던 바다에서
추신, 내일이면 처서라서 곧 가을 바람이 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몇 주가 꽤 길겠죠. 평생 해결해도 모자랄 것 같은 삶의 문제에 봉착한 분들이 있을까요. 저는 외면하다가 이제 제대로 봉착입니다. 그런 분들과 함께 힘내고 싶어서 가을부터는 또 다른 형식의 레터를 종종 띄울 예정이에요. 오늘 레터 끝에는 온유의 노래 한 곡 두고 갈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흔들림 없는 대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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