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돌아온 수요일의 이종철, 수종철입니다. 더위가 이제 한창 시작이네요. 물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래서 물살종철됐습니다.
오늘은 최근 친구끼리 했던… 아 아니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소개팅에서 했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소개팅은 잘 안됐으니 관심갖지 말아주세요. 나가주세요.
어릴 적 저는 없이 자란 편입니다. 친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인데요. 그러다 보니 특정 상황에 닥쳤을 때 생각하는 게 비교적 비슷하더군요. 각자 타지에서 와서 만났는데도 그랬습니다.
어릴 적 저는 서울에 가면 전부 부자인 줄 알고 있었는데요. 서울을 접할 수단이 TV밖에 없다 보니 서울 사람은 다 엘레강스하게 인테리어하고 전화받을 때 ‘합정동입니다’ 이렇게 받는 줄 알았어요. 물론 ‘서울의 달’ 같은 드라마도 있지만 그 서울의 달도 제가 살던 동네보다는 잘 살았었습니다.
그러다 일산에 사는 외삼촌이 방학 때 서울 구경을 시켜주셨는데, 서울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촌 누나와 홍대에 와서 어린이 영화를 보고(홍대병은 사실 유서 깊었던 겁니다) 장충동에 가서 즉석떡볶이를 먹은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 대학 친구들을 만나보니 서울 애들도 없이 자란 건 매한가지더라고요. “너네 집에서 전화받을 때 합정동입니다 이렇게 받았어?” “뭐래 그냥 여보세요 했지” “그럼 합정동입니다는 누가 한 거야?” “동사무소 직원 집이었나보지”.
하여튼 이렇게 없이 자란 애들은 돈을 2만원 넘게 쓰면 큰일나는 줄 알았습니다. 제 자취방 술안주는 무조건 1만 2,000원에 두 마리 주는 코스닭이었고 코스닭 다 먹으면 과자나 라면을 먹었죠. 형 오늘 삼겹살 먹으면 안 돼요? 너 재벌집 아들이야? 박신양이야? 이런 식입니다.
계란말이 같은 건 꿈도 꾼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학교 축제가 끝나고 한 판에 준하는 계란과 치자피즈를 버린다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 그걸 얻어왔죠. 기숙사생들은 조리를 할 수 없고, 통학생들은 그걸 갖고 갈 수 없고, 자취생끼리의 싸움인데 전력 질주하고 보니 저만 달리고 있더군요. 괜찮다. 수치는 한순간이고 계란은 몇 주 먹는다.
그걸로 한동안은 치즈계란말이를 안주로 먹었는데요. 너희들 알았니? 이 부의 맛, 치즈계란말이 먹으면 화장실 가는 것도 부드럽단다? 아참, 모르지 너희? 오늘도 수돗물로 배 채웠지? 없이 자란 아이들은 이렇게 조금만 뭐가 생기면 타인을 업신여기곤 했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많이 그랬습니다. 그러다 강남 출신 진짜 부자 학우들을 만나면 괜히 눈 깔고 먼 산 보고 그랬습니다. 원래부터 돈에 무관심한 척했어요. 그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삼겹살은 재벌이나 먹는 거지만 비슷한 음식들은 있었습니다. 목살 어드메 정체불명의 냉장 부위를 판매하는 동아리, 삼삼이네 같은 고깃집들이 있었고 이곳은 반찬으로 전이나 된장찌개 같은 것도 줬었거든요. 없이 자란 친구들은 외식하면 무조건 동아리에 가자고 했고, 동아리에 가면 같이 오기로 안 했는데 다른 없이 자란 팀을 자주 마주치곤 했습니다. 그 팀에 취업한 선배 없나 눈치 전쟁을 한 이후에 고기를 먹었고요. 삼삼이네 1인분 3,300원이라 삼삼이네였는데 나중에 비교적 고급 가게가 되어서 작년까지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망한 건 아니고 사장님이 은퇴하셨어요.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이 습관이 잘 사라지지 않아서, 치킨 너무 비싸다고 망원시장에 가서 통닭을 사 오거나 마포농수산시장가서 횟감을 떠오곤 합니다. 스테이크 파스타 같은 건 주로 만들어 먹고요. 이제는 이게 돈을 아끼는 수단보다는 일종의 목적이 된 것 같아요. 돈을 아껴서 한 번 더 놀자는 어떤 암묵적인 약속. 사실 쟤들 없이 혼자 있으면 가끔 배신자처럼 혼자 비싼 와인 먹고 그럽니다. 와인 따기 전 쟤들 와서 들킬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불굴의 쪼잔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저는 비열한 승리감을 느낍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또 다른 없이 자란 기자와 홍콩 출장에 가게 됐어요. 신입 기자 시절이라 비행기 자체도 별로 안 타본 상태였는데요.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커피를 못 마셔서, 기내식으로 커피를 한잔 마시려고 했습니다. 20달러 정도 하는 가격을 보고 옆자리 기자가 뭘 20달러나 내고 커피를 먹냐고 메뉴판을 뺏더군요. 일정 부분 동의하는 바도 있어 타는 갈증을 참고 내렸는데 알고 보니 20홍콩달러였습니다. 4천 원이 되지 않았던 것이죠. 제가 아무리 없이 자랐어도 4천 원짜리 커피는 먹을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서 지는 꼴에 홍콩 가서 원스타 식당 다니더만. 물론 홍콩 원스타 식당들은 꽤 저렴하긴 합니다. 이분은 나중에 저보다 한발 늦게 편집장이 돼서 잘 먹고 살지만 악다구니로 돈을 아낀 저보다는 아휴 또 업신여길 뻔했다.
다른 비행기 사례도 있습니다. 저 친구들과 비행기를 탔는데요. 다들 비행기를 처음 타봐서 밥을 먹으면 돈을 내는 줄 알았습니다. 식사를 주길래 저가항공처럼 먹으면 돈 내는 줄 알고 야 먹지 마 돈 내야 돼. 아냐 사람들 다 먹잖아 그냥 먹는 거 아냐? 아냐 우리는 싼 표 탔잖아 그래서 수하물도 없잖아 카드로 결제해야 될 걸? 카드 결제 안 하는데? 그리고 공중에서 무슨 카드 결제를 해? 이렇게 저희는 굶으며 해외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그 뒤부터 기내식에 한 맺혀서 배불러도 먹어요.
다행히 이 없이 자란 친구들은 없이는 자랐지만 다들 성실하고 머리가 좋아 지금은 그럭저럭 먹고살 만합니다만 우선 내 돈은 아끼고 보자는 쪼잔함은 여전히 갖고 살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제일 심합니다(!? 어찌 됐든 대박친 사람은 없지만 다들 먹고 싶은 거 먹고살 정도는 됐으니 참 다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배고픈 분들도 언젠가는 저처럼 성공 아 아닙니다.
글을 쓰다 보니 왠지 서글픔까지는 아니고 살짝 속이 상해서, 원래 2식에 2만 원을 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오늘은 노랑통닭 순살 3종 세트를 먹어야겠습니다. 저야 치킨 한 마리로 이틀을 먹을 수 있으니 1식에 1만 2,000원이 되는 셈이네요. 이 부의 맛이라니. 사실 오늘 땡겨요 땡땡데이라 최대 1만 3,000원 할인하는 날입니다. 할인에 최대로 성공하면 1만 1,000원으로 이틀을 버틸 수 있게 됩니다. 11일이 되면 KFC 치킨 올데이 없어 보이므로 그만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대부분은 저와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치셨고, 지금은 그래도 치킨 한 마리 정도는 마음 놓고 드실 수 있으실 거라고 예상하고요. 혼자 드시지만 마시고 수종철 후원 제도 아 아닙니다. 하여튼 맛있는 거 드시고 수요일만큼은 꼭 행복하세요. 제가 그 행복에 매주 일조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치킨 먹으러 갑니다. 부디 최대 할인 받게 기도해 주세요. 저는 다음 주에 다시 있어 보이는 글로 돌아옵니다. 뿅.
*메일리의 답장 기능을 잘 모르겠어서, 이 글에 대한 답장을 보내시려거든 soojongchul@gmail.com으로 부탁드립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울란바토르라보리스옐친
내 아무리 없이 자랐지만 못된 심보는 ㅇ벗어요.
돌아온 수요일의 이종철. 수종철입니다
힘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유쾌한씨
지금은 서울 한강보이는 자가를 지니신, 저보다 1,000,000배는 더 부자이시니 만나면 맛있는거 사주세요 :)
유쾌한씨
그리고 재미, 우울, 지식, 불안까지..! 어마무시하시네요. 저는 재미도 없고 지식도 없는데...
돌아온 수요일의 이종철. 수종철입니다
씨레벨이시잖아요 저는 가진 것이 바이 없어 자가를 구매했고 그 빚을 10년째 갚고 있죠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