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올림픽이 한창인데요. 아쉬운 패배와 짜릿한 승리의 순간을 보며 그저 한순간의 판단 혹은 판단하지 않음으로 인해 결과가 갈리는 것을 보며,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안전지대에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올림픽 이야기냐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오늘 콘텐츠는 올림픽을 보며 갑자기 떠오른 하나의 조각에 대해서 독자분들과 나눠보려고 합니다.
먼저, 앞서 ‘여전히 안전지대에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여기서 ‘안전지대'는 어떤 걸 의미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안전지대란 내가 통제가능하고 예측가능한 범위를 의미하는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과 같은 라켓 운동을 보다 보면 ‘코스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상대가 준비하지 못한 방향으로 공을 보내야 한다.’, ‘범실이 나더라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와 같은 해설위원들의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는데요. 아마 (선수들은 들을 수 없는) 이 조언들이 선수가 시합 중에 나름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거나 오늘 콘텐츠도 우리의 일상의 업무에 대한 이야기예요.
오늘 콘텐츠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신뢰성에 의존하며 가끔은 타당성을 잊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리고 신뢰성에 매몰되어 타당성에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여기서 신뢰성은 위에서 이야기한 안전지대와 관련이 있고, 타당성은 우리가 진정으로 희망하는 결과(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콘텐츠에서는 먼저 신뢰성과 타당성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야기해 보고, 일상의 업무 속에서 신뢰성과 타당성이 어떻게 우리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나갈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 일관된 결과를 보장하는 신뢰성과, 올바른 결과를 보장하는 타당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거예요.
- 비즈니스, 그리고 일상의 업무에서 개인의 주관이나 편견에 영향받지 않는 신뢰성 높은 활동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위험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거예요.
- 신뢰성과 타당성은 모두 중요해요. 따라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죠. 둘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 볼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볼 거예요.
신뢰성과 타당성
통계학이나 연구방법론과 같은 것들을 배우신 분들이라면 신뢰성과 타당성의 개념을 배우신 적이 있을 것 같아요.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뢰성(혹은 신뢰도, Reliability)는 일관성을 의미하고 타당성(혹은 타당도, Validity)는 정확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신뢰성(신뢰도) = 일관성
- 타당성(타당도) = 정확성
신뢰성과 타당성은 보통 어떤 실험이나 측정을 반복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뤄지는 개념들인데요.
- 신뢰성이 높다는 것은 실험이나 측정을 반복할 때, 동일한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해요.
- 타당성이 높다는 것은 실험이나 측정을 반복할 때, 원하는 것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사실 올림픽을 보면서 신뢰성과 타당성에 대한 개념을 떠올리게 된 것은 양궁 때문인데, 보통 신뢰성과 타당성을 공부할 때 과녁판 이미지로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경우가 많아요. 구글에 Realibility and Validity를 검색해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아래 이미지 참고).
위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신뢰성과 타당성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총 네 가지예요.
- 신뢰성과 타당성이 모두 높은 경우 : 화살이 중앙에 집중적으로 쏘아진 경우
- 신뢰성은 높고 타당성은 낮은 경우 : 중앙이 아닌 다른 곳에 일정하게 화살이 쏘아진 경우 (영점만 맞은 경우)
- 신뢰성은 낮고 타당성은 높은 경우
- 신뢰성과 타당성 모두 낮은 경우 : 과녁에 넓게 퍼져서 화살이 쏘아진 경우
하지만 이 중에서 세 번째, 신뢰성은 낮고 타당성은 높은 경우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해요. 복잡한 수식이나 논증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직관으로도 정확하게 측정하지만 일관되지 못하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죠. 그렇기에 일단은 정확도가 낮다는 것은 일관성도 낮다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경우의 수는 세 번째 경우를 제외한 세 가지인 셈이죠.)
신뢰성이라는 안전지대를 넘어
그러면 비즈니스와 우리의 일상의 업무에서 신뢰성과 타당성이란 개념은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을까요?
지식근로자라는 표현이 생겨난 이래로, 우리는 물리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이라는 무형의 산출물을 생산해 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즉, 어떤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이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죠.
비즈니스가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프로세스나 시스템이라는 이름 하에 이 과정을 효율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과정을 효율화하면서 많은 경우 우리는 개인의 주관이나 편견에 의한 왜곡을 최소하려고 하고, 일관되면서 예상가능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그리고 우리는 결과적으로 편안함을 느끼죠.
- 이러한 시도로 대표적인 것이 ‘데이터 기반'인 것 같아요. 개인의 직관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모두가 납득 가능하며 논리적으로도 (비교적) 완벽한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사업이나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필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신뢰성에 매몰되는 경우 우리가 흔히 꼰대를 판별하는 마법의 단어 '라떼는'이 등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과거의 성공공식을 반복하는 데 그치는 것이죠.
스포츠로 시작했으니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 풀어가 본다면, 이번 탁구 혼합복식 동메달리스트이자 여자 단식 4위를 기록한 신유빈 선수의 경기가 어제 있었는데요.
- 예를 들어 짧은 리턴을 좌우로 보내 상대방을 흔들면서 찬스볼이 나왔을 때 강력한 스매시나 바나나 플릭으로 점수를 따겠다는 전술로 1세트를 따냈다고 가정해 볼게요.
- 근데 2세트에서는 1세트와 달리 상대방이 이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면서 상대방에게서 들어오는 리턴이 나에게 찬스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면, 전술을 바꿔야 하겠죠. 만약 1세트의 전술에 대비한 상대방에 관계없이 기존의 성공 공식을 유지한다면 패배할 것입니다.
- 이처럼 스포츠에서도 그렇지만 비즈니스에서도 신뢰성 높은 방법을 찾아냈고 이를 통해 타당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이 방법의 지속기간이 언제까지일지를 모를 뿐 언젠가는 유효기간이 다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타당성을 추구하기 위한 활동도 함께 해야 하죠. 하지만 타당성을 찾는 과정을 늘 실패를 동반합니다.
- 다시 탁구 얘기로 돌아오면, 1세트 때 시도했던 것(그래서 성공했고 익숙해진 것)과 다른 것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감수해야 합니다. 다시 성공 공식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죠.
- 그래서 실점을 하더라도 다양한 시도, 공격적인 시도를 통해 다시 방법을 찾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말은 쉽습니다...)
우리의 일상의 업무에서 이러한 상황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전략에서 가장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는 지원부서(혹은 기능부서)의 사례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원부서는 전략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근본적으로는 지원부서의 업무도 기업전략과 사업전략을 달성하는 데 목표가 있습니다. (다만 지원부서의 전략으로 그 목표를 직접적으로 달성하지 못하기에 모든 영역에서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것 같지만요.)
- 많은 경우 기업의 재무/회계팀은 비즈니스가 성장하고 조직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내부통제나 전결규정과 같은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만들어 나갑니다. 개인의 일탈과 원하지 않는 상황(법인카드를 이상한 곳에 사용한다거나, 비용을 추적할 수 없다거나)을 막기 위해서요. 그러다 보면 복잡한 결재 프로세스와 규정들, 증빙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수많은 자료들이 필요하게 되죠.
- 이는 신뢰성을 높이는 프로세스임에는 분명한 것 같아요.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얼마를, 왜 사용했는지에 대해 모두 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활동에 대해 ‘타당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 대부분 아닐 것 같습니다. 즉, 신뢰도는 높지만 타당성은 낮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 그렇다고 사업조직을 전적으로 믿고 완전한 자율성을 주는 것이 답이냐라고 하면 당연히 그것도 아닐 거예요. 조직은 나름의 규율이 있어야 하고, 이를 지키는 사람들로 인해 조직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말은 하지만, 신뢰성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안전함을 추구하는 본능이기도 하고, 신뢰성도 동일하게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신뢰성과 타당성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가 아니라,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인 것 같습니다. (위의 경우에서는 그래도 신뢰도에 조금 더 높은 비중을 두는 것이 옳은 방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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