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일이 하고 싶은가?
고객과의 미팅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 하늘은 눈부시게 파랍니다. 그런데 마음은 뭔가 답답합니다. 말도 많이 했고 설명도 많이 했는데, 그냥 힘만 쓴 것 같고, 그렇습니다.
아, 영업 참 쉽지 않네.
그리고 동료들과 저녁을 합니다. 술이 한두 잔 오가면, 여느 직장인처럼 답답함도 토로하고, 또 나름 자부심도 찾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아, 나 영업이 안 맞아. 빨리 은퇴해야지. 다른 세일즈는 운이 좋은 것 같아. 등등.
그러다 또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팅으로 달려가고, 세상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링크드인도 보고, 남들은 뭐하나 자료들도 많이 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무언가를 셀링하기 위한 일에 몸담고 있는 여러분은 지금 하시는 일이 어떤가요?
방법론도 있다고 하고, AI가 도와줄 거라고 하고, 생산성도 늘어난다고 하는데 영업이 쉬워지나요?
지금까지 시리즈의 글들만 봐도 적어도 B2B 테크 세일즈는 고난도 전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기술, 산업, 고객, 전략, 프로젝트, 프로세스, 구매, 에코시스템 등등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글로벌 조직에서는 영어도 잘하면 좋고, 참 복잡한 일이죠. 협업도 잘해야 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네요. 거기에 태도도 좋고 성실해야죠. 술도 잘 마시고요? 드라마에서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결국 보는 건 하나입니다. 숫자죠.
그래서 가장 답답한 건 이걸 다 알아도 회사가 설정하는 목표 대비 못 팔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저보고도 지금 가서 조직을 꾸리고 바로 성과를 내라고 하면 제품이나 산업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산업과 고객이 이 순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과 우리의 적합성, 그리고 그 담당자와 고객사의 복잡성 등이 이유가 되겠죠.
또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죠.
불특정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감정을 가진 사람 말이죠. 합리적인 고객들이 대다수지만, 요구하는 것도 많고 까칠한데 돈도 많이 안 쓰는 고객도 있습니다. 그런데 담당 고객사면 피할 수 없죠. 어우.
사람을 줄이면서 5억을 세이브하는 비용절감을 말했는데, 지금 있는 사람을 줄일 수는 없다고 하기도 하고,
자동화의 장점을 말했는데 그것보다 가격이 더 중요하다고 하기도 하죠. 비슷한 거 많으니 가격만 본다고요.
또 이런저런 지원과 밸류를 말해도, 일단 술자리나 골프 등이 더 중요한 고객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돈의 팔촌이 운영하는 회사를 통해야 납품을 할 수도 있고, 퇴직자분들이 만든 회사가 입김이 센 네트워크도 있죠.
이런 현상을 좋다 나쁘다 정의하기 전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시작해야 하죠.
회사는 밸류와 전문성으로 팔라고 하는데 시장은 가격과 접대를 요구하기도 하고, 회사는 유저 경험과 셀프서비스를 강조하는데 고객은 아웃소싱과 프로페셔널 서비스가 비용에 포함되길 바랍니다.
뭐 요새는 AI 기업들을 중심으로 FDE처럼 기술 인력이 고객 안으로 더 깊게 들어가는 역할도 늘고 있으니 그나마 낫지만요.
그래서 한 곳에서는 올해의 세일즈에 뽑혀도 다른 곳에서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게 세일즈입니다.
문제점은 많고 진단은 잘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딱 한 가지 답을 내놓기가 참 어려운 게 세일즈죠.
그래서 일반화해 표현하는 많은 방법론이 와닿지 않고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이 솔루션을 잘 팔고 싶어 했나?
그래서 고객을 도와주고 싶어 했나?
내가 달달 외운 거, 잘하는 척 말고 정말 내 시장과 고객을 이해했었나?
이런 생각이죠.
그냥 어떻게 좀 되길 바라는 거, 누가 좀 해주길 바라는 거 말고요.
정말 바쁘기 위해서, 뭔가 하기 위해서 만나고 미팅하는 거 말고, 정말 내가 저 사람 잘되게 하기 위해서 고민했나? 이거 팔려고 목표를 삼았나? 싶더라고요. 그랬다면 앞의 수많은 변수들은 그날그날 나를 괴롭게 하는 이슈들이 아니라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풀어야 할 문제로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고 싶은 게 없다면 플랜이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노력은 더 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먹고살아야 하니 어느 정도 따라가기는 합니다. 사실 먹고살려고 일하는 게 잘못도 아니죠. 저도 그렇고요.
그런데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도, 적어도 지금 맡은 고객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고, 그 사람이 가진 문제를 한번 제대로 이해하고 풀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가?
저는 그 질문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조차 없다면 그 시간을 버티는 것도, 더 공부하는 것도, 실패하고 다시 해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니 괴롭죠.
게다가 AI가 조사하고, 정리하고, 자료를 만들고, 후속 작업까지 도와주기 시작하면 오히려 사람이 그 고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가 더 적나라해집니다.
그래서 나는 뭘 하려고 하는가.
일을 도와줄 Agent들이 생기면 결국 그들에게 일을 시키고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그때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리더십은 꼭 다른 사람을 이끄는 얘기만은 아닙니다. 자기 삶과 일의 주도권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정하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 역순으로 계획하고 밀고 가는 힘에 더 가깝습니다.
그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목표죠.
흔히 생각하는 돈을 벌고 싶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 하는 수단이 목표가 되는 거 말고, 정말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목표요.
AI 시대가 될수록 하고 싶은 게 없다면, 그리고 방향이 없다면, 생산성으로 남는 시간이 즐거울까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만 더 커지지 않을까요?
다행인 건 시간이 주어진다는 거고, 그 시간에 우리는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겁니다.
하고 싶은 걸 정하고, 내가 가치를 제공하고 싶은 대상을 공부하는 시간이 있다는 거죠.
McKinsey도 2026년 7월 B2B Sales 보고서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13개국에서 약 4,000명의 buyers와 sellers를 조사하고 글로벌 기업의 revenue leader들을 인터뷰했는데, 영업의 하루를 채우던 단순한 일들이 줄어들수록 결국 사람에게 남는 건 고객과 관계를 만들고 판단해야 하는 더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인지 부담도 더 높을 수 있다고요.
결국 AI가 일을 줄여준 뒤 남는 일 중에는 오히려 더 사람다운 일, 그래서 더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나 자기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고마운 법이라는 걸 이곳 런던에서도 깨닫습니다.
그러니 돈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의 전문성 외에도 친절함, 꼼꼼함, 태도 이런 게 중요하다고 하나 봅니다.
AI 시대에 철학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많은 유튜브 영상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죠.
영업을 한다고 할 때, 을로서 너무 조심스러울 필요 없습니다. 우리도 어딘가에선 또 갑이죠.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기회가 많습니다.
제가 경험한 영미권 조직에서는 고객과 공급자가 비교적 대등한 관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밸류와 서로 주고받을 확실한 무언가가 더 강조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미권에서도 서비스 제공자의 태도가 좋고 신뢰를 지키려고 하는 것 역시 밸류가 됩니다.
반대로 제가 함께 일한 아시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관계와 조직 전체의 맥락이 비즈니스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장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비즈니스 접근이 더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고요.
다만 스스로 위축되는 마음과 태도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고객은 자기를 도와줄 전문가를 찾습니다. 같이 하고 싶은 전문가요.
예전에 한 고객에게 제품 밸류를 한참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그 사람이 더 반가워한 건 제품 설명 자체보다, 비슷한 사례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벤치마크 출장을 같이 고민하고 추진해준 일이었습니다.
제품의 밸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고객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대화 속에서 알아채고, 거기서 한 걸음 더 움직이는 작은 디테일이 때로는 더 크게 남았습니다.
앞에서 던졌던 질문을 조금 바꿔서 다시 해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는 시간에,
내가 정말 이 일이 하고 싶은가?이 프로젝트와 문제 해결이 하고 싶은가?
그냥 먹고살려고 하나?
그렇죠, 돈 벌고 먹고살아야 하니 일하죠. 괜찮습니다.
그런데 나는 최소한 이 고객의 하루와 일을 알고 있나?
모르면 공부해야겠네? 그 공부가 뭐지?
마지막으로, 이 고객이 지금 진짜 필요한 게 뭔지, 나는 대화 중에 알아챌 만큼 듣고 있나?
이 세 가지를 치열하게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고민해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고, 우린 또 미팅을 갑니다.
그 사이 쏟아진 AI 뉴스를 보면서 불안해하고, 내부에 보고할 내용에 머리 아파하고, 장애가 났다고 도와 달라는 고객 전화를 받으며, 왜 그냥 가만히 넘어가는 날이 없냐고 마음이 바쁠 수도 있겠죠.
여전히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왜 일을 하는지는 조금 더 분명해진 채로요.
다음 화 예고
우리는 이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는지, 목표가 있는지, 그리고 생산성이 증가함에 따라 그 시간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이야기해봤습니다. 그런데 다 똑같을 수 없죠.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죠. 비즈니스라고 다 외향적이어야 잘하는 게 아니죠. 누군가는 사람을 만나고 미팅하는 걸 좋아하고, 누군가는 Ops에 더 능하고 시스템 관리를 잘하죠. 다음 화에서는 미팅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Ops에 능한 사람 등 성향과 sales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McKinsey & Company, The future of B2B sales: How growth champions rewire their playbooks with AI, 2026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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