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테크 영업

3화. 고객은 다 알아보고 왔는데, 왜 여전히 안 살까?

고객 담당자도 회사 안팎의 복잡한 판을 지나야 합니다

2026.07.07 | 조회 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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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고객사 상황을 풀어가려면, 영업만 뛰어서도 엔지니어가 답만 해서도 안 됐습니다

“제품은 좋네요. 내부에도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고객 담당자는 이미 우리 제품을 꽤 많이 알아보고 왔습니다.

홈페이지를 읽었고, 비슷한 제품도 비교했습니다. 직접 테스트까지 해본 뒤 먼저 연락해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설명도 잘 통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면 잘 풀리겠는데?’

고객의 “좋네요”를 “곧 살게요”의 사촌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먼 친척도 아니었습니다.

다음 미팅에는 IT 담당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다음에는 보안팀이 등장했습니다. 기존 SI와의 계약을 확인해야 했고, 실제 사용부서는 AI가 만든 결과를 누가 검증할지 물었습니다.

운영팀은 장애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지를 궁금해했습니다.

예산과 구매, 법무 검토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분기 말이 되자, 저는 CRM에서 클로징 확률을 낮추며 땀을 흘렸습니다.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나 진지하게 고민도 해봅니다.

한 사람의 관심과 한 회사의 구매 결정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레베이터 피치보다, 그다음이 중요해졌습니다

테크 회사들은 영업 교육에서 엘리베이터 피치를 강조하곤 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제품이 무엇이고, 왜 좋은지, 고객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지금도 이런 정리는 필요합니다.

다만 고객이 이미 검색하고, 생성형 AI에 묻고, 동료와 기존 파트너에게 확인한 뒤 미팅에 들어오는 시대에는 피치 자체보다 그 뒤가 더 중요합니다.

제품을 설명하는 시간은 짧아졌지만, 이 회사가 실제로 제품을 살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시간은 오히려 길어졌습니다.

특히 AI 제품은 기능 하나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고객사에서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건드립니다.

데이터를 어디서 가져오는지, 기존 시스템과 어떻게 연결하는지, 사람이 하던 판단을 어디까지 맡길지, 결과가 틀렸을 때 누가 확인할지, 운영과 보안의 책임은 누가 질지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술 질문 하나가 또 다른 사람을 불러냈습니다.

“기존 시스템과 연동됩니까?”

이 질문 뒤에는 데이터 담당자와 IT팀, 기존 SI가 따라왔습니다.

“이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습니까?”

그 뒤에는 실제 사용자와 결과를 검증할 사람, 운영과 보안 담당자가 나타났습니다.

고객 내부가 원래 단순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AI 제품은 고객의 데이터와 시스템, 업무와 판단, 운영과 책임을 한 번의 도입 안에서 더 자주 엮었습니다.

Gartner가 2025년 발표한 조사에서는 B2B 구매팀의 74%가 목표 충돌과 의견 차이 등 구매 과정에서 건강하지 않은 갈등을 겪는다고 답했습니다. 합의에 도달한 구매팀은 그렇지 못한 팀보다 구매 결과가 좋았다고 평가할 가능성이 2.5배 높았습니다.

담당자 한 명이 좋아한다고 구매가 끝나지 않는 것은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특히 처음 기업 고객을 상대하는 스타트업이나 주니어 영업이라면 이 지점에서 당황하기 쉽습니다.

제품도 좋다고 했고 담당자의 반응도 좋은데, 왜 일이 움직이지 않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고객이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라, 고객사 안에서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대화가 많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기술적인 사람을 검색창처럼 쓰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기술 질문이 나올 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프리세일즈나 엔지니어와 함께 미팅에 들어갔습니다.

고객이 묻습니다.

“기존 시스템과 연동할 수 있습니까?”

엔지니어가 답합니다.

“네, 가능합니다.”

“사내망에서도 쓸 수 있나요?”

“구성에 따라 가능합니다.”

“이 기능을 추가하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범위를 보면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바로 답하기 어려운 내용을 설명해주니 든든했습니다.

그런데 미팅이 끝나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이 남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지금 생각하면 이 판을 풀 중요한 축인 기술 전문가를 방에 데려가 놓고, 저는 그를 검색창처럼만 쓰고 있던 것 같습니다.

질문을 입력하면 답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답이 이 사업기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까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연동할 수 있습니다”라는 답 뒤에는 사실 이런 판단이 붙어야 했습니다.

“연동은 가능합니다. 다만 이 구조라면 고객의 데이터 담당 부서와 기존 SI가 먼저 들어와야 합니다. 지금은 데모를 더 하기보다 두 조직의 역할과 접근 권한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동화할 수 있습니다”라는 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다만 결과를 누가 검증할지 정해지지 않으면 실제 운영 단계에서 멈출 가능성이 큽니다. 다음에는 실제 사용자와 운영 책임자를 함께 만나야 합니다.”

저는 엔지니어에게 제품의 가능 여부를 물었습니다.

정작 필요했던 것은 그 답 때문에 다음에 누가 등장하고,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었습니다.


영업 한 사람이 퍼즐을 모두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고객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영업에게 요구되는 것도 늘어났습니다.

고객의 요구와 의사결정권자, 예산과 일정, 보안팀과 IT팀의 반응, 기존 파트너와의 관계까지 알아야 했습니다.

물론 사업기회의 진행을 책임지고, 필요한 내외부 사람을 불러 모으며 다음 행동을 만드는 것은 영업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하지만 정보가 여러 사람에게 흩어진 상황에서 영업 한 사람이 기술과 업무, 시스템과 운영의 의미까지 모두 알아오고 해석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이쯤 되면 사업기회보다 영업의 퇴사 계획이 먼저 구체화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영업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객의 질문을 내부에 전하고, 답을 받아 다시 고객에게 전달하는 브리지 역할에 더 초점을 맞추어버린 게 아닐까 합니다. 

각 기술 조건이 고객의 업무와 조직에 어떤 영향을 주고, 다음에 어떤 부서와 검토를 불러오는지까지 영업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맞추기는 어려웠습니다.

퍼즐 조각은 있었습니다.

다만 왜 이 조각이 중요하고 어디에 맞아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적인 판단이 함께 들어오지 않았던거죠. 

그 커뮤니케이션 사이 맥락은 조금씩 변하고 시간은 흘렀습니다. 빈칸에는 예상과 낙관이 들어갔습니다.

“보안 검토는 큰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예산은 아마 있을 겁니다.”

“내부 반응은 좋다고 합니다.”

CRM에는 다음 분기 클로징이라고 적었지만, 아직 누구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문제를 함께 보기 시작하자, 고객의 말이 달라졌습니다

제게는 “내부적으로 조금 더 검토해보겠습니다”라고만 하던 고객이 엔지니어와 실제 시스템이나 업무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갑자기 구체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시스템은 기존 SI 때문에 저희가 마음대로 못 건드립니다.”

“예산은 있는데 어느 부서 비용으로 처리할지를 못 정했습니다.”

“결과가 틀렸을 때 누가 확인할지를 아직 못 정했거든요.”

“이것만 가능하다면 내부설득이 훨씬 쉬울 것 같아요.”

고객이 엔지니어를 더 좋아해서라기보다, 대화가 판매에서 문제 해결로 바뀌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문제를 풀려면 고객도 시스템과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말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담당자도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조건과 다음 관계자가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얻은 정보마저 기술 메모로만 남기곤 했습니다.

엔지니어는 내용을 전달했고, 영업은 CRM에 몇 줄을 적은 뒤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죠?”

정보는 얻었지만 다음 회의의 참석자와 검토 순서, 제안 범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객 담당자와 대화가 잘 이어진다는 이유로 그 사람만 바라보며 사업기회를 진행하며, 내부 검토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물었습니다.

담당자는 내부에 이야기해보겠다고 했고, 저는 다음 일정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담당자가 안에서 알아서 길을 만들어주겠지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얼마 뒤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구매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도와주셨는데 미안합니다.”

고객이 미안해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담당자는 자기 자리에서 분명 노력했습니다. 제품이 갑자기 나빠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한 사람의 관심을 고객사 전체의 진행상황으로 너무 오래 번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서야 제가 보고 있던 것은 고객사의 구매 과정이 아니라, 친절한 담당자 한 사람과의 대화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엔지니어를 검색창처럼 쓴 것도, 고객 담당자 한 사람만 바라본 것도 결국 같은 실수였습니다.

복잡한 고객사를 한 사람의 입과 판단을 통해서만 보려 했던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됩니다” 다음의 문장이 필요했습니다

이 글은 엔지니어가 무언가 더 해주지 못해서 제품을 못 팔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엔지니어도 요청받은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고, 고객 담당자도 내부에서 애썼습니다. 영업도 나름대로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모았습니다.

다만 고객이 복잡해진 만큼 우리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엔지니어나 컨설턴트에게 영업을 대신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고객의 요청에 기술적으로 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제품이 이 고객의 업무와 시스템에 들어가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 의견을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음에는 데이터팀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은 데모보다 실제 사용자 인터뷰가 먼저입니다. 다음 미팅에는 저도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운영 책임자를 정하지 않으면 여기에서 멈출 것 같습니다.”

엔지니어가 모든 다음 행동을 직접 맡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라는 답만 남기기보다, 이 사업기회의 다음 수가 무엇인지는 함께 짚어줘야 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엔지니어와 컨설턴트의 역할은 기술 지원을 넘어 사업기회를 함께 풀어가는 역할로 달라집니다.

영업의 역할도 달라져야 했습니다.

엔지니어가 내놓은 의견을 받아 적고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사의 조직과 예산, 의사결정 구조를 더 찾아가며 누구를 만나고 어떤 내외부 리소스를 붙여 어떤 순서로 풀어갈지를 주체적으로 제시해야 했습니다.

고객이 “왜 지금 해야 합니까?”라고 물을 때와 “기존 시스템을 어디까지 바꿔야 합니까?”라고 물을 때, 같은 사람이 계속 앞에 설 이유는 없습니다.

고객의 조직과 예산, 의사결정이 중요한 자리에서는 영업이 더 많이 묻고 방향을 잡습니다. 업무와 시스템, 적용 범위와 운영 조건을 확인하는 자리에서는 엔지니어나 컨설턴트가 더 많이 묻고 판단합니다.

누가 직접 다음 행동을 맡든, 각자가 본 문제를 가지고 다음 단계를 함께 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오케스트레이션을 영업이 사람을 불러 모으고 일을 나눠준 뒤, 받은 답을 취합해 혼자 사업기회를 끌고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줄 알았는데 악기까지 하나씩 들고 뛰어다니는 모양이 됐습니다.

필요한 것은 영업을 도와줄 사람을 더 붙이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영업만 사업기회의 주체이고 엔지니어와 컨설턴트는 질문에 답하는 지원 인력으로 남는 구조도 바뀌어야 했습니다.

엔지니어와 컨설턴트는 자기 영역에서 고객을 직접 보고,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는지 판단하며, 어느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의견을 내야 했습니다.

영업은 고객사의 판을 더 넓게 보고 필요한 사람과 리소스를 움직이면서, 각자의 판단과 움직임이 하나의 사업기회를 앞으로 밀도록 조율해야 했습니다.


결론

고객 담당자 한 명이 우리 제품을 좋아해도 회사는 바로 사지 않았습니다.

특히 AI 제품은 고객의 데이터와 시스템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업무, 판단과 검증 책임, 보안과 운영, 기존 파트너의 역할까지 함께 건드립니다.

담당자의 호감이 회사의 합의는 아니고,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답이 도입 준비가 끝났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 복잡한 실타래를 영업 한 사람이 혼자 풀도록 해서는 전체 그림을 놓치기 쉬웠습니다.

그렇다고 엔지니어가 고객사의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엔지니어는 “됩니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 답 때문에 다음에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확인하며 어느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지까지 자기 의견을 내야 했습니다.

영업은 그 의견을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사의 조직과 예산, 의사결정 구조를 더 찾아가며 어떤 사람과 리소스를 붙여 어떤 순서로 풀어갈지를 제시하고 조율해야 했습니다.

영업과 엔지니어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다음 단계에 대한 판단과 방향을 제시하는 주체가 되어야 했습니다.

누구에게 일을 더 얹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고객과 제품이 복잡해진 만큼, 우리가 맡아온 역할과 일하는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협업을 담당자 개인의 역량이나 좋은 호흡에만 맡기지 않고, 사업기회를 운영하는 기본 구조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제가 바꿨어야 했던 것은 엔지니어를 부르는 시점이 아니었습니다.

고객 담당자가 내부에서 알아서 길을 만들어주길 기다리고, 저는 고객과 내부 전문가 사이를 오가며 모든 조각을 혼자 맞추려던 방식이었습니다.

복잡한 고객사를 한 사람을 통해서만 보지 않고, 영업과 엔지니어가 각자의 판단과 다음 수를 내놓으며 함께 풀어가는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이번 글의 적용 액션

담당자는 관심을 보이지만 내부 진행이 멈춘 사업기회 하나를 고릅니다.

다음 미팅에 함께 들어갈 엔지니어나 컨설턴트에게 기능 목록을 보내기 전에 이 질문을 해봅니다.

“우리 제품이 이 고객에게 실제로 들어가면, 지금 담당자 외에 어느 부서나 파트너가 등장할 것 같습니까?”

그리고 하나만 더 묻습니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에 무엇을 확인해둬야 합니까?”

답을 기술 메모로만 남기지 않습니다.

다음에 누구를 만나고 무엇부터 확인할지, 누가 직접 움직일지, 각자가 어떤 판단과 다음 행동을 맡을지를 함께 정합니다.

“기술적으로는 됩니다” 다음에 붙는 한 문장이 그 사업기회의 다음 관문일 수 있습니다.


다음 글 예고

고객 내부의 사람과 조건을 조금 더 잘 알게 됐다고 해서, 우리 제품만으로 그들의 일을 끝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 업무를 바꾸는 사람과 구축·운영하는 사람이 서로 다를 때 사업기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에서 멈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Gartner, “Gartner Sales Survey Finds 74% of B2B Buyer Teams Demonstrate ‘Unhealthy Conflict’ During the Decision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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