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날이 급격하게 추워졌다. 며칠 전까지 20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가을에 입을 옷들만 꺼내뒀는데,
갑자기 쌀쌀해져서 다시 옷장을 열게 되었다.
옷장 정리만 하면 먼지를 한 움큼 먹어서 그런지 목이 칼칼해진다.
이렇게 목이 칼칼해질 때면 한국인들의 만병통치약, 소주가 생각난다.
그래서 오늘은 소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몇 년 전 만해도 소주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일본에도 쇼-츄(焼酎)가 있고, 중국에도 사오주(烧酒)가 있었다.
그렇다면, 소주의 시작은 어디일까?

소주,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소주는 아랍으로부터 소주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던 원나라에 의해 고려시대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소주는 화요, 일품 진로, 안동 소주, 문배주 등과 같은 증류식 소주다.
증류식 소주는 말 그대로 청주를 가열하여 기체가 된 알코올이 찬물과 만나 액체가 되어 만들어진다. 결국 그 원리는 증류 방식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류 기술은 기원전 2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술이 아닌 향수나 향료를 만들기 위해 사용했는데, 
그러다 8세기 이후, 연금술이 크게 발달되어 있던 아랍에서부터 Al Kohl (알코올의 어원)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아랍에서 시작된 소주는 원나라로 들어왔고, 그렇게 소주는 한국까지 들어올 수 있던 것이다.
당시 원나라와 명나라의 문헌에는 소주를 ‘아리걸’, ‘아라길’, ‘아이기라’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아락(아랍식 소주로 그 의미는 '땀, 이슬')’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이렇게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소주는 들어왔을 당시 사치스러운 것으로 불릴 만큼 비싼 것이었다. 그리고 14세기~15세기 무렵 소주는 소주는 의약품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그 기록은 <단종실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부친상을 당해 심신이 허약해진 단종에서 신하들이 권한 것이 바로 소주였다.
근데 지금의 우리도 술을 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플 때도, 슬플 때도, 힘들 때도 “소주가 최고야”라고 이야기할 정도니 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마치 부먹/찍먹만큼의 경쟁을 하는 소주가 있다.
위에서 말했던 증류식 소주와는 다르게 물을 타서 만든 희석식 소주인, 참이슬과 처음처럼이다.
다 똑같은 초록색 병인데 왜 우리는 참이슬인지 처음처럼 인지 고민하는 걸까.
그런데 그전에 먼저 생기는 궁금증이 있다.
왜 소주는 초록색 병일까?

눈이 편안해지는 초록색 병의 비밀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소주병은 각기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대부분 청색 또는 갈색이었는데, 용도의 차이에 따라 병 색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음식점용은 청색, 소매점이나 슈퍼용은 갈색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1994년, 현재의 롯데 주류인 '두산 주류’에서 <그린 소주>가 출시되었다. 이름처럼 두산은 ‘그린’이라는 브랜드 이름을 내세우며 ‘친환경 이미지 마케팅’을 펼쳤고, 이런 마케팅의 일환으로 '깨끗하고 부드러운 소주'라는 점을 강조하며 녹색병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소비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렇게 그린소주는 1999년 단일 브랜드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이 시기 다른 주류업계에서 청색, 투명색 등 다른 색의 소주를 출시했지만 좋은 결과가 없었고, 그들 역시 모두 녹색으로 출시하면서 '소주병은 녹색'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그린 소주의 등장으로 주춤하게 되었던 한 주류 업계는 새로운 소주를 하나 만들어내는데,
바로 그것이 나의 최애 ‘참이슬’이다.

이슬같은 깨끗함, 참이슬

참이슬은 진로(眞露)를 우리말로 풀어쓴 말이기에
참이슬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진로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진로는 1924년 10월 평안남도 용강군의 진천양조상회에서 시작되었다.
양조장 소재지인 ‘진지동’의 첫 글자와 소주의 다른 이름인 '노주(이슬처럼 받아 내린 술)'의 첫 글자를 따서 ‘진로(眞露)’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6·25 전쟁까지 일어나며 남한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남한으로 내려와 1954년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서광주조를 세우며 다시 진로를 팔기 시작했다.

이때 진로의 상표가 바뀌며 우리가 알고 있는 두꺼비가 등장하게 된다.

초기 진로는 평안도 지방의 복신으로 불리던 영리하며 지혜로운 원숭이를 상표로 사용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원숭이가 교활하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복을 불러다 두꺼비가 새겨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진로는 주류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이 바로 1959년 말에 등장한 국내 최초의 CM송인 ‘진로파라다이스’였다.
국내 광고 분야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 것은 물론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군부대나 직장의 체육대회 응원가로 쓰이기도 할 정도였다.

중독성 강한 '진로파라다이스'

그러나 승승장구하고 있던 진로는 1994년 갑자기 등장한 그린 소주가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차지하며 진로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로는 새로운 소주가 필요했고, 그들은 당시 브랜드 디자이너였던 손혜원의 자문으로 '참이슬'이라는 네이밍을 가진 소주를 1998년 내놓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다 저도수 알코올이 유행하고 있던 시기 25도였던 그린 소주와 다르게
23도의 참이슬이 나오면서 다시 승승장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그린 소주는 뉴 그린 소주, 산 소주로 새로운 소주를 등장시켰지만 참이슬을 이길 수 없었고,
2006년 새롭게 나온 것이 20도의 처음처럼이었다.

더 부드럽게, 처음처럼

'처음처럼'은 소주 제조에 있어 세계 최초로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해 기존 제품과 차별화를 두었기에 처음 발매하자마자 엄청난 성원을 받게 되었다. 알칼리 환원수를 썼기에 부드러운 맛을 내면서도 숙취를 줄여준다는 점을 강조했기에 2000년대 중반 이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나 역시 대학 시절 처음처럼이 부드럽다고 생각해 자주 마셨고, 참이슬은 알코올 맛만 느껴졌다. (지금은 아예 그 생각이 정반대로 바뀌어서 처음처럼은 뭔가 밍밍한 느낌이 들어 참이슬만 마시고 있지만.)

아무튼, 초기 처음처럼은 ‘깨끗함에 건강까지 생각한 소주’로서 제조 용수마저 미네랄이 풍부한 강원도 지역의 천연 암반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거기다 소주 전체 성분에서 물이 80%를 차지하기까지 했으니 당시 엄청난 파격적인 발상이었던 것이다. 이때 이들 역시 네이밍이 중요했고, 자문을 구하며 나온 것이 바로 ‘처음처럼’이었다.
처음처럼 속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언제나 새 날을 맞이하듯 초심을 잊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소주 한 잔에 담아내자"
"전날 술을 마셔도 다음 날 아침엔 몸 상태가 처음으로 돌아가는 부드럽고 편한 술"

그런데 이 자문을 해준 사람이 바로 브랜드 디자이너였던 손혜원이었다. (두둥)

참이슬과 처음처럼, 무얼 마시겠소

이렇게 등장한 참이슬과 처음처럼.
어떤 소주를 마실 지 고민하게 되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각 소주를 홍보하는 광고 모델이지 않을까. 그래서 마지막은 광고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진로는 참이슬을 내놓으면서 남자 모델이 주를 이루고 있던 소주 광고의 틀을 깨고 파격적으로 여자 모델을 기용하게 된다. 이때 등장한 모델이 바로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의 상징, 이영애였다.
그렇게 참이슬은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소주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김태희, 하지원, 이민정, 문채원, 아이유 등 인기 절정의 여자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웠고, 참이슬 모델을 맡아야 당대 최고의 미녀라는 공식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렇다면 처음처럼은 어떤가? 처음처럼은 ‘소주 모델=여자 연예인’이라는 참이슬의 전략을 차용했지만,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연예인이 아닌 ‘섹시 아이콘’ 이효리를 내세우게 되었다. 거기다 2007년부터 ‘흔들어라 캠페인’을 통해 성장세를 띄게 되었다. 당시 ‘알칼리 환원수로 만들어 흔들어 마시면 더 부드러운 소주’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소주병을 흔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결국 모두 소주

참이슬이든 처음처럼이든 결국 모두 소주다.
쓰고 알코올 향이 강하지만 소주가 필요한 날은 언제나 찾아오기 때문에 고도수의 증류식 소주에서 멈추지 않고, 저도수의 희석식 소주가 나와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 이야기하지 못한 이야기도 많이 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건 '소주에 어울리는 안주는 무엇인가' 이지 않을까?
최근에 소주를 마시면서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이 3개가 있었다.

첫 번째는 치킨🍗.
언제나 치맥을 외쳤지만 처음으로 소주와 함께 먹는 순간 배도 부르지 않고, 달달하며 느끼한 치킨과 먹으니 알코올까지 희석되어 최고의 궁합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마라탕🍲.
중국음식에 단연 최강은 고량주지만, 가볍게 먹고 싶어서 소주를 마셨는데 역시 너무 잘 어울렸다. 소주를 먹고 향이 쎈 향신료가 있는 마라탕을 먹는 순간 벌써 한 병을 다 마실 정도였다.

세 번째는 잔치국수🍜.
결국 국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국물이 최고였다. 특히 포장마차에서 파는 잔치국수는 최고다. 잔치국수 한 그릇에 소주가 술술 들어가니 소주의 찰떡궁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늘도 소주가 마시고 싶어 진다.
구독자님은 오늘 소주에 어떤 안주가 생각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