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사람들 😵‍💫

술에 취하고 빠져 있는 우리의 선조들

2022.11.08 | 조회 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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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지않아도알아요

술 한 잔이 생각나고, 여행이 하고 싶을 때 만나봐요.

최근 읽고 있는 책에 술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봤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옛날 사람들이 술을 마시던 방식이라는 것이다.
나는 통일신라시대 14면체에 다양한 벌칙이 새겨져 있는 주사위인 주령구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14면체에 적힌 술자리 규칙은 이러하다.

공영시과 : 즉흥시 지어서 읊기 금성작무 : 음악이나 노래 없이 춤추기 삼잔일거 : 술 석 잔 한 번에 마시기 중인타비 :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코 때리기 유범공과 :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참기 농면공과 : 얼굴에 간지러움을 태워도 참기 음진대소 : 술잔을 다 비우고 크게 웃기 자창자음 : 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마시기 곡비즉진 : 팔을 구부리거나 팔짱을 끼고 술잔 비우기 임의청가 : 아무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시키기 월경일곡 : 월경 노래 한 곡 부르기 추물막방 : 더러운 것이 있어도 버리지 않기 양잔즉방 : 잔이 두 개면 바로 비우기 자창괴래만 : 스스로 괴래만을 부르기

이걸 보는 순간 지금 우리의 술 게임 벌칙은 예전부터 흘러오던 것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궁금해진 것이 있다.
'예전에 술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조선시대 대표 주당들에는 누가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한 점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시서화에 능했던 조선시대 풍류가들

김홍도의 '새참' [출처 : 공유마당 (gongu.copyright.or.kr)]
김홍도의 '새참' [출처 : 공유마당 (gongu.copyright.or.kr)]

그림 속에서 한 아낙네가 어린아이에게 젖을 빨리며 밥 소쿠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 위쪽의 남성들은 일을 하다 중간에 새참을 먹고 있다. 사발 밥에 한 그릇의 반찬 그릇. 어떤 이는 간혹 숭늉을 마시기도 하고, 동자가 따라주는 술을 커다란 사발로 마시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일을 하다 마시는 술이라고 하면 막걸리를 떠올린다.
막걸리를 마신 농부들이 적당히 흥분되어 일손이 빨라져 일을 흥겹게 할 수 있었기에 새참에 술이 가장 적절한 음료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일을 할 때 술을 마심으로써 그림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화가가 있었다.

김명국의 '달마도'
김명국의 '달마도'

우리에게는 달마도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는 ‘김명국’이다.

조선 중기에 유명했던 화가로 그는 스스로를 '취옹(醉翁)=술에 취한 노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술을 먹기 전과 적당히 먹었을 때, 만취했을 때 그린 그림의 분위기가 확연히 차이 날 만큼 마신 술의 양에 따라 화풍이 달랐다.

이와 연관된 가장 유명한 일화도 있다.

어느 날 한 승려가 그에게 지옥도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는 술을 마시며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고, 그는 술에 취한 상태로 한 붓에 지옥도를 그리게 된다. 이 지옥도는 너무도 색채가 생생하고 필선이 선명해서 실제 지옥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이 그림 속 고통받는 인간들이 모두 승려였기에 화가 난 승려가 한탄하자 김명국은 술을 더 사다 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승려가 사다 준 술을 다 마시고 잠깐 사이에 그림을 고쳤고, 사례로 삼베 수 십 필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명국은 이것을 아내에게 시켜 다시 술로 바꿔오라고 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이 일화 속 지옥도는 그림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생생하고 선명한 필선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있다.

김명국의 '설중귀려도'
김명국의 '설중귀려도'

눈 내린 산을 뒤로한 채 나귀를 타고 떠나는 선비를 주제로 한 ‘설중귀려도’라는 작품도 있다. 이 작품도 취중에 그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데, 그림 속 거칠면서도 선명하고 생생한 필선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많은 주당 화가들이 있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주당 화가들이라고 한다면 우선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바로 단원 김홍도와 연담 김명국이다. 이들 외에도 ‘호생관 최북’, ‘낙파 이경윤’, ‘오원 장승업’이 있다.


최북은 최산수라고 불릴 정도로 산수화를 많이 그렸던 화가다. 그는 술을 워낙 좋아해서 폭음을 하며 돈을 벌어도 생활비와 술값으로 전부 써서 뛰어난 그림 실력에도 가난을 면치 못할 정도였다. 또한 죽기 직전에도 열흘 동안 굶다가 그림을 팔아 겨우 돈을 마련했지만,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는 만취한 채로 겨울밤에 한양의 눈두덩이에서 누워 자다가 동사했다.

그의 그림 중에는 금강산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있다.

김명국의 '포훈사도' [출처 : 공유마당 (gongu.copyright.or.kr)]]
김명국의 '포훈사도' [출처 : 공유마당 (gongu.copyright.or.kr)]]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잘 그려 최산수라고 불리던 최북은 성품이 강직하고 고집이 쌨다. 그러다 우연히 금강산 여행을 갔고, 그는 금강산을 보며 자신이 이 모습을 화폭에 옮기지 못하고 최산수라는 별칭으로 불린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는 구룡폭포의 장관을 화폭으로 옮기겠다 생각하면서 화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재현하는 것을 일생의 중대한 목표로 삼고 정열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나온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표훈사도’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좋았던 화가의 작품은 낙파 이경윤의 ‘수하취면도’다.

이경윤의 '수하취면도'
이경윤의 '수하취면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술에 취해 몸을 기댄 채 낮잠을 즐기고 있는 선비의 모습, 그의 머리맡에 술병이 놓여 있기에 우리는 그가 취중에 낮잠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그림 중에는 이렇게 술이나 낮잠을 주제로 했는데, 이것도 그들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풍류를 즐겼다.
풍류(風流).
‘속되지 않고 운치가 있는 일, 풍치를 찾아 멋스럽게 노니는 일’

좋은 자연경관을 앞에 두고, 시를 짓거나 서화를 그리거나 술을 마시는 것으로 풍류를 즐겼다.
여러 선비들이 함께 둘러앉아 시를 짓고 낭독하며 간단하게 술을 마시기도 했고, 홀로 자연경관을 보면서 자연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자연 속에서 음악과 술을 즐기는 신선놀음까지도 풍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풍류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이 술인데, 우리가 지금 놀 때 술을 마시는 것만 보더라고 조선 시대의 풍류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정조 시대, 선술집이 탄생하다

그러던 와중에 또 한 점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왼) 신윤복의 '선술집' (오) 김준근의 '색주가 모양'
(왼) 신윤복의 '선술집' (오) 김준근의 '색주가 모양'

이렇게 주모가 술을 따라주고 마시는 사람들은 서서 마시는 곳을 선술집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앉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술꾼들이 “점잖은 여러 손님이 서서 마시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주저앉았담. 그 발칙한 놈을 집어내라”

이러한 선술집이 생기기 시작한 때는 다름 아닌 술을 참 좋아했던 왕, 정조 때다.

정조의 전 대, 바로 영조 때 금주령이 있었다. 다시 말해 모든 술집이 다 문을 닫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다 영조는 조선 왕들 중에 가장 오래 왕위에 앉아 있었으니 사람들은 거의 56년간 금주령으로 술을 마시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조가 왕이 되며 이 금주령이 풀렸으니 선술집까지도 번창하게 되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선시대 왕들 중에서 정조를 참 좋아한다.

그의 술 주정은 앉아서 계속 술을 마시는 것이며,
그의 건배사는 ‘불취무귀’로 취하지 아니하면 집을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함께 즐겨보세,

정조의 술 사랑에 조선 시대 술 문화는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해하다가 최근에 우연히 읽었던 책 속의 주령구를 보며 술을 좋아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니 흥미로우면서 지금과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은 다른 무엇보다도 예전에 기생집에서 가야금 키는 소리와 자연의 소리에 술을 마시던 양반들이 참 부러워지고 있다.

가야금과 거문고 소리가 어우러진 곳에서 술을 마시면 정말 취하는 것도 모를 정도로 술이 술술 들어갈 것 같다고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러니 오늘은 한 번 가장 아름다운, 가야금 산조를 들으며 술을 마셔보는 건 어떨까?


다음 주, 뉴스레터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기에, 쉬면서 남은 뉴스레터의 글을 정리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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