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라는 주제로 9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술을 왜 좋아하세요?”
처음엔 그냥 술이니까 좋다라고만 이야기를 했지만,
술의 글을 쓰고 나니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진다.
“술 속에 담긴 이야기를 파헤치는 것이 좋아서,
어떤 날과 연관된 술을 마시면 그날이 나에게 특별한 날이 되는 것이 좋아서
그래서 술이 좋고, 그래서 술을 마십니다.”
그렇게 특정 술을 마시고, 글로 쓰며 지낸 9주.
나의 마지막 술에 대한 기록은 내가 꿈꾸는 나라,
술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술의 나라가 있다면...
술의 나라, 주국(酒國).
국어사전에서 해석하는 주국은 다음과 같다.
- 술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
- 술에 취하여 느끼는 딴 세상 같은 황홀경
술의 나라가 있다면 분명 그곳은
딴 세상에 있는 듯한 그런 황홀함을 느낄 것이다.
명나라 문인인 진계유가 적은 <암서유사>라는 시가 있다.
술이 있는 곳은 당연 언제나 봄일 것이다.
매화와 벚꽃, 개나리꽃 등 여러 꽃이 만발해 있고,
그 사이에서 아름다운 호리병에 담긴 술을 마시다 보면
꽃잎이 바람에 날려 술잔에 떨어지기도 할 것이고,
해가 내리쬐는 곳에서 햇살을 가득 받으며 술을 마시고,
해가 기울어지는 석양에 황금술을 만들어 마시고,
어느새 차가워진 바람에 밤이 찾아온 것을 느끼고,
술잔에 비치는 달빛을 보면서 이번에는 달을 마실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늘에 한가득 별이 떠올라서
이제는 별까지 마시게 될 것이다.
해가 진 것을 슬퍼하며 한 잔,
달이 뜬 것을 반가워하며 한 잔,
별이 뜬 것에 설레며 한 잔,
달이 이동한 것에 기뻐하며 한 잔.
그렇게 한 잔씩 마시다 해가 다시 뜰 때쯤
새로운 시작을 반기면서
취기를 느끼며 황홀함을 즐기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주국은 이런 모습이다.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비교해본다면,
신들이 살고 있으며, 이 세상이 아닌 무릉도원 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띄고 있는 '도원경'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좋아하는 빅스의 ‘도원경’ 노래도 한 곡 들으며 잠시 쉬어가보자.
주당들을 위한 법도 있다
대학생 때 술을 마시던 중 늦게 오는 사람에게 로그인샷을 했던 적이 있다.
늦게 왔으니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기 전, 술을 3잔 마시고 앉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 어떤 '법'에 적힌 말이었다고 한다.
바로 1929년 <개벽>을 창간한 차상찬이 <별건곤>이라는 잡지에 실은 법이다.
<주국헌법>
여가 일반국민의 음복을 증진하고 국가의 융창을 도하며 세계평화를 영원 유지하기 위하여 자에 주국헌법을 발포하노라.
一. 이 헌법에 위반하는 자는 일 년간 금주국에 유배함.
一. 이 헌법은 발포일부터 시행함.
이 법의 내용 중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을 조금 가져와봤다.
이에 따르면 나는 요즘 내 손으로 따라 마시는 경우가 많으니 자작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제19조였다!
후래자 삼배. 나중에 온 사람은 술 석 잔을 마신다는 것.
이렇게 당당하게 19조에 적혀 있다니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역시나 나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내용은
제21조에 적혀 있는 주국에서 내쫓는 사람을 적은 내용이었다.
이걸 보는 순간,
정말 술자리에 함께 있기 싫은 사람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멋진 헌법을 만든 차상찬 선생에게 고마움을 보내본다.
그러나 과해서는 안 된다
술을 좋아하고, 술을 마시는 것은 좋으나,
역시 그것이 과해지면 안 된다.
그래서 언제나 술을 마실 때면 내가 곁에 두고 보고 있는 그림이 한 점 있다.
안드로스 섬에서 바쿠스를 경배하기 위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바쿠스는 이 섬을 좋아해서 이곳의 개울에 와인이 넘쳐흐르도록 만들었다.
한 남성은 개울에서 와인을 항아리에 담고 있고,
어린아이는 개울에 발을 넣고 첨벙거리며 놓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한 그림 속에서 한 가지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그림 아래쪽에 누워있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보면
그녀의 무릎에 악보가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악보를 자세히 보면, 문장이 적혀 있다.
술에 대한 예찬이 가득한 이 그림 속에서는 교훈도 주고 있다.
오른쪽 하단에 있는 옷을 풀어헤치고, 머리가 아픈 지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있는 한 여성과 저 멀리 언덕에서 잠에 빠진 한 노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의 모습은 축제에서 재밌게 놀며 술을 마시는 자들과 다른데,
티치아노는 이 그림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과 교훈 덕분에
나는 이 그림을 언제나 곁에 두고 바라보며 술을 마신다.
술의 나라인 주국을 상상하면서도
언제나 적당히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그림이다.
술을 좋아한다.
술을 마실 때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어 좋아한다.
술을 마시며 어떤 안주를 즐길지 고민할 수 있어 좋아한다.
술 속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하며 마실 수 있어 좋아한다.
술이 있기에 매 순간이 즐겁다.
취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얼마나 술을 좋아하고,
얼마나 술을 즐기고 싶어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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