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in with alcohol #1

Carajillo : 너의 용기에 건배

2023.02.21 | 조회 261 |
0
|

취하지않아도알아요

술 한 잔이 생각나고, 여행이 하고 싶을 때 만나봐요.

[새로운 수신자 : 구독자에게]

함께 들으면 집중 200%


마드리드 시내에 있는 <솔 광장>과 <마요르 광장> 사이에는 내가 자주 방문하는 나만의 단골 술집이 있어. 문을 열고 "hola(올라_안녕)"라고 인사하면 주인장이 밝게 인사해 주는 그런 정겨운 술집이지. 주인장이 요리도 하고 음료도 제조해 주는 곳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바에 앉아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그런 곳이야.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술집에 들어가서 바에 몸을 기대고 있었어. 배가 부르게 술을 마시기보다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알코올이 들어가서 몸에 따뜻하게 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

 

주인장 : 오늘도 맥주?

나 : 흠. 오늘은 커피도 마시고 싶고, 강한 술도 마시고 싶네.

주인장 : 그럴 땐 이거지. 기다려 봐

 

주인장은 등을 돌리고 에스프레소를 내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왼쪽 선반에 나열된 술들 중에서 럼을 한 병 집더라고. 에스프레소 잔에 럼을 반 잔 정도 따르고 그 위에 갓 내린 커피를 붓더라. 단 60초 만에 완성된 이 아이를 나에게 건네며 마셔보라고 했지.

커피라고 하기엔 알코올 향이 가득하고, 그렇다고 술이라고 하기엔 커피가 3분의 2를 차지하니 무엇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웠어. 따뜻한 커피에 럼이라니. 좋아하는 음식들이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자신감 있게 만들어준 주인장을 위해 한 번쯤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용기를 갖고 마셨지.

directoalpaladar.com _ marta moreira
directoalpaladar.com _ marta moreira

커피의 향이 먼저 느껴지면서,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온몸이 따뜻해지며 술의 향과 맛이 목까지 느껴졌어.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어.

 

나 : 이게 뭐야?

주인장 : Carajillo (까라히요)

나 : 커피야 술이야?

주인장 : (어깨를 으쓱하며) 그건 네가 생각하기 나름이지. 어떤 거 같아?

나 : 술의 향이 가득하니 왠지 술이라고 말하고 싶네.

 

Carajillo는 에스프레소에 코냑, 럼 등 증류주를 넣은 거야. 어떤 증류주를 넣는 것이 좋냐고? 그건 나도 모르지.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맛있는 건 내가 좋아하는 술을 섞는 거니까.

내 추천은 당연 럼(rum)이야. 단어만 들어도 강하고 독할 것 같으면서 왠지 장난꾸러기일 것 같지 않아? 나에게 럼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속 잭 스패로우가 생각나는 술이어서 굉장히 끌리는 술이야. 거기다 술을 사랑하는 작가 헤밍웨이도 이런 말을 했었지.

"훌륭한 마르티니크 산 럼을 마시고 있자면 육체와 정신이 모두 훈훈해진다."

carajillo를 마시는 순간, 헤밍웨이가 말한 육체와 정신이 훈훈해진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어. 아마도 carajillo에 럼을 넣는 걸 좋아하게 된 건 이날 주인장이 럼을 넣어줬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해.

 

나 : 여기에 럼을 넣은 거야?

주인장 : 맞아. 달달하지?

나 : 응. 럼이 이렇게 달달하게 느껴질 줄 몰랐어.

주인장 : 럼이 사탕수수로 만들어져서 단맛이 느껴지는 거지.

나 : 근데 왜 carajillo라고 하는 거?

주인장 : 여러 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예전에 바르셀로나 노동자들이 커피와 술 한 잔을 따로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던 적이 있었다고 해. 그런데 둘 다 마시고 싶으니 커피와 술을 섞어 마신 거야. 그리고 이들은 이때 주문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지. "Que ara quillo(께 아라 기요__까탈루냐어)"

나 : 께 아라 기요.....께라기요.....께라요....어?!

주인장 : carajillo랑 발음이 비슷하지? 스페인어(까스테야노)로 해석하면 que ya me voy(나 이제 가야 해)이런 의미야.

나 : 이걸 마시고 바로 가야 하니까 그렇게 붙여진 거구나.

주인장 :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는 예전에 군인들이 전투 전에 커피에 럼을 섞어 마시면서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나 : 용기를 불어넣는다. 좋은데?

unsplash.com _ michael schofield
unsplash.com _ michael schofield

carajillo의 이름 속에 '용기를 주는 음료'라는 의미가 있다는 게 참 마음에 들었어. 19세기 쿠바의 독립운동으로 스페인과 미국이 전쟁을 벌인 적이 있었어. 결론적으로 이때 미국이 승리하면서 필리핀, 쿠바, 괌 등을 차지하게 되었지. 아무튼 이때 스페인 군사들은 미국과 전쟁을 하며 자신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커피에 럼을 섞어 마셨다고 해. 그리고 이걸 '약간의 용기를 주는 음료'라고 해서 'Pequeño coraje(뻬께뇨 꼬라헤)'라고 불렀다고 해.

우리고 약간 우스갯소리로 발표를 하거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소주 한 잔 하면 긴장이 풀릴 거 같은데"라고 말하는 거랑 뭔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그래서였을까, carajillo가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었어.

용기가 필요한 순간 에스프레소에 약간의 럼을 한 번 넣어서 carajillo를 만들어 마셔보길 추천할게.


[FROM_술을 좋아하는 스페인에 있는 누군가]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취하지않아도알아요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취하지않아도알아요

술 한 잔이 생각나고, 여행이 하고 싶을 때 만나봐요.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