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주 🍾

모든 곳에 반짝이는 빛이 가득한 12월이다.
크리스마스까지 앞으로 20일이 남은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먹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술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면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찾게 된다.
결국은 달달한 과실주를 찾게 된다.

과일이 가득 담겨 달달함과 떫은 맛을 함께 맛보게 해주는 과실주.
오늘은 연말의 분위기를 담아 과실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연말엔 역시 스파클링 와인이지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하면 왠지 이런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파리바게트에서 케이크를 샀던 적이 있다.
그리고 케이크를 고르면서 언제나 나의 눈길은
그 위에 함께 놓여 있던 무알콜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술을 못 마시는 나이였지만,
어린 시절 나는 생일 때 사주는 무알콜 스파클링 와인이 그렇게 좋았다.

성인이 된 후 나에게 스파클링 와인으로 더욱 가깝게 느껴진 것은
스페인식 스파클링 와인인 까바(CAVA)다.
처음 까바를 접했을 때 샴페인과 다른 점은 무엇일지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샴페인과 까바.
명칭만 다르지 결국 둘 다 스파클링 와인에 속하는 것이었다.
다만 제조 국가, 제조 방법 등에 따라 각각의 이름이 만들어졌고,
각각의 이름이 공식적인 용어로 채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으로,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자면 바로 그 지역, 샹파뉴에서 생산된 것만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까바는 카탈루냐어(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언어)로 동굴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페인의 동굴에서 숙성시킨 스파클링 와인을 까바라고 부르는 것이다.

까바는 샴페인과 다르게 숙성 기간이 짧다.
그래서 세련된 맛은 떨어지고, 이스트나 토스트 풍미가 약하다.
그러나 그에 반해 맛은 특유의 토속적이고 활기찬 느낌이 잘 살아있으며,
열대 과일과 레몬, 오렌지처럼 산미가 강한 과일 풍미에
기분이 좋아지는 쌉쌀한 맛까지 느껴진다.

스파클링 와인에 대해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이 말처럼 스페인에서는 여름에 마시는 술 중에 까바가 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까바를 제일 많이 마실 때는 바로 연말이다.

연말에 스페인도 우리처럼 중심가에 모여 종소리를 듣는데,
이때 이들은 종소리가 다 울려 퍼지면
까바를 꺼내 서로 잔에 따라 마시며 새로운 한 해를 축하한다.

나 역시 이때 까바를 마시며 까바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쌉쌀한 맛을 좋아하는 나에게 스파클링 와인은 물론 과실주는 너무 단 술이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과실주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린 시절 내가 유일하게 맛볼 수 있던 술이 과실주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내가 접했던 과실주

과실로 만든 모든 술을 이야기하는 과실주.
매실주, 모과주, 딸기주, 유자주 등을 우리는 과실주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과실주에 속하는 것은 포도로 만든 와인만 가능하다.
위에서 말한 술들은 모두 혼합주로 표기된다.

혼합주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 친구들은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준 아이들이다.

정월 대보름에 세상의 정보를 잘 습득할 수 있도록
귀를 밝게 해주는 귀밝이술로서 제일 많이 마셨던 것은 매실주였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종종 주말에 복분자주나 오디주를 건네주곤 했었다.

그러나 결국 이 친구들은 과실주가 아닌 혼합주이니,
과실주라고 인정받는 것은 '포도주'뿐인 것이다.

그럼 한국의 과실주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아니었다. 우리도 와인은 존재했다.
다만 현재 수입 와인이 너무 많고,
우리나라에서는 과실을 100% 사용한 순수 과실주를 만드는 것이 어렵기에
와인보다는 복분자주나 머루주가 더욱 인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잠시, 
한 때 우리의 곁에 있었던 한국식 과실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태양이 빚은 순수 사과주

우리의 역사에서 포도주가 처음 소개되었던 때는 1302년 고려 충렬왕 때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처음으로 포도주를 빚었는데,
이때는 쌀과 누룩, 포도를 섞어 발효시켜 만들었다. 
진정한 조선식 포도주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곡식을 이용해 술을 만드는 것이 익숙했기에
포도주보다는 소주나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

그러면서도 개항기에는 선교사들이 미사용 포도주를 들여오고,
일제강점기에는 알코올이 강한 포트 와인이 들여오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식 과실주는 해방 후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70년대 술로 인해 쌀 소비량을 줄이면서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나 과실주가 장려되었다.

막걸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탁주 편 보러가기)

그리고 1969년 우리는 사과의 고장인 대구를 중심으로
사과를 이용한 과실주인 사과 와인 ‘파라다이스’를 만들게 된다.
이름은 파라다이스였지만 광고 문구는 ‘태양이 빚은 순수 사과주’였기에
사람들은 파라다이스가 아닌 태양사과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파라다이스는 70년대 젊은이들이 애용하던 술 중 하나였다.

당시 젊은이들은 이런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실주는 포도로 만든 술은 아니었다.
그러다 이후 1974년 해태 주조에서 프랑스 보르도 타입의 ‘노블와인’을 출시하게 되고,
이후 1977년에 동양맥주가 국내 기술로 한국 최초의 와인 ‘마주앙’을 출시하게 된다.

당시 우리가 포도주를 만들기위해 들여왔던 포도 품종은 독일의 리슬링이었는데,
당시 이 지역과 비슷한 기후와 풍토인 곳이 경북 청하와 경남 밀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마주앙’은 이곳의 포도를 이용해 만든 와인이었던 것이다.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당시 로마 교황청에 샘플을 보내 승인을 받아서 천주교 미사주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수입 자유화로 인해 국산 와인 사업이 무너지게 되면서
지금의 우리는 한국식 과실주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곁에 있는 한국식 과실주가 있다.
바로 '마주 앉아서 즐긴다'는 의미를 지닌 '마주앙'이다.

마주앙이 한국 와인이라는 점을 몰랐던 나에게
한국식 과실주로 느껴졌던 것은 오로지 매실주, 복분자주, 머루주뿐이었다.

마주앙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의 곁에서 가깝게 볼 수 있는 과일로 만든 술들이
진정한 한국의 과실주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왜 그런 시도 있지 않은가.

예전부터 우리는 머루를 좋아했으니
우리는 포도보다는 머루파일 것이다.

그러니 머루나 오디, 복분자로 만든 술이야 말로
진정한 한국식 과실주이지 않을까.

12월,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함께 하는 뜻깊은 달에
특별한 스파클링 와인이나 마주앙을 마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