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넷플릭스가 제작한 일본 드라마 시리즈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를 봤다. 아름다운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지역관광업이 중심인 일본 소도시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하면서도 엉뚱한 에피소드 10개로 구성된 시리즈다. 남편과 합의이혼 후 고등학생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싱글맘 주인공은 오래되고 작은 호텔에서 호텔리어로 근무한다. 그러던 어느날 밤길에 자전거를 타며 퇴근하다 트럭에 치일 뻔한 여주인공을 번개처럼 나타나 구해준 건,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존재감 제로의 중년 남성 직장 동료였다. 이 드라마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주를 구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동네 평범한 아저씨같이 생긴 외계인이라니. 게다가 엄청난 능력을 기껏해야 싱겁고 소소한 일상에 낭비한다는 반전도 참신했다. 초능력을 다룬 콘텐츠를 좋아하는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콘셉트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초능력 이야기다.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침대에 누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해보니, 역시 초능력자가 되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다. 어릴때는 순간이동이나 공중부양이나 괴력이라던지 다양한 초능력을 생각했지만 지금은 역시 무리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상상해보자. 내가 정부라도 이런 인재가 있으면 당장 잡아다가 야근을 시키든 무기로 쓰든 골수까지 빼먹으려 들 테니까. 초능력이 들통나는 순간, 나의 안락한 주말은 끝이다. 그러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초능력이 있어도 절대 사용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웹툰 원작 드라마 ‘무빙’을 보면 알 수 있다. 초능력자를 국가에서 기밀로 관리/통제하고 있어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된다. 당연하다. 내가 정부라도 초능력자가 있으면 잡아다가 연구하고 써먹으려고 들 것 같다. 얼마나 탐이 나는 인재인가.
내 목숨이나 가족이 걸려있지 않는 한, 나는 초능력이 생겨도 절대 쓰지 않을 작정이다. 어쩌다 정부나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들키는 날에는 신경 조직 하나하나가 해부되거나 인간 무기로 쓰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걸릴까 봐 보통 사람들보다 더 의식하고 조용히 지내려고 애쓰겠지. 그렇게 애쓰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거나, 심지어 원래 갖던 초능력을 쓰지 않아 퇴화하거나 까먹을 수도 있다. 내 영어 실력처럼 워낙 쓰지 않다 보니 ‘엇, 어떻게 내가 순간이동했더라.’ 하게 되는 것이다. 거창한 초능력이 오히려 거대한 짐이 되어 인생을 짓누르게 된다.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거창한 초능력보다는 아주아주 보잘것없는 ‘소’초능력은 유용할 것 같다. 아무리 써도 걸릴 위험이 적고, 막상 걸려도 주변 사람들이 ‘에이, 그게 뭐야. 그걸 초능력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정도의 아주 소소한,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오래 잠겨진 창고 속 작은 전구처럼 필요할 때는 언제든 유용하게 작동하는 초능력이면 좋겠다.
예를 들어, 정말 시원하게 방귀를 뀌어도 소리와 냄새가 절대 안 나는 능력은 어떤가? 비행기 승무원들이 좁은 기내에서 겪는 남모를 고충을 해결해 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를 보는 평화로운 저녁 시간, 소리 없는 가스 배출로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완벽한 능력 아닌가. 요즘에는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서 무대 위 가수들이 방귀를 뀌는 장면도 포착하는 세상이나 방귀 온도도 바깥공기와 같으면 좋겠다. 아무리 뿡뿡 뀌어도, 아니지 소리가 안 날 테니 열심히 방귀를 배출해도 절대 걸릴 일 없다. 비행기 승무원, 신혼부부 등 싱거워 보여도 구수한 이런 초능력은 분명 누군가는 갖고 싶을 것이 틀림없다.
추신: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으면서 유용할 초능력을 생각하니 더 사소하고 실없어 보이는 종류만 생각이 나네요. 혹시 여러분은 어떤 초능력 아이디어가 생각나시나요? 혹은 이미 초능력을 갖고 있나요? 문득 옛날 라디오스타에서 추성훈 님이 1.5L 콜라를 원샷해도 트림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해 놓고는 용트림했던 짤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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