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월요일#6 첫사랑, 대구미술관]

2026.05.24 | 조회 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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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대구미술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예술의전당이 집 근처라 가끔 산책을 하며 지나간다. 때로는 관심 있는 전시회를 열면 관람하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 오전 날씨가 좋아 산책하면서 지나가는데, 입구에서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번잡한 예술의전당을 보니 내 고향 대구에 있는 대구미술관이 떠올랐다. 나에게 대구미술관은 처음으로 설레는 감정을 가르쳐준 첫사랑과도 같다. 대구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꼭 시간을 내어 그곳에 다녀온다. 주말 낮시간에 가도 조용하고, 입장료도 1,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요즘 편의점에서 초코우유 한 개 사는 값보다 더 저렴하다.

대구미술관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사람이 붐비지 않는 점이다. 파리의 유명 미술관 ‘오르셰 미술관’은 차치하고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만 가더라도 여간 복작복작한 일이 아니다. 입장 대기줄도 길고,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티켓값도 비싸고 군중에 치여 미술 작품에 집중할 수도 없다. 입장할 때부터 지쳐 피크닉을 온 듯한 여유는 사라지고, 마치 전쟁터에서 각개전투를 하듯 작품들을 전투적으로 관람해야 한다. 하지만 내 대구미술관은 다르다. 주말 낮시간에 가도, 그리 붐비지 않는다.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본 기억은 드물다. 유명 일본 화가인 ‘쿠사마 야요이’나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이건희 컬렉션 순회 전시’정도에 붐비는 편이다. 평소는 조용하다. 동네 산책하듯이 갈 수 있다.

대구미술관이 내게 유독 각별한 이유는 예술을 가르쳐준 첫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 덕분에 미술에 관심이 커졌고, 미술관을 사랑하게 되었다. 스물세 살 당시 나는 군 제대 후 복학하여, 대학생이라면 인문학 공부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술사 교양 수업을 들었다. 마지막 리포트 주제가 ‘미술 전시회 관람 후기’였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만만한 대구미술관을 떠올렸고, 리포트 제출을 위해 처음으로 직접 미술관을 찾아갔다. 아직도 그 여정과 경험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그날은 비가 내려 차분하게 가라앉은 흐린 날씨였다.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신발이 약간 젖을 정도의 강수량이었다. 강의가 일찍 끝나는 수요일 오후에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나섰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미술관에 도착했는데, 입구에 아무도 없었다. 문이 닫힌 줄 알았을 정도다. 가끔 한두명 지나갈 정도였고, 미술관 안은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처럼 고요했다. 내 발걸음 소리가 미술관에 투명하게 울릴 정도였다. 워낙 조용한데다 관람객들도 혼자 온 1인 관람객이 대다수라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시 미술관에서는 대구지역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 1개, 그리고 상설 전시회 1개를 운영하고 있었다. 피카소나 고흐 정도로 전 세계 초등학생도 아는 수준의 유명한 화가가 아니면 아직 잘 모르던 때라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화가의 작품을 조용히 마주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다. 무슨 주제인지도 모를 현대 미술 작품들을 눈에 우겨 넣었다. 의무감에 사로잡혀 누가 그렸는지, 어떤 느낌을 받아야 하는지 억지로 의식하려 애썼다.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초보 관람객이 기특했던 걸까. 고요한 미술관 안에서 낮잠을 즐기던 작품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듯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작품이 생경하게 보였고, 감정이 느껴졌다. ‘이 작품을 보니 혼란스럽고 슬프다.’, ‘혹은 화가의 힘찬 붓질이 느껴진다.’ 등 내 감정과 메모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변했고, 작가 이름과 이력도 열심히 조사하면서 보기 시작했다. 또한, 인파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미술관 자체의 공간도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 자체의 구조적인 아름다움과 관람객을 고려한 동선, 큰 창 너머 비에 젖은 초록색 나무들이 보였다. 공간과 작품, 그리고 내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예술에 깊이 몰입했던 첫 관람이었다.

그날 미술관에서는 작품과 나 단둘이었고 예상치 못한 깊은 교감을 나눴던 고요하고 사적인 기억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았다. 그 이후 나는 미술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사랑했다. 유럽 교환학생 시절부터 아내와 여행을 다니는 지금까지 꼬박꼬박 그 도시의 미술관을 찾아갈 정도로 미술관 애호가가 되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의 속도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소중하다. 유명한 작품이 주는 웅장한 울림도 분명 존재하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 울림은 종종 얕게 흩어지곤 한다. 오히려 볼품없어 보이는 작품이라도, 그것과 나 단둘이 마주할 수 있는 고요한 여백이 주어질 때 울림의 깊이는 끝을 모르게 깊어진다. 여러분도 세상의 소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 나만의 안목으로 숨겨진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조용한 미술관을 하나쯤 가져보길 바란다.


추신: 대구 시립미술관 옆에 간송미술관도 생기고, 대구 유명 카페 브랜드 ‘핸즈커피’도 생겨서 점점 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아쉽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합니다. 시간이 나면 한번 방문해보세요. 그리고 만약 저평가된 미술관이 있다면 꼭 알려주세요. 저점매수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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