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월요일#5] 변한 내 생활반경(서울살이)

2026.05.17 | 조회 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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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변한다는 이야기를 하자니 내 입맛 말고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생활반경이다. 20대에는 못 가 본 곳들 전부 내 눈으로 담아버리겠다는 열정으로 이곳저곳 잘 다녔다. 비단 여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 지내면서 주변의 핫한 거리들을 가보고,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도 찾아가 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찾아다녔다. 대구에 살 때면 늘 서울에서 살고 싶었고, 기어코 서울로 올라와 살 때는 또 이태원, 홍대, 압구정 이곳저곳을 한때 열심히 다녔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서울에서 더 오래 살았으면서 명동을 한 번도 안 가봤다기에 내가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있다. 20대의 나는 발이 뜨거운 청년이었고, 발바닥에 불이 덴 듯 시간만 나면 혼자서 돌아다녔다.

어느새 서울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사이 서울 토박이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도 했다. 아내 덕분에 서울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당시 직장인이던 아내는 취업준비생인 나를 데리고 서울 곳곳에 다녔다. 아내랑 함께 63빌딩도 처음 봤고, 대학로 연극도 관람했다. 당시 재밌고 핫한 곳에서 늘 우리는 함께였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스스로 한강을 건너 어딘가를 가 본 게 언제였더라?’ 하는 질문이 문득 떠오를 만큼 집 근처 5km 반경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서울의 늘 북적북적한 지하철이 싫고, 차를 끌고 나가면 주차 자리를 찾으며 헤매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 에너지를 아껴 집에서 누워 감자칩과 제로콜라와 함께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보기를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다.

주말마다 클럽 가서 놀고, 일요일 아침이면 카페에 꼭 가서 커피 마시며 책 읽거나 개인 업무를 하던 20대의 루틴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구르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햇살을 즐기는 내 모습만 발견할 수 있었다. 꼭 싫지만은 않았다. 젊을 적에는 어디에 다녀오지 않으면 주말이 아까웠는데 이제는 어디 가는 게 아깝게 느껴지니 말이다.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구나 하고 또 생각했다. 역시 이건 반대 입장에서도 맞는 말인 게 우연히 예전에 한창 왔었던 골목이나 지역을 지나가면 전혀 다르게 바뀐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여기에 이런 게 있었나?”, “이 동네가 이런 분위기였나?” 하며 새삼 놀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이제 뒷방 늙은이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좀 다녀보며 요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의식해서 무거운 몸을 억지로 끌고 나가 봤자 예전만큼 즐기지도 못한다. 새롭게 나가서 구경해도, ‘그게 그거지 뭐’라는 생각이 들고, 처음 경험했던 만큼 놀라움도 크지 않았다. 뉴스로만 요즘 떠들썩한 동네 소식을 본다. 포켓몬 팝업 때문에 서울숲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듣는 것만으로도 피로해졌다. 이렇게 따분하게 늙어가는가 싶어 한동안 슬퐜다가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20대에 충분히 질릴 만큼 즐겼기 때문에 지금은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이제 나는 햄이 아닌 가지를 사랑하는 것처럼.

밖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즐기는 시절을 지나 이제는 그 경험들을 소화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밖이 아닌 안, 타인이 아닌 나를 꼼꼼하게 경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생활을 더욱 단순화하고 건강한 루틴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앞으로 더욱 잘 늙기 위해, 세월을 보내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좁아진 생활반경으로 아낀 시간과 에너지를 내부에서 더욱 알차게 보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또 아는가? 내가 가진 자원들이 떨어지면 40대에는 다시 바깥으로 눈을 돌려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다니며 감탄하고, 그 나이에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즐기고 있을지도.


추신: 제가 서울에 정착한 것은 단호한 아내의 통보 덕이었지요. 서울에서 6개월 지내니 너무 힘들다고, 다시 대구 내려가고 싶다고 징징거릴 때마다 아내는 “난 장거리 연애 못해. 대구 내려가면 헤어질 수밖에 없어.”라고 차갑게 절 다그쳤답니다. 그 덕에 아내랑 결혼까지 해서 계속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9호선 급행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거나, 언제 자리가 날지 몰라 하염없이 코스트코 양재점 앞 긴 차량들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면 고맙지만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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