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 왔다.
경주에 갈까 고민하다가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구고 찬 겨울 공기를 맞으며 눈 덮힌 울산바위를 보고 싶어서.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내내 간절했던 겨울 온천욕을 했다. 하늘은 청명하고 공기는 깨끗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가오리찜을 먹으러 갔던 가게 앞 골목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짧은 골목을 지나면 바로 바다다. 해변에 서서 잔잔하게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나도 넘실거린다 기분 좋게. 마음이 어지럽고 머리도 아파올 때면 종종 낙산 해변가로 갔었다. 그 때도 지금도 어린 시절에도 바다는 해변가에 번잡한 마음을 밀어두면 슬며시 쓸어가주는 존재였다. 가오리찜이 맵기도 했고 겨울 공기가 시원하기도 했고 가게 앞 바다가 워낙 이쁘기도 해서 어제도 자잘하게 불안하던 마음이 쓸려 내려갔다.
시칠리아 레알몬테를 닮은 아야진 해변의 바위에 서서 파도가 밀려오는걸 봤다.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면서 바위에 부딪히고 흰 포말을 만들며 바위들이 만든 틈으로 꾸역꾸역 스며들어가다 깊은 곳 작은 웅덩이를 만나면 잔잔한 파동으로 변해서 얌전히 물결치며 사라진다. 그 모습을 보는걸 좋아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차 안에서 비가 천장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있는 것, 아주 춥고 매서운 날 바람마저 모든 걸 날려버릴 듯이 부는 날 따뜻한 실내에서 큰 창으로 밖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거친 세상을 안전하고 따뜻한 곳에서 바라보는 일. 역동적인 세상을 안정적인 공간에서 보는 아이러니가 주는 묘한 평화로움이 좋다.
밖으로 보이는 영금정 앞 바다는 멋지게 꿈틀대면서 해안가 바위에 흰 포말을 뿜어대고 있는데 난 언덕위 카페의 통창을 통해 그걸 멍 하니 바라보고 있다. 조금 전엔 기러기들이 어딘가로 날아갔다.
세상은 거침없이 변해가는데 막상 눈 앞에 내가 바라보는 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그대로다. 10년전에도 바다는 이랬고 38억년 전에도 비슷했다.
가끔 생각한다.
가속하는 세상이 주는 광명을 버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경험한 지금 이 세상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고. 내가 기억하다 나와 함께 사라질 기억은 변하지 않는 곳에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핑계로 만들어대는 것들이 많은 것을 바꾸어대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고 싶은 그런 하루다.
해변을 해수욕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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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커피
너무 많은 것들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저도 가끔 정지된 나만의 시간을 즐깁니다. 이런 시간들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잡아주는 중심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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