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시간 어때요

마지막 날

아니 벌써.

2025.12.31 | 조회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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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김토성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낫기 위해서인가, 숨기 위해서인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얼마전 지인에게 안부를 물으니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고 인생의 연말정산을 준비중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인생의 연말정산이 뭐냐고 되물으니 올 한 해 계획했던 일들을 얼마나 잘 해냈는지 돌아보고 한 해 동안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 인상 깊었던 일 등을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자기만의 연말 시상식 같아 재밌는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도 한번 해볼까 했지만 오늘은 31일 21시 30분이고 2025년은 몇 시간 남지 않았다. 내년에 뒤늦은 시상을 해보면 어떨까 하며 내년의 나에게 넘겨본다.

 

난 몇 년 전부터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계획은 언제나 뒤틀린 황천으로 고꾸라지기 마련이고 계획 보다 더 중요하고 급박한 일들은 매해 일어나곤 했다. 연말에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새해 계획을 보며 이럴거면 계획을 뭐하러 세우는걸까 싶어 앞으로는 계획 없이 매 순간을 정성들여 살기로 했다. 그렇다면 난 매일 냄비로 밥을 하듯 정성들여 하루를 살아냈는가.

 

나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으며, 스스로를 믿고 다독이며 조급하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물론 노력한다고 조급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알고 진정하라고 하는 것과 신경쓰지 않고 미쳐 날뛰는 것은 다르니까. 덕분에 조금 덜 미쳐 날뛰지 않았나 싶다.

오늘 하루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나에게 솔직해지려고 스스로 돌아보며 되물어보고 창피한 마음을 마주해보기도 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지금은 내 안의 나의 눈을 마주칠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이제 나랑 좀 친해져서 내가 뭘 원하는지 전 보다는 더 잘 알고 있다.

 

새해 계획은 없었으나 올해 많은 것을 해냈다.

계획 없이 매 순간을 정성들여 살았고, 매 시간 감사하려 노력했다. 삶은 행복과 감사함, 슬픔과 절망 등으로 뒤엉켜 있는 기묘한 색의 반죽 같지만 막상 숙성시켜 오븐에 넣고 구워보면 나름 괜찮은 빛과 향이 나는 맛있는 빵이 된다. 한 해가 끝나고 다른 해가 그 자리에 들어올 때 마다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지나온 날 들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게 된다. 아니 덜 하게 된다. 분명 후회하는 것들도 있는데 전처럼 그것에 사로잡혀 괴로워하진 않는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과 대화할때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면 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없다고 한다. 모든 순간이 다 좋기도했고 괴롭기도 했다. 난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판단하고 행동할거고 시간이 흐르면 지금과 똑같은 내 모습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면 다르게 살것이다'라는 말은 지금까지 내가 힘겹게 지나온 모든 순간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게 아닌가. 지금까지 이만큼 살아준 내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그러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여전히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고 비틀비틀 삐뚤빼뚤 나아가겠지만 모든 오르막 뒤엔 달콤한 내리막이 있고 그 순간을 즐기며 가다보면 언젠가 괜찮은 종착지에 다다르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다 시시포스일지도 모른다.

 

몇 시간 뒤면 2026년이다. 달력에 1이라는 숫자를 보며 새로움, 출발, 다짐, 의욕 등을 머리와 마음 어딘가에 띄워두고 하루를 보내기 시작할거다. 오늘이 지난다고 갑자기 특별해지는 건 아니지만 1월 1일이니까 새로 주어진 한 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잘 써보려고 한다.

 

난 종교는 없지만 좋아하는 기도문은 있다. 

 

하느님,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지혜를 주소서.

라인홀트 니부어, 평온을 비는 기도

 

2026년에는 평안함과 용기 그리고 지혜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구독자님 2026년에도 기분 좋은 하루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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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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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냐옹이의 프로필 이미지

    냐옹이

    1
    2 months 전

    은둔자님의 빵은 상상컨대 웰메이드 소보로 같은 빵일 것 같아요. 덜 달고, 덜 기름진데 바삭하면서도 담백한 느낌 말이죠. 앞으로도 맛있는 빵 기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ㄴ 답글
  • 회사커피의 프로필 이미지

    회사커피

    1
    2 months 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ㄴ 답글
© 2026 명랑한 은둔자. 김토성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낫기 위해서인가, 숨기 위해서인가. 그 중간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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