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이번주 월요일,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어요. 사실 크게 떨리지 않았는데, 막상 학부모의 신분으로 참여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얼마 전 예비 초등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된 강의에 참여했던 적이 있는데,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신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제 나라에서 '관리'하는 '학생'의 신분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요. 유치원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나라에서 크게 관여하는 바가 없지만, 이제 초등학생이 되면 나라에서 정해주는 교육 방침 하에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학습하게 되고 진급하는 것이죠. 우리도 다 거쳐온 일인데, 새삼스럽게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도 학부모로서 처음이기에 이번 한 주 동안 마음이 굉장히 분주했는데요, 즐겁게 잘 적응하는 아이 덕분에 저도 한 걸음 떨어져서 엄마로서 해주어야 할 역할과 아이가 해야 할 역할을 잘 구분하면서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학부모로서의 생활이 익숙해지면 팩트풀한 글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위클리아카이브_그림책
<겁이 나는 건 당연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시간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그림책 한 권을 품에 꼭 안고 강단으로 오르시더니,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네시고는 그림 책을 읽어주시겠다고 하셨다.
책 제목은 <겁이 나는 건 당연해>
책의 일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위의 이야기로 서두를 여는 이 책은 뭐든지 척척 잘하는 아이의 마음속에도, 뭐든지 뚝딱 해내는 어른의 마음속에도, 겁쟁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 겁쟁이는 두려움을 야금야금 먹고 자라난다고. 하지만, 이내 너무 걱정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우리 마음엔 용감이도 사니까!
겁이 날 때면 오그라든 어깨를 쫙 펴고,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딱 주고 단단한 목소리로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용감이를 불러볼 것을 권면한다.
유치원을 막 졸업하고 '학교'라는 공식적인 울타리에 첫 발을 내딛은 신입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명확하게 느껴졌던 책이었다. 하지만, 비단 신입생에게만 적용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우리는 대부분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마다 두려움이 앞선다. 위에 소개된 그림책과 같이 뭐든지 척척 해내는 유능한 사람일지라도, 사실은 겁쟁이, 두려움이 존재한다.
'실패하면 어쩌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지?'
'나 때문에 망치면 어쩌지?'
아마 책에 표현된 단어만 바꾸면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책으로 발행되어도 무방할 것 같다. 오죽하면 성경 말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씀이 "두려워 말라."일까.
미국의 소설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저술한 에세이 <문학에 나타난 초자연적 공포>에서 작가는 이렇게 전했다.
해석하자면, 이렇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감정은 두려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두려움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전에 발행했던 글에서도 여러 번 표현했지만 나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앞서 꽤나 주저하고 망설이는 사람이다. 실패로 인한 기회비용과 마음의 상처를 고려하여 시작도 하지 않고 멈췄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근원은 모두, 미처 발 내딛지 않은 불확실함, 바로 'unknown'에서 왔다.
나는 그 두려움이 겁이 나고, 무서워서 도망쳐 달아나 버렸던 적도 있고, 때로는 마침내 두려움을 이겨내고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손에 거머쥐기도 했다.
때때로 두려움 앞에 잔뜩 쪼그라든 스스로를 비겁하게 여기고 미워했던 적이 있는데, 인류의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감정이 불확실함(unknown)에 대한 두려움이라 말하는 위대한 소설가 덕분에 스스로를 겁쟁이라 여기던 지난 날의 나에게 심심한 위로와 사과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음속에 부풀어 오르는 두려움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니, 오히려 두려움이 반감되는 것 같다. 늘 승승장구 하는 것 같은,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소위 엘리트와 같은 사람들도 마음 한 켠에는 두려움이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 때때로 두려움 앞에 작아지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며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것(unknown) 앞에,
겁이 나는 건 당연해!
#위클리아카이브_사람책
얼마 전, 도서관에 갔더니 '사람책 도서관'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표기되어 있었고, 문의할 경우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된 코너인 것 같았다. 때때로 한 사람에 대해서 알아갈 때 그 사람의 한 페이지를 읽어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번 주,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가 미처 알지 못했던 K-league의 한 축구 선수가 쓴 글을 읽었다. 축구 선수로서 은퇴 소감을 밝히는 글이었는데,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쓴 글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해당 글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서른 즈음이면 대충 압니다. 세상에는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요.
포기하지 않고 끝내 쟁취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훌륭함만이 삶의 정답은 아니기에 한치의 미련 없이 떠나봅니다.
저의 축구 인생은 완벽하지도, 위대하지도, 아주 훌륭하지도 않았지만 정정당당하게 성실히 땀 흘려 노력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멋진 세계에서 멋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내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오히려 언젠가부터 느꼈던 저보다 열정 있고 성실한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자기 비하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 속이 후련하고, 적어도 추한 선배는 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 하나는 지키고 그만두는 거 같아 다행이기도 합니다.
저는 더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면서 새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3.1일 새로 시작하기 날짜도 딱 좋네요. 여기저기 축하 만세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모두들 감사했고, 잘 머물다 합니다. @k-league
서른 중반의 내가 이 글을 지나칠 수 없었던 건, 미처 알지 못했던 어느 축구 선수의 글에서 지난 날 누구보다 간절했지만 그럼에도 실패 앞에 무력했던 젊은 날의 열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애틋하게 여기며 버텨온 삶의 굳은살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2020년 끝자락, 내가 끄적였던 기록들 사이에 이런 글이 있다.
'한 살 한 살 나이드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내가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서른이 넘은 나는 이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와 같은 순수한 야망을 꿈꾸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욱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꿈을 쫓는다. 크고 작은 꿈의 크기를 떠나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여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삶의 무게 추를 둔다.
지난 날 가득했던 무모한 배짱은 잃었으나, 현실적 경험치는 매일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알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존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떳떳한 것이란 걸. 혹여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나에게 스스로 떳떳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인생의 여러 길 중, 하나의 길에서 실패했다고 내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임민혁 선수의 말마따나 평생 간절히 원했던 축구선수로서의 삶이 끝난다 해도, 여전히 그에겐 더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할 수 있는 새 인생이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여전히.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주간 각자의 자리에서 떳떳한 하루를 보내시길, 그리고 그 만큼 스스로를 애틋하게 바라봐주시길 바라요.
저도 그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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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y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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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케이레터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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