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17세기 영국의 마녀재판과 공포의 정치학

함께 읽는 영국 추리 소설,『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마지막 이야기

2026.09.13 | 조회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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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1644년 봄, 잉글랜드 에섹스(Essex)의 작은 마을 매닝트리(Manningtree)에서 매슈 홉킨스(Matthew Hopkins)라는 젊은 남자가 이웃에 사는 여성 여섯 명을 마녀로 고발했다. 그는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주장했다.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었다. 흉작이 이어지고 가축이 죽었으며 아이들은 병들었다.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불행을 설명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홉킨스는 그들이 원하는 설명을 내놓았다.

최초의 고발로부터 불과 1년 사이, 홉킨스는 잉글랜드 동부 전역을 떠돌며 수백 명을 마녀로 지목했다. 1645년 봄까지 36명의 여성이 마법을 부린 혐의로 기소됐고, 그해 7월 17일까지 그중 19명이 첼름스퍼드의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손아귀에 걸려들었다. 그는 스스로를 ‘마녀 사냥꾼 총책(Witchfinder General)’이라 칭했다. 의회가 공식적으로 부여한 직함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의 권위는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공포에서 태어났다.

스튜어트 터튼의 소설 『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에서 사르담호의 뒤를 쫓는 ‘올드 톰’은 홉킨스가 팔아 치운 공포와 꼭 닮아 있다. 이름을 지니고 형체를 얻어, 배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행을 설명해 주는 존재. 그러나 악마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누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 악마를 필요로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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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판 『마녀의 발견』에 수록된 매튜 홉킨스의 초상화. 출처: https://wellcomeimages.org/indexplus/obf_images/13/34/b098ac6a300decef0f6dcb1bd868.jpgGallery: https://wellcomeimages.org/indexplus/image/L0000812.htmlWellcome Collection gallery (2018-03-31): https://wellcomecollection.org/works/veebwm5d CC-BY-4.0, CC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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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킨스가 활동했던 1640년대의 잉글랜드는 깊은 혼란에 잠겨 있었다.

1642년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이 발발하면서 왕당파와 의회파는 전국 곳곳에서 격돌했다. 법원 체계는 흔들리고 치안은 무너졌으며, 중앙 권력이 사라진 자리에서 지역 공동체들은 스스로 질서를 지켜야 했다. 이 불안과 혼돈이 마녀재판이 뿌리내릴 토양이 되었다. 평상시라면 순회재판소(assize court)의 전문 판사들이 마녀 고발을 면밀히 심사해 상당수를 기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전이 한창이던 때에는 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대신 재판을 맡게 된 지방 치안판사들은 홉킨스의 주장과 그가 불러일으킨 공포에 훨씬 쉽게 휩쓸렸다.

마녀재판을 움직인 것은 무엇보다 두려움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발한 이들이 실제로 자신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믿었다. 그 해악은 때로 아이의 죽음으로 나타났고, 그에 못지않게 자주 가축의 죽음이나 고장 난 기계, 무너진 생계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설명할 길 없는 불행이 잇따르면 인간은 그 모든 일을 하나로 꿰어 줄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그 원인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공포는 역설적으로 조금 더 다룰 수 있는 것이 된다. 무엇이 자신을 덮쳤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보다는, 차라리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는 편이 견디기 쉽다. 적어도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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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슈 홉킨스의 『마녀의 발견』(1647)에 실린 삽화. 마녀로 지목된 여성들이 자신의 사역마(使役魔)를 밝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출처: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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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킨스의 수법은 치밀하고도 잔혹했다.

그는 혼자 움직이지 않았다. 여성 조수들을 대동하고 다니며 용의자의 몸에서 이른바 ‘마녀의 표식(witch’s mark)’을 찾아냈다. 피부에 돌출된 부분이나 반점만 있어도 마녀라는 증거로 삼았다. 가장 흔히 사용한 수법은 잠을 빼앗는 것이었다. 용의자를 며칠 밤낮으로 재우지 않으면 정신은 무너지고, 마침내 하지 않은 일조차 고백하게 된다. ‘수영 시험(swimming test)’이라 불리는 방법도 있었다. 물에 떠오르면 마녀였고, 가라앉으면 무죄였다. 결백을 증명하려면 익사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홉킨스는 1647년, 마녀를 찾아내고 심문하는 방법을 상세히 기록한 짧은 팸플릿 『마녀의 발견(The Discovery of Witches)』을 펴냈다. 그가 내세운 방법 가운데 상당수는 국왕 제임스 1세가 쓴 베스트셀러 『악마학(Daemonologie)』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홉킨스는 당대의 권위에 능숙하게 기대었다. 왕이 쓴 책과 의회의 침묵, 무엇보다 공포에 사로잡힌 마을 사람들의 믿음이 그의 뒤를 받쳤다. 그 믿음이 그의 권위를 낳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위는 다시 더 많은 고발을 불러왔다.

홉킨스는 자신이 찾아간 마을들로부터 대가를 받았다. 그가 거둬들인 돈은 당시로서는 막대한 액수인 1,000파운드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마녀의 주문으로부터 주인을 지켜준다는 ‘마녀 상자’까지 팔았다. 마침내 공포는 하나의 사업이 되었다. 홉킨스가 팔아 치운 것은 악마 그 자체였다. 먼저 악마가 존재한다고 믿게 만들고, 그 악마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뒤, 구원에 값을 매겼다.

홉킨스의 희생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뚜렷한 패턴이 보인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여성들이었다. 이를테면 마을 변두리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며 궁핍하게 살아가던 다리가 불편한 여성이, 딸의 경련을 지켜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가족으로부터 마법을 부렸다는 고발을 당하는 식이었다.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 홀로 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을 지켜줄 공동체가 없는 사람들이 먼저 표적이 되었다.

나이 든 성직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든 살의 성직자 존 로우스(John Lowes)는 마녀사냥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가 도리어 홉킨스의 표적이 되었다. 그는 마법으로 배를 침몰시켰다는 혐의를 뒤집어쓴 채 잠을 빼앗기는 고문을 당했다. 권력에 저항했다는 사실마저 마녀라는 증거로 둔갑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마녀재판을 단순한 미신의 산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마녀재판은 사회적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누가 희생양으로 선택되는지를 들여다보면, 그 사회가 누구를 두려워하고 누구를 억압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홉킨스 시대의 잉글랜드에서 붙잡혀 죽어간 것은 악마가 아니었다. 가난한 여성들, 이웃과 불화를 겪던 노인들, 그리고 권력 앞에서 고개 숙이기를 거부한 사람들이었다.

영국에서 마녀재판의 시대가 막을 내리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국에서 마녀로 처형된 마지막 인물로 알려진 앨리시아 몰랜드(Alicia Molland)는 1684년 엑서터(Exeter)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이성과 과학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자라나던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마법에 대한 믿음은 조금씩 의심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린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녀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그로부터도 반세기 가까이 지난 1736년이었다. 공포에서 이성으로 건너가는 길은 짧지도 곧지도 않았다. 과학혁명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악마의 소행으로 돌리기보다, 관찰하고 이해하려 하기 시작했다.

『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은 바로 그 거대한 변화의 문턱인 1634년을 배경으로 한다. 마녀사냥의 광풍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한편, 유럽 곳곳에서는 새로운 이성이 움트고 있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되기 불과 1년 전, 오래된 공포와 새로운 지식이 팽팽히 맞서던 시대에 사르담호는 항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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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년에 출간된, 잉글랜드에서 마녀로 의심받은 사람들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모습을 담은 삽화. 출처: Unknown author - Published in A New History of Witchcraft by Brooks and Alexander (2007), page 69.,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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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국 마녀재판의 역사는 홉킨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지도, 그에게서 끝나지도 않는다.

잉글랜드에서 마법을 처벌하는 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헨리 8세 치하인 1542년이었다. 이후 마녀재판의 열기가 거세진 데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국왕 제임스 1세(James I, 재위 1603~1625)의 영향이 컸다. 그는 마녀와 악마의 존재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다. 직접 『악마학(Daemonologie)』을 집필해 악마의 실재와 마녀의 위험성을 체계적으로 논증했을 정도였다. 한 개인의 믿음은 왕의 권위를 입는 순간 국가가 공인한 공포로 변했다.

마녀를 향한 제임스 1세의 집착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깊이 얽혀 있었다. 스코틀랜드 국왕이던 1590년, 마녀들이 폭풍을 일으켜 왕이 탄 배를 침몰시키려 했다는 혐의가 제기됐다. 이른바 ‘노스버릭 마녀재판’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마녀의 위협에 대한 그의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뒤인 1604년에는 이전보다 처벌 수위를 한층 높인 새로운 마녀법(Witchcraft Act 1604)이 제정됐다.

흥미롭게도 셰익스피어가 『맥베스(Macbeth)』를 쓴 것은 1606년 무렵이었다. 세 마녀가 등장하는 이 작품이 제임스 1세의 치세에 탄생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셰익스피어는 새 국왕의 관심과 공포를 정확히 짚어냈다. 악마와 예언, 저주와 배신. 『맥베스』는 제임스 1세가 매혹되면서도 두려워했던 것들로 가득하다. 왕이 두려워한 것이 무대 위에 올랐고, 왕의 공포는 관객의 오락이 되었다. 권력과 예술이 공포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맞닿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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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파월 프리스(William Powell Frith)의 1848년 작품 《마녀재판(The Witch Trial)》. 출처: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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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올드 톰’은 홉킨스가 사람들에게 팔았던 악마와 닮았다. 배 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잇달아 벌어지고, 누군가는 흩어진 불행을 하나의 이름 아래 묶는다. 그렇게 이름을 얻은 공포는 선원들의 시야를 잠식한다. 기이한 형상을 보면 악마의 흔적이라 여기고, 어둠 속에서 낯선 소리가 들리면 올드 톰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는 그 공포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불가사의해 보였던 사건들 뒤에는 의도가 있었고, 공포에는 그것을 설계한 사람이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악마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악마가 존재한다고 믿게 만드는 인간이었다.

홉킨스가 실제로 악마를 믿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는 공포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사람들의 두려움은 방향을 정해줄 수 있고, 그 방향을 쥔 사람은 다른 이들의 판단과 행동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악마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르는 자가, 때로는 악마보다 더 강한 권력을 얻는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독자는 알게 된다.

올드 톰은 실재하지 않았지만, 올드 톰을 만들어낸 사람은 실재했다. 그는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이 쌓일수록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로 묶어줄 이름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먼저 건네는 사람이 이야기를 장악하고, 이야기를 장악한 사람이 결국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한 편의 역사 미스터리에 머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적을 만들어내고, 그 적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며 권력을 얻는 방식은 17세기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악마의 모습과 이름만 달라졌을 뿐, 공포가 권력으로 바뀌는 구조는 지금도 되풀이된다.

사르담호의 선원들이 올드 톰을 믿은 것은 단순히 이성을 포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붙들어둘 이름이 필요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바로 그 필요를 이용해, 그들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행동할지 설계했다.

악마보다 무서운 것은, 악마를 만들어 팔 줄 아는 사람이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홉킨스는 공포를 만들어내고 그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겠다며 돈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이 있는가. 공포를 조장하고 그 공포의 해결책을 독점하는 구조가 현대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 홉킨스의 마녀 사냥에서 희생된 것은 대부분 가난하고 고립된 여성들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불행이 닥쳤을 때, 사회는 왜 언제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향하는가. 당신의 주변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 소설 속 아렌트는 올드 톰을 믿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배 위의 모든 것이 악마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일 때, 이성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연달아 일어날 때, 어떻게 공포와 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Coldplay –  'Clocks' (2002) 옥스퍼드 출신 콜드플레이의 이 곡은 멈출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절박함을 담고 있다. 반복적으로 쌓여가는 피아노 리프가 사르담 호 위에서 점점 조여오는 압박감, 그리고 논리와 공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아렌트의 내면 상태와 맞닿아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이성을 붙들려는 사람의 음악이다.  

『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 시리즈를 마칩니다. 한 달 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책 소개로 다시 만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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