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반드시 총일 필요는 없다.
적군의 몸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적군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은, 사실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성벽 앞에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는 것도, 적장의 수급을 높이 내거는 것도 모두 같은 원리다. 상대의 의지를 꺾는 것. 싸우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드는 것. 하지만 이것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과학적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수행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에 영국이 있다.
4월 우리가 함께 읽을 소설 , 마이클 로보텀(Michael Robotham)의 『산산이 부서진 남자(Shatter)』에는 인간의 정신을 무너뜨리도록 훈련받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말로 사람을 죽인다. 협박이나 위협이 아니라, 상대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균열을 찾아내 그것을 넓히는 방식으로. 이 캐릭터가 섬뜩한 이유는 그가 순전한 허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기술은 실재했다. 국가가 개발하고, 국가가 훈련시키고, 국가가 전장에서 사용한 기술이었다.
1차 세계대전, 선전전의 탄생
1914년, 유럽이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을 때 영국은 이 싸움이 단순한 군사 충돌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있었다. 총성과 포성이 울려 퍼지는 전장과는 별개로, 또 하나의 전선이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훨씬 더 넓고 깊은 전장, 인간의 마음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1914년 9월, 런던 남동부의 웰링턴 하우스. 겉으로는 평범한 건물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설계되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이곳에 비밀 선전 기관인 ‘전쟁선전국’을 설치했다.
이 기관의 임무는 명확하면서도 복합적이었다. 영국의 전쟁 참여를 정당화하고,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은 중립국들, 특히 미국의 여론을 영국 쪽으로 기울게 만들며, 동시에 적국 국민들의 사기를 무너뜨리는 것. 전쟁의 승패를 총탄이 아닌 인식과 감정의 영역에서 흔들겠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들이 택한 방식은 노골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하고 치밀했다.
웰링턴 하우스는 정부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대 영국을 대표하던 작가들을 비밀리에 동원한 것이다. H. G. 웰스, 아서 코난 도일, 러디어드 키플링 같은 인물들이 이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 선전물들. 『영국은 어떻게 준비했는가』라는 1915년 영국 영화 포스터 (좌) 자원하지 않은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위한, 「아빠, 대전 때 무엇을 하셨나요?」 포스터 (우). 출처: War History Online
그들은 팸플릿을 쓰고, 신문 기사를 기고하며, 독일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글들은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지식인의 목소리처럼 보이도록 정교하게 포장되었다. 정부의 개입 흔적은 철저히 지워졌다. 독자들은 그것을 선전이 아니라 사실과 양심의 기록으로 받아들였다.
이 전략은 놀라울 만큼 효과적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사례가 1915년에 발표된 ‘브라이스 보고서’다. 이 문서는 독일군이 벨기에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당시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보고서는 사실처럼 읽혔고, 증언들은 매우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여론은 빠르게 독일을 향해 돌아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역사가들은 이 보고서의 상당 부분이 과장되었거나 조작된 것임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이미 충분한 효과를 거둔 뒤였다. 한 번 형성된 인식은 쉽게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웰링턴 하우스의 존재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조용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심리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전쟁이라는 사실조차 끝내 들키지 않는 것.

『정글북』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 그는 웰링턴 하우스 설립 이전까지 영국의 전쟁 수행을 강력히 지지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다.출처: Miscellaneous Items in High Demand, PPOC, Library of Congress - Library of CongressCatalog, Public Domain
2차 세계대전, 특수작전처와 마음의 전쟁
1차 세계대전이 선전전의 가능성을 시험한 무대였다면, 2차 세계대전은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어, 하나의 정교한 군사 전략으로 자리 잡은 시기였다. 더 이상 말과 정보는 부수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 자체가 전쟁의 핵심이 되기 시작했다.
1940년,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영국 정부는 특수작전처, 즉 SOE를 설립했다. 표면적으로는 적국 점령지에서 저항 세력을 지원하고, 기반 시설을 파괴하는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조직이었다. 처칠은 이 조직의 목적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유럽을 불태워라. 그 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유럽 곳곳에서 은밀한 작전이 실행되었고, 보이지 않는 전선이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나 SOE의 전부가 폭발과 파괴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요한 전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졌다. 점령지 주민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저항의 불씨를 되살리고, 독일군과 협력하는 이들의 심리를 흔들며, 나치 독일 내부에 불신과 공포를 퍼뜨리는 일. 그것이 이 조직이 수행한 또 다른 임무였다.
같은 시기에 설립된 정치전쟁집행부, PWE는 이러한 심리전을 보다 직접적으로 담당했다. 그들의 무기는 총이 아니라 전파였다.
PWE는 독일어로 방송되는 라디오 채널을 운영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중 일부가 영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긴 채, 마치 독일 내부에서 운영되는 반나치 방송인 것처럼 위장되었다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친숙하게 들렸고, 그래서 더 쉽게 스며들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 방송을 들은 독일 군인들 가운데 일부는 전선을 이탈하거나 항복을 선택하기도 했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적을 무너뜨린 셈이었다.
PWE의 작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 전쟁 포로들을 심문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부대의 병사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가족에 대한 걱정이 얼마나 큰지, 어떤 말에 흔들리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각 부대에 맞춘 선전물을 제작했다. 불안과 의심을 자극하는 문장, 집에 남겨둔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전쟁의 무의미함을 강조하는 메시지. 이러한 내용이 담긴 전단이 특정 부대에 집중적으로 뿌려졌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매우 익숙한 방식이다. 개인의 성향을 분석하고, 그에 맞춰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략. 이른바 타깃 마케팅과 닮아 있다. 다만 그 목적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의지를 무너뜨리는 데 있었다는 점에서, 훨씬 더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이다.
B MK II 수신기와 송신기(일명 B2 무전기 세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밀 공작과 첩보 활동에 사용된 휴대용 무전 장비다. 출처: Hanedoes (talk · contribs) - Own work, CC BY-SA 3.0
냉전, 심리전의 과학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쟁은 형태를 바꾸었다. 총성과 폭발음이 잦아든 자리에, 더 조용하고 더 집요한 싸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인간의 마음을 둘러싼 또 다른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영국과 미국은 소련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모색했다. 그 중심에는 심리전이 있었다. 영국 정보부 MI6와 미국의 CIA는 긴밀히 협력하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나갔다.
이 시기부터 심리전은 단순한 선전의 수준을 넘어섰다. 더 이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정신 그 자체를 이해하고, 때로는 통제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었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CIA의 ‘MK울트라’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젝트는 약물, 최면, 그리고 심리적 압박을 결합해 인간의 의지를 해체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 실험 대상자들은 종종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참여하게 되었고, 그 과정은 오랜 시간 비밀에 부쳐졌다. 이 프로그램의 존재는 1970년대 미국 의회의 청문회를 통해 비로소 공식적으로 드러났다. 그때 사람들은 처음으로, 국가가 어디까지 인간의 정신을 침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MKUltra 프로젝트의 하위 연구(Subproject 8)에 관한 내부 기록으로, LSD의 생화학·심리·사회적 영향을 연구하고 대항물질 개발 가능성까지 포함한 실험을 승인하는 내용. 또한 약 39만 달러 규모의 예산과 비공식(은폐된) 자금 지원 구조가 함께 명시돼 있어, 당시 비밀 연구의 성격을 보여준다. 출처: Dr Sidney Gottlieb's approval of an w:en:MKULTRA subproject on LSD. - Transwiki approved by: w:en:User:Dmcdevit, Public Domain
영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았다. 1970년대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영국군은 IRA 용의자들을 상대로 특정한 심문 기법을 사용했다. 이른바 ‘다섯 가지 기술’이라 불린 방식이었다.
수면을 박탈하고, 지속적인 소음을 들려주며, 오랜 시간 특정 자세를 유지하게 하는 것. 육체적 고통과 함께 정신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방법이었다. 이 기술들은 이후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비인도적 대우로 판결받았다. 그 판결은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신체적 고문과 심리적 고문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을 영국 사회에 던졌다.
냉전 시기에 발전한 심리전의 특징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는 데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흔히 ‘세뇌’라고 불리는 강압적 방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세뇌는 물리적 압박과 강제성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더 발전된 심리전은 그와 반대의 길을 택했다. 대상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방향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설계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이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이 지점에 닿아 있다. 그는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든다. 피해자는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이, 가장 깊은 함정이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가장 확실하게 사람을 움직이는 순간이다.
포클랜드에서 이라크까지, 현대의 심리작전
냉전이 막을 내린 뒤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단지 형태를 바꾸었을 뿐이었다. 총과 탱크가 전장의 중심에 서 있던 시대가 저물고, 그 자리를 정보와 인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채우기 시작했다. 영국군의 심리작전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정교한 모습으로 이어졌다.
영국군에는 공식적으로 ‘심리작전단’이라 불리는 조직이 존재한다. 이후 2009년, 이 조직은 ‘77여단’으로 재편되었다. 이 부대는 전통적인 전단 살포나 방송을 넘어,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환경에서의 정보 작전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장이 더 이상 물리적 공간에만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맞춰, 전쟁의 무대 역시 화면과 네트워크로 확장된 것이다.
77여단의 존재가 영국 언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5년이었다. 그들이 수행하는 임무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온라인 여론을 형성하고 적대적인 서사를 대응하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이러한 기술이 외국의 적뿐만 아니라, 자국 내 정보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77th Brigade는 정규군과 예비군이 결합된 혼합 부대로, 정보 환경에서의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 기술을 갖추고 있으며, 영국과 해외 영토의 방위를 수행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출처: 77th Brigade 공식 홈페이지
이보다 앞서,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도 심리작전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영미 연합군은 이라크 병사들을 향해 항복을 촉구하는 전단을 대량으로 살포했다. 그 내용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생존 가능성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싸우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부 이라크 장교들의 개인 휴대전화로 직접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름과 계급, 그리고 상황을 고려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는, 익명의 선전보다 훨씬 더 강하게 개인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다. 실제로 바그다드가 함락될 당시, 예상보다 훨씬 적은 저항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일부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군사 분석가들 역시, 물리적인 전력뿐만 아니라 이러한 심리작전이 전황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결국 전쟁은 점점 더 조용해지고 있다. 총소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보다 앞서 사람들의 생각과 선택이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흐름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내는가가 현대 전쟁의 중요한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의 주요 업무 소개. 1. 해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운영 플랫폼과 시스템을 마련 2. 정보 환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분석 3. 실제 또는 잠재적 적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단독 또는 파트너와 함께 정보 작전을 식별·개발·수행 4. 군사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대상 청중을 분석 5. 정보 영역에서 작전 수행과 우위 확보를 위한 역량을 개발
훈련된 사람과 치료하는 사람
이제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 등장하는 가해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역사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국가가 축적해 온 기술,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고 흔들고 무너뜨리기 위해 정제해 온 방법들이 한 개인 안에 응축된 존재다.
그는 전장에서 적의 의지를 꺾도록 훈련받았다.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버티고 있는 마지막 저항을 겨냥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능력은 전장이 끝났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날카로워지고, 더 섬세해진다. 전쟁이라는 집단의 공간에서 개인이라는 좁은 영역으로 옮겨오며, 그 기술은 더욱 집요하고 정밀한 형태로 변해간다.
그의 말은 무기가 된다. 보이지 않지만, 가장 깊숙한 곳을 겨냥하는 무기.
그와 마주 서 있는 인물은 임상심리학자 조 오로클린이다. 그는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인간의 불안과 트라우마, 기억과 감정을 이해하는 동일한 틀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가 향하는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그는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사람이다. 균열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균열을 봉합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이야기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정신을 회복시키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동시에 정신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도 알고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기술은, 반대로 상처를 만드는 방식과도 닿아 있다. 같은 지식이 어떤 손에 들리느냐에 따라, 그것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결국 소설이 묻는 것은 이것이다. 같은 언어, 같은 기술, 같은 이해가 방향에 따라 누군가를 구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완전히 파괴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면, 그 갈림길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정신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개입에는 언제나 선택이 따른다. 어디까지 들어갈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선을 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영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지나며 이 기술을 발전시켜 온 과정은, 한편으로는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와버린 역사이기도 하다. 기술은 점점 정교해졌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더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온다.
생각해볼 질문들
- 영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심리전 기술들 (위장 방송, 맞춤형 선전, 공포 조장) 은 정당한 전쟁 수단이었는가. 물리적 폭력보다 심리적 조종이 더 인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의 의지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깊은 폭력인가.
- 국가가 개발하고 훈련시킨 심리전 기술이 개인의 손에 넘어갔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소설 속 가해자는 국가가 훈련시킨 능력을 사적으로 사용한다. 기술을 만든 국가인가, 그것을 사용하는 개인인가, 아니면 그러한 기술이 존재하도록 허용한 사회인가.
-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설득하려 한다. 광고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정치인은 우리의 감정에 호소하며, 가까운 사람들도 때로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설득과 조종의 경계는 어디인가. 상대방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이 사실과 다를 때, 그것은 설득인가, 조종인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Massive Attack – ‘Angel’ (1998) 브리스틀 출신의 매시브 어택이 만든 이 곡은, 아주 느리게 숨을 고르듯 시작한다. 처음에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들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보이지 않는 압력이 서서히 쌓여간다. 6분에 걸쳐 조용히 조여오는 그 긴장감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덮쳐오는 것이 아니라,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태에 가깝다. 그 흐름은 어딘가 낯익다. 눈에 띄지 않게 접근하고,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영향을 받게 만드는 심리전의 방식과 닮아 있다. 소리는 점점 두터워지고, 리듬은 점차 숨을 조이며, 결국에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밀도로 청자를 감싼다. 칼럼을 다 읽고 난 뒤, 아직 남아 있는 여운 속에서 이 곡을 틀어보기를 권한다. 아마 글에서 느꼈던 어떤 감각이, 음악 속에서 다시 한 번 조용히 되살아날 것이다.
다음 주 예고
소설 속 가해자는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하지만 그가 집으로, 일상으로, 친밀한 관계 속으로 가져온 것들이 있다. 국가는 그에게 기술을 주었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만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한동안 만들지 못했다.
2화에서는 영국이 2015년 세계 최초로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를 형사범죄로 규정하기까지의 긴 역사를 따라간다. 신체적 폭력 없이 말과 심리적 압박만으로 상대를 지배하는 것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범죄로 인정받지 못했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사회가 인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왜 번번이 “증거가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는가.
보이지 않는 것을 범죄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훨씬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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