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가을, 런던 이스트엔드의 골목들은 안개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이 구역은 낮에도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았고, 밤이 되면 가스등 불빛마저 짙은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번져 몇 발짝 앞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가장 가난한 구역이었던 이스트엔드에는 공장 노동자들과 각지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 빽빽하게 살아갔고, 매춘과 알코올과 범죄가 삶의 풍경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경찰이 순찰을 돌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888년 8월부터 11월 사이, 다섯 명의 여성이 살해되었다. 범행 방식은 충격적으로 유사했고, 범인의 행방은 끝내 묘연했다. 피해자들에게 남겨진 상처는 단순한 폭력의 흔적이 아니었다. 해부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의 손이 개입된 정교한 흔적이었고, 그것이 오히려 사건을 더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추후 경찰에게 범행을 저지른자로부터 편지가 날아들었고, 그 편지에는 하나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그 이름은 역사에 남았지만, 얼굴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영국 범죄 역사에서 중요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미제로 남았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범죄 현장의 물리적 증거만을 가지고 범인의 심리적 내면을 추론하려는 공식적인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바로 외과의사 토머스 본드(Thomas Bond, 1841–1901)였다.
잭 더 리퍼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From the Hell'이라는 제목의 편지. 출처: Unknown author (credited to Jack the Ripper) - Original in the Records of Metropolitan Police Service, National Archives, MEPO 3/142; this facsimile from http://www.casebook.org/ripper_letters/, Public Domain
최초의 프로파일, 토머스 본드의 보고서
1888년 11월, 토머스 본드는 런던 경찰청(Metropolitan Police)의 공식 요청을 받아 피해자들의 시신을 직접 검토한 뒤 하나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시도였다.
본드는 보고서에서 범인의 신체적 특징에 머물지 않고 그의 심리적 특성을 추론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범인은 체력이 좋고 감정적으로 냉정한 사람일 것이며, 대담하고 때로는 무모할 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성격일 것이라고 썼다. 피해자들에게 어떠한 감정적 동요도 느끼지 않으면서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추론도 포함되었다. 나아가 그는 범인이 외과적 훈련을 정식으로 받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시신에서 발견된 해부학적 지식의 흔적이 전문적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독학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습득된 것일 수 있다는 논거였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이 보고서는 추론의 근거가 불분명하고 방법론적으로도 조잡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이 보고서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범죄 현장에 남겨진 물리적 증거로부터 범인의 심리적 특성을 도출하려 한 최초의 공식적 시도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범인을 잡기 위해 범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 한 최초의 기록이었다.
결과적으로 잭 더 리퍼는 잡히지 않았고, 본드의 프로파일은 사건 해결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질문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범죄자의 행동 패턴으로부터 그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읽기가 다음 범행을 막는 데 실제로 쓰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이후 100년에 걸쳐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해나갔다.

토머스 본드. 출처: Unknown author - Obituary of Dr Thomas Bond - 'The Lancet', 1901 Vol. I, pg 1721, Public Domain
FBI에서 영국으로... 현대 프로파일링의 탄생
토머스 본드의 보고서로부터 약 90년이 지난 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프로파일링은 마침내 하나의 체계적인 방법론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1972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버지니아주 콴티코(Quantico) 본부에 행동과학부(Behavioral Science Unit)를 설립했다. 이 부서의 핵심 임무는 연쇄 범죄자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범행을 예측하며, 실제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범죄자 프로파일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로버트 레슬러(Robert Ressler)와 존 더글러스(John Douglas) 같은 수사관들은 전국의 교도소를 직접 돌아다니며 이미 체포된 연쇄 살인범들을 면담했고, 그렇게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가 이후 프로파일링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범죄자를 이해하기 위해 범죄자에게 직접 묻는다는 이 단순하지만 대담한 방식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접근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개발한 가장 중요한 개념적 틀 중 하나가 조직적 범죄자(organised offender)와 비조직적 범죄자(disorganised offender)의 구분이었다. 조직적 범죄자는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증거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며, 피해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반면 비조직적 범죄자는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현장에 증거를 무심코 남기며, 행동의 일관성이 낮아 예측하기 어렵다. 단순해 보이는 이 구분은 이후 수십 년간 범죄 프로파일링의 기본 틀로 자리 잡으며 실제 수사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FBI의 방법론은 1980년대에 이르러 영국으로 건너왔고, 영국에서 이 흐름을 주도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인물이 리버풀 대학교의 범죄 심리학자 데이비드 캔터(David Canter)였다. 캔터는 1985년 당시 영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른바 ‘철도 강간범(Railway Rapist)’ 사건, 즉 런던 일대의 기차역 인근에서 벌어진 연쇄 성폭력 및 살인 사건의 수사에 참여하면서 영국 최초의 체계적 범죄 프로파일링을 시도했다. 그의 분석은 결국 범인 존 더피(John Duffy)를 특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이 사건은 이후 영국 범죄 심리학의 역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되었다.
캔터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수사 심리학(Investigative Psych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해나갔다. FBI식 프로파일링이 숙련된 수사관의 직관과 오랜 경험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캔터의 접근법은 통계적 분석과 심리학적 이론을 결합하는 보다 과학적인 방식을 지향했다. 범죄 현장에서 수집된 데이터 안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고, 그것을 심리학적 이론의 언어로 해석함으로써 수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직관에서 데이터로, 경험에서 이론으로, 프로파일링은 하나의 기술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캔터. 출처: 허더스필드 대학교 블로그
화려한 성공과 치명적인 실패
하지만 프로파일링의 역사는 성공만으로 이루어져있는 것은 아니다.
1992년 7월, 런던 남서부의 윔블던 코먼(Wimbledon Common) 공원에서 스물세 살의 젊은 여성 레이철 니켈(Rachel Nickell)이 두 살배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백주 대낮에, 사람들이 오가는 공원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영국 사회 전체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고, 경찰은 빠른 시일 안에 범인을 검거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당시 영국에서 가장 저명한 범죄 심리학자 중 하나였던 폴 브리튼(Paul Britton)에게 프로파일링을 의뢰했고, 브리튼은 분석을 통해 공원 인근에 살던 콜린 스태그(Colin Stagg)라는 남성을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태그를 직접 체포할 만한 물리적 증거가 없었던 경찰은 브리튼의 조언을 바탕으로 전례 없는 위장 작전을 기획했다. 여성 경찰관을 스태그에게 접근시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한 뒤, 그가 범행을 자백하도록 심리적으로 유도하는 작전이었다. 수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 작전에서 스태그는 끝내 자백하지 않았다. 그는 그럼에도 체포되어 기소되었지만, 1994년 재판에서 담당 판사는 경찰의 위장 작전이 피의자를 함정에 빠뜨리려 한 부적법한 행위라고 판단해 공소 자체를 기각했다. 콜린 스태그는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08년, 진실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철 니켈을 살해한 진범은 로버트 낙슬리(Robert Napper)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이미 별개의 살인 사건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었다. 잘못된 프로파일 하나가 무고한 사람을 16년간 살인범의 오명 속에 가두었고, 그 긴 세월 동안 진범의 존재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곳에 조용히 묻혀 있었다. 이 사건은 영국 사회에서 프로파일링의 신뢰성 전반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범죄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는 시도가 자칫 수사 전체를 돌이키기 어려운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증명한 사례로 남아 있다.
콜린 스태그 인터뷰. 그의 이야기는 영국 방송국 채널4에서 Deceit라는 이름의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이해와 동일시 사이의 경계
프로파일링이 궁극적으로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사실 방법론적인 것이 아니다.
범죄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FBI 행동과학부의 수사관 존 더글러스는 수십 명의 연쇄 살인범들을 직접 면담한 끝에 심각한 심리적 소진을 경험했고, 한때는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건강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는 훗날 출간한 회고록에서 그 경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범죄자들의 내면에 너무 깊이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출구를 찾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온다고.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논리가 어느 사이엔가 이해되기 시작하고, 낯설기만 했던 그들의 관점이 점차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그것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데이비드 캔터 역시 오랜 연구 경험을 통해 비슷한 경고를 남겼다. 범죄자를 이해한다는 것과 범죄자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며, 그 경계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이해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일시는 그 도구를 손에 쥔 사람을 잠식한다.
소설 속 조 오로클린은 바로 이 경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임상심리학자로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깊이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 능력은 무너진 사람을 다시 세우는 치료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가 이번에 맞서야 하는 가해자는 이미 그 경계를 건너간 사람이다. 이해에서 출발했지만 파괴에 도달한 사람, 인간의 정신을 읽는 능력을 치유가 아닌 붕괴를 위해 사용하기로 선택한 사람이다. 조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그 경계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선을 넘는 순간 그는 상대와 같은 존재가 된다. 이해와 동일시 사이의 그 좁고 위태로운 선 위에서, 조의 싸움은 시작된다.
영국 범죄 소설과 프로파일링의 관계
흥미롭게도 영국의 범죄 소설은 프로파일링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그 핵심 개념을 탐구하고 있었다.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의 셜록 홈즈는 19세기 말에 이미 현대 프로파일링의 원리를 가장 생생하게 구현한 문학적 캐릭터였다. 홈즈는 관찰된 사실로부터 심리적 특성을 도출하고, 행동 패턴으로부터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추론한다. 그가 처음 왓슨 박사를 만나는 장면에서 단번에 “당신은 아프가니스탄에 있었군요”라고 말하는 것은 근거 없는 직관이 아니라, 상대방의 신체적 특징과 자세, 행동 양식을 관찰해 논리적으로 도출한 결론이다. FBI 행동과학부가 프로파일링을 체계화하기 100년 전에, 코난 도일은 이미 소설 속에서 그 원리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드 셜록에서 재현한 셜록 홈즈와 왓슨의 첫 만남 장면.
코난 도일이 잭 더 리퍼 사건이 런던을 공포로 물들이던 바로 그 시기에 홈즈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마의 심리에 런던 사회 전체가 집착하던 그 분위기 속에서, 코난 도일 역시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범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실제로 코난 도일은 잭 더 리퍼 사건에 대해 독자적인 분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범죄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기도 전에, 소설가가 먼저 그 영역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 역시 같은 전통 위에 서 있다. 푸아로는 물리적 증거보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 패턴을 수사의 중심에 놓는 탐정으로, 그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인 ‘회색 뇌세포(little grey cells)’는 범죄 수사가 결국 인간의 내면을 읽는 작업이라는 그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현장의 발자국이나 물리적 흔적보다 동기와 심리의 패턴을 먼저 들여다보는 그의 방식은, 데이비드 캔터가 수십 년 뒤 학문적으로 정립하게 될 수사 심리학의 원형을 소설 안에서 이미 구현하고 있었다.
마이클 로보텀의 조 오로클린은 이처럼 길고 풍성한 영국 범죄 소설의 전통 위에 서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홈즈나 푸아로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하나 있다. 홈즈와 푸아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지만, 자신은 결코 읽히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관찰하는 자의 위치에 있고, 그 위치가 흔들리는 일이 없다. 하지만 조 오로클린은 다르다. 그는 상대방에게 읽힌다. 자신보다 더 깊이, 더 정밀하게 인간의 정신을 이해하는 누군가에 의해. 사냥꾼이 사냥감이 되는 그 순간, 프로파일링의 도구는 조용히 방향을 바꾸어 그를 향한다.
범죄 심리학의 현재
오늘날 영국의 범죄 심리학은 하나의 독립된 전문 분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영국심리학회(British Psychological Society)는 법의학 심리학(Forensic Psychology) 분과를 별도로 두고 있으며, 경찰청과 협력 관계를 맺고 실제 수사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 범죄 심리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양성되고 있다. 프로파일링은 여전히 수사의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있지만, 레이철 니켈 사건이 남긴 뼈아픈 교훈을 반영해 그 활용 방식과 한계에 관한 지침이 훨씬 엄격하게 정비되었다. 프로파일러의 분석이 수사의 유일한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프로파일은 가능성의 범위를 제시하는 것이지 확정적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 이제는 현장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한 사람의 분석이 수사 전체를 특정 방향으로 고정시킬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영국은 이미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웠기 때문이다.
한편 신경과학의 급격한 발전은 범죄 심리학에 전혀 새로운 차원을 더하고 있다. 뇌 영상 기술의 발달로 범죄자들의 뇌 구조와 기능적 차이를 실제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것은 범죄의 원인과 예방에 관한 논의를 한층 복잡하고 논쟁적인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 범죄자는 태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인가. 인류가 오래전부터 씨름해온 이 질문이 이제는 신경과학의 언어로 다시 제기되고 있으며, 그 답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소설 속 가해자는 이 질문을 또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훨씬 더 불편한 방식으로 제기한다. 그는 스스로 선택해서 괴물이 된 것이 아니다. 국가가 훈련시킨 사람이다. 군사 훈련이 그에게 인간의 정신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는 기술을 부여했고, 그 기술은 전장에서 적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기술을 지금 이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 그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기술을 처음 만들고, 그에게 심어준 것은 국가였다. 그렇다면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그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 질문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자리에 놓인다. 범죄자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만든 자는 누구인가.
생각해볼 질문들
- 범죄자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필요한 일인가, 위험한 일인가. 우리는 일상적으로도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려 한다. 그 이해가 공감이 되는 순간과, 경계를 넘어 동일시가 되는 순간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 레이철 니켈 사건은 잘못된 프로파일이 무고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불완전한 도구를 사용할 때 우리는 어느 정도의 오류를 용인할 수 있는가. 프로파일링처럼 본질적으로 확률에 기반한 판단이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사용되어도 되는가.
- 셜록 홈즈가 FBI 프로파일링보다 먼저 그 원리를 구현했던 것처럼, 소설은 종종 현실의 학문보다 먼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다. 당신이 읽은 소설 중에서 현실의 어떤 문제를 먼저 포착하고 있다고 느낀 것이 있는가. 문학이 학문보다 앞서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Blur – ‘Beetlebum’ (1997) 런던 출신 블러의 이 곡은 중독과 집착의 감각을 몽환적으로 담아냈다.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의 목소리는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들린다. 범죄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일종의 중독이 될 수 있는지, 그 어둠이 어떻게 사람을 끌어당기는지를 음악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바로 이 곡이다.
다음 주 예고
소설을 덮고 나서도 질문 하나가 따라온다.
소설 속 가해자는 특별한 사람이다. 군사 훈련을 받았고, 인간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마했으며, 그 능력을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그를 예외적인 존재로,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극단적인 악으로 분류하고 싶어진다. 그래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심했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2016년, 영국 국민들은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를 앞두고 각종 매체를 통해 수천 개의 맞춤형 메시지를 받아들었다. 그 메시지들은 각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장 분노하는 것, 가장 취약한 지점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라는 회사가 수백만 명의 페이스북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별 심리 프로파일을 만들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설계된 메시지들이 사람들의 화면 위로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메시지들에 설득된 사람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으며 이를 행동에 옮겼다. 그 판단이 누군가의 정교한 설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소설 속 가해자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알고리즘은 얼마나 다른가. 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과 수백만 명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규모가 다를 뿐, 원리는 같은 것 아닌가.
4화에서는 광고, 정치, 그리고 우리의 일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심리 조종이 소설 속 특별한 악당만의 기술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매일 숨 쉬는 공기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영국이 현대 광고와 PR의 역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해왔는지,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의 선전 기술이 어떻게 영국으로 흘러들어왔는지,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심리 조종이 어떻게 산업화되었는지를 따라간다.
소설을 읽고 나서 우리가 느끼는 공포의 정체는 어쩌면 이게 아닐까. 그 가해자가 저 멀리 소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열어보는 화면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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