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악마가 따라오는 배,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탐정의 마지막 사건

함께 읽는 영국 추리 소설,『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예고편

2026.08.23 | 조회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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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1634년 10월, 바타비아(Batavia)의 항구에서 한 척의 배가 암스테르담을 향해 떠난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해당하는 바타비아는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아시아 무역을 지배하던 거대한 거점이었다. 사르담(Saardam) 호에는 향신료와 귀중한 화물이 가득 실려 있다. 그러나 이 배가 싣고 가는 것은 단순한 상품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비밀, 죄책감, 복수,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함께 올라타고 있다.

승객 중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탐정이라 불리는 새뮤얼 핍스(Samuel Pipps)가 있다. 수많은 미스터리를 해결하며 전설이 된 인물. 하지만 이번 항해에서 그는 탐정이 아니다. 그는 죄수다. 알 수 없는 범죄 혐의로 체포되어 암스테르담으로 끌려가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곁에는 충직한 경호원 아렌트 헤이스(Arent Hayes)가 있다. 거대한 체격과 강인한 힘을 지닌 그는 평생 핍스를 지켜온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가장 믿는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출항을 앞둔 어느 날, 부두에 한 나병 환자가 나타난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이 배에는 죄가 실려 있다.”

“이 배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몸이 불길에 휩싸인다.

마치 무언가가 바다 위에서 깨어난 것처럼.

항해가 시작되자 사르담 호에서는 현실과 악몽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돛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호가 나타나고, 가축들은 잔혹하게 도살된다. 죽은 나병 환자의 모습이 갑판 위를 떠돈다는 소문이 퍼진다. 그리고 선원들은 두려움 속에서 한 이름을 속삭인다.

올드 톰(Old Tom).

악마.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탐정은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그는 쇠창살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스터리의 실체를 추적하는 임무는 두 사람에게 맡겨진다.

핍스의 경호원 아렌트와, 배 위에서 누구보다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귀족 여성 사라 베셀(Sara Wessel).

두 사람은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배에서 벌어지는 불가능한 사건들을 뒤쫓는다.

과연 정말 악마가 이 배를 따라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악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 더 끔찍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스튜어트 터튼의 두 번째 장편소설 『여덟 번째 불빛이 붉게 타오르면』(원제: 『The Devil and the Dark Water』, 2020)은 역사소설, 추리소설, 공포소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이다. 1634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항해를 배경으로, 밀실 살인과 초자연적 공포, 인간의 욕망과 믿음에 대한 질문을 한데 엮어낸다.

터튼은 데뷔작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에서 시간과 기억을 뒤틀며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가 두 번째 작품에서 선택한 공간은 폐쇄된 저택이 아니라 끝없는 바다 위의 배였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어두운 미스터리는 결국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는 것.

첨부 이미지

 

***

 

이 소설의 저자 스튜어트 터튼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리버풀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교사, 기술 전문 기자, 여행 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이후 추리소설 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8년 발표한 데뷔작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The Seven Deaths of Evelyn Hardcastle)』은 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반복되는 시간과 여러 인물의 시점이라는 독창적인 구조로 풀어낸 이 작품은 고전 추리소설의 정교한 퍼즐과 현대적인 SF적 상상력을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2018년 코스타 북 어워드 최우수 데뷔 소설상을 수상했습니다.

두 번째 소설 『The Devil and the Dark Water』에서는 무대를 20세기 영국의 한 저택에서 17세기 대항해 시대의 배 위로 옮겼습니다. 시대와 공간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터튼이 꾸준히 탐구해온 질문은 변하지 않습니다.

닫힌 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진실을 숨기려는 욕망, 그리고 우리가 믿고 싶은 이야기와 실제 진실 사이에 놓인 간극.

터튼의 소설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은 과연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묻습니다.

바다 위에서는 법의 손길이 닿지 않습니다. 신의 목소리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악마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적어도, 누군가는 우리가 그렇게 믿기를 원합니다.

다음 달에는 이 소설을 세 가지 시선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작품의 배경이 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사르담 호가 항해했던 17세기 해상 무역로가 영국과 유럽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알아봅니다. 또한 공해 위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밀실 살인이 왜 강렬한 서사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1634년 유럽 사회를 지배했던 악마와 미신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했는지도 함께 들여다봅니다.

 다음 달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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