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6일 밤 10시, BBC 라디오 4 전파를 타고 낯선 시그널이 흘러나왔다. 프로그램 이름은 ‘더 월드 투나잇(The World Tonight)’. 첫 방송이 다룬 주제는 북아일랜드 사태와 서독의 외교 문제였다. 진행자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다루는 내용은 묵직했다. 영국인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 라디오를 통해 그날의 세계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로부터 56년이 흘렀다.
2026년 6월 17일, BBC는 ‘더 월드 투나잇’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냉전과 걸프전, 9·11, 금융위기, 브렉시트, 팬데믹을 지나며 한 시대를 기록해온 프로그램이었다. 소련의 마지막 날을 모스크바 현장에서 생중계한 것도 이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더 월드 투나잇’이 2027년을 끝으로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은 이 프로그램 하나만이 아니다. 같은 날 BBC가 내놓은 구조조정 계획에는 ‘자정 뉴스’, ‘머니 박스 라이브’, ‘크로싱 컨티넌츠’, ‘더 로 쇼’ 등 여러 장수 프로그램의 폐지와 축소가 함께 포함됐다. BBC 뉴스 부문에서만 200명이 일자리를 잃고, 향후 3년 안에 BBC 전체에서는 1,800~2,000개 직위가 사라질 예정이다. BBC가 제시한 목표는 5억 파운드의 비용 절감이다.
오랫동안 영국 사회에서 가장 익숙하고 권위 있는 뉴스의 목소리 가운데 하나였던 BBC는 지금, 단순한 편성 개편이 아니라 스스로의 구조를 다시 짜는 단계에 들어섰다. ‘더 월드 투나잇’의 퇴장은 그 변화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BBC ‘더 월드 투나잇’ 로고
구글에서 온 남자
이 모든 발표를 한 사람은 BBC에 부임한 지 불과 6주 된 신임 사무총장이었다.
맷 브리튼(Matt Brittin). 57세. 구글에서 18년 동안 일하며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총괄 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2026년 5월 18일 BBC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BBC 역사상 처음으로 저널리즘이나 방송 현장 경험 없이 이 자리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브리튼의 취임은 그 자체로 BBC가 처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의 전임자 팀 데이비는 BBC 파노라마 다큐멘터리가 도널드 트럼프의 2021년 1월 6일 연설 영상을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방식으로 편집해 방송한 뒤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BBC는 공개 사과했고, 트럼프 측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데이비는 결국 2025년 11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브리튼은 그 뒤를 이어 취임 첫날부터 법적 분쟁과 재정 위기,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꺼번에 떠안게 됐다.
케임브리지대 출신인 그는 대학 시절 조정 선수로 활약했고, 세계조정선수권대회에서 영국 대표로 메달을 딴 이력도 있다.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평이 따르지만, BBC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승패가 분명한 스포츠와는 다른 종류의 저항이다. 오랜 관성과 강한 조직 문화, 정치적 압박, 그리고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둘러싼 질문이 동시에 그 앞에 놓여 있다.
BBC 회장 사미르 샤는 브리튼의 임명을 발표하며 “BBC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BBC와 공공서비스 방송의 미래를 위한 이 순간의 위험부담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말했다. 축하 인사라기보다는 경고에 가까운 말이었다.
2018년의 맷 브리튼. 출처: Web Summit (photo by Stephen McCarthy) - SM7_9489, CC BY 2.0
수신료라는 제도가 균열하는 소리
BBC의 위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방송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부터 봐야 한다.
BBC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재원의 약 65퍼센트가 수신료에서 나온다. 영국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BBC 아이플레이어를 이용하는 가구는 매년 180파운드의 수신료를 내야 한다. 한국의 KBS 수신료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강한 법적 강제력을 가진 제도다. BBC는 이 수신료로 매년 약 38억 파운드를 확보해왔고, 그 돈을 바탕으로 광고 없이, 정부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공영방송 모델을 운영해왔다.
오랫동안 BBC를 떠받쳐온 것도 바로 이 제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기반이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다.
수신료를 내는 가구 수는 2017년 2,620만 가구에서 2026년 약 2,380만 가구로 줄었다. 9년 사이 240만 가구가 이탈한 셈이다. 이 기간 BBC가 잃은 잠재 수입은 누적으로 10억 파운드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수신료를 아예 내지 않거나 회피하는 가구도 빠르게 늘고 있다. 수신료 납부 회피율은 2019~20년 6.95퍼센트에서 2023~24년 11.3퍼센트로 뛰었다. 법적으로 수신료 납부 의무가 없다고 신고한 가구도 360만을 넘어섰다.
표면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라이브 TV를 보지 않고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만 이용하면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BBC가 전제로 삼아온 ‘가정마다 텔레비전이 있고, 공영방송을 본다’는 시청 습관 자체가 예전만큼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BBC를 덜 보게 된 것과, BBC에 돈을 내야 한다는 의무를 덜 받아들이게 된 것은 같은 현상이면서도 완전히 같은 문제는 아니다. 그 사이에는 시청 습관의 변화만이 아니라, BBC라는 기관에 대한 신뢰의 균열이 함께 놓여 있다.
1928년판 『BBC 핸드북』에 실린 버밍엄 BBC 라디오 스튜디오. 당시 이 스튜디오는 “유럽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로 소개됐다. 출처: BBC Year Book, 1928, Public Domain
“더 이상 믿지 않는다”
BBC의 위기는 결국 신뢰의 위기이기도 하다.
유고브 조사에 따르면 BBC가 ‘대체로 중립적’이라고 믿는 영국 국민은 27퍼센트에 그친다. 수신료 제도를 지지하는 비율도 3분의 1에 못 미친다. BBC를 향한 회의는 더 이상 특정 정치 진영의 불만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공영방송이라는 제도와 그 권위 자체를 향한 의심이 함께 커지고 있다.
불신은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쏟아진다. 보수층은 BBC가 브렉시트, 이민, 기후변화 같은 쟁점에서 진보적 편향을 드러낸다고 비판한다. 반대로 진보층은 BBC가 여전히 기득권 질서와 기존 권력 구조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라고 본다. BBC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주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쪽 모두가 BBC를 더 이상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소셜미디어는 이 불신을 더 빠르게, 더 넓게 퍼뜨렸다. X 같은 플랫폼에서는 BBC 보도의 표현, 편집, 인터뷰 방식, 자막과 헤드라인 하나까지 실시간으로 검증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한때 BBC가 정한 뉴스의 형식과 어조는 그 자체로 공적 기준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그 권위가 상시적으로 도전받는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BBC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설교를 듣는다고 느끼면, 채널을 돌리고 수신료 납부의 정당성 자체를 다시 묻는다.
이런 흐름 속에서 트럼프 관련 파노라마 조작 편집 논란은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논란이 전임 사무총장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문제가 단순히 한 프로그램의 실수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BBC의 편집 판단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는 뜻이다. 100년 동안 BBC가 쌓아온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결국 시청자의 신뢰였다. 지금 BBC가 잃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 자산일지 모른다.
BBC가 편집해 방영한 트럼프의 연설(좌) vs 원본 영상(우) 비교.
사건은 BBC가 2024년 10월 방영한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미 의회 폭동이 일어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대통령 연설을 편집해 방영한 데에서부터 시작됐다. 방송된 다큐멘터리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의사당으로 걸어갈 겁니다. 저도 거기에서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는 싸울 것이고, 필사적으로 싸울 겁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 발언에서 ‘의사당으로 가자’는 말 뒤에 “평화롭고 애국적인 목소리를 내자”고 말했고, ‘싸우자’는 발언은 앞선 발언 약 54분 뒤에야 등장한다.
넷플릭스가 바꿔놓은 세상
BBC를 흔드는 것은 돈과 신뢰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변화는, BBC가 만들어졌던 시대 자체가 지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2024년 영국에서는 약 300만 가구가 TV 수신료를 갱신하지 않았다. 젊은 시청자들은 이미 틱톡과 유튜브, 넷플릭스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부모 세대가 BBC에 가졌던 익숙함이나 애착을 애초에 형성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BBC는 더 이상 모든 가정의 기본값이 아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비유하자면 이런 감각에 가깝다. 한때는 TV를 켜면 자연스럽게 KBS가 있었다. 아침에는 KBS 뉴스를 보고, 저녁에는 KBS 드라마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넷플릭스를 열고, 유튜브를 보고, 틱톡을 넘긴다. 공영방송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일상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예전과 같지 않다. 영국의 BBC도 이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2025년 영국에서 가계가 스트리밍 서비스에 지출한 금액은 처음으로 전통적인 TV 패키지 지출을 넘어섰다. 스트리밍이 방송을 추월하는 데는 13년이 걸렸다. BBC가 익숙하게 전제해온 시청 질서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뒤집혔다.
BBC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BBC 아이플레이어를 구축했고, 디지털 전환에도 꾸준히 투자해왔다. 문제는 BBC가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데 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완성도와 구독자의 만족도로 승부하면 된다. 반면 BBC는 콘텐츠의 품질뿐 아니라 공공성, 지역성, 다양성, 정치적 불편부당성까지 함께 증명해야 한다. 동시에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는 틀도 유지해야 한다. 경쟁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BBC가 짊어진 책무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예산만 줄어들고 있다.
조지 5세 국왕이 1934년 BBC 라디오를 통해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연례 메시지에는 보통 한 해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회고가 담겼다. 출처: Andy Dingley (scanner) - Scan from Foreword by E. Royston Pike (1938) Our Generation, London: Waverley Book Company, Public Domain
2027년, 분기점
BBC의 미래를 가를 가장 중요한 시점은 2027년이다. BBC의 존재를 규정하는 법적 토대인 왕실 칙허장(Royal Charter)이 그해 12월 만료되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이 칙허장을 통해 BBC의 사명과 재원 구조, 공적 역할의 범위를 정한다. 지금 진행 중인 갱신 논의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BBC가 앞으로 어떤 조직으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수신료의 미래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현행 수신료 제도를 유지하되 개혁하는 방안, 세금 방식으로 대체하는 방안, 구독 모델로 전환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전 BBC 사무총장 토니 홀의 지적처럼, 지금의 논쟁은 순서부터 어긋나 있을지 모른다. BBC를 어떤 방식으로 지불할 것인지를 묻기 전에, 영국 사회가 앞으로 어떤 BBC를 원하는지부터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BBC가 축소되거나 달라질 때 무엇을 잃게 되는지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 독자들에게 BBC는 오랫동안 가장 신뢰할 만한 영어 뉴스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그 인식은 한때 분명 현실에 가까웠다. 냉전 시기 BBC 월드서비스는 철의 장막 너머로 뉴스를 보냈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분쟁 현장에서는 BBC 기자들이 가장 먼저, 가장 오래 남아 취재했다. 영국의 많은 가정에서 BBC는 아침 라디오와 저녁 뉴스의 배경이었고, 국가적 사건을 함께 지켜보는 공적 공간이기도 했다. 스탠리 큐브릭이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미래의 우주선 승무원들이 BBC 뉴스를 받아보는 장면을 넣었을 정도로, BBC는 영국 사회에서 너무도 당연한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BBC는 수신료 납부 감소, 대규모 구조조정, 편집 논란, 법적 분쟁, 신뢰 하락을 한꺼번에 마주하고 있다. 구글 출신 사무총장 맷 브리튼은 취임 첫해 여름부터 5억 파운드 절감 계획을 손에 들고 이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1970년 4월 6일, 처음 전파를 탄 더 월드 투나잇의 진행자는 이렇게 첫 방송을 열었다고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그리고 56년 후, 그 목소리는 2027년을 끝으로 사라진다.
BBC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어떻게 살펴보게 될까?
사실 이 질문은 디지털 플랫폼과 정치적 양극화, 약해진 신뢰 속에서 공영방송이 여전히 어떤 공적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역할을 영국 사회가 여전히 원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