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남들과 '다르다'는 것, 영국의 신경다양성과 장애의 역사

함께 읽는 영국 추리 소설『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첫번째 이야기

2026.07.05 | 조회 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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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지만 그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왜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 얼굴 표정이 그토록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지, 왜 그 정보가 언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지를. 그들은 "잠깐만요"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잠깐이 아닌 시간을 원하고,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괜찮지 않다. 크리스토퍼는 이것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다.

마크 해던(Mark Haddon)의 소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은 2003년 출간 이후 전 세계 36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영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휘트브레드 올해의 책상(Whitbread Book of the Year)과 가디언 아동소설상(Guardian Children's Fiction Prize)을 동시에 수상했다. 놀라운 것은 이 소설이 성인용과 아동용 두 가지 버전으로 동시에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독자도 이 소설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 실제로 그 두 부류의 독자가 소설을 읽고 완전히 다른 것을 보았다.

해던은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강조했다. 이 소설은 자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다름(difference)에 관한 이야기라고.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은 영국 역사의 깊은 층위와 연결된다. 영국이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왔는가의 역사, 그 역사가 어떻게 변해왔는가의 이야기가 크리스토퍼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 아래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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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7년, 런던 비숍스게이트(Bishopsgate) 인근에 하나의 수도원이 세워졌다. 성 베들레헴의 마리아 수도원(Priory of St Mary of Bethlehem). 처음에는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는 자선 시설이었다. 그런데 14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시설은 조금씩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말이다. 1403년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 병원에는 여섯 명의 '정신이 흐트러진(mentally disturbed)' 남성이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시설의 이름은 변형되었다. 베들레헴(Bethlehem)이 베들람(Bedlam)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영어 단어가 되었다. 오늘날 'bedlam'은 혼돈과 소란을 뜻하는 보통명사다. 하나의 기관의 이름이 하나의 개념이 된 것이다. 그 개념이 어떤 방향으로 형성되었는지는, 그 기관의 역사가 말해준다.

베들람이 악명을 얻은 것은 환자들의 치료 방식 때문이었다. 구토를 유발할 때까지 환자를 빙빙 돌리는 회전 요법, 얼음물 욕조, 구타 등등. 하지만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당시 베들람이 입장료를 받고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던 것이다. 마치 동물원과 같이 말이다. 18세기에는 연간 수천 명의 방문객이 이 병원을 찾았고 그들은 환자들을 구경했다. 부유층과 교육받은 시민들이 런던의 여가 활동으로 베들람을 방문했다. 정신적으로 '정상'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행위가 하나의 오락이었다.

이것이 영국 사회가 처음에 '다름'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감추는 것도, 치료하는 것도 아니라 구경하는 것. 그 시선 안에는 공포와 호기심과 우월감이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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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베들럼은 무엇보다도 윌리엄 호가스의 연작 《방탕아의 일대기》(1735) 속 한 장면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 톰 레이크웰이 방탕하고 타락한 삶을 살다가 결국 베들럼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출처: William Hogarth - The Yorck Project (2002) 10.000 Meisterwerke der Malerei (DVD-ROM), distributed by DIRECTMEDIA Publishing GmbH. ISBN: 3936122202.,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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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 사회는 정신 질환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1845년 정신병원법(Lunacy Act 1845)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각 주(county)가 정신 질환자를 위한 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규정했고, 이 병원들에 대한 외부 감사를 의무화했다. 이때 베들람식의 공개 구경 역시 금지되었다. 정신 질환자들은 이제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치료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정신병원들은 도시 외곽의 광활한 부지에 세워진 거대한 시설들이었다. 환자들은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농사를 짓고, 작업장에서 일하고, 병원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이것은 치료를 위한 설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격리를 위한 설계이기도 했다. 사회와 다른 사람들을 사회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 그 명분이 과거의 '구경'에서 현재의 '치료'로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충동은 같았다. 다름을 정상적인 사회 밖에 두는 것.

20세기 중반, 이 시설들은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일부 정신병원에서는 뇌엽 절제술(lobotomy)과 각종 충격요법이 시행되었고, 의사의 권한으로 수십 년간 강제 입원이 가능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 청각 장애인들, 혹은 단순히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정상'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설에 수용되었다. 1950년대의 영국 정신병원에는 약 15만 명의 장기 입원 환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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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헬싱키에서 시행된 인슐린 쇼크 요법. 당시 일부 정신질환 치료에 사용됐던 방식으로, 고용량 인슐린을 투여해 저혈당 쇼크를 유도하는 치료였다. 출처: Unknown author - http://www.siilinjarvi.fi/matkailu/museot/insuliinishokkihoito.php,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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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정신과 의사 로널드 레잉(R. D. Laing, 1927–1989)은 기존 정신의학의 전제 자체를 뒤집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1960년에 출간한 『분열된 자아(The Divided Self)』에서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는 상태들이 사실은 이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반응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환자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족과 사회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 정신의학계는 이 주장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젊은 세대와 반문화 운동의 물결 속에서 레잉의 생각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는 탈시설화(deinstitutionalisation) 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정신 질환자들을 거대한 시설에 장기 격리하는 것이 치료가 아니라 오히려 해롭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지역 사회 중심의 돌봄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1959년 정신건강법(Mental Health Act 1959)은 강제 입원의 기준을 강화하고, 자발적 입원과 지역 사회 치료를 장려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수십 년간 문을 열고 있던 대형 정신병원들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탈시설화는 해방이기도 했고 동시에 방치이기도 했다. 지역 사회 지원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 문이 닫히면서, 많은 사람들이 갈 곳을 잃었다. 노숙자가 되거나, 가족에게 짐이 되거나, 또 다른 형태의 격리로 (감옥과 같은 시설)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다름을 사회 안으로 들여오는 일은, 문을 여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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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에 출간된 『분열된 자아(The Divided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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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가 태어난 것은 이 모든 역사가 진행되던 시기 이후다.

소설 속에서 크리스토퍼는 지원 인력이 있는 특수학교에 다닌다. 그의 담임 시오반(Siobhan)은 그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가 혼란스러워할 때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안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1970년 교육법(Education Act 1970) 덕분이다. 이 법 이전까지 영국에서 중증 학습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교육 불가능'으로 분류되어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1970년대에야 비로소 모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를 공식적으로 갖게 된 것이다.

1995년 장애인차별금지법(Disability Discrimination Act 1995)이 통과되면서 장애를 이유로 한 고용과 서비스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2010년에는 더 포괄적인 평등법(Equality Act 2010)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법이 바뀐다고 해서 인식이 함께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성인의 실업률은 여전히 다른 장애 집단에 비해 높고,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지역과 계층에 따라 극심한 격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1990년대 말, 완전히 새로운 언어가 등장했다.

1998년, 오스트레일리아 사회학자 주디 싱어(Judy Singer)가 자신의 학위 논문에서 처음으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녀 자신도,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의 딸도 자폐 스펙트럼 위에 있었다. 그녀가 제안한 개념은 단순하지만 혁명적이었다. 자폐, ADHD, 난독증,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신경학적 차이들이 '결함'이나 '장애'가 아니라 인간 신경계의 자연스러운 다양성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인종, 성별, 문화가 다양한 것처럼, 뇌도 다양하다. 그리고 그 다양성은 치료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되고 수용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개념은 특히 영국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국 자폐협회(National Autistic Society)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신경다양성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오늘날 영국의 많은 기업들이 신경다양성을 가진 직원들을 의도적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GCHQ, MI5, 영국 정보기관들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특정 인지 능력을 (패턴 인식, 세부 사항에 대한 집중력, 일관된 규칙 적용 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크리스토퍼가 MI5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할 때, 그 꿈이 단순한 소년의 공상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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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다양성 로고. 출처: MissLunaRose12 - File:Pastel Neurodiversity Symbol.png,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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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해던은 소설에서 크리스토퍼의 상태에 공식적인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진단명이 붙는 순간, 독자들은 크리스토퍼를 하나의 범주로 읽기 시작한다고. 그는 크리스토퍼가 범주가 아니라 사람으로 읽히기를 원했다.

이것이 신경다양성 패러다임이 말하는 것과 정확히 같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은 '자폐인'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사람이다. 그 사람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 다수와 다를 뿐이다. 그 다름이 더 낫거나 더 나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소수(prime number)를 사랑한다. 소수는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눌 수 있는 수다. 어떤 다른 수로도 나누어지지 않는다. 패턴이 없고, 예측하기 어렵고,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소수 같다고 생각한다. 다른 무언가로 환원되지 않는.

그것이 결함인가, 아니면 그냥 그런 것인가. 영국이 750년에 걸쳐 씨름해온 이 질문에, 크리스토퍼는 아주 조용하고 아주 단호한 방식으로 답한다. 그냥 그런 것이라고.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베들람에서 환자들을 구경하던 빅토리아 시대 런던 시민들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시대의 '정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100년 후의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어떤 관행을 베들람처럼 돌아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신경다양성 패러다임은 자폐를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수용해야 할 다양성으로 본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치료와 수용, 이 두 관점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혹은 공존할 수 없는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Radiohead – 'Creep' (1992) "나는 여기에 속하지 않아"라는 이 곡의 핵심 감각은, 다수와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느끼는 그것과 정확히 겹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곡과 그는 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그 어긋남 자체를 생각하며 들어 보기를 권한다. 

다음화 예고

크리스토퍼는 런던에 가본 적이 없다.

그는 스윈던(Swindon)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그에게 스윈던은 세상의 전부였다.  그리고 소설의 어느 시점에서, 그는 처음으로 그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혼자서. 런던으로.

스윈던은 영국에서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는 도시다. 영국인들 사이에서 스윈던은 종종 농담의 소재가 된다. 아무것도 없는 곳, 아무도 일부러 가지 않는 곳, 런던으로 가는 길에 그냥 지나치는 곳. 하지만 스윈던이 처음부터 이런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중반, 이 도시는 영국 철도 산업의 중심이었다.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Great Western Railway)의 기관차 공장이 이곳에 세워졌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스윈던은 산업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그 심장이 멈췄다.

2화에서는 스윈던의 역사를 따라가며, 영국의 탈산업화가 런던 바깥의 도시들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탐구한다.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영국 공업 도시들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런던과 지방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어떻게 심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격차가 어떻게 브렉시트 투표의 지형을 만들었는지를. 크리스토퍼가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향하는 장면은, 두 개의 영국 사이를 처음으로 건너는 여정이기도 하다.

스윈던은 영국이 잊고 싶어 하는 도시다. 하지만 잊혀진 곳들이 말하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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