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7일 밤, 영국 전역의 개표소에서 하나둘 숫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승패의 기록처럼 보였다. 그러나 밤이 깊어질수록, 그 숫자들은 영국 정치의 오래된 지형이 무너지고 있음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리폼 UK(한국 언론에서 영국 개혁당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만, 본 칼럼에서는 리폼 UK로 통일)는 단 하룻밤 사이 1,451명의 지방의원을 새로 배출했다. 14개 지방의회의 주도권도 손에 넣었다. 선거 전까지만 해도 리폼이 장악한 지방의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반대편에서는 노동당의 붕괴가 이어졌다. 38개 지방의회를 잃었다. 특히 그레이터맨체스터의 테임사이드에서는 반세기 동안 이어진 노동당의 지배가 끝났다. 영국의 지방의회는 지역 행정과 공공서비스를 책임지는 동시에, 각 정당의 풀뿌리 조직력과 민심의 흐름을 보여주는 정치적 풍향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테임사이드의 패배는 단순히 지방의회 하나를 빼앗긴 사건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곳은 노동당 전 부대표 앤절라 레이너의 정치적 기반이 자리한 지역이었다. 노동당의 심장부라고 여겨졌던 곳에서조차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날 밤, 리폼 UK를 이끄는 나이젤 파라지는 선언했다.
“역사적인 정치 대전환이 시작됐습니다.”
승리에 취한 정치인의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밤의 숫자들은, 그의 말이 단순한 허풍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리폼 UK의 로고
70년의 양당 체제가 흔들리는 순간
영국 정치는 오랫동안 두 개의 이름 사이를 오갔다. 노동당과 보수당.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둘 중 하나가 정부를 구성하면 다른 하나는 야당이 됐다. 정권은 여러 차례 바뀌었고 총리의 얼굴도 달라졌지만, 이 기본적인 정치 질서만큼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70년 넘게 이어진 영국식 양당 체제였다.
물론 도전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3년에는 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온 사회민주당(SDP)과 자유당의 연합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전국 득표율 25퍼센트를 넘기며 노동당에 근접했지만, 지역구마다 한 명의 승자만을 뽑는 영국의 소선거구제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양당 체제는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리폼 UK의 부상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폼은 2025년 4월 이후 주요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권을 지켜왔다. 일시적인 항의 표심이나 선거철의 돌풍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유권자 수만 명의 응답을 지역구별 인구와 정치 성향에 맞춰 분석하는 대규모 선거예측 방식인 MRP 조사에서는, 리폼이 차기 총선에서 단독 과반에 근접하는 의석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2026년 6월 말 입소스 조사에서도 리폼 UK의 지지율은 26퍼센트였다. 집권 노동당은 24퍼센트에 머물렀다.
전후 영국 정치를 지탱해온 두 개의 거대한 기둥 사이로, 이전에는 없던 균열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엇이 이 균열을 만들었을까.

BBC가 정리한 2025년 영국 지방선거 이후 잉글랜드 지방의회 정당별 현황. 하늘색이 리폼 UK.
“아무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잉글랜드 동부 에식스의 브레인트리는 한때 공장들이 돌아가던 작은 마을이다. 산업이 떠난 자리에는 빈 건물과 오래된 흔적이 남았다. 그리고 마을 인근의 옛 공군기지가 망명 신청자들을 수용하는 임시 거처로 바뀌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 쌓여 있던 불만은 새로운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학교 식당에서 일하는 댄 화이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민자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얼핏 들으면 이민자들에 대한 분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다음 말에는 지금 영국 정치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보다 깊은 층위가 담겨 있다.
“세금은 너무 높은데다가, 도로엔 싱크홀 투성이고, NHS 대기자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어요. 아무것도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리폼으로 옵니다.”
NHS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다. 영국인들에게는 단순한 의료제도를 넘어 전후 복지국가를 상징하는 제도에 가깝다. 그러나 진료와 수술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한때 영국 사회의 자부심이었던 NHS는 이제 국가 시스템의 피로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도로에는 싱크홀이 방치돼 있고, 병원의 대기줄은 길어져만 간다. 세금은 높다고 느끼는데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국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믿기 어렵다.
리폼을 향하는 표심의 밑바닥에는 이런 감정이 흐르고 있다.
그것을 단순히 극우 과격주의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많은 리폼 지지자들이 스스로 말하는 불만은 훨씬 일상적이고 구체적이다.
“아무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리폼 UK는 바로 그 문장을 정치적 힘으로 바꾸고 있다.
2026년 잉글랜드 지방선거 이후 지방의회 정당별 장악 현황. 하늘색이 리폼 UK. 출처: By DimensionalFusion - Own work based on: 2026 English local elections by authority type.svg using Ordnance Survey OpenData:County boundaries (from Boundary-Line product)Coastline data for Great Britain (from VectorMap District product), CC BY-SA 3.0
리폼 UK는 누구의 당인가
리폼 UK의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2019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해 보리스 존슨은 “브렉시트를 마무리짓자(Get Brexit Done)”는 단순하고 강력한 구호를 앞세워 총선에서 압승했다.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싼 수년간의 정치적 혼란을 끝내겠다는 약속이었다. 전통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해온 잉글랜드 북부와 중부의 노동자 계층까지 보수당으로 이동했다. 영국 정치에서 이들은 흔히 노동당의 ‘붉은 장벽(Red Wall)’을 무너뜨린 유권자들로 불렸다.
리폼 UK는 이제 그때 존슨에게 승리를 안겼던 ‘브렉시트 연합’의 핵심 유권자 상당수를 흡수하고 있다.
그 이동의 중심에는 배신감이 있다. 브렉시트를 지지하면 영국이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이민을 줄일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났지만, 이민 문제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하지만 오늘날 리폼의 지지층을 단순히 ‘브렉시트 유권자’라고 부르기에는 그 외연이 너무 넓어졌다.
2026년 지방선거에서 리폼의 약진은 전통적인 노동당의 심장부와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정치에 관심을 끊고 투표장에 나오지 않던 사람들을 다시 움직인 것도 리폼이었다. 많은 지역에서 투표율은 약 42퍼센트에 달했다. 2022년보다 7퍼센트포인트 높은 수준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확신이다.
리폼 유권자의 61퍼센트는 선거를 한 달 이상 앞둔 시점에 이미 어느 당에 투표할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다른 어떤 정당의 지지자들보다 높은 비율이었다. 선거 결과를 ‘낙관적’이라고 평가한 비율도 35퍼센트로 가장 높았다.
이들이 선거 당일 분노에 이끌려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은 충동적인 항의 유권자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고, 선택에 확신이 있었으며, 이미 오래전 마음을 정해놓고 있었다.
리폼은 더 이상 불만을 잠시 담아두는 그릇만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정당이 되고 있었다.

리폼 UK 측이 공개한2026년 2월말 정당 선호도 여론조사
두 주류 정당이 외면한 것
문제는 영국인들이 무엇에 분노하는가가 아니라, 왜 기존 정당들이 그 분노를 해결하지 못했는가에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영국 사회에는 다양한 문제가 겹겹이 쌓였다. 경제는 좀처럼 성장하지 않았다. 세금 부담은 커졌고 생활비는 치솟았다. 집을 구하기는 어려워졌으며, 지방정부의 재정은 흔들렸다. 공공서비스는 눈에 띄게 약해졌고, NHS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압박받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과 보수당은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다양한 이슈를 이민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설명하려 했다.
여기에는 기묘한 역설이 있다.
노동당도 이민을 이야기했다. 보수당도 이민을 이야기했다. 선거 때마다 국경을 통제하고 입국자 수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민은 줄지 않았다.
순이민 규모는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동시에 NHS의 치료 대기자 명단과 대기 시간은 팬데믹 이후 기록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가 상당한 세금 인상을 통해 더 많은 재정을 투입했음에도, 많은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서비스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친 것은 개별 정책의 실패만이 아니었다.
더 많은 세금을 냈는데 서비스는 더 나빠졌다.이민을 줄이겠다고 했는데 입국자는 더 늘었다.변화를 약속했는데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가 하는 말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오래, 너무 넓게 벌어졌다.
“왜 우리는 더 많이 내는데, 더 적게 받는가.”
“왜 국가는 우리 삶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가.”
리폼 UK는 바로 그 틈을 발견했다. 그리고 새롭게 바뀐 여론의 지형 위에 자신의 깃발을 꽂았다.
리폼 UK 측이 공개한 시민들 인터뷰. 물론 입맛에 맛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영상에 등장한 시민들의 입을 통해 현재 영국 시민들이 영국 상황과 리폼 UK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대략이나마 알 수 있다.
파라지라는 인물
나이젤 파라지 없이 리폼 UK를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 30년 동안 그는 영국 정치의 주변부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주변부에서 끊임없이 중심을 흔들었다.
영국독립당(UKIP)을 이끌며 유럽연합 탈퇴를 정치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렸고, 결국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 하원의원이 되기 위해 일곱 번 선거에 도전했고 여섯 번 떨어졌다. 정치 밖에서도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자동차 사고를 겪었고,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았으며, 암 진단도 받았다.
그런데 파라지에게 실패와 위기는 오히려 정치적 자산이 됐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자신들의 삶과 겹쳐 본다. 경제적 불안과 쇠퇴한 지역사회 속에서도 버텨온 평범한 영국인의 끈기와 결기를, 파라지라는 인물에게서 발견하는 것이다.
2024년 총선에서 그는 마침내 하원에 입성했다. 일곱 번째 도전 끝에 얻은 의석이었다. 같은 선거에서 보수당은 창당 이후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다. 파라지와 리폼 UK가 보수 진영의 표를 갈라놓은 것도 그 패배의 한 원인이었다.
그의 정치 스타일은 놀랄 만큼 명확하다.
복잡한 정책 문서보다 짧고 직접적인 언어를 선호한다. 카메라 앞에서 좀처럼 머뭇거리지 않는다. 논란을 피하기보다 논란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 역시 숨기지 않고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한다.
파라지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를 분열의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한데 정작 파라지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반대다. 그가 말하는 리폼의 비전은 국가적 자부심의 회복이다. 공동체를 보호하고,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흩어진 영국을 다시 하나의 나라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믿느냐의 문제와 별개로, 점점 더 많은 영국인이 적어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리폼 UK 대표 나이젤 파라지. 출처: By Laurie Noble - https://members.parliament.uk/member/5091/portrait, CC BY 3.0
주류 정치에 보내는 경고
2026년 지방선거 결과가 영국이 하루아침에 ‘극우 국가’가 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많은 유권자가 이제 노동당과 보수당 어느 쪽도 자신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한쪽이 실패하면 다른 쪽을 선택하던 오래된 정치적 습관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리폼의 부상을 단순히 포퓰리즘의 득세라고 설명하는 것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나머지 절반에는 주류 정치의 실패가 있다.
약속은 많았다. 결과는 보이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민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공공서비스를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행하지 않았거나, 실행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리폼 UK의 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은 아니다. 도전 정당이 수십 년간 영국을 지배해온 두 거대 정당을 실질적으로 대체하려면 아직 거대한 벽을 넘어야 한다. 재정과 세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무너진 NHS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국제 문제에서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
분노를 읽는 능력과 국가를 운영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것이다.
이제 리폼은 자신이 전자뿐 아니라 후자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이미 분명해 보인다.
리폼의 부상을 잠시 밀려왔다 사라질 항의 투표의 물결로 치부하기는 어려워졌다. 전국 곳곳의 지방의회에 뿌리를 내린 수많은 리폼 의원들은 이 정당의 ‘교란자’ 역할이 더 이상 선거철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국 정치의 오래된 질서에 생긴 균열은 이제 눈에 보인다.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그 균열이 다시 닫힐 것인가. 아니면 영국 정치의 지형을 완전히 갈라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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