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3일 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OVO 하이드로 공연장에서 현실과 상상이 맞닿는 듯한 순간이 펼쳐졌다.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BBC의 장수 SF 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 속 시간여행 기계인 타르디스(TARDIS)의 문을 열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2026년 커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의 개막을 알리는 연출이었다.
한때 대영제국을 상징했던 군주가 영국 대중문화의 가장 상징적인 상상력 속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 과거와 현재, 전통과 미래가 한 화면 안에서 조용히 교차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 짧은 순간은 커먼웰스 게임이라는 대회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제국의 기억을 품은 채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려는, 오래되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스포츠 축제.
한국에서는 커먼웰스 게임이라는 이름이 아직도 낯설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누구나 알지만, 이 대회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럴 만도 하다. 커먼웰스 게임은 과거 대영제국과 인연을 맺었던 국가와 지역만이 참가하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그리고 한국도 이 무대에는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이 대회는 늘 세계 스포츠의 중심에서 한 걸음 비켜나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커먼웰스 게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존속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이 오래된 대회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1958년 웨일스 카디프에서 열린 대영제국 및 커먼웰스 게임을 기념해 발행된 3펜스 영국 우표. 출처: Scan Gumruch - Self-scanned, Public Domain
운동회의 시작, 제국이 열어 놓은 무대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9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8월, 캐나다 해밀턴의 시빅 스타디움. 11개국에서 모인 400여 명의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첫 번째 대회를 치렀다. 당시 이 대회의 이름은 '대영제국 게임(British Empire Games)'이었다. 화려한 선수촌도, 거대한 경기 시설도 없었다. 선수들은 인근 학교 교실에서 잠을 청했고, 운동장은 제국 곳곳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의 웃음과 함성으로 채워졌다.
이 대회를 처음 구상한 사람은 캐나다 해밀턴의 스포츠 기자 바비 로빈슨이었다. 그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을 취재하며 대영제국 출신 선수들이 국적을 넘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 보았고, 그 장면은 오래도록 그의 마음 속에 남았다. 제국 곳곳의 선수들이 경쟁을 넘어 우정을 나누는 또 하나의 축제를 만들고자하는 소박한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회를 둘러싼 시대의 의도는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대영제국 게임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었다. 영국과 식민지, 자치령들이 하나의 공동체임을 보여주고, 왕실과 제국에 대한 소속감을 확인하는 상징적 의식이기도 했다. 경기장은 선수들이 기록을 겨루는 공간인 동시에, 제국의 결속을 세상에 보여주는 무대였다. 거대한 제국은 스포츠라는 언어를 빌려 스스로의 통일성과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기획자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제국의 결속을 위해 만들어진 이 작은 운동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제국 이후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 시작했다. 한 장의 초대장은 독립한 나라들의 만남으로, 그리고 제국의 유산을 끊임없이 되묻는 특별한 스포츠 축제로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갔다.
대영제국 게임을 상징하던 로고. 1930년부터 1934년까지 쓰였다. 출처: The CGF website, Fair use
세 번 이름을 바꾸며 살아남은 대회
커먼웰스 게임은 지난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 차례 이름을 바꾸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변화가 대영제국이 해체되어 가는 역사와 거의 정확히 같은 궤적을 그린다는 점이다.
1930년부터 1950년까지는 대영제국 게임(British Empire Games).1954년부터는 대영제국 및 커먼웰스 게임(British Empire and Commonwealth Games).1970년에는 영국 커먼웰스 게임(British Commonwealth Games)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고, 1978년부터는 마침내 커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이름이 바뀔 때마다 시대도 함께 변하고 있었다.
1954년 처음으로 '커먼웰스(Commonwealth)'라는 단어가 더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제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독립된 주권 국가들이 하나둘 이 대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리고 1978년, 오랫동안 대회의 이름을 지켜왔던 '제국(Empire)'이라는 단어는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세계 지도에서 대영제국의 색이 조금씩 지워져 가던 것처럼, 대회 역시 과거의 이름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물론 이름이 바뀌었어다 하더라도 역사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커먼웰스 게임에는 56개 커먼웰스 회원국과 지역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인도와 나이지리아, 캐나다와 파푸아뉴기니까지,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이 이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 규모만 놓고 보면 결코 작은 무대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제국'이라는 단어를 지운 지, 이 대회는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 질문은 이제 커먼웰스 게임이 마주한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1938년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대영제국 게임 개회식. 출처: Sam Hood - http://www.acmssearch.sl.nsw.gov.au/search/itemDetailPaged.cgi?itemID=23801 (item)http://www.acmssearch.sl.nsw.gov.au/search/itemDetailPaged.cgi?itemID=37473 (album)http://www.acmssearch.sl.nsw.gov.au/search/itemDetailPaged.cgi?itemID=395018 (collection), Public Domain
커먼웰스 게임만의 풍경
커먼웰스 게임은 올림픽과 닮은 듯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영국이다. 올림픽에서는 하나의 영국 대표팀으로 출전하지만, 커먼웰스 게임에서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각각 독립된 대표팀을 꾸린다. 같은 국기를 사용하는 나라 안에서 서로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풍경은 이 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오래된 전통이다.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따로 출전하는 것 역시 같은 역사에서 비롯됐지만, 커먼웰스 게임은 그 전통을 가장 오래 이어온 무대이기도 하다.
이 대회는 세계 스포츠의 변방에 있는 나라들에게는 중심 무대가 되기도 한다.
인도는 커먼웰스 게임의 대표적인 강국이다. 레슬링과 사격, 역도, 배드민턴에서 꾸준히 메달을 쓸어 담으며 종합 순위 상위권을 지켜왔다. 많은 인도 선수들에게 이 대회는 올림픽보다 먼저 밟는 국제 무대다. 세계를 향한 첫걸음이 커먼웰스 게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메이카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도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전, 이 대회를 통해 국제 경험을 쌓았다. 커먼웰스 게임은 올림픽의 축소판이라기보다, 미래의 스타들이 자신을 세상에 소개하는 첫 번째 무대에 가깝다.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은 장애인 스포츠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커먼웰스 게임은 오래전부터 패러스포츠를 정식 프로그램 안에 통합해 운영해 왔다. 2022년 버밍엄 대회에는 300명이 넘는 패럴림픽 선수들이 일반 선수들과 같은 대회 안에서 경쟁했다. 별도의 대회가 아니라 하나의 축제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커먼웰스 게임은 다른 국제 종합대회보다 한발 앞선 길을 걸어왔다.
1962년 퍼스에서 열린 커먼웰스 척수장애인 경기대회에 참가한 선수들. 출처: Unknown author - Daphne Ceeney/Australian Paralympic Committee, CC BY-SA 1.0
살아남기 위해 몸집을 줄이다
2023년 여름, 커먼웰스 게임은 존립 자체를 흔드는 위기를 맞는다.
7월, 호주 빅토리아주의 대니얼 앤드루스 주총리 기자회견을 열어 2026년 커먼웰스 게임 개최를 포기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초 약 26억 호주달러로 예상했던 개최 비용은 어느새 70억 호주달러까지 불어나 있었다. 우리 돈으로 6조 원이 넘는 규모였다.
앤드루스 총리의 말은 단호했다.
"12일 동안 열리는 스포츠 행사에 60억~70억 달러를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지출이 아닙니다."
빅토리아주 감사원 역시 이 사업을 "납세자 돈의 낭비"라고 평가했다.
충격적인 것은 개최 포기 자체보다도,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2022년 대회는 원래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개최권을 잃었고, 영국 버밍엄이 급히 대신 개최했다. 이어 2030년 대회 유치에 나섰던 캐나다 앨버타주도 비용 부담을 이유로 계획을 철회했다. 4년마다 한 번 열리는 대회에서, 연이어 개최지가 손을 놓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때 제국 전체를 하나로 묶겠다며 시작된 스포츠 축제는, 이제 존재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1982년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커먼웰스 게임 개회식. 출처: Hullwarren - Own work, CC BY-SA 4.0
빅토리아가 물러난 뒤 커먼웰스 게임 연맹은 다급히 새로운 개최지를 찾아 나섰다.
말레이시아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연맹이 제시한 지원금으로는 막대한 개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말레이시아 스포츠부 장관은 "공공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면 개최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도 고개를 저었다. 인도 역시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때 손을 든 도시가 있었다. 바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였다.
글래스고는 이미 2014년 성공적으로 커먼웰스 게임을 치른 경험이 있었다. 빅토리아주가 계약을 철회하며 지급한 위약금을 재원으로 활용해, 규모를 과감히 줄인 새로운 대회를 열겠다고 제안했다. 화려한 대회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대회였다.
2026년 글래스고 대회는 이전의 커먼웰스 게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2022년 버밍엄 대회가 19개 종목을 치렀다면, 이번 대회는 10개 종목만 열린다. 경기장은 네 곳으로 줄었고, 예산도 약 8억 파운드에서 1억 6천만 파운드 수준으로 대폭 축소됐다.
거의 80%를 덜어낸 셈이다. 하지만 대회의 본질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74개 커먼웰스 국가와 영토에서 약 3천 명의 선수들이 여전히 글래스고를 찾았다.
조직위원회는 기존 경기장을 최대한 활용하고, 이동과 의전을 최소화하며, 화려함보다 실용성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개막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거대한 불꽃놀이와 수백억 원 규모의 공연 대신, 찰스 3세가 타르디스에서 등장하는 짧고 재치 있는 연출 하나가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산은 줄었지만, 상징성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보라색: 개최국 및 개최 예정국 / 붉은색: 참가국 / 초록색: 과거 참가국
제국의 운동회, 인도에서 백 살이 되다
위기를 넘긴 커먼웰스 게임은 이제 또 다른 전환점을 향하고 있다. 2030년, 대회는 인도 아마다바드에서 100주년을 맞을 예정이다.
그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다.
1930년 첫 대회가 열렸을 때 인도는 아직 영국의 식민지였다. 한 세기가 흐른 뒤, 그 대회의 백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무대는 독립한 인도가 마련한다.
역사는 때때로 가장 아름다운 역설을 준비해 둔다.
연맹은 앞으로도 여러 나라가 2030년과 2034년 대회 개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과거와는 다른 원칙도 내세웠다.
더 이상 개최 도시에 정답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함께 만들겠다고 말한다.
연맹이 강조하는 단어는 '공동 창조(co-create)'다.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커먼웰스 게임이 걸어온 100년의 역사와 닮아 있다. 한때 제국은 명령했고, 식민지는 따랐다. 그러나 제국이 사라진 뒤에도 살아남은 이 운동회는 이제 명령이 아니라 협의를 말한다.
어쩌면 커먼웰스 게임이 지난 한 세기 동안 가장 크게 바꾼 것은 이름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2026 커먼웰스 게임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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