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의 아버지 에드는 오랫동안 거짓말을 품고 살아왔다. 그것은 소란스러운 거짓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침묵의 거짓이었다.
크리스토퍼가 어머니 주디스에 대해 물을 때마다 에드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건넸다. 어머니는 2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병원에서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됐고, 너무도 빠르게 이별을 맞았다고.
크리스토퍼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거짓말은 논리에 어긋나고,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살아 있었다.
마크 해던의 소설에서 이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단순한 반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독자는 놀라기보다 한 가지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에드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그의 대답은 분명하다. 크리스토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진실은 아이에게 너무 잔인할 것이라 믿었고, 그래서 그는 침묵을 택했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이야기가 진실인 것처럼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붙들고 살아갔다.
그것이 그가 아들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어쩌면 그 믿음은 에드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영국 사회를 지탱해 온 하나의 문화적 태도 역시 비슷한 말을 건네왔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말 것. 아픔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 것. 힘들다는 말 대신 묵묵히 견딜 것.
침묵은 품위였고, 인내는 미덕이었다. 그리고 끝내 버텨내는 사람이야말로 강한 사람이라고, 오랜 세월 사람들은 그렇게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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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스티프 어퍼 립(Stiff Upper Lip)'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윗입술을 꼿꼿이 세운다'는 뜻이다. 슬픔과 두려움, 고통이 밀려와도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는 태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함부로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끝내 견뎌내는 자세를 일컫는다.
오랫동안 이것은 영국인이 이상으로 삼아온 품성이었다. 눈물은 나약함의 징표였고, 불평은 품위를 잃는 일이었으며,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은 타인에게 짐을 지우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어떤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그것이야말로 신사와 숙녀가 갖춰야 할 미덕이었고, 영국 사회가 오랜 세월 존중해 온 강인함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가 영국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알고 있는 이 말은, 사실 영국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스티프 어퍼 립'이라는 표현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곳은 미국이다. 현재 확인되는 가장 이른 사례는 1815년 미국 신문 매사추세츠 스파이(Massachusetts Spy)이며, 이후 19세기 중반에는 군가와 종교시를 비롯한 여러 글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표현이 영국으로 건너온 것은 1871년이다. 찰스 디킨스가 발행하던 잡지 올 더 이어 라운드(All the Year Round)는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표현들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스티프 어퍼 립'을 언급했다.
표현은 미국에서 탄생했지만 그 표현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하나의 문화이자 삶의 태도로 완성한 곳은 영국이었다. 특히 제국의 전성기를 맞이한 빅토리아 시대, '스티프 어퍼 립'은 단순한 관용구를 넘어 영국 사회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이상적인 인간상을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매사추세츠 스파이. 출처: Engraving work done by Paul Revere. Newspaper published by Isaiah Thomas - This image is available from the United States Library of Congres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under the digital ID cph.3a10607.This tag does not indicate the copyright status of the attached work. A normal copyright tag is still required. See Commons:Licensing.,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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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1837~1901)는 영국에서 감정을 절제하는 태도가 개인의 미덕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상으로 자리 잡은 시대였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이 있었다. 이튼(Eton), 해로(Harrow), 럭비(Rugby)와 같은 명문 기숙학교들은 단순히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다. 이들은 대영제국을 이끌 정치인과 군인, 행정가를 길러내는 엘리트 양성소였으며, 무엇보다도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공간이었다.
그 교육 철학의 핵심에는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었다.
럭비 스쿨의 교장이었던 토머스 아널드(Thomas Arnold, 1795~1842)는 훗날 '강인한 기독교 정신(Muscular Christianity)'로 불리게 되는 교육 이상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스포츠와 공동체 생활, 엄격한 규율을 통해 육체뿐 아니라 인격과 자기 통제력을 단련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학교에서 눈물은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두려움이나 슬픔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나약함의 증거로 여겨졌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끝까지 버티는 인내(endurance)와, 자신의 감정보다 맡은 책임을 앞세우는 의무(duty)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었다. 개인의 감정은 공동체와 책임을 위해 기꺼이 절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훗날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E. M. 포스터(E. M. Forster, 1879~1970)는 이러한 퍼블릭 스쿨 교육이 길러낸 인간상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건강한 몸과 뛰어난 지성을 갖추었지만, 정작 마음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
이 한 문장에는 영국 교육이 길러낸 이상과 그 이면이 함께 담겨 있다.
도라 캐링턴이 그린 E. M. 포스터의 초상화. 출처: Dora Carrington (1893–1932) - http://www.todayinliterature.com/biography/e.m.forster.asp,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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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이러한 문화를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 영국은 약 70만 명의 전사자를 잃었다. 살아 돌아온 이들 역시 이전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참호에서 목격한 일들을 좀처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너무 참혹한 경험은 언어로 옮기기 어려웠고, 설령 말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을 드러내는 일은 강인함을 미덕으로 삼던 사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많은 남성들은 침묵한 채 귀향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 이르러 이러한 절제의 문화는 국가적 가치로까지 확장됐다. 1939년 영국 정부는 '침착함을 잃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Keep Calm and Carry On)'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제작했다. 전쟁의 공포 앞에서도 흔들리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당시에는 실제 배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지만, 2000년대 들어 우연히 발견되면서 영국을 상징하는 문구가 되었다. 지금은 머그컵과 티셔츠, 엽서에 새겨져 전 세계 관광객들의 손에 들려 다닌다. 한때 생존을 위한 구호였던 말이, 이제는 영국 특유의 자조적인 유머를 담은 문화 아이콘이 된 것이다.
윈스턴 처칠의 전시 연설 역시 이러한 정신을 상징한다. 그는 "나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외에는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국민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 연설은 비탄에 젖어 있지 않았다. 절망을 인정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태도, 감정을 숨기지는 않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자세가 그 연설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랫동안 영국 사회가 이상으로 삼아온 강인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는 전쟁터나 공적인 공간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집 안으로도 들어왔다.
아버지들은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어머니들은 슬픔을 홀로 감당했다. 부부 사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은 행동으로 대신되었고, 갈등은 대화보다 침묵으로 덮였다. 직접 말하기보다 에둘러 표현하거나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품위 있는 태도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에드가 크리스토퍼에게 보인 모습도 바로 이러한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아내가 떠났다는 사실을 말하는 대신, 아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아이를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는 믿었다. 진실이 상처를 줄 것이라 생각했기에, 침묵과 거짓이 사랑보다 더 안전한 선택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그의 거짓말은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에서 시작된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끝내 말이 되지 못했고, 침묵과 은폐라는 형태로만 표현되었다.
영국의 심리치료사들이 오랫동안 주목해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감정을 억누르도록 배운 세대의 남성들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을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랑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묵묵히 일했고, 가족을 부양했으며,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다.
에드 역시 그렇다. 그는 크리스토퍼를 깊이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을 어떤 말로 전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홀로 아들을 키우고, 누구보다 힘든 아이의 세상을 함께 견디며, 아들이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을 자신이 대신 떠안는다.
말 대신 행동으로.
그것이 에드가 평생 익혀 온 사랑의 언어였다.
영국 정부가 제작한 '침착함을 잃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Keep Calm and Carry On)'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 출처: UK Government - Digital scan of original KEEP CALM AND CARRY ON poster owned by wartimeposters.co.uk. Steved1973 (talk) 10:40, 22 October 2011 (UTC),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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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31일 새벽, 다이애나 왕세자비(Princess Diana)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에서는 이전까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울기 시작한 것이다.
켄싱턴 궁전과 버킹엄 궁전 앞에는 끝없이 꽃다발이 쌓였고,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낯선 이들의 슬픔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듯한 풍경이었다. 영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당시 BBC 기자였던 한 언론인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변화였습니다. 누군가 영국의 '스티프 어퍼 립'이 언제 끝났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 순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왕실의 반응은 달랐다.
엘리자베스 2세는 곧바로 런던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버킹엄 궁전에는 조기(弔旗)도 걸리지 않았다. 언론과 시민들은 왕실이 슬픔을 외면한다고 비판했다.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왕실의 입장에서 그것은 무관심이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오랫동안 배워온 애도의 방식이었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사적인 슬픔을 공적인 자리로 끌고 나오지 않는 것.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스티프 어퍼 립'의 전통은 왕실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결국 엘리자베스 2세는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다이애나를 추모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 순간을 영국 사회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뀐 상징적인 전환점으로 본다. 오랫동안 절제와 침묵을 미덕으로 삼아 온 나라가 처음으로 집단적인 슬픔을 거리에서 표현했고, 왕실마저도 그 변화에 응답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사회학자 빅 세이들러(Vic Seidler)는 다이애나 사후 영국 사회를 분석하며, 그 거대한 애도가 계급과 인종, 성별, 성정체성을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했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이성과 절제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 온 영국 사회가, 감정 역시 공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건이었다.
어쩌면 다이애나는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그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외로움을 이야기했고, 눈물을 보였으며, 왕실이 오랫동안 지켜온 감정의 규범을 거스르는 삶을 살았다. 많은 이들은 그런 모습을 불편해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그녀에게 공감했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 영국은 처음으로 함께 울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영국 사회는 감정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어 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남성의 정신건강은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특히 45세 이하 영국 남성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이 반복해서 알려지면서, 감정을 억누르는 문화가 더 이상 미덕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신건강 자선단체인 마인드(Mind)와 사마리탄스(Samaritans)는 "표현하세요", "혼자 견디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해 왔다.
한때 '스티프 어퍼 립'은 영국인을 강하게 만드는 미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의 영국은 조금씩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끝까지 참는 것이 정말 강인함일까.
아니면 자신의 슬픔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더 큰 강인함일까.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추모하기 위해 켄싱턴궁 앞에 놓인 꽃들. 출처: Maxwell Hamilton from Greater London, England United Kingdom - Flowers for Princess Diana's Funeral,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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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에드는 크리스토퍼를 사랑했다. 다만 그는 자신이 배운 방식으로 말이다. 진실을 말하기보다 상처를 대신 감당하려 했고,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흥미로운 것은, 그 방식이 크리스토퍼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리스토퍼는 은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에둘러 말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사실이 사실이어야 한다. 진실은 아무리 아프더라도 진실이어야 한다.
이게 바로 이 소설의 역설적인 면이다.
세상은 크리스토퍼를 '사회성을 배우지 못한 아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사회가 가장 오래 숨겨온 문제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사람은 크리스토퍼다.
그는 감정을 꾸미지 않는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하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한다. 거짓말은 상대를 위한 것이라 해도 거짓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영국 사회는 오랫동안 이런 태도를 미성숙하다고 여겨 왔다.
그러나 저자 마크 해던은 독자에게 묻는다.
정말 미성숙한 사람은 누구인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아이일까. 아니면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른일까.
그 질문 앞에 서고 나면, 에드의 거짓말은 더 이상 한 아버지의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영국 사회가 사랑과 슬픔을 표현해 온 방식 자체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당신이 자란 문화에서는 감정 표현에 대해 어떻게 가르쳤는가. 우는 것, 두렵다고 말하는 것,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허용되었는가. 그 문화적 훈련이 오늘의 당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는가.
- 에드는 크리스토퍼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진실을 감추는 경우가 있다. 그 경계는 어디인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보호인 경우가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언제나 또 다른 형태의 상처인가.
- 1997년 다이애나의 죽음 앞에서 영국인들이 공개적으로 울기 시작한 것이 문화적 전환점이었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공적인 사건 중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감정 표현 방식을 바꾼 순간이 있는가. 집단적 감정 표현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The Smiths –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1984) 모리세이(Morrissey)의 가사는 영국 남성이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욕망과 결핍을 음악 안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겨우 1분 52초짜리 이 곡에 담긴 간절함은, 영국 문화가 오랫동안 억눌러온 감정의 무게와 닮아 있다. 에드가 크리스토퍼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생각하며 듣기를 권한다.
함께 읽는 영국 추리 소설『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편은 이번화로 마무리 짓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소설 소개와 예고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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