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태양을 믿는 AI,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가 던지는 질문들

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클라라와 태양』 예고편

2026.09.20 | 조회 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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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상점 진열창 안에 클라라가 서 있다.

그녀는 AF, 즉 인공 친구(Artificial Friend)다. 아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로, 태양광으로 움직이며, 탁월한 관찰력을 갖추고 있다. 클라라는 진열창 너머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이 어떻게 걷는지, 어떻게 서로를 대하는지, 어떤 감정을 숨기고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지 등, 모든 것을 살핀다. 그리고 모든 것을 기억한다.

어느 날 조시라는 소녀가 상점을 찾아온다. 건강이 좋지 않은 십대 소녀는 클라라를 원하게 되고, 그클라라 역시 조시를 원하게 된다. 정확히는, 조시를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싶어진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모든 이야기가 클라라의 시선으로 서술된다는 것이다. 기계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세계. 그 시선은 낯설고, 때로 순진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클라라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첨부 이미지

 

***

 

『클라라와 태양』의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영국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영어로 작품을 쓰는 영국 문학의 작가가 되었습니다. 일본보다 영국이 훨씬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온전한 영국인이라고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그는 말합니다. 두 세계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은 그의 거의 모든 소설을 관통합니다. 켄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1982년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남아 있는 나날』로 1989년 부커상을 받았으며, 2017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클라라와 태양』은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처음으로 발표한 장편소설입니다. 2021년 3월 영국 출판사 페이버 앤드 페이버에서 출간됐으며, 같은 해 부커상 후보작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습니다. 이시구로는 애초 이 작품을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로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고를 읽은 딸 나오미 이시구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어요. 큰 충격을 받을 거예요.”

이 소설에는 이시구로가 평생에 걸쳐 탐구해 온 주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기억과 상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정,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선택이 남긴 결과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 모든 것이 인간이 아닌 기계의 눈을 통해 비칩니다. 인공지능이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은 때로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볼 때보다 훨씬 더 솔직하고 선명합니다. 바로 그 불편할 만큼 투명한 시선이 이 소설의 핵심을 이룹니다.

다음 달에는 이 작품을 세 가지 방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이시구로의 삶을 따라가며, 영국 문학이 이민자 출신 작가들을 통해 어떻게 더욱 풍요로워졌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이어 소설 속 자동화 사회가 오늘날 영국 사회의 어떤 불안과 두려움을 반영하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클라라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즉 의식이란 무엇이며 영혼은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앨런 튜링에서 현대 영국 철학으로 이어지는 오랜 사유의 흐름 속에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여러분은 어느 순간 창문 너머로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저 사람들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과연 같은 인간일까요. 아니면 인간을 관찰하도록 만들어진 기계일까요.

다음 달에 만나 뵙겠습니다.


다음주 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은 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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