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엔 없는 이야기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영국의 신사 문화와 기술 혁신의 관계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은 왜 이후 기술 패권의 중심에서 물러나게 되었을까?

2026.01.24 | 조회 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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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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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9월의 런던. 템스 강변의 들판에 모여든 군중은 모두 한 곳을 바라봤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비단으로 만든 구형의 껍질이 열기를 머금고 팽창하면서, 마치 새벽 하늘에 뜬 또 하나의 태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열기구였다. 그리고 그 바구니 안에는 빈센트 루나르디(Vincent Lunardi)라는 이름의 청년이 서 있었다. 그는 화려한 제복을 입고 있었고, 한 손에는 작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군중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마침내 밧줄이 풀리고, 열기구가 천천히 땅을 떠나 상승하기 시작했을 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늘을 나는 인간. 그것은 신화에서나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카루스는 밀랍 날개로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추락했지만, 이 날 루나르디는 무사히 하늘을 가로질러 다른 마을에 착륙했다.

다음 날 신문들은 일제히 이 사건을 보도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런던의 거리에는 열기구 무늬가 새겨진 도자기와 부채, 머리 장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살롱에서는 귀부인들이 열기구에 대해 이야기했고, 신사들은 비행의 원리를 논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사는 과학 그 자체보다는, 그 과학이 만들어낸 장면의 우아함에 더 쏠려 있었다. 루나르디가 입었던 제복의 색깔, 열기구의 비단 무늬, 그가 바구니에서 내려다본 풍경의 시적 묘사. 영국 사회는 기술의 성공보다, 그 기술이 연출한 스펙터클에 열광했다. 이는 한 사회가 기술혹은 과학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적 은유나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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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르디의 열기구. 출처: By Julius Caesar Ibbetson, Public Domain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시작한 나라였고,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 제임스 클럭 맥스웰을 배출한 과학의 강국이었다. 증기기관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 곳도 영국이었고, 철도가 대륙을 가로지르며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재정의한 곳도 영국이었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역사속 결정적 기술의 전환점은 영국이 아닌 곳에서 일어났다. 동력 비행기는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만들었고, 전기 산업의 대규모 시스템화는 독일과 미국이 주도했다. 국가 연구소 모델은 독일에서 완성되었고, 산업대학 복합체는 20세기 미국의 발명품이었다. 영국은 늘 그 현장에 있었지만, 무대의 정중앙에 서지는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는 단지 정책의 실패나 자본의 부족 때문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영국 사회를 지배해온 하나의 정신적 질서, , 신사 문화(gentlemanly culture)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품격과 교양, 절제와 전통을 중시하는 이 문화는, 끊임없이 기술의 속도와 충돌했다. 그리고 그 충돌의 순간들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오늘은 이 영국의 신사 문화가 한 국가의 기술 발전과 혁신에 어떤 영향일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신사라는 이름의 사회 시스템

 

18세기와 19세기 영국에서 신사(gentleman)’라는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예의 바르고 품위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 정체성이었고, 계급적 지위였으며, 삶의 방식이었다. 신사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기도 했고, 교육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종류의 지식과 태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는 점이다.

역사학자 해럴드 퍼킨(Harold Perkin)은 영국을 신사적 이상이 사회 전반을 조직한 나라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정치는 신사들이 하는 것이었다. 하원과 상원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이들로 채워졌고, 그들은 라틴어 구절을 인용하며 연설했다. 외교관은 프랑스어와 고전 문학에 능통해야 했고, 군 장교는 명예와 용기의 덕목을 체화해야 했다. 교회의 성직자는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법률가는 판례와 수사학을 익혔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사회적 분위 속에서 기계와 공장, 제조업과 기술은 유용하지만 고귀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신사는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았다. 신사는 설계도를 그리지 않았고, 공장 바닥을 걷지 않았으며, 증기기관의 밸브를 조정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기술자와 엔지니어, 장인과 노동자의 몫이었다.

이 이분법적 사고는 대학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수 세기 동안 고전 문헌, 신학, 수학, 철학을 중심으로 엘리트를 양성했다. 이 대학들의 목표는 직업적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고,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암송하며, 논리학과 수사학의 기초를 다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었다.

공학은 어디에 속했는가? 그것은 오랫동안 주류 대학 교육의 바깥에 있었다. 실무적이고, 손으로 하는 일과 가까웠으며, 학문적 깊이보다는 실용적 문제 해결을 추구했다. 물론 영국에도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기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학이 아니라 기술학교나 실습 중심의 교육 기관이었다. 영국 최초의 본격적인 공학 중심 대학 중 하나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이 설립된 것도 1907년이었다. 이미 독일에서는 베를린 공과대학(1879년 설립)을 비롯한 여러 공과대학이 국가 차원의 연구 체계를 구축한 뒤였다.

이 차이는 단순한 교육 과정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지식이 사회적으로 가장 존중받는가에 대한 선택이었다. 영국 사회는 오랫동안 고전적 교양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고, 기술적 지식은 그보다 아래에 두었다. 이 위계는 단지 학문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직업 선택, 사회적 지위, 문화적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신사는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역사가가 될 수도 있었고, 철학자나 정치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엔지니어가 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완전한 의미에서의 신사가 아니었다. 유능할 수는 있었지만, 고귀하지는 않았다. 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영국 사회에서 누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공부하며, 어떤 꿈을 꾸는가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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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plete English Gentleman (1630). 신사의 모범적인 자질에 대해. 출처: By Robert Vaughan (circa 1600 - 1660), National Portrait Gallery, Public Domain

 

산업혁명의 역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다. 이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증기기관이 탄광의 물을 퍼올리고, 방적기가 실을 뽑아내며, 철도가 대륙을 가로지르기 시작한 곳이 바로 영국이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은 말 그대로 세계를 바꾸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이 혁신의 핵심 인물 대부분이, 런던의 상류 사회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강당에서 철학을 논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현장에서, 작업장에서, 탄광과 공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던 사람들이었다.

제임스 와트를 보자. 그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귀족도 아니었고, 대학 교수도 아니었다. 그는 손으로 기계를 만지고, 문제를 관찰하며, 해결책을 실험했다. 그가 증기기관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을 때, 그를 도운 사람은 버밍엄의 기업가 매튜 볼턴이었다. 볼턴 역시 신사 계급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금속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이 두 사람의 협력이 산업혁명의 심장부를 만들었다.

이들이 속했던 네트워크는 런던이 아니라 버밍엄과 맨체스터, 셰필드와 리즈 같은 산업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곳에는 신사의 살롱과는 다른 종류의 모임이 있었다. 루나 소사이어티(Lunar Society)가 대표적인 예다. 이 모임은 18세기 후반 버밍엄에서 시작되었고, 보름달이 뜨는 밤에 모였다. 왜 보름달이었을까? 당시에는 가로등이 없었기 때문에, 밤길을 밝혀줄 달빛이 필요했다라는 게 정설이다.

루나 소사이어티의 회원들의 배경은 다채로웠다. 과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 의사 에라스무스 다윈(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도자기 제조업자 조사이어 웨지우드, 발명가 제임스 와트와 기업가 매튜 볼턴. 이들은 과학과 산업, 철학과 실험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했고, 다윈은 진화론의 씨앗을 뿌렸으며, 웨지우드는 도자기 산업을 혁신했다. 이들의 대화는 추상적 이론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실천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네트워크는 국가 권력의 중심부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런던의 정치 엘리트들은 여전히 제국 경영, 외교, 해군, 금융, 토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의회에서는 식민지 정책과 조세 문제를 논의했고,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를 관리하며 사냥을 즐겼다. 기술은 중요했지만, 그것이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 되지는 않았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일으켰지만, 산업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지는 않았다. 혁신은 현장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지만, 그것이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공장과 광산을 바꾸었지만, 케임브리지의 도서관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플라톤을 읽고 있었다. 이 두 세계는 같은 나라 안에 존재했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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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밍엄 핸즈워스에 있는 소호 하우스는 루나 소사이어티의 정기적인 모임 장소였다. 출처: By Wehwalt - Own work, CC BY-SA 3.0

 

살롱 vs 실험실

 

18세기와 19세기 영국에는 수많은 학회와 사교 모임이 있었다. 왕립학회(Royal Society)1660년에 설립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 학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발표했고, 후크가 현미경으로 본 세계를 그렸으며, 할리가 혜성의 궤도를 예측했다. 과학은 영국 사회에서 존중받았고, 지식인들은 자연철학을 논하며 밤을 보냈다.

살롱에서는 귀부인들이 과학 강연을 들었다. 전기 실험은 인기 있는 오락거리였다. 강연자가 라이덴병에 전기를 모아두었다가 순간적으로 방전시키면, 사람들은 감탄하며 환호했다. 화학 실험은 마술처럼 보였고, 망원경으로 본 행성은 경이로웠다. 신사들은 전기와 화학, 천문학에 대해 토론했고, 과학은 교양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지식의 장은 종종 실용적 기술 개발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과학은 지적 유희였고, 기술은 경제적 필요였다. 과학자는 자연의 법칙을 탐구했고, 엔지니어는 기계의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두 영역이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과학적 발견이 기술적 혁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기술적 문제가 과학적 질문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세계는 서로 다른 사회적 공간에 속해 있었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에저턴(David Edgerton)은 영국이 과학의 나라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기술과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고 분석한다.

이 구조는 독일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19세기 후반, 독일은 훔볼트식 대학 모델을 통해 연구와 교육을 결합했다. 베를린 대학을 비롯한 독일의 대학들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곳이었다. 교수는 연구자였고, 학생은 연구 조수였다. 실험실은 대학의 핵심이었고, 화학과 물리학, 공학이 학문의 중심부로 들어왔다.

더 나아가 독일은 국가 차원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오늘날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을 연결하며, 산업과 군의 요구를 학문으로 끌어들였다. 화학 산업은 대학 연구실에서 나온 성과를 즉시 공장으로 가져갔고, 독일은 합성 염료, 의약품, 화학 비료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다.

영국에도 훌륭한 이론가들이 있었다. 제임스 클럭 맥스웰은 전자기학의 기초를 세웠고, 마이클 패러데이는 전기와 자기의 관계를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성취가 산업적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속도는 여전히 독일이나 미국보다 현저하게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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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베를린 달렘에서 열린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개관식. 출처: By Bundesarchiv, Bild 183-R15350 / CC-BY-SA 3.0, CC BY-SA 3.0

 

전쟁이라는 강제된 각성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이 기술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게 된 계기는 전쟁이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것은 단순히 군대와 군대의 충돌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의 전쟁이었다. 누가 더 나은 레이더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더 빠른 전투기를 만들 수 있는가, 누가 암호를 먼저 해독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가 되었다.

영국은 레이더 기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40년 여름, 독일 공군은 영국 본토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런던의 하늘은 불타올랐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영국 공군은 놀라운 방어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레이더였다. 레이더는 독일 전투기가 영국 해협을 건너기 전에 그들의 위치를 포착할 수 있게 해주었고, 영국 공군은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블레츨리 파크에서는 앨런 튜링을 비롯한 수학자와 암호학자들이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다. 이들의 작업은 극비였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성과는 전쟁의 흐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적의 통신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적의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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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 1951년 3월 29일에 촬영. 출처: By Elliott & Fry, Public Domain

이는 분명 놀라운 성취였다. 그러나 이것이 선도적 국가 시스템의 산물이었을까? 아니면 위기 속에서 동원된 지식의 결집이었을까? 아마도 후자에 가까웠을 것이다. 영국은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자원을 기술 개발에 쏟아부었다. 대학의 과학자들은 군사 연구에 동원되었고, 산업체는 군수품 생산으로 전환되었다. 그것은 효과적이었지만, 평시의 체계적인 시스템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세계는 달라져 있었다. 미국은 전쟁 중의 경험을 제도화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원자력 시대를 열었고, 그 유산은 국립과학재단(NSF)과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으로 이어졌다. 대학산업군 복합체가 형성되었고, 기술은 곧 국가 경쟁력의 언어가 되었다. 연방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MIT와 스탠퍼드 같은 대학들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연구를 수행했다.

영국도 변하기 시작했다. 전쟁 중 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그러나 이미 세계의 기술 질서는 새롭게 짜여 있었다. 미국이 중심이었고, 소련이 도전자였으며, 독일과 일본이 재건을 시작하고 있었다. 영국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19세기처럼 세계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느림의 유산, 품격이라는 또 다른 혁신

 

물론 이 모든 이야기를 단순히 영국의 실패로 요약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역사는 언제나 복잡하고, 하나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 영국이 기술 혁신에서 때때로 뒤처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영국 사회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신사 문화는 기술의 속도를 늦췄지만, 동시에 다른 종류의 강력한 유산을 남겼다.

법치.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안정적인 법률 시스템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마그나 카르타부터 시작된 법의 지배는 수 세기 동안 발전해왔고,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의 법률 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의 법정은 공정성과 절차의 엄격함으로 알려져 있고, 판례법 전통은 예측 가능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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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에 작성된 마그나 카르타(원래는 ‘자유의 헌장’으로 알려짐)는 당시 중세 라틴어로, 시대의 표준 약어를 사용해 양피지에 몰식자 잉크로 기록되었으며, 존 왕의 대봉인(Great Seal)으로 공식 인증되었다. 원래 붙어 있던 밀랍 봉인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졌다. 이 문서는 현재 영국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British Library Cotton MS Augustus II.106”이라는 분류 번호로 관리되고 있다. 출처: Original authors were the barons and King John of England. Uploaded by Earthsound. - This file has been provided by the British Library from its digital collections. 

의회 민주주의. 영국 의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적 입법 기관 중 하나다. 물론 역사 초기의 의회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민주적이지 않았다. 투표권은 소수에게만 주어졌고, 여성과 노동자는 배제되었다. 그러나 의회라는 제도 자체는 시간이 지나며 진화했고, 점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 점진성이 중요하다. 영국은 혁명이 아니라 개혁을 통해 변화했고, 그 과정에서 제도의 연속성을 유지했다.

공공성. BBC는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공영방송 중 하나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 모델은, 신사 문화의 공공 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왕립학회, 대영박물관, 왕립예술원 같은 기관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지식과 문화를 위해 존재한다.

사회적 신뢰. 영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를 유지해왔다. 사람들은 제도를 신뢰했고, 약속을 지켰으며, 규칙을 따랐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고, 계급 간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신사 문화가 강조한 명예, 책임, 공정성의 가치는 사회 전반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이것들은 눈에 보이는 기계나 제품이 아니다. 그것들은 제도이고, 관행이며, 문화다. 측정하기 어렵고, 단기간에 만들 수 없으며,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힘들다. 영국은 기술의 속도보다, 제도의 안정성과 사회적 신뢰를 중시했다. 그 선택의 결과, 영국은 가장 빠른 기술 국가는 되지 못했지만, 가장 신뢰받는 제도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질문이 늘 따라다닌다. 만약 영국이 독일처럼 공학을 대학의 중심에 놓았다면? 만약 미국처럼 발명가를 국가적 영웅으로 숭배했다면? 만약 프랑스처럼 국가 주도의 기술 프로젝트에 투자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무언가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신사 문화가 남긴 질문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 기후 기술, 생명공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기술은 다시 한 번 사회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ChatGPT는 몇 달 만에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이 사용하는 도구가 되었고, 유전자 편집 기술은 질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으며, 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변화는 빠르고, 급진적이며, 때로는 통제하기 어렵다.

이는 역설적으로 영국의 신사 문화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한 이유가 된다. 기술은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 시장의 속도인가, 아니면 사회의 가치인가? 우리는 기술을 최대한 빨리 개발하고 배포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영향을 신중하게 검토하며 천천히 도입해야 하는가?

영국은 오랫동안 후자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어떤 혁신을 늦췄고, 어떤 제도를 깊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술적 딜레마들 (인공지능의 윤리, 유전자 편집의 한계, 소셜 미디어의 규제) 은 모두 같은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무엇을 최우선으로 할 것인가?

어떤 사회는 효율을 선택한다. 기술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실행하고, 문제는 나중에 해결한다. 실리콘 밸리의 모토,빠르게 움직이고 기존 것들을 깨부숴라(Move fast and break things)가 이 정신을 잘 보여준다. 어떤 사회는 신중함을 선택한다. 기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을 즉시 도입하지 않고, 그 사회적 영향을 먼저 고려한다. 유럽의 GDPR(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이 이 접근을 대표한다.

루나르디의 열기구는 하늘을 날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하늘을 날아서 어디로 가고 싶은가였다. 하늘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늘을 나는 법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가다. 경외인가, 탐욕인가? 경이인가, 정복욕인가? 영국 신사 문화는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주었다. 완벽한 답은 아니었지만, 깊이 생각해볼 만한 답이었다.

그리고 그 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영화 킹스맨의 유명한 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등장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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