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런던에서 하나의 단체가 문을 열었다.런던 아동학대방지협회(London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Children)였다. 이 단체는 1889년 활동 범위를 영국 전역으로 넓히며 오늘날의 NSPCC(Nation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Children)로 발전했다.
그 설립을 이끈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조합교회 목사 벤저민 워(Benjamin Waugh)였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빈민가를 오가며 아이들이 겪는 굶주림과 방치, 폭력을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그러나 그를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학대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고통이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 사회가 그것을 좀처럼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1900년의 벤저민 워. 출처: By Unknown author - NSPCC, Public Domain
여기서 지난 화에서 이야기했던 한 가지 숫자를 다시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RSPCA, 즉 영국의 동물학대방지협회의 전신이 만들어진 것은 1824년이었다. 아동학대방지협회가 런던에서 출범한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60년 뒤인 1884년이다. 다시 말해 영국에서는 동물의 학대를 막기 위한 조직이 아이들의 학대를 막기 위한 조직보다 반세기도 훨씬 전에 생겨났다.
이 사실은 오늘날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당시의 현실은 한층 더 기묘했다. 아이를 독립된 권리의 주체로 보호한다는 생각과 제도가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던 탓에, 심각한 아동학대를 다루는 과정에서 동물보호 운동과 법적 논리가 먼저 길을 열어주는 경우까지 있었다.
동물의 고통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사회적 목소리를 얻고 있었지만, 정작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아이의 고통은 오랫동안 ‘남의 집안일’이라는 벽 뒤에 가려져 있었다.
이것이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가 품고 있던 기묘한 역설이었다.거리에서 학대받는 말과 개의 고통에는 점차 눈을 뜨면서도, 닫힌 문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고통에는 좀처럼 시선을 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답은 영국 사회가 오랫동안 ‘가정(home)’이라는 공간을 바라보던 방식에 있다.
펀트의 몇몇 지난 레터들에서 우리는 영국 고딕 문학이 집을 어떻게 공포의 공간으로 바꾸어왔는지를 살펴본 바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국 문화에서 집은 동시에 가장 신성한 공간이기도 했다.
“영국인의 집은 그의 성이다(An Englishman’s home is his castle).”
이 오래된 표현에는 단순히 집에 대한 애착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집은 외부의 시선과 권력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사적인 영역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가장의 권한에 속한다는 관념이 함께 들어 있었다.
이 믿음은 오랫동안 법과 제도 속에서도 힘을 가졌다.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자녀에 대해 압도적인 법적 권한을 행사했고, 어머니의 권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아이는 오늘날처럼 독립된 권리의 주체라기보다 부모, 특히 가장의 권위 아래 놓인 존재로 여겨졌다.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가 사회적 문제로 인정되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집 안의 일은 집 안의 일이었다.이웃이 끼어드는 것은 무례한 간섭이었고, 국가가 문턱을 넘어서는 것은 가정의 자율성과 신성함을 침해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가정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때로 그 안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닫힌 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쉽게 묻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은 벽을 넘지 못했고, 상처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다.
그리고 바로 그 믿음의 그늘 속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오랫동안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NSPCC 본사 건물. 출처: Howard Lake - Flickr: NSPCC head office, CC BY-S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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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영국 의회는 마침내 아동 학대와 방치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초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NSPCC가 끈질기게 사회와 의회를 설득한 끝에 얻어낸 변화였다. 이 법을 통해 당국은 처음으로 심각한 위험에 놓인 아이를 가정에서 분리해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법 하나가 오랜 믿음까지 단숨에 바꾸지는 못했다.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외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강했다. 벽 너머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도 모른 척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남의 집안일에는 끼어들지 않는다’는 오래된 규범이 법보다 더 깊숙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는 법의 문제가 되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여전히 가족의 문제였다. 집의 문턱을 넘는 순간, 사회의 시선은 멈추곤 했다.
그 구조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1950~60년대 영국에서 아동학대는 공적인 언어로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것은 가난한 동네에서나 벌어지는 일,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로 밀려나거나, 때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일처럼 취급되었다.
변화의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는 1962년에 찾아왔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 헨리 켐프(Henry Kempe)와 동료들이 ‘구타당한 아이 증후군(Battered Child Syndrome)’이라는 개념을 의학적으로 제시하면서, 아동학대는 더 이상 막연한 가정사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이 식별하고 기록할 수 있는 현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국 의료계 역시 곧 그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의사들은 반복해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의 몸에서 하나의 패턴을 읽기 시작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골절, 되풀이되는 멍과 상처, 부모의 설명과 맞지 않는 부상들.
그 상처들은 더 이상 단순한 ‘사고’로만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몸은, 닫힌 집 안에서 벌어진 일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는 그제야 오랫동안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핸리 켐프. 출처: 헨리 켐프 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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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사회가 어떤 문제를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과, 그 문제를 실제로 막아낼 수 있는 제도와 관행을 갖추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긴 시간이 놓여 있다.
1973년, 영국 사회는 일곱 살 마리아 콜웰(Maria Colwell)의 죽음 앞에서 큰 충격에 빠졌다. 마리아는 의붓아버지의 학대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 이전부터 아이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여러 신호가 있었고 사회복지사들도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끝내 아무도 마리아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한 가정에서 벌어진 비극을 넘어 당시 영국의 아동보호 체계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사람도, 제도도 이미 존재했지만, 그것들이 서로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채 한 아이의 죽음을 막는 데 실패한 것이다.
마리아 콜웰 사건은 영국 사회복지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만, 비슷한 비극은 이후에도 되풀이되었다. 1984년 재스민 베클포드(Jasmine Beckford), 1987년 타이라 헨리(Tyra Henry), 그리고 2000년 빅토리아 클림비에(Victoria Climbié)의 죽음은 각각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 일어났지만, 그 배경에는 놀라울 만큼 닮은 구조가 있었다. 아이 주변에는 사회복지사와 교사, 의료진과 경찰처럼 위험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실제로 여러 차례 개입의 기회도 있었지만, 정보는 기관마다 흩어져 있었고 책임은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누구도 자신이 보고 있는 한 조각을 다른 조각들과 충분히 연결하지 못한 사이, 아이들은 다시 위험한 환경으로 돌아가곤 했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조사가 시작되고 보고서가 발간되었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분석한 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겠다는 약속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러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아이의 이름이 비극적인 사건과 함께 신문에 등장했고, 영국 사회는 그때마다 자신들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2000년 빅토리아 클림비에 사건이 남긴 충격은 특히 컸다.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여덟 살 소녀 빅토리아는 영국으로 온 뒤 보호자들에게 오랜 기간 극심한 학대를 받다가 결국 숨졌는데, 더욱 참혹했던 것은 죽음에 이르기 전 여러 공공기관과 전문가들이 그녀를 만났거나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도 아무도 아이를 끝까지 보호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사건을 조사한 라밍 보고서(Laming Report)는 당시 영국의 아동보호 체계가 여러 기관 사이에서 얼마나 심하게 분절되어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의료기관과 사회복지기관, 경찰과 다른 공공기관들이 각각 아이에 관한 일부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바라보는 데 실패했고, 책임 역시 기관 사이에서 분산되기 쉬웠다. 결국 문제는 아무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데 있다기보다,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지식들이 한 아이의 삶을 보호하는 하나의 판단으로 모이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빅토리아의 죽음 이후 영국은 다시 아동보호 제도를 손질했고, 그 중요한 결과 가운데 하나가 2004년 아동법(Children Act 2004)이었다. 이 법은 아동보호를 특정 사회복지사나 단일 기관의 책임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는 인식을 더욱 분명히 하면서, 의료와 교육, 사회복지, 경찰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여 아이의 안전을 함께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강화했다.
결국 한 아이를 지키는 일에는 어느 한 사람의 선의나 헌신만으로는 부족했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자신이 본 것을 공유하고, 흩어진 신호들을 하나로 연결하며, 위험을 발견했을 때 책임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대신 누군가 끝까지 아이의 안전을 붙들어야 했다. 영국 사회가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제도의 원칙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너무 많은 아이들의 이름이 비극의 기록 속에 남아야 했다.
1999년 7월 24일, 빅토리아 클림비에는 머리 등에 심한 열탕 화상을 입은 상태로 노스 미들섹스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당시 의료진은 신체적·정서적 학대와 방임의 징후를 발견하고 학대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병원과 경찰, 사회복지기관 사이의 대응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빅토리아는 다시 보호자에게 돌아갔고 학대는 계속됐다. 클림비에는 이듬해인 2000년 2월 25일, 심각한 저체온증과 영양실조, 다발성 장기부전 등을 겪은 끝에 숨졌다. 사후 조사에서는 그녀의 몸에서 128곳의 부상과 흉터가 발견됐다. 이후 실시된 공공조사인 ‘빅토리아 클림비에 조사(Victoria Climbié Inquiry)’는 의료기관과 사회복지기관, 경찰 등 여러 기관이 반복해서 위험 신호를 접하고도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구조적인 실패를 지적했다. 출처: Nico Hogg from London, United Kingdom - Tower Block,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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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테드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역사의 맥락 위에 놓여 있다.
테드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다. 아이를 누구보다 먼저 보호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가장 오래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고, 그 경험은 단순한 기억에 머무르지 않은 채 테드가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워드는 이 과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기억의 파편과 어긋나는 목소리, 쉽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을 독자 앞에 하나씩 흩어놓고, 독자가 그것들을 스스로 맞추어가며 테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발견하도록 만든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는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의 반복적이고 심각한 트라우마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앞에서 아이의 마음은 경험을 분리하거나 단절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 상태가 나타나고 각각이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 행동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단순히 하나의 인격이 여러 개로 ‘쪼개지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견디기 어려운 경험을 감당하기 위해 마음이 취하는 복잡한 생존 방식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소설 속에서 독자는 테드와 로렌, 올리비아라는 세 개의 목소리를 만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처음에는 서로 독립된 존재처럼 보였던 이 목소리들의 경계가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서로 완전히 분리된 존재라기보다 하나의 상처 입은 내면에서 갈라져 나온 정체성 상태임을 이해하게 되며, 그 분열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작품이 두려운 것은 괴물이 등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이 괴물처럼 보이는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가족의 폭력과 사회의 외면이라는 현실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더 깊은 공포를 만들어낸다.
19세기 프랑스의 정신의학 연구 대상이었던 루이 비베의 초상. 비베는 서로 다른 성격과 기억 상태가 번갈아 나타나는 사례로 알려졌으며, 앙리 부뤼와 프로스페르 페르디낭 뷔로는 그의 상태를 연구해 『인격의 변이』에 기록했다. 이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연구의 초기 형태로 알려져있다. 이 사진은 책에 실린 비베의 포토그라비어 초상화 10점 가운데 하나다. 출처: Henri Bourru & Prosper-Ferdinand Burot - Variations de la personnalité., CC BY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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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아동학대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가 달라져도 되풀이되어온 한 가지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학대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그것을 보지 않으려는 사회적 충동 또한 그만큼 오래 존재했다는 점이다.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가족의 문제라는 믿음, 남의 집안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 그리고 부모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이에게 심각한 폭력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적 저항이 서로 겹치면서, 학대받는 아이들은 오랫동안 사회의 시야 바깥에 남겨졌다.
오늘날 영국의 아동보호 체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지만,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모든 아이가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의 여러 공식 검토가 보여주듯 보호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 반면 이를 감당할 인력과 자원에는 한계가 있고,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 인력의 부담과 이직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져도 그 틈을 빠져나가 여전히 누구에게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법은 바뀌고 제도는 발전하지만, 인간이 보지 않으려 하는 것까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때로 한 사람의 삶을 가장 깊은 곳에서 뒤틀어놓는 것은 바로 그렇게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던 경험들이다.
워드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누구 한 사람을 손쉽게 악의 화신으로 만들어버리지 않는다.
테드의 어머니는 소설의 현재에서 직접적인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지만, 그녀가 남긴 흔적은 테드의 기억과 공포, 행동과 목소리 곳곳에 스며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며, 그녀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한 사람의 폭력을 이해하려 한다고 해서 그 폭력을 정당화할 필요는 없지만, 워드는 악을 설명 불가능한 본성으로 돌려버리는 대신 그 뒤에 놓인 더 오래된 상처와 역사를 바라보도록 독자를 이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공포소설을 넘어선다. 워드는 공포라는 장르를 이용해 우리가 익숙하게 유지해온 도덕적 단순함을 흔든다. 세상을 피해자와 가해자, 정상과 비정상, 인간과 괴물로 분명하게 나누어놓으면 모든 것은 훨씬 이해하기 쉬워지지만, 괴물이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 속에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야기는 훨씬 불편해진다. 그때부터 우리는 누가 그를 만들었는지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가족과 공동체와 사회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외면했는지까지 함께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모두 읽고 난 뒤 독자는 다시 처음의 이미지로 돌아가게 된다. 판자가 박힌 창문 뒤에 살던 수상한 남자를 처음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그 안에 괴물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알게 되는 것은 조금 다르다. 그곳에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존재가 아니라 상처받고 분열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한 사람이었고, 그를 그렇게 만든 것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영국인의 집은 그의 성'이라는 믿음처럼, 우리 사회에도 가정 내의 일에 외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이 있다. 이 규범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가족의 프라이버시와 아이들의 안전 사이에서 사회는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가. 그 선은 누가 그어야 하는가.
-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 이름 뒤에 역사가 있음을 보여준다.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편안함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편안함이 우리가 보지 않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영국 역사에서 아동 학대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보지 않으려 하는가. 그리고 왜.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Massive Attack – 'Safe from Harm' 브리스틀 출신 매시브 어택의 이 곡은 보호하려는 충동과 그 보호가 실패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너를 해로움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이 곡의 핵심 감각이, 소설 속 테드가 로렌을 지키려 하는 방식과, 그리고 영국 사회가 아이들을 지키려 했지만 오랫동안 실패한 역사와 연결된다.
이번 화를 끝으로 함께 읽는 영국 추리 소설,『니들리스 거리의 마지막 집』편을 마무리합니다. 다음 주에는 새롭게 함께 읽을 작품 소개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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