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엔 없는 이야기들

세계 최초의 유기견 보호소, 영국 ‘배터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의 지지를 받았던 1860년 런던의 혁명적 아이디어

2026.04.25 | 조회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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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1860년 가을, 런던 북부 홀로웨이의 어느 허름한 마구간에서 개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었다.

길에서 굶주린 채 쓰러져 있던 것을 한 여성이 데려왔다. 먹이고, 돌보고, 살려내려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개는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 여성의 이름은 메리 틸비(Mary Tealby).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의 머릿속에 런던의 거리 위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이 죽어가고 있을 수백, 수천 마리의 개들이 떠올랐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쉰아홉. 남편과는 별거 중이었고, 돈도 없었고, 얼마 후에는 암 진단까지 받는다.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어 보이는 조건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해 가을,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만들기로 했다. 

세계 최초로 유기 동물을 체계적으로 보호하는 시설, 바로 1860년 설립된 ‘유기 및 굶주린 개들을 위한 임시 집(Temporary Home for Lost and Starving Dogs)’이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보호소인 배터시(Battersea Dogs & Cats Home)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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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틸비. 출처: Unknown author - https://www.islington4women.org/blog/mary-tealby-1801-1865,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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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거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먼저 알필요가 있다.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당시의 런던은 공장 노동자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들면서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겪던 중이었다. 

그 혼란 속에서 수많은 개들이 주인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는데, 광견병이 흔했기에,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유기견을 특히 두려워하고 잔인하게 대하도록 만들었다. 

암컷 동물의 중성화는 불가능했고, 원치 않는 강아지와 새끼 고양이를 익사시키는 것이 일상적인 관행이었다. 

굶주린 개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거리 한복판에서 쓰러져 죽어나갔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럴 의무가 있는 사람도, 그럴 시스템도 없었기 때문이다.

메리가 처음 유기견들을 받아들인 곳은 자신의 집 부엌이었다. 소문이 퍼지면서 개들이 늘어나자 근처의 빈 마구간을 빌렸고, 비용은 자신과 남동생, 그리고 친구 사라 메이저(Sarah Major)가 함께 댔다. 

운영 원칙은 단순하면서도 당시 기준에서 혁명적이었다. 

1. 어떤 개도 거부하지 않는다.

2. 주인을 찾을 때까지 보호한다.

3.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새 주인을 찾아준다. 

지금은 당연하게 들리는 이 원칙이, 1860년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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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의 홍보 전단지 (1901년). 출처: Unknown author - https://www.lookandlearn.com/history-images/XJ109120/Advertisement-for-Battersea-Dogs-Home,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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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녀를 비웃었다. 사람들도 굶어 죽어가는 마당에 개를 위한 집이라니?

당시 영국 사회의 도덕적 관심은 빈민과 고아, 거리의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동물에게 자원을 쓰는 것은 ‘사치스러운 감상주의’로 여겨졌다. 

그 비판을 가장 날카롭게 쏘아붙인 것은 다름 아닌 일간지 The Times였다. 

1860년 10월 18일, 이 신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숭고한 것에서 우스운 것으로, 인도주의의 합리적인 영감에서 우스꽝스러운 감상주의의 환상적인 전시로 넘어가는 것은 단 한 걸음이다. ‘개를 위한 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이 기관의 창시자들이 제정신을 잃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바로 앞 칼럼에서 살펴봤듯이, The Times는 당시 ‘천둥을 치는 자’라는 별명을 가진 영국 최고의 독립 언론이었다. 

권력을 향해 날을 세우고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신문이, 메리 틸비의 유기견 보호소를 향해서는 조롱을 쏟아낸 것이다. 

동물의 고통은 여전히 ‘진지하게 다뤄야 할 약자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이웃들도 가세했다.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소송을 걸었다. 

직원들이 부패해 돈을 횡령하는 일도 생겼다. 자금난은 만성적이었다. 하지만 메리는 5년 동안 이 모든 것을 버티며 보호소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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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2월 29일 촬영된 것으로 전해지는 베터시 시설의 모습. 출처: Margaret Purnell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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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찰스 디킨스가 나섰다.

1862년, 디킨스가 자신이 편집하는 잡지 ‘일 년 내내(All the Year Round)’에 유기견 보호소를 지지하는 기사를 실은 것이다. 

기사 제목은 ‘두 개의 개 품평회(Two Dog Shows)’.

당시 막 시작된 크러프츠(Crufts)의 전신인 귀족들의 호화로운 개 품평회와, 런던 뒷골목의 굶주린 유기견들을 나란히 묘사한 이 글은 계급과 위선을 동시에 비틀었다. 

디킨스는 유기견 보호소를 두고 “런던 생활의 거친 시련 속에서도 일부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남아 있는 숨겨진 감정의 비축량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썼다.

당대 최고의 작가가 지지를 선언하자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후원자들이 나타났고, 규모가 커졌다. 1862년에는 운영위원회가 “어떤 종류의 개도, 어떤 상태의 개도, 어떤 핑계로도 보호소 입소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공식 선언했다. 이 원칙은 오늘날까지 배터시의 핵심 가치로 남아 있다.

안타깝게 메리는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한채 186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산은 100파운드도 되지 않았고, 베드퍼드셔 빅글스웨이드의 한 교회 묘지에 남동생과 함께 묻혔다.

묘비에는 배터시를 세웠다는 기록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보호소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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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와 그의 애완견 터크. 출처: 찰스 디킨스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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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사망한 후 6년이 지난 1871년, 보호소는 런던 남쪽의 배터시로 이전했다. 

이웃들의 지속적인 항의와 공간 부족이 이유였다. 이전 당시 한 달에 약 850마리의 개가 들어오고 있었다. 새 부지에는 중앙 통로 양쪽으로 여덟 개씩, 모두 열여섯 개의 넓은 칸이 마련됐다. 그 이름이 이때부터 ‘배터시 도그스 홈’이 됐다.

1883년에는 리처드 바로 케넷(Richard Barlow Kennett)이라는 후원자가 500파운드를 기부하면서, 고양이도 받아들이는 조건을 달았다. 배터시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그해 처음으로 48마리의 고양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탄생한 ‘위팅턴 로지(Whittington Lodge)’는 세계 최초로 지어진 고양이 전용 보호시설이며, 오늘날까지 영국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1885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공식 후원자가 됐다.

개를 위한 집이 제정신을 잃은 짓이라고 비웃던 시대에서, 불과 25년 만에 왕실의 후원을 받는 기관이 된 것이다. 배터시는 그 후로도 왕실과 관계를 이어왔고, 현재는 카밀라 왕비를 후원자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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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시 캠페이너. 2015년 촬영. 출처: Philafrenzy - Own work,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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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빅토리아 시대의 배터시가 모든 면에서 아름답고 완벽했던 것만은 아니다.

광견병 공포가 절정에 달하던 19세기 후반, 배터시는 런던 경찰청과 협력해 거리의 유기견들을 수거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주인이 나타나거나 새 주인을 찾지 못한 개들은 안락사를 피할 수 없었다. 

광견병이 심했던 시기에는 배터시에 들어오는 개의 75~80퍼센트가 안락사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숫자다. 

배터시는 세상 최초의 동물보호소인 동시에, 세상 최초의 ‘안락사를 시행하는 보호소;이기도 했다. 메리 틸비가 꿈꿨던 이상과 현실 사이에 놓인 깊은 간극이었다.

그러나 이 불편한 사실이 메리 틸비가 시작한 것의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길에서 굶주린 채 죽어가는 것을 그냥 두는 것과, 보호하려 하되 그 한계 안에서 씨름하는 것은 다르다. 배터시는 그 씨름을 164년째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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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배터시는 런던 본원 외에 버크셔와 켄트에 두 개의 센터를 두고, 평균 240마리의 개와 145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1860년 이래 배터시가 돌봐온 동물의 수는 310만 마리를 넘어선다.

메리 틸비의 묘비에는 여전히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2015년 런던 이즐링턴 구의회가 주민 투표로 기념 명판을 세울 인물을 뽑았을 때, 메리 틸비는 전체 투표의 39퍼센트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150년이 지난 뒤에야 받은 이 뒤늦은 인정이, 어쩌면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아생전에는 비웃음만 받았던 사람이 죽고 나서야 이름을 얻는 것. 역사에는 그런 이야기가 종종 있지 않은가.

1860년 가을, 아무것도 없던 마구간에서 죽어간 이름 모를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개 앞에 한참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있었다. 그 두 존재가 만든 인연이 오늘날 세계의 동물보호 문화를 낳았다.


배터시(Battersea)는 런던 사우스웨스트 소재 동물보호 자선단체로, 정부 지원 없이 전액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공식 홈페이지(battersea.org.uk)에서 입양, 후원, 봉사활동 안내를 확인할 수 있다. 배터시의 역사는 게리 젱킨스(Garry Jenkins)의 저서 『A Home of Their Own』(2011)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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