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해외 출장 일정으로 인해 매주 일요일 발행되는 ‘장르문학으로 읽는 영국’ 시리즈의 『시간관리국(The Ministry of Time)』 세번째 이야기의 발행이 부득이하게 사흘 지연됐습니다.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시간 여행을 발견했다고 상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이런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각국 정부가 극비 회의를 열고, 군대가 도시를 봉쇄하고, 과학자들이 혼란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논의하는 모습 말이다. 어떤 이는 그것을 무기로 만들려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아마 종교적 공황과 정치적 음모론도 뒤따를지 모른다.
그런데 칼리안 브래들리(Kaliane Bradley)의 소설 『시간관리국(The Ministry of Time)』 속 영국 정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들은 정부 부처를 만든다.
이름을 정하고, 예산을 배정하고, 사무실을 마련한다. 공무원을 뽑고, 보고 체계를 만들고, 담당자는 상급자에게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한다. 시간 여행자들은 관리 대상이 되고, 리스크평가와 행정 절차 속으로 편입된다.
이 설정이 묘하게 웃긴 이유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 자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현상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실적이고 관료적으로 처리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것은 매우 영국적으로 느껴진다.
인류 역사상 가장 초현실적인 사건이 벌어져도 영국은 우선 회의실부터 예약할 것 같은 나라다. 누군가는 차를 가져오고, 누군가는 규정집을 찾고, 누군가는 “이 사안은 어느 부처 소관인가”를 논의한다.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일단 행정 체계를 만드는 것. 『시간관리국』는 바로 그 영국 특유의 감각을 기막히게 포착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SF라기보다, 어쩌면 영국이라는 나라의 정신 구조를 풍자하는 작품에 더 가깝다. 시간 여행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끝내 질서와 절차를 포기하지 않는 영국식 태도이기 때문이다.
1854년, 현대 관료제의 탄생
오늘날 영국의 시민서비스(Civil Service)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체계적인 관료 시스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정권이 바뀌어도 행정은 유지되고, 공무원 조직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가를 움직인다. 영국식 관료제는 오랫동안 “전문성과 중립성의 모델”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중반 이전의 영국 정부 조직은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현대 행정 시스템과는 상당히 달랐다. 많은 공직은 공개 경쟁이 아니라 인맥과 후원으로 채워졌다. 누구의 아들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귀족과 연결돼 있는지가 중요한 사회였다. 능력보다 관계가 앞서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던 1854년 2월, 영국 행정의 방향을 바꾸는 문서 하나가 등장한다.
스태퍼드 노스코트(Stafford Northcote)와 찰스 트레벨리언(Charles Trevelyan)이 작성한 보고서였다. 훗날 ‘노스코트-트레벨리언 보고서(Northcote–Trevelyan Report)’로 불리게 되는 이 문서는 오늘날 영국 시민서비스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보고서의 핵심은 단순하면서도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다. 정부 직위는 더 이상 연줄이나 후원으로 배분되어서는 안 되며, 공개 경쟁 시험을 통해 능력에 따라 선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보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상당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이 보고서는 공직이 특정 계층의 사유물이 아니라,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맡아야 하는 공적 영역이라는 개념을 제도화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개혁의 모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중국의 과거제도(Imperial Examinations)였다는 사실이다.
노스코트와 트레벨리언은 중국의 오랜 관료 선발 시스템에 주목했다. 혈통이나 귀족 신분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고 행정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 말이다. 물론 실제 청나라의 과거제에는 여러 한계도 존재했지만, 적어도 “시험을 통한 관료 선발”이라는 개념 자체는 당시 영국 개혁가들에게 상당한 인상을 남겼다.
19세기 세계 최강 제국이 되어가던 영국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를 지배해온 중국의 행정 시스템에서 현대 국가 운영의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국식 관료제는 훗날 다시 전 세계 수많은 나라의 행정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노스코트-트레벨리언 보고서 표지
화이트홀: 권력의 지형도
화이트홀(Whitehall)은 원래 거리 이름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에게 이 단어는 단순한 도로명을 넘어선 의미를 가진다. ‘화이트홀’은 곧 영국 정부 자체를 뜻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 거리 주변에는 영국 국가 운영의 핵심 기관들이 모여 있다. 내각부(Cabinet Office), 재무부(Treasury), 외무부(Foreign Office), 국방부(Ministry of Defence). 영국 행정을 움직이는 중심부가 거의 한 구역 안에 응축돼 있다.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10 Downing Street) 역시 바로 근처에 있다.
처음 런던을 방문한 사람들은 종종 놀란다. 세계사를 움직여온 제국의 권력이 생각보다 훨씬 작은 반경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걸어서 이동 가능한 거리 안에서 외교와 전쟁, 경제와 정보가 동시에 결정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지리적 근접성이 아니다.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문화다.
화이트홀의 공무원들과 보좌관들, 정책 담당자들과 장관들은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펍과 카페를 이용하며, 같은 사교 클럽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공식 회의 이전에 이미 비공식적인 대화가 오간다. 문서화되지 않은 이해와 분위기,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것들”이 생겨난다.
영국 정치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화이트홀 문화’란 결국 이런 것이다. 제도와 문서로 움직이면서도, 동시에 관계와 암묵적 합의로 작동하는 세계.
그래서 『시간관리국』의 설정은 더욱 영국적으로 느껴진다.
소설 속 시간관리국은 단순히 정부 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화이트홀 생태계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부처다. 시간 여행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현실적이고 초월적인 현상이, 가장 관료적이고 위계적이며 절차 중심적인 공간 속으로 편입된다.
그리고 바로 그 대비가 이 소설 특유의 유머와 긴장을 만들어낸다.
세상의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는데도, 영국은 우선 담당 부서를 만들고 회의를 잡고 보고 체계를 정비한다. 초현실적인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화이트홀은 그것을 결국 하나의 행정 문제처럼 다루기 시작한다.
어쩌면 『시간관리국』는 시간 여행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끝내 관료주의적 질서를 포기하지 않는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소설인지도 모른다.
화이트홀 지역의 지도와 정부 청사들. 출처: Contains Ordnance Survey data © Crown copyright and database right (year), OS OpenData
Yes, Minister
영국인들이 자기 나라의 관료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어쩌면 정치학 교과서가 아니라 TV 코미디일지도 모른다.
영드『Yes Minister』(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하면 네, 장관님 정도가 되지 않을까?)는 1980년부터 BBC에서 방영된 정치 풍자 시트콤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새롭게 장관이 된 짐 해커(Jim Hacker)가 이상과 개혁 의지를 품고 화이트홀에 들어오지만, 곧 현실과 부딪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현실의 중심에는 수석 상임서기관인 험프리 애플비(Humphrey Appleby) 경이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관계는 명확하다. 장관은 선출된 정치인이고, 공무원은 그 지시를 실행하는 행정가다. 민주주의 체제라면 당연한 구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Yes, Minister』는 영국인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어떤 불편한 진실을 유머로 드러낸다. 실제 화이트홀에서는 종종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장관은 몇 년 단위로 바뀌지만, 최고위 공무원들은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킨다. 정치인은 언론과 여론에 흔들리지만, 관료는 제도와 절차, 그리고 조직의 기억을 장악하고 있다. 결국 정책의 실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선출된 정치인보다 관료조직일 때가 많다는 냉소가 이 드라마의 핵심에 깔려 있다.
험프리 애플비는 바로 그 영국식 관료주의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그는 노골적으로 장관에게 반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나 극도로 공손하다. “네, 장관님(Yes, Minister)”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그 말이 실제로는 거의 항상 “안 됩니다”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험프리는 복잡한 문장과 끝없는 행정 용어로 장관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위원회를 만들고, 추가 검토를 요청하고,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결정을 늦춘다. 겉으로는 충성스럽게 협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관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지 않도록 조용히 조정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국인들은 이 드라마를 단순한 과장된 풍자가 아니라, 꽤 현실적인 묘사로 받아들였다.
『Yes, Minister』는 훗날 영국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역대 최고의 정치 코미디로 선정됐다. 정치인들조차 “너무 사실적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5년 1월, 영국 정부는 공무원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인공지능 도구 모음에 ‘험프리(Humphrey)’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로 『Yes, Minister』 속 험프리 애플비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 사실은 꽤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영국은 자기 관료제의 복잡함과 비효율, 그리고 은근한 권력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동시에 그것을 일종의 국가적 문화처럼 받아들이고 농담의 소재로 소비할 만큼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나라에서 『시간관리국』 같은 소설이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Yes, Minister 극 중 험프리 애플비(좌), 버나드 울리(중), 짐 해커(우). 출처: Fair use
BBC, NHS, 그리고 영국인의 종교
영국인들이 국가 기관과 관계 맺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단순히 “신뢰한다”거나 “불신한다”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관계에는 애증과 냉소, 자부심과 습관 같은 것들이 동시에 섞여 있다. 마치 오래된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그 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관 가운데 하나가 BBC다.
1927년 설립된 BBC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영방송 가운데 하나다. 광고가 아니라 수신료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원칙적으로는 정부로부터 편집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영국인들은 BBC를 끊임없이 비판한다. 보수 진영은 BBC가 지나치게 진보적이라고 말하고, 진보 진영은 BBC가 권력에 너무 순응적이라고 말한다. 선거철마다 양쪽 모두 “BBC가 상대편 편을 든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 사건이 터지면 영국인들은 다시 BBC를 켠다.
왕실 관련 속보가 나오거나 총선 결과가 발표되거나 국가적 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습관처럼 BBC로 돌아간다. 욕하면서도 의지하는 관계다. 그리고 BBC는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을 자신들의 신뢰성 증거처럼 여긴다. 모두가 BBC를 편향됐다고 비판한다는 것은, 결국 어느 한쪽에 완전히 장악되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논리다.
NHS(National Health Service)는 더 특별한 존재다.
1948년 설립된 NHS는 “필요에 따라,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원칙 위에 세워졌다. 영국인들에게 NHS는 단순한 공공의료 시스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전후 영국 사회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복지국가의 상징에 가깝다.
영국인들은 NHS를 비판한다. 대기 시간이 길다고 불평하고, 예산 부족을 걱정하고,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NHS를 거의 국가적 성역처럼 대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NHS를 기리는 퍼포먼스가 등장했을 때 많은 외국인들은 의아해했다. 왜 병원 시스템이 올림픽 개막식의 자랑거리가 되는가. 그러나 영국인들에게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장면이었다. NHS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에 대한 국가적 자부심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EU에 보내는 돈을 NHS에 쓰겠다”는 슬로건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실제로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주장이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사람들은 NHS라는 이름에 즉각 반응했다. 그 기관이 영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에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기관들이 있다.
MI5, MI6, 스코틀랜드 야드(Metropolitan Police).
이 기관들은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니다. 오랜 역사와 함께 일종의 신화를 품고 있다. 영국 첩보 기관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제임스 본드(James Bond)를 상상하고, 스코틀랜드 야드를 떠올리면 빅토리아 시대 탐정소설의 분위기를 함께 떠올린다.
물론 현실은 신화와 다르다. 기관들은 실수하고, 실패하고, 때로는 정치적 논란 속에 휘말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국 사회가 여전히 그 신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오래된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안정감과 정체성을 느낀다.
그리고 『시간관리국』 속 시간관리국 역시 바로 그 계보 위에 놓여 있다.
그 기관은 존재를 공개할 수도 없고, 정확한 운영 방식을 설명할 수도 없다. 외부인은 그 목적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 존재하며, 분명히 움직이고 있고, 분명히 영국 정부 체계 안에 속해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바로 그런 불투명함이야말로 아주 영국적으로 느껴진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설명되지 않는 권위와, 완전히 공개되지 않는 기관들, 그리고 모두가 존재를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시스템들과 함께 살아온 나라였기 때문이다.
‘아주 영국적인’ 것을 처리하는 방법
영국 관료제가 가진 가장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비범한 상황을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게 처리한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은 독일군의 폭격에 시달렸다. 건물이 무너지고 시민들이 죽어갔지만, 영국 정부는 가능한 한 기존 절차를 유지하려 했다. 의회는 계속 열렸고, 회의록은 기록됐으며, 결정은 문서화됐다. 전쟁 한복판에서도 행정 시스템은 멈추지 않았다.
영국 국가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권위를 유지해왔다. 혼란 속에서도 절차를 지속하는 것. 세상이 흔들려도 규정과 형식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영국식 통치 문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영국 특유의 유머도 탄생한다.
몬티 파이선(Monty Python)의 코미디를 보면 완전히 비정상적인 상황을 극도로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인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예가 ‘죽은 앵무새 스케치(Dead Parrot Sketch)’다. 손님은 분명 죽은 앵무새를 들고 와 “이 새는 죽었다”고 항의한다. 하지만 점원은 끝까지 “아닙니다, 자고 있는 겁니다”라고 응수한다.
터무니없는 현실을 눈앞에 두고도 끝까지 형식과 예의를 유지하는 것. 현실 자체보다 “절차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영국식 코미디의 핵심 감각이다.
『시간관리국』 역시 정확히 그 전통 위에 서 있다.
19세기에서 온 해군 장교가 현대 런던에서 살아간다는 설정 자체는 극도로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소설 속 공무원들은 그 상황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행정적이다. 위험 평가를 하고, 예산을 검토하고, 양식을 작성하고, 보고 체계를 만든다.
시간 여행이라는 초현실적 현상이 결국 화이트홀의 문서 더미 속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소설은 단순한 SF가 아니라, 동시에 아주 영국적인 직장 코미디처럼 읽힌다.
죽은 앵무새 스케치 극 중 프랄린 씨(John Cleese, 오른쪽)가 죽은 노르웨이 블루 앵무새를 가게 주인(Michael Palin)에게 반품하려 하려하는 모습. 출처: This image is copyrighted by the BBC
고인물 공무원 vs 선출된 정치인, 누가 진짜 권력을 쥐는가
영국 정치 시스템에서 가장 흥미로운 긴장 가운데 하나는 영구 공무원(permanent civil servants)과 선출된 정치인 사이의 관계다.
영국의 최고위 공무원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자리를 유지한다.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든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든, 같은 사람들이 계속 국가 시스템을 운영한다. 원칙적으로 그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하며,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충실히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미묘하다.
오랫동안 화이트홀에 남아 있는 공무원들은 조직의 기억 자체가 된다. 어떤 정책이 과거에 왜 실패했는지, 어느 부처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표현을 쓰면 예산이 통과되고 어떤 표현은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알고 있다.
반면 장관들은 종종 몇 년 만에 교체된다. 새로 부임한 정치인은 시스템을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결국 경험과 정보의 비대칭이 자연스럽게 권력의 비대칭으로 이어진다.
『Yes Minister』가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드라마 속 짐 해커는 명목상 부처의 최고 책임자지만, 실제로는 수석 상임서기관 험프리 애플비 경이 시스템 전체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다. 험프리는 노골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대신 절차와 선례, 검토 과정과 행정 언어를 이용해 장관이 원하는 방향을 조금씩 바꿔버린다.
그리고 그 풍자가 웃긴 이유는, 영국인들이 그것을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정치사에서는 장관들이 나중에 회고록에서 “결국 공무원들에게 관리당하고 있었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출된 권력보다 제도를 오래 이해한 사람들이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소설 속 시간관리 역시 아마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일 것이다.
시간 여행이라는 전례 없는 현상이 등장하더라도, 실제 운영 방식은 결국 오래된 관료 시스템 안에서 결정된다. 어떤 절차를 만들 것인지, 어떤 위험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무엇을 비밀로 유지할 것인지. 그런 판단은 선출된 정치인보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공무원들의 손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그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한 명의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이 작품에 더욱 묘한 영국적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영국 시민서비스 로고
소설 속 ‘시간관리국’이 있어야 했던 이유
다시 『시간관리국』으로 돌아가보자.
작가 칼리안 브래들리가 시간 여행을 관리하는 조직을 비밀 연구소나 군사기관이 아니라 정부 부처로 설정한 것은 단순한 세계관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영국이라는 나라가 초현실적인 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을 정확하게 압축한 설정이다. 동시에, 그 방식에 대한 아주 영국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는 나라였다. 위기를 만나면 우선 위원회를 만들고, 규정을 만들고, 관리 체계를 만든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조차 일단 행정의 언어로 번역하려 한다.
소설 속 시간관리국 역시 그렇다.
그 기관은 과거에서 온 사람들을 관리하고 보호한다. 하지만 그 돌봄의 방식은 어디까지나 절차와 규정, 예산과 보고 체계의 언어로 이루어진다. 시간 여행자들에게는 담당 공무원이 배정되고, 행동 지침이 정해지고, 관찰 기록이 작성된다.
그레이엄 고어에게 브리지가 배정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브리지는 그를 안내하고 적응을 돕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그 관계조차 철저히 시스템 안에서 정의된다.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지가 모두 규정되어 있다. 개인적 감정은 가능한 한 배제되어야 하며, 관계가 복잡해질 경우 상급자에게 알려야 한다.
문제는 인간의 관계가 언제나 제도 바깥으로 흘러넘친다는 점이다.
1845년에서 온 사람과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 매일 식탁을 공유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결코 매뉴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규정대로만 관계를 맺지 않는다. 감정은 양식 안에 정확히 기록되지 않고, 친밀함은 보고 체계 안에서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소설의 핵심 긴장이 생겨난다.
시간관리국이는 기관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기관이 끝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반드시 생겨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영국 관료제 자체의 역사와도 닮아 있다.
영국의 행정 시스템은 오랫동안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절차와 규칙 안에 담아내려 해왔다. 대부분의 문제는 문서와 관행으로 처리됐다. 때로는 애매한 표현과 행정적 침묵으로 넘어갔고, 때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시간관리국』은 결국 시간 여행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과 제도 사이의 오래된 충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점이야말로 이 소설이 “아주 영국적”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당신이 사는 사회에서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는 기관이 있는가. 그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기관의 실제 성과에서 오는가, 아니면 그 기관이 만들어온 역사와 신화에서 오는가. 그리고 그 신뢰가 깨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기관과 관계를 맺는다. 병원, 학교, 회사, 정부. 그 관계는 대부분 절차와 규정의 언어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절차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람으로 대우받고 있는가. 절차가 인간을 보호하는 경우와, 절차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경우는 어떻게 다른가.
- 영국 관료제는 비범한 상황을 평범한 절차로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효율의 미덕인가, 아니면 상상력의 결핍인가. 우리 삶에서 비범한 경험들이 일상의 언어로 환원될 때, 그 경험의 어떤 부분이 사라지는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Pulp – ‘Common People’ (1995) 쉐필드 출신 셔비스 카우커(Jarvis Cocker)가 이끄는 펄프의 이 곡은 영국의 계급 구조와 그것을 유지하는 제도들에 대한 가장 강렬한 노래 중 하나다. 영국 관료제가 어떤 계층적 배경 위에 서 있는지, 누가 그 안에서 편안하게 작동하고 누가 이방인으로 느끼는지를 생각하며 듣기를 권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시간관리 안에서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와도 연결된다.
다음화 예고
소설 속 그레이엄 고어(Graham Gore)는 현재에 도착했지만, 과거를 떠나온 사람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1845년을 몸 안에 지닌 채 살아간다. 걷는 방식과 말투, 식사 예절과 침묵의 방식, 세계를 이해하는 감각 자체가 모두 빅토리아 시대의 것이다. 현대 런던의 풍경은 그에게 낯설지만, 동시에 그가 기억하는 런던 역시 분명히 같은 도시에 존재한다. 어떤 것들은 완전히 바뀌었고, 어떤 것들은 놀라울 만큼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시간관리국』은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를 던진다.
역사는 정말 지나간 것인가.
영국은 유독 과거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다.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대영제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영어, 법제도, 행정 시스템, 철도망, 의회 제도, 크리켓 같은 스포츠 문화까지. 영국이 남긴 유산은 지금도 수많은 나라의 일상 속에 살아 있다.
문제는 영국인들 스스로도 그 유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완전히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폭력과 식민지 지배의 기억이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불편하기 때문에 아예 외면하려 한다.
최근 영국 사회에서 이른바 ‘역사 전쟁(history wars)’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0년 브리스틀(Bristol)에서는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던 에드워드 콜스턴(Edward Colston)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끌어내려져 강물에 던져졌다. 옥스퍼드 대학교(Oxford University)에서는 식민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세실 로즈(Cecil Rhodes)의 동상을 철거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오랜 논쟁이 이어졌다. 학교 교과서에서 대영제국을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영국은 지금, 자기 자신의 과거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놓고 사회 전체가 논쟁 중인 나라다.
그리고 『시간관리국』 바로 그 질문을 SF라는 형식 안으로 끌어온다.
만약 과거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실제 인간의 모습으로 오늘의 런던에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그를 환영해야 하는가. 교육해야 하는가. 비판해야 하는가. 아니면 두려워해야 하는가.
그레이엄 고어는 단순한 시간 여행자가 아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라는 과거 자체가 현재 속으로 걸어 들어온 존재에 가깝다.
그래서 이 소설은 결국 시간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를 인정하는 것과 과거에 갇히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오래된 제국의 흔적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소설은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역사가 당신의 집에 살러 온다면, 당신은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당신이 과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인지를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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