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죽으러 간 영웅들, 프랭클린 원정대와 영국의 북극 집착

함께 읽는 영국 SF소설 『시간관리국』, 첫번째 이야기

2026.05.03 | 조회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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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칼리안 브래들리의 소설 『시간관리국』는 어딘가 비현실적이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을 지닌 가정에서 출발한다. 영국 정부가 시간 여행을 발견했음에도 이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채, 은밀히 하나의 부서를 신설했다는 설정이다. 그 이름은 ‘시간관리국’. 

시간관리국의 임무는 놀라울 만큼 간결하다. 역사 속에서 이미 죽음을 예정받은 인물들을 현재로 데려오는 일. 이들은 ‘추방자’라 불린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밀려난 존재들이라는 뜻에서다. 그리고 각 추방자 곁에는 현대 세계로 건너오는 다리가 되어줄 담당자, 이른바 ‘브리지’가 배정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이름 없는 한 여성 공무원이 있다. 그녀에게 맡겨진 이는 그레이엄 고어 중위. 1845년, 영국 해군 프랭클린 원정대의 일원으로 북극을 향했다가 얼음 속에서 생을 마칠 운명이었던 실존 인물이다.

소설은 이 둘의 기묘한 동거에서부터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레이엄 고어가 떠나온 세계를 먼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과거가 아니라, 영국이라는 나라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북극을 향해 나아갔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1845년, 템스강을 떠난 두 척의 배

 

1845년 5월 19일 아침, 템스강 하류 그리니치에서 두 척의 배가 북쪽을 향해 조용히 출항했다. HMS 에레버스와 HMS 테러. 이름만 놓고 보면 불길한 기운이 감돌지만, 그날의 배들은 오히려 제국의 자신감과 기대를 가득 실은 채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두 배에는 장교 24명과 선원 110명, 모두 134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캐나다 북극 제도, 그리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북서항로였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가장 짧은 길. 수세기 동안 수많은 탐험가들이 도전했다가 실패한 길이기도 했다. 이 항로를 여는 일은 단순한 지리적 성과를 넘어, 영국이라는 제국의 위상과도 직결된 과제였다.

출항 당시의 준비는 그야말로 철저했다. 에레버스와 테러는 두꺼운 얼음을 견딜 수 있도록 선체를 강화했고, 기관차에서 떼어낸 증기 엔진까지 장착했다. 장교들은 은도금 식기를 사용했고, 배 안에는 1,000권이 넘는 책이 실려 있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술과 장비가 총동원된 원정이었다.

그만큼 기대도 컸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오랜 세월 이어진 탐험의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되리라는 확신이 영국 해군 내부에 퍼져 있었다.

하지만 그 항해는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출항 두 달 남짓 뒤, 배핀만 근처에서 두 척의 포경선이 에레버스와 테러를 목격했다. 북쪽을 향해 나아가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두 배는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럽인 가운데 누구도, 그들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바다 위에서 흔적을 감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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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HMS Erebus와 HMS Terror. 출처: By The Illustrated London News, ILN staff Unknown author - The Illustrated London News, Public Domain

 

그레이엄 고어

 

그레이엄 고어(약 1809년생)는 영국 해군의 장교이자 극지 탐험가였다. 1845년 프랭클린 원정대에서 그는 에레버스 호의 일등 항해사로 승선했으며, 존 프랭클린 경과 제임스 피츠제임스 사령관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위치에 있었다. 피츠제임스는 훗날 그를 두고 “성격이 매우 안정적이고, 뛰어난 장교이며, 무엇보다도 온화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그의 삶은 단순히 군인으로서의 경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적으로 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예술가였고, 플루트를 연주하는 음악가였으며, 스포츠를 사랑하는 활동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기록들 역시 하나같이 그를 성실하고 붙임성 있는 인물로 묘사한다. 어린 나이에 이미 바다와 인연을 맺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열한 살에 아버지의 배에 오르며 해군 생활을 시작한 그는, 1827년 나바리노 해전에 참전했고, HMS 비글을 타고 호주 해안을 탐사하기도 했다. 북극 역시 처음 밟는 땅이 아니었다. 1836년에는 조지 백 함장의 원정에 참여하며 이미 극지 탐험을 경험한 바 있었다.

그레이엄 고어의 이름은 1845년 3월 8일, 에레버스 호 승선 명단에 기록되어 있다. 출항을 앞두고 런던 부두에서 촬영된 단체 사진 속에서도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열두 명의 장교들 사이에 서 있는 그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운명을 알지 못한 채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소설 『시간관리국』의 작가 칼리안 브래들리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바로 이 사진 속 고어의 얼굴에서 이야기의 출발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한 사람의 얼굴이, 시간을 건너 다시 현재의 이야기 속으로 돌아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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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그레이엄 고어의 모습. 출처: Richard Beard - https://franklin-expedition.fandom.com/wiki/Graham_Gore, Public Domain

 

수백 년에 걸친 집착

 

영국이 북극에 매달려온 시간은 프랭클린 원정대보다 훨씬 앞선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세기 말, 유럽의 탐험가들은 신대륙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메리카 대륙이 아시아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쪽 항로를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 후발 주자였던 영국과 네덜란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들이 주목한 방향은 북쪽이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끝을 돌아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항로,  북서항로라는 발상이 그렇게 태어났다.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시도가 이어졌다. 1576년 마틴 프로비셔가 북극해로 나아갔고, 1610년에는 헨리 허드슨이 같은 꿈을 좇았다. 그러나 허드슨은 끝내 자신이 발견한 만에서 겨울을 견디다 선원들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가 남긴 이름, ‘허드슨만’은 오늘날까지 지도에 남아 있지만, 그의 항해는 끝내 목적지에 닿지 못했다.

이처럼 북서항로를 향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얼음에 갇힌 배, 돌아오지 못한 선원들, 그리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채 끝나는 항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는 다음 탐험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19세기 초, 해군성 제2서기관으로 임명된 존 배로는 이러한 집착을 제도화한 인물이었다. 그는 약 40년에 걸쳐 북서항로 탐험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수많은 원정을 조직했다. 1845년 프랭클린 원정대의 파견 역시 그의 손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계획이었다. 그는 이미 목표에 거의 도달했다고 믿고 있었다.

프랭클린 원정대가 출항하던 날, 배로의 나이는 82세였다. 그에게 이 원정은 단순한 탐험이 아니라, 평생을 걸어온 집념의 결실이자 마지막 야망이었다.

그렇다면 왜 영국은 이토록 북쪽에 집착했을까. 그 이유는 단순한 지리적 호기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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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샘프턴 섬 인근에서 얼음에 의해 밀려 올라온 HMS 테러호. 출처: By After George Back - National Archives of Canada / C-029929 ; archivedTransferred from en.wikipedia. Original uploader was Dr.frog, 28 July 2005 (original upload date), Public Domain

 

제국의 야망과 영웅의 서사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에 놓고 이해하던 나라였다.

1840년대는 대영제국의 위세가 가장 높았던 시기였다. 인도를 지배하고, 아프리카를 분할하며, 중국과의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정치·군사·경제 모든 면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바다에서는 영국 해군이 절대적인 힘을 행사했고, 기술과 산업 역시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북서항로의 발견은 단순한 항로 개척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자연마저 제국의 의지 아래 놓일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상징적 사건으로 여겨졌다.

당시 영국 사회에는 분명한 조급함도 존재했다. 미국이나 러시아보다 먼저 북서항로를 발견해야 한다는 경쟁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은 그러한 시대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미 그는 한 차례 극적인 생존 경험을 통해 대중적 명성을 얻고 있었다. 1819년부터 1822년까지 캐나다 북극 해안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식량이 고갈되자, 동료 11명을 잃고 살아남기 위해 부츠를 삶아 먹었다는 일화는 그를 ‘부츠를 먹은 사람’이라는 별명으로 남겼다. 이 이야기는 곧 영국 사회에서 영웅 서사의 한 장면처럼 소비되었고, 그는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1845년 원정대가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원정대의 행방을 찾기 위한 수색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수십 년에 걸쳐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프랭클린의 두 번째 아내, 제인 프랭클린이 있었다. 그녀는 해군성과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해 대규모 수색 작전을 이끌어냈고, 사비를 들여 추가 원정을 조직하기도 했다. 영국 언론 역시 이 비극을 장기간에 걸쳐 보도하며 대중의 관심을 유지시켰다.

이 과정에서 프랭클린이라는 인물은 다시 한 번 재구성된다. 살아 있을 때는 영웅이었고, 사라진 이후에는 순교자로 기억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영국 사회는 실패를 실패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것을 서사로 바꾸어냈다. 패배를 영웅담으로 전환하는 능력(혹은 욕망)이야말로 제국을 지탱하던 또 하나의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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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랭클린 경과 일부 승무원들과 고어(세 번째 줄 왼쪽),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1845). 출처: Unknown (1851), after Richard Beard (1845) - The Illustrated London News, 13 September 1851, Public Domain

 

영국적 패배의 문화

 

영국 문화에는 하나의 독특한 경향이 존재한다. 실패를 단순한 패배로 남겨두지 않고, 일정한 방식으로 의미화하는 능력이다.

프랭클린 원정대는 냉정히 보자면 참혹한 실패였다. 129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대원들은 굶주림과 괴혈병, 그리고 통조림 납 중독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았다. 일부 유골에서는 식인의 흔적까지 발견되었다. 이는 준비의 부족과 판단의 오류가 겹쳐 빚어진 비극에 가까웠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사회는 이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프랭클린과 그의 대원들은 실패한 탐험가가 아니라, 제국과 과학, 그리고 인류의 지식을 위해 스스로를 바친 존재로 재해석되었다. 그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죽어갔는지는 점차 이야기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대신 ‘고귀한 희생’이라는 서사가 자리를 차지했다.

이러한 방식은 영국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1854년 크림 전쟁 중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벌어진 경기병 여단의 돌격은 명백한 오판에서 비롯된 참사였다. 잘못 전달된 명령에 따라 기병대가 적의 포화 속으로 돌진했고, 그 결과는 사실상 전멸에 가까웠다. 그러나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한 편은 이 사건을 무모함이 아니라 용기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갈리폴리 전투 역시 마찬가지다. 전략적으로는 실패에 가까웠고,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남겼지만, 오늘날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희생과 연대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패배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 의미는 재구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인들 스스로도 이러한 경향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를 종종 ‘영광스러운 실패’라고 부른다. 이기는 것보다, 때로는 품위를 지키며 패배하는 것이 더 영국적일 수 있다는, 다소 아이러니한 인식이다. 이러한 태도는 스포츠에서도 반복된다. 크리켓과 축구처럼 스스로 만든 경기에서조차 승패를 넘어 ‘어떻게 졌는가’를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어딘가 자부심이 담겨 있다.

프랭클린 원정대는 이러한 문화적 경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실패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기억 속에서 다른 형태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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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포인트’ 메모. 1847년 5월 고어가 서명한 문서. 프랭클린 원정대의 상황을 기록한 유일한 공식 문서로, 당시까지는 모든 대원이 생존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출처: Public Domain

 

배가 발견되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늦게 도착한 진실이 이 서사의 마지막을 다시 열어젖힌다.

2014년, 캐나다 공원청 조사팀은 퀸 모드 만의 얕은 바다 밑에서 에레버스 호의 잔해를 발견했다. 이어 2016년에는 테러만에서 테러 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170년 가까이 사라져 있던 두 척의 배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더 의미심장한 사실은 따로 있다. 두 배가 발견된 위치가, 이누이트 원주민들이 오랜 세월 구전으로 전해온 이야기와 정확히 일치했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 해군은 이누이트의 증언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국의 시선에서, 북극 원주민의 기억은 신뢰할 만한 지식으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세기를 훌쩍 넘긴 뒤, 과학 기술이 확인해준 것은 전혀 다른 결론이었다. 얼음 위를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제국의 탐험가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뒤늦은 발견은 단순한 고고학적 성과를 넘어,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되묻게 만든다. 무엇이 기록으로 남고, 무엇이 배제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누구의 관점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소설 『시간관리국』는 바로 이러한 역사 위에 서 있다. 그레이엄 고어라는 인물이 현재로 호출된다는 설정은 단순한 공상적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 묻혀버린 한 존재를 다시 불러내는 일, 죽은 역사를 현재의 공간으로 끌어오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묻는 시도다.

더욱이 그 역사가 아직 완전히 해석되지 않았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품고 있다면, 이야기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과거는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현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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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빅토리 포인트에서 케언(돌무더기 표식)이 발견되는 장면. 이 케언 안에서 원정대의 운명을 전하는 ‘빅토리 포인트’ 메모가 발견되었다. 출처: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 https://www.flickr.com/photos/internetarchivebookimages/14585317207/Source book page: https://archive.org/stream/frozenzoneitsexp00hyde/frozenzoneitsexp00hyde#page/n710/mode/1up

 

소설로 돌아오며

 

칼리안 브래들리는 2024년에 출간된 이 소설을 집필하며, 그레이엄 고어라는 인물에 관한 기록들을 세심하게 추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출항을 앞두고 부두에서 촬영된 사진 속 그의 얼굴, 그리고 레이디 제인 프랭클린에게 건넨 한 장의 수채화 스케치 등, 이 사소해 보이는 단서들이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한 출발점이었다.

소설 속에서 고어는 21세기 런던으로 건너온다. 냉장고를 처음 마주하고, 지하철을 처음 타며, 자신이 알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언어와 관습 속으로 내던져진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빅토리아 시대의 해군 장교다. 얼음과 굶주림 속에서도 버텨낸 사람, 극한의 환경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이들과 함께했던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중심에는 단순한 ‘적응기’ 이상의 질문이 놓여 있다. 19세기의 감각과 경험을 지닌 한 인간이 21세기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흔들리고 무엇이 끝내 남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이미 지나간 것으로 생각한다. 더 이상 우리와는 상관없는, 닫힌 시간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만약 그 역사가 어느 날 당신의 거실에 들어와 조용히 소파에 앉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묻게 될까.

그리고 그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이, 당신이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프랭클린 원정대의 참혹한 실패가 영국 사회에서 영웅 서사로 전환된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억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있는가. 실패를 미화하는 것은 위로인가, 아니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인가. 그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 이누이트 원주민들은 수백 년 동안 두 배의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영국 해군은 그 증언을 무시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의 지식을 신뢰할 만하다고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 소설 속에서 과거의 인물이 현재로 소환된다. 만약 당신이 역사 속 한 사람을 현재로 데려올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그리고 그 사람에게 가장 먼저 무엇을 묻겠는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Radiohead – ‘How to Disappear Completely’ (2000) 북극의 얼음 속으로 사라져간 129명의 이야기를 배경에 두고 이 곡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트롬 요크의 목소리는 존재가 서서히 지워지는 감각을 담고 있다. 에레버스와 테러가 얼음 속으로 사라지던 그 순간, 배 위의 사람들이 느꼈을 감각이 이 음악 안에 있을지 모른다.

다음 주 예고

소설 속 시간 여행자들에게는 공식적인 호칭이 있다. ‘추방자(expat)’. 시간관리국이 그들을 부르는 방식이다.

이 명명은 단순한 설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영국에서 ‘expat’과 ‘immigrant’는 사전적으로는 같은 뜻을 갖는다. 둘 다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두 단어는 결코 같은 사람들에게 사용되지 않는다. 누가 ‘expat’으로 불리고, 누가 ‘immigrant’로 불리는지는 오랫동안 인종과 계급의 경계와 맞닿아 있었다.

소설의 화자는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인물이다. 영국인 아버지와 캄보디아 이민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두 단어 중 어느 하나로도 완전히 규정되지 않는 존재다. 그리고 그녀에게 맡겨진 ‘추방자’는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백인 해군 장교, 그레이엄 고어다.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긴장은 작품 전반에 걸쳐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흐른다.

다음 글에서는 시선을 조금 넓혀, 영국 사회가 ‘우리’와 ‘그들’을 어떻게 구분해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948년 HMT 엠파이어 윈드러시 호를 타고 도착한 카리브해 이주민들, 이른바 ‘윈드러시 세대’에서 출발해, 1960~70년대 이민법의 강화, 그리고 브렉시트 이후 달라진 이민 논쟁의 풍경까지. 그것은 곧 영국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해온 방식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역사 한가운데에, 소설의 주인공이 서 있다. 영국인이면서 동시에 이민자의 딸인 사람. 어느 한 언어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사람. 그런 그녀가 과거에서 온 이를 현재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단순한 시간 여행담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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