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expat vs immigrant, 영국이 외부인을 부르는 방식

함께 읽는 영국 SF소설 『시간관리국』, 두번째 이야기

2026.05.10 | 조회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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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소설 속 시간 여행자들에게는 공식 명칭이 있다.

Expat (국외 거주자).

시간관리국(Ministry of Time)이 그들을 부르는 방식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온 사람들, 자신이 태어난 시간을 떠나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소설은 이들에게 이 단어를 붙인다.

이 선택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저자 칼리안 브래들리는 이민자의 딸이다. 영국인 아버지와 캄보디아 이민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가 시간 여행자들에게 하필 ‘expat’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그 단어가 영국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에서 ‘expat’과 ‘immigrant’는 사전적으로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 그런데 현실에서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붙는다. immigrant는 흔히 비백인, 비서구, 저숙련 노동자의 이미지와 결부된다. 반면 부유하고 백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 expat으로 불린다. 법적 차이는 없다. 다만 사회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 두 단어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가 돌봐야 하는 사람은 빅토리아 시대의 백인 해군 장교다.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긴장은 소설 전체에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흐른다.

 

1948년 6월 22일, 틸버리 부두

 

1948년 6월 22일, HMT 엠파이어 윈드러시(Empire Windrush)호가 에섹스주 틸버리(Tilbury) 부두에 닻을 내렸다. 배 위에는 카리브해 각지에서 온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바베이도스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전쟁 중 영국 군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영국을 ‘마더 컨트리(Mother Country)’, 즉 조국이라고 불렀다. 

1948년 영국 국적법(British Nationality Act)은 영국 식민지 출신 모든 시민에게 영국에서 거주하고 일할 권리를 부여했다. 그들은 법적으로 영국 시민이었다. 영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영연방(Commonwealth) 국가의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초청했다. 와달라고, 일자리가 있다고, 영국이 너희를 필요로 한다라면서 말이다. 

그 부름에 응해 영국에 도착한 사람들은 도로를 건설했고, 도시를 재건했으며, 병자를 돌봤다. 갓 설립된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간호사로, 이동 보조원으로, 청소부로, 요리사로 일했다. 버스와 지하철과 철도 서비스에서도 일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전후 영국의 재건은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이 그들을 맞이하는 방식은 초청장에 쓰인 언어와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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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T 엠파이어 윈드러시 호. 출처: Royal Navy official photographer - http://media.iwm.org.uk/iwm/mediaLib//19/media-19146/large.jpgThis photograph FL 9448 comes from the collections of the Imperial War Museums., Public Domain

 

어서 와, 하지만 여기는 ‘찐 영국 사람’의 땅이야

 

윈드러시 세대를 맞이하는 분위기는 종종 적대적이었다. 카리브해 이민자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시달렸고, 1948년에는 런던 클래팜 사우스(Clapham South) 지하철역의 지하 대피소가 그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일랜드 사람, 흑인, 개는 안받습니다(No Irish, No Blacks, No Dogs).’ 

1950년대와 60년대 영국의 하숙집과 임대 주택에 위와 같은 문구가 붙어있었다는 진술도 있다. 법적으로 영국 시민인 사람들이 영국의 거리에서 이런 문구를 마주해야했다는 것이다.

1968년 영국에서는 ‘에녹 파웰(Enoch Powell)의 피의 강 연설(Rivers of Blood speech)’이 영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보수당 의원이었던 파웰은 유색인종 이민의 증가가 영국 사회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며 강경한 이민 제한을 촉구했다. 그는 즉시 당에서 축출되었지만, 그의 연설에 동의하는 서한이 쏟아졌다. 영국 사회 내부에서 이민자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그 순간 명확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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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영국 언론에서 널리 사용되는 ‘아일랜드 사람, 흑인, 개는 안받습니다(No Irish, No Blacks, No Dogs).’ 사인 사진. 이 사진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초청에서 제한으로

 

1948년에서 1970년 사이, 약 50만 명이 카리브해에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이민자 수가 늘어날수록 영국 정부의 태도도 달라졌다. 

1962년 영연방 이민법(Commonwealth Immigrants Act 1962)이 통과되었고, 이 법은 영연방 시민들의 영국 입국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1년 도입된 이민법(Immigration Act 1971)은 영연방 시민과 영국 시민 사이의 법적 구분을 더욱 명확히 했다. 태어날 때부터 영국 식민지 출신이었기 때문에 영국 시민이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법 아래서는 그 지위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증명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카리브해에서 온 많은 아이들은 부모의 여권에 기재된 채로 입국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서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법적으로 입국할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영국 정부는 그들의 입국 기록을 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십 년 후, 기록이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 치명적인 무기로 돌아왔다.

2017년, 영국 언론에 충격적인 기사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카리브해 출신 영국 시민들이 불법 이민자로 분류되어 추방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추방되었다. 

이것이 ‘윈드러시 스캔들(Windrush Scand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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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왕립공군(RAF)에서 복무한 바베이도스와 트리니다드 출신 조종사들. 이들을 ‘윈드러시 세대’라 부른다. 출처: Crouch F W (F/O), Royal Air Force official photographer - http://media.iwm.org.uk/iwm/mediaLib//38/media-38056/large.jpgThis photograph CH 11478 comes from the collections of the Imperial War Museums., Public Domain

 

‘expat’과 ‘immigrant’,  같은 사람, 다른 이름

 

영어에서 ‘expat’과 ‘immigrant’를 가르는 기준은 법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적인 것이다. 누가 어느 단어로 불리는지는 인종과 계급과 출신 국가의 위계에 의해 결정된다. 런던에서 일하는 미국인 금융인은 expat이다. 런던에서 일하는 나이지리아 출신 간호사는 immigrant다. 법적 지위가 같아도, 사회적 지위는 다르다.

‘expatriate’라는 단어는 어원상 라틴어 ‘ex’(밖)와 ‘patria’(조국)에서 왔다. 원래는 단순히 조국을 떠난 사람을 뜻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에 이 단어는 식민지에 파견된 식민 정부 관리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제국의 질서와 문명을 대표하는 사람들. 그 역사가 단어 안에 남아 있다. expat이라는 단어에는 제국주의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소설 속 시간관리국이 과거에서 온 사람들을 ‘expat’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레이엄 고어는 백인 해군 장교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 북극으로 떠났던 사람이다. 그에게 ‘expat’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캄보디아 이민자의 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영국에서 ‘immigrant’였다. 그 두 단어의 거리가 이 소설의 조용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혼혈, 혼종, 그 사이 어딘가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그녀는 소설 내내 ‘브리지(bridge)’로만 불린다. 연결자. 안내자. 두 세계 사이를 잇는 사람.

영국인 아버지와 캄보디아 이민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느 정체성으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영국인이라고 하면 어디서 왔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이민자라고 하면 영국 시민이라는 사실이 지워진다. 그녀는 두 언어 사이, 두 정체성 사이, 두 역사 사이에 서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브리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에는 이런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 있다. 윈드러시 세대의 자녀들과 손자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이민자들의 후손들, 홍콩과 중국과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의 아이들. 그들은 영국에서 태어났거나, 영국에서 자랐거나, 영국이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종종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는다. 영국의 얼굴이 달라지고 있는데, 그 달라짐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소설 속 브리지는 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리고 그녀가 빅토리아 시대 백인 해군 장교를 현재로 안내하는 일을 맡는다는 설정은, 영국의 과거와 영국의 현재가 어떻게 서로를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소설의 구조 자체로 만들어낸다.

 

소설이 묻는 것

 

『시간관리국』은 이 모든 역사 위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누군가를 그들이 속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로 데려왔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레이엄 고어는 1845년에서 왔다. 그에게 현재는 완전히 낯선 세계다. 그는 언어를 모르고, 관습을 모르고,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른다. 하지만 그는 ‘expat’이다. 그를 안내하고, 그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브리지가 배정된다. 국가가 그의 정착을 책임진다.

윈드러시 세대는 법적으로 영국 시민이었다. 그들에게는 영국이 조국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브리지가 없었다. 국가는 그들을 책임지키는 커녕 추후 그들에게 ‘불법’ 딱지를 붙여 내쫓았다. 

소설이 시간 여행자들에게 ‘expat’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그들 각각에게 브리지를 배정하는 설정은 현실에 대한 우회적인 논평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낯선 세계로 데려올 때, 아니 더 정확히는 누군가가 우리의 세계로 들어올 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빚지는가 하는 질문이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

  • 당신은 일상에서 ‘expat’과 ‘immigrant’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혹은 한국어에서 이와 유사하게 같은 상황을 다르게 부르는 단어 쌍이 있는가. 단어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 윈드러시 세대는 영국 정부의 초청으로 왔다가 수십 년 후 불법 이민자로 취급받았다. 국가가 누군가를 초청했을 때, 그 초청에는 어떤 책임이 따르는가. 그리고 그 책임은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유지되는가.
  •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두 정체성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 ‘브리지’라는 역할로만 불린다. 당신은 살아가면서 어떤 ‘사이’에 서 있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사이’의 자리가 약점이 아니라 고유한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Sade – ‘Smooth Operator’ (1984)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샤데 아두(Sade Adu)의 음악은 두 세계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감각을 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두 문화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온 예술가의 음악이다. 그 우아함 아래에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복잡함이 있고, 그것이 이 칼럼의 메세지와 맞닿아 있다. 

다음 주 예고

소설 속 시간관리국은 영국 정부의 부처다.

시간 여행이라는 초현실적인 현상을 다루는 기관이지만, 그 운영 방식은 철저히 영국 관료제의 문법을 따른다. 회의가 있고, 보고서가 있고, 담당자가 배정되고, 예산이 책정된다. 누군가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누군가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누군가 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한다.

이것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영국인들이 얼마나 깊이 제도와 절차를 신뢰하는지에 대한,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능숙하게 그것을 풍자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묘사다.

3화에서는 영국 관료제와 시민서비스(Civil Service)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체계화된 관료 시스템 중 하나인 영국 공무원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BBC와 NHS와 MI5 같은 기관들이 왜 영국인들에게 거의 종교적인 신뢰를 받는지, 그리고 영국 특유의 ‘기관 코미디(institutional comedy)’가 어디서 오는지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평범한 공무원이 시간 여행자를 돌보는 일을 맡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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