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엔 없는 이야기들

“매우 실망했다”, 트럼프의 한마디가 흔든 영국과 미국의 ‘특별한 관계’

트럼프 2기가 바꾸는 영미 동맹 게임의 문법

2026.03.07 | 조회 144 |
0
|
from.
강태준
THE PUNT의 프로필 이미지

THE PUNT

영국 인문교양 뉴스레터 | 매주 여러분의 시야를 영국이 전세계에 미친 광활한 영향력만큼 넓고 깊게 확장해드립니다.

2026 3 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국의 권위 있는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짧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키어 스타머 총리에게 매우 실망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일은 두 나라 사이에서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발언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장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 하나의 외교적 신호처럼 들렸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인도양의 전략적 요충지인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의 사용을 영국에 요청했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형식적으로는 영국령이지만, 냉전 이후 사실상 미국의 핵심 군사 거점으로 기능해 온 곳이다. 그러나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국제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초기 요청을 거절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이란의 반격이 시작된 이후였다. 영국 정부는 뒤늦게제한적인 방어 목적에 한해 기지 사용을 허가한다고 입장을 수정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번복이 사태를 되돌리기에는 지나치게 늦은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란이 영국군 기지까지 공격하기 시작한 뒤에야 허용된 협력은, 그의 시각에서 동맹의 신뢰라기보다 사후적 대응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트럼프가 받은 인상은 단순한 작전상의 지연이 아니었다. 동맹이 처음부터 요청을 거부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거부가 공개적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이 그의 정치적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단순한 외교적 마찰로 읽는다면, 그 아래에서 미묘하게 움직이는 더 깊은 구조를 놓치게 된다. 트럼프가 사용한실망이라는 단어는 개인적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역사적 서사를 흔드는 표현이었다. 그것이 건드린 것은 단지 한 번의 군사 협력 문제가 아니라,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시대에서 형성된 이른바특별한 관계라는 75년의 동맹 서사였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서사는 언제나 두 나라가 위기 앞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같은 편에 선다는 믿음 위에 세워져 있었다. 트럼프의실망은 바로 그 당연한 믿음 의심하는 순간에 등장한 단어였다.


특별한 관계’, 그 탄생의 역사

 

한국 독자에게특별한 관계라는 표현은 다소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영국과 미국이 긴밀한 동맹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왜 굳이 그 관계를특별하다고까지 부르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동맹이라면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그 위에 또 다른 수식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표현의 기원은 1946 3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의 전 총리 윈스턴 처칠은 미국 미주리주 풀턴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칼리지에서 역사에 남을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두 개의 강렬한 표현을 세상에 던졌다. 하나는 곧 냉전 시대의 상징이 될철의 장막이었고, 다른 하나는영어권 민족들의 형제적 연합이라는 개념이었다. 훗날 이것이 간결한 정치적 용어로 정리되면서영미 특별 관계라는 말로 굳어졌다.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였지만,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에 패배하며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풀턴에서 연설을 할 당시 그는 권력을 잃은 재야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위치가 그에게 더 자유로운 목소리를 허락했다. 그는 승전국이 된 미국 국민에게 새로운 시대의 위협을 경고하고자 했다. 나치 독일이 무너진 뒤, 유럽의 또 다른 지평선 위에서 소련이라는 새로운 권력이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첨부 이미지

처칠의  ‘철의 장막’ 연설. 출처: 웨스트 민스터 칼리지 유튜브 채널

처칠의 메시지는 단순한 안보 경고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이 단지 군사적 이해관계로 묶인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개인적 배경도 이 인식을 뒷받침했다. 처칠의 어머니 제니 제롬은 뉴욕 출신의 미국인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두 세계 사이에 서 있는 정치가로 인식했고, 영국과 미국이 공유하는 언어와 법률 전통, 그리고 민주주의적 가치가 일종의 문명적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믿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특별하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것은 단순한 동맹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만 유지되는 계약적 관계가 아니라, 정체성과 역사, 정치적 가치까지 공유하는 관계라는 뜻이었다. 처칠에게 영미 관계는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거의 운명에 가까운 결속이었다.

풀턴 연설은 동시에 냉전의 서막을 알리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후 미국과 영국은 전후 국제 질서를 함께 설계하는 핵심 축이 된다.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금융기구가 만들어졌고,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집단안보 체제가 출범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하는 정보 협력 체제인파이브 아이즈도 이 시기에 뿌리를 내렸다.

이렇게 형성된 영미 관계는 단순한 군사 협력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냉전 시대 자유주의 질서의 정치적 중심축이자, 서방 세계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의 일부가 되었다. 다시 말해특별한 관계라는 표현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체계와 세계관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던 셈이다.

첨부 이미지

브리타니아와 엉클 샘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제작된 포스터로, 영미 동맹을 상징한다.

 

75년의 기록, 동맹은 항상특별했는가

 

그러나 역사는 이 동맹이 언제나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특별한 관계라는 말은 종종 정치적 수사로 등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갈등과 계산, 그리고 힘의 비대칭이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가장 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1956년의 수에즈 위기였다. 이집트의 지도자 가말 압델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군사 개입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 순간, 동맹의 중심에 있어야 할 미국은 뜻밖에도 반대편에 서 있었다.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침공을 강력히 비판했고, 심지어 파운드화를 압박하겠다는 경제적 경고까지 내놓았다. 결국 영국은 국제적 압력 속에서 철군해야 했다. 이 사건은 한 가지 현실을 분명히 드러냈다. 제국의 시대가 저물면서 영국은 더 이상 미국의 동의 없이 독자적인 세계 전략을 펼칠 수 없는 나라가 되었고, ‘특별한 관계의 이면에는 미국의 압도적인 힘이 자리하고 있었다.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 역시 동맹의 균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였다. 미국이 전쟁을 확대하자 대통령 린든 존슨은 영국에 파병을 강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노동당 총리 해럴드 윌슨은 이를 거절했다. 전후 경제 재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영국에게 동남아시아의 정글 전쟁에 병력을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선택이었다. 동시에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정치적 의문도 적지 않았다. 두 나라 사이에는 일시적인 냉기가 돌았지만, 관계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첨부 이미지

해럴드 윌슨 영국 총리(왼쪽),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가운데), 헨리 키신저(오른쪽). 1974년 6월   촬영. 출처: Series: Nixon White House Photographs, 1/20/1969 - 8/9/1974Collection: White House Photo Office Collection (Nixon Administration), 1/20/1969 - 8/9/1974 - https://catalog.archives.gov/id/194589, Public Domain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비슷한 긴장이 나타났다. 아르헨티나가 남대서양의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하자 총리 마거릿 대처는 즉각 군사 대응을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처음부터 영국 편에 서는 것을 주저했다. 아르헨티나 역시 냉전 구도 속에서 미국의 중요한 지역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정보와 군수 지원을 제공하며 영국을 도왔지만, 초기의 망설임은 런던을 적지 않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와 레이건 사이의 개인적 우정은 1980년대 후반 냉전기의 영미 관계를 가장 긴밀한 시기로 남게 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은 또 다른 방식의 시험이었다.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대량살상무기라는 명분 아래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함께 이라크 침공에 동참했다. 영국 내에서는 거대한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여론 역시 압도적으로 비판적이었다. 그럼에도 블레어는 미국과의 협력을 선택했다. 그는 이를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결단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결정은 훗날 그의 정치적 유산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영국 사회에서는 영국이 미국의푸들처럼 행동했다는 비판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반복되는 패턴이 드러난다. 영미 관계는 수차례 시험대에 올랐지만, 완전히 끊어진 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감정이나 수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정보 협력, 핵 기술 공유, 군사 장비와 작전 체계의 상호운용성 같은 매우 구체적인 연결 고리가 존재했다. ‘특별한 관계라는 정치적 표현이 흔들릴 때에도, 이러한 실무적 협력의 구조는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등장한 변수는 이전과 조금 다르다.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 협력의 기계 자체를 흔들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첨부 이미지

영국 공군(RAF) GR4 토네이도 전투기 두 대가 2003년 이라크 상공 어딘가에서 미 공군 KC-135 스트래토탱커 공중급유기에 접근해 급유를 받고 있다. 이는 미국, 영국 및 동맹국들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의 일환이었다. 출처: SSgt. Suzanne M. Jenkins, USAF - http://www.dodmedia.osd.mil/Assets/2006/Air_Force/DF-SD-06-04607.JPEG, Public Domain

 

디에고 가르시아라는 작은 섬의 거대한 의미

 

이번 갈등의 핵심에 있는 디에고 가르시아라는 이름은 많은 독자에게 아직 낯설 것이다. 이 뉴스레터에서 이미 한 차례 다룬 적이 있는 장소이지만, 다시 한 번 그 지리적·정치적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도를 펼쳐보면 그 존재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인도양 한가운데 찍힌 작은 점 하나. 면적은 약 44제곱킬로미터로, 서울 강남구보다도 작다. 그러나 이 작은 섬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군사 전략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로 기능해 왔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차고스 제도라는 군도에 속한 섬이다. 이 군도는 인도에서 약 2,000킬로미터, 아프리카 동해안에서 약 1,800킬로미터 떨어진 인도양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이 위치가 바로 이 섬의 전략적 가치를 결정한다. 중동, 동남아시아, 동아프리카가 모두 작전 반경 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섬이지만, 군사적으로는 세 개의 지역을 동시에 향할 수 있는 교차점에 가깝다.

1960년대 영국은 이 섬을 미국에 군사 기지로 임대했다. 이후 디에고 가르시아는 냉전 시기 내내 미국의 핵심 군사 거점으로 활용됐다.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그리고 대테러 작전까지 여러 군사 작전의 출발점이 바로 이 섬이었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한때 이 기지가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 수감 시설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제기한 바 있다. 현재 이곳에는 약 12,000피트 길이의 활주로와 심해 항구, 핵잠수함 정박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B-2 스텔스 폭격기와 B-52 전략폭격기가 운용되는 미국의 핵심 인도양 전진 기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기지의 법적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이었다. 2019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차고스 제도가 과거 모리셔스로부터 불법적으로 분리됐다는 권고적 의견을 발표했다. 같은 해 유엔 총회 역시 영국이 이 군도의 통제권을 모리셔스에 반환해야 한다는 결의를 채택했다.

첨부 이미지

2002년 기준 디에고가르시아의 군사 시설들 위치. 출처: By US Navy (Naval Central Meteorology and Oceanography Detachment, Diego Garcia) -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library/report/2002/diego-fdo-handbook.doc (NAVCENTMETOCDETDGINST 3140.2 05 APR 2002), Public Domain

국제법 준수를 강조해 온 영국으로서는 이러한 국제적 압력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결국 스타머 정부는 2024년 모리셔스와 협상을 마무리했다. 합의의 핵심은 비교적 절충적인 방식이었다. 차고스 제도의 주권은 모리셔스에 넘기되,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는 99년 동안 임대 형식으로 영국과 미국이 계속 사용하는 구조였다. 그 대가로 영국은 모리셔스에 상당한 규모의 재정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협상이 처음부터 미국 내에서 큰 논란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와 이후 바이든 행정부 모두 이 합의를 대체로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돌아오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차고스 제도를 넘기는 것은 완전 멍청한 짓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주목하고 있다라고 적었다.

트럼프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설령 99년 임대가 유지된다 하더라도, 주권이 모리셔스에 있다면 결국 외교적 압력이 그 나라를 통해 기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인도양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모리셔스가 그 통로가 될 가능성을 그는 우려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트럼프는 이 협상에 대해 한동안 모호한 태도를 보여 왔다. 반대와 지지를 오가던 그의 입장은 최근 이란 공습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급격히 강경해졌다. 디에고 가르시아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부각되자, 영국이 처음에 기지 사용을 거부했다는 사실과 차고스 협상 자체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결국 그의 비판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스타머 정부가 이 섬을임대형식으로 넘기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유권을 지켜야 했다는 것이다.

첨부 이미지

디에고 가르시아 전경. 출처: Public Domain

 

스타머의 아슬아슬한 외교 게임

 

키어 스타머라는 이름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는 2024년 총선에서 14년 동안 집권해 온 보수당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되찾은 노동당의 지도자다. 법률가 출신으로 영국 검찰총장을 지낸 그는, 정치적 열정이나 이념적 수사보다 절차와 규범을 중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노동당 내부의 좌파 지지층이 기대했던 급진적 개혁가라기보다는, 오히려 냉정한 현실주의자에 가까운 정치인이다. 외교 정책에서도 그는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을 최우선에 두는 태도를 보여 왔다.

그가 총리에 취임한 직후 가장 신경을 쓴 대상 역시 미국이었다. 특히 트럼프와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그의 외교 전략의 핵심 과제가 됐다. 2025 2, 스타머는 세계 어느 지도자보다 먼저 워싱턴을 찾아 트럼프와 회동했다. 그는 단순한 외교 방문 이상의 상징을 준비해 갔다. 찰스 3세의 친서를 직접 전달하며 트럼프에게 두 번째 국빈 방문 초청장을 건넨 것이다. 영국 역사에서 한 국가 원수가 두 차례 공식 국빈 방문을 한 사례는 없었다. 스타머는 그 선례를 트럼프에게 열어주기로 한 셈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2025 9, 트럼프의 영국 국빈 방문은 화려한 외교적 연출로 진행됐다. 윈저성에서 열린 환영 행사와 국빈 만찬, 근위대 사열, 찰스 3세와의 환담까지, 영국 왕실은 최고 수준의 의전을 준비했다. 스타머 역시 세심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했던 문서들을 트럼프에게 보여주었다. 과거의 전쟁 지도자를 소환해 영미 동맹의 역사적 유대를 상기시키려는 상징적 연출이었다. 처칠의 이름은 여전히특별한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역사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겉으로 보기에는 만족한 것 처럼 보였다. 국빈 만찬 연설에서 그는두 나라의 유대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영국 기업들로부터 약 1,500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 약속을 이끌어냈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외형적으로는 성공적인 방문처럼 보였다.

그러나 외교 무대의 화려한 장면 뒤에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했다. 방문 직전 스타머는 미국 주재 영국 대사 피터 만델슨을 갑작스럽게 교체해야 했다. 맨델슨이 과거 성범죄자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제프리 엡스타인과 가까웠던 사실이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 미묘한 장면은 그 이후에 나타났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만델슨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과거 함께 찍힌 사진이 공개된 상태였다. 사실관계와는 무관하게 발언은 그대로 흘러갔다. 그 순간 스타머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침묵을 선택해야 하는 외교의 현실이, 그 짧은 장면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첨부 이미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오른쪽)가 2025년 2월 백악관 밖에서 만나고 있다. 출처: By Number 10, OGL 3

 

롤스로이스 vs 웨스팅하우스 

 

디에고 가르시아를 둘러싼 갈등이 군사적 영역에서 나타난 균열이라면, 또 다른 균열은 경제적 영역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025 11, 영국 정부는 자국의 소형모듈원자로 건설 사업자로 영국 기업 롤스로이스를 선정했다. 웨일스 앵글시 섬에 세 기의 소형 원자로를 건설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원자력은 영국이 추진하는 탄소중립 전략과 에너지 안보 정책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이 사업의 상징적 의미도 작지 않았다.

여기서 잠시 소형모듈원자로, SMR이라는 개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존 대형 원전과 달리, 이 원자로는 규모가 훨씬 작고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한 뒤 현장에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설된다. 건설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초기 투자 비용도 낮출 수 있어 차세대 원전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영국, 한국, 캐나다 등 여러 국가가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의 이번 사업에서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기업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였다. 특히 이 경쟁은 단순한 기업 간 입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같은 해 9월 트럼프의 영국 국빈 방문 당시, 양국은 원자력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두 달 뒤 영국이 미국 기업이 아니라 자국 기업을 선택하면서 상황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워싱턴에서는 이 결정이 꽤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주영 미국 대사 워런 스티븐스는 공개 성명에서 영국 정부의 결정에매우 실망했다고 밝혔다. 국빈 방문 당시 강조됐던 협력의 분위기가 불과 두 달 만에 무색해진 셈이었다.

영국 정부의 입장은 분명했다. “이 결정은 영국 납세자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선택이며 동시에 영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산업 전략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고려했을 때, 자국 기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워싱턴의 불쾌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사건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처한 외교적 상황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을 떠난 이후 영국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외교적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아 왔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미국 기업을 탈락시킨 결정은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영국이 미국과 긴밀한 동맹 관계에 있지만, 모든 선택에서 미국의 이해를 따르는 종속적 파트너는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트럼프라는 정치인의 성향이다. 그는 외교적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때로는 경제적 선택조차 개인적 배신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롤스로이스와 웨스팅하우스 사이에서 내려진 이 결정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훗날 다시 등장할 외교적 긴장의 작은 전조였을지도 모른다.

첨부 이미지

롤스로이스가 건설 예정인 소형모듈원자로 조감도. 출처: 롤스로이스

 

브렉시트가 만든 딜레마

 

이 모든 이야기의 더 깊은 배경에는 브렉시트가 있다. 2020년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 런던은 새로운 외교 슬로건을 내세웠다. “글로벌 브리튼.” 유럽이라는 거대한 정치·경제 공동체 속에 머무르기보다, 독자적인 외교 역량으로 세계 각국과 직접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유럽연합 단일 시장을 떠난 이후 영국 경제는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환경에 놓였다. 수출입 절차는 늘어났고, 기업들은 새로운 규제 장벽을 마주해야 했다. 한때 유럽 금융의 심장이라 불리던 런던의 지위 역시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부 금융 거래와 투자 기능은 파리,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같은 도시로 분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무역협정은 영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유럽 시장을 잃은 자리를 대서양 건너편에서 보완하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아일랜드 문제를 이유로 영국과의 무역협정을 사실상 보류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기대했던빠른 대서양 협정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트럼프가 다시 집권하면서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생겼다. 하지만 트럼프식 외교는 전통적인 자유무역 협정보다 관세 압박과 양자 협상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는 세계 여러 국가와의 협상에서 관세를 일종의 협상 무기로 활용해 왔다. 그 방식 속에서 영국이 반드시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영국은 매우 불편한 전략적 위치에 놓이게 됐다. 유럽연합을 떠났기 때문에 유럽 전체가 가진 집단적 협상력을 활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등한 협상력을 갖추기에는 경제 규모와 시장의 차이가 너무 크다. 브렉시트를 추진했던 이들이 꿈꾸었던독립적인 글로벌 플레이어라는 비전 대신, 오히려 미국의 요구에 더 취약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키어 스타머 역시 이 현실을 모르는 정치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브렉시트 재협상이나 유럽연합 재가입 같은 선택지는 분명히 선을 그어왔다. 국내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영국 사회를 깊게 갈라놓은 정치적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선택한 대서양 동맹 중심의 외교 전략이 때로는 예상치 못한 대가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디에고 가르시아를 둘러싼 갈등처럼,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전략이 오히려 외교적 압박과 굴욕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안고 있는 전략적 취약성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첨부 이미지

런더의 한 아파트. 위아랫집이 각각 브렉시트 독려 문구와 반대 문구를 내 건 모습. 출처: Philip Stevens - Own work, CC BY-SA 4.0

 

트럼프 2기가 바꾸는 게임의 문법

 

역사적으로 영미 관계는 여러 차례 흔들렸지만, 동맹의 기본 틀 자체가 무너진 적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두 나라가 공유해 온 이념적 기반에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다자주의, 법치라는 원칙. 특히 냉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이른바규칙 기반 국제 질서에서 영국은 가장 충실한 동맹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이 전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미국은 점점 더 다자주의 기구와 거리를 두고, 국제법이나 제도적 합의보다미국 우선이라는 국가 이익을 노골적으로 앞세운다. 동맹 관계에서도 공동의 가치나 역사적 연대보다는 방위비 분담과 경제적 이익을 먼저 묻는다. 이런 환경에서특별한 관계라는 이념적 수사는 점점 설득력을 잃는다. 남는 것은 계산과 협상의 언어다.

영국 역시 이 변화 속에서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스타머 정부가 처음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 사용을 거부했을 때 내세운 논리는 국제법이었다. 이는 법치와 규범을 중시해 온 영국 외교의 전통적 원칙과 일치하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란의 반격이 시작되자 영국은 곧바로 입장을 수정했다. 제한적인 방어 목적이라는 조건을 붙이기는 했지만, 결국 동맹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장면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영국이 진정으로 우선하는 것은 국제법인가, 아니면 동맹인가.

트럼프의 시각에서 이 모순은 다르게 읽혔다. 그는 그것을 원칙과 현실 사이의 외교적 균형이 아니라, “결정이 지나치게 늦은 동맹의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세계관에서 동맹은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협력 구조이지, 규범적 고민을 오래 끌어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트럼프 자신은 영국과의 관계를 점점 더 노골적인 언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2026년 현재 그는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영미 관계는예전 같지 않다.”

외교의 세계에서 이보다 더 직접적인 신호는 드물다.

파이브 아이즈와 오커스

 

그렇다면 영미 동맹은 이미 끝난 것일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정치적 긴장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층위에서 협력의 구조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파이브 아이즈다. 파이브 아이즈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다섯 나라가 참여하는 정보 공유 동맹이다. 이 협력 체계의 기원은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영국이 체결한 비밀 정보 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냉전을 거치면서 이 협정은 다국가 정보 네트워크로 발전했고,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밀한 정보 협력 체계로 유지되고 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각국 정보기관은 통신 감청 자료와 분석 정보를 공유한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국가의 전략 활동, 국제 테러 조직의 움직임, 사이버 안보 위협 등이 이 체계를 통해 분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이 이 동맹의 회원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부 협력은 이루어지지만, 공식 회원국은 여전히 다섯 나라에 한정되어 있다.

또 하나 중요한 협력 틀은 오커스다. 2021년 발표된 미국, 영국, 호주 사이의 삼각 안보 동맹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협정의 핵심은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이전하는 계획이다.

이 결정은 국제 안보 역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다. 미국과 영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제3국에 공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 나라 사이의 군사·기술 협력이 얼마나 깊은 수준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런 협력 구조들이 정치 지도자들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가실망했다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협력과 군사 기술 협력의 체계 자체가 흔들린 징후는 아직 없다.

이 점에서 보면 영미 동맹의특별함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달리한 채 기능적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 언어와 외교적 감정이 흔들릴 때에도, 안보 협력의 기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첨부 이미지

오커스 국가들이 커버하는 지역. 호주(노란색), 영국(파란색), 미국(초록색)의 영토 및 영해. 여기에는 호주와 영국이 주장하는 남극 영유권도 포함된다. 출처: BilledMammal - Own work(?), based on File:Territorial waters - World.svg, CC BY-SA 4.0

 

처칠이 만들고 트럼프가 시험하는 것

 

처칠이 1946 "특별한 관계"라는 말을 썼을 때, 그것은 약해진 영국이 강한 미국과 함께 서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에서 나온 선언이었다. 그는 이 관계가 이해관계를 넘어선 정체성의 유대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역사, 언어, 문명이라는 공통의 이야기를 엮었다.

80년이 지난 지금, 처칠의 후계자들은 그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워싱턴과 마주하고 있다. 트럼프의 언어에는 공통의 역사나 민주주의 이념이 없다. 당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만 있다.

스타머 총리는 왕실의 포의와 처칠의 문서로 트럼프의 허영심을 달래고, 미국 기업 투자를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이 새로운 현실을 헤쳐나가고 있다. 그것이 옳은 전략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영미 관계가 더 이상 "특별하다"는 말 하나로 유지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처칠은 동맹을 이념으로 설계했다. 트럼프는 그것을 거래로 재설계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영국은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다시 묻고 있다.

그 물음의 답이 결국 영국만의 것이 아님을, 이 뉴스레터를 읽는 독자들도 어렴풋이 느낄 것이다.

처칠이 만들고 트럼프가 시험하는 것

1946년 윈스턴 처칠이특별한 관계라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 그것은 낭만적인 표현이라기보다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나온 선언이었다. 제국의 힘이 서서히 기울고 있던 영국에게, 떠오르는 초강대국 미국과의 결속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까웠다. 처칠은 이 관계를 단순한 군사 동맹 이상의 것으로 설명하려 했다. 역사와 언어, 정치 제도, 그리고 문명적 전통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두 나라의 결속을 정당화했다. 이해관계의 계약이 아니라 정체성의 유대라는 서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80년이 흐른 지금, 처칠의 후계자들은 전혀 다른 정치 언어로 말하는 워싱턴과 마주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 언어에는 공통의 역사나 민주주의적 이상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질문이 반복된다.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동맹의 성격을 미묘하게 바꾼다. 과거에는 공유된 가치가 관계의 토대였다면, 이제는 거래와 협상이 관계의 중심에 놓인다. ‘특별한 관계라는 말이 지닌 상징적 힘이 점차 약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조심스럽게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왕실의 환대와 처칠의 문서를 통해 역사적 유대를 상기시키고, 동시에 미국 기업의 투자와 경제 협력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옳은 전략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영미 관계가 더 이상특별하다는 한 문장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칠은 동맹을 이념으로 설계했다.  트럼프는 그것을 거래의 언어로 다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영국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신은 과연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영국만의 고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날 국제 질서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같은 물음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THE PUNT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THE PUNT

영국 인문교양 뉴스레터 | 매주 여러분의 시야를 영국이 전세계에 미친 광활한 영향력만큼 넓고 깊게 확장해드립니다.

뉴스레터 문의hello@thepunt.co.uk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