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그리고 이국적인 야자수가 늘어선 풍경. 하와이와 오키나와는 우리에게 흔히 ‘천혜의 휴양지’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실제로 연간 천만 명에 육박하는 발길이 이 섬들로 향합니다.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오키나와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 중 하나로, 2025년 오키나와현 발표에 따르면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31%가 한국인이었을 만큼 그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하와이 역시 연간 15만 명의 한국인이 찾으며, 미 본토를 제외하면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방문객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하와이에서 마주했던 공기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볕은 뜨거워도 습도가 낮아 쾌적했던 날씨, 맨발로 거닐어도 이질감 없던 깨끗한 거리의 질감은 어린 마음에도 무척이나 이국적인 해방감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찬란한 햇살 아래를 거닐며 우리가 보는 것은 섬의 온전한 얼굴일까요? 눈부신 겉모습에 가려진 채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번 <캠프페이지> 기획에서는 화려한 휴양지의 그늘에 숨겨진 제국주의의 상흔과, 그 땅의 진짜 주인인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찬찬히 들춰보려 합니다.
제가 하와이와 오키나와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계기는 지난해 말에 진행된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FIPS)의 세미나였습니다. <전쟁, 관광, 그리고 여가>라는 주제였는데요. 서로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세 키워드들, “전쟁, 관광, 여가”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역사를 통해 의도적으로 주고받은 상관관계를 탐구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휴식과 여가를 위해 찾았던 휴양지가 대중 관광지로 발전하면서, 전쟁의 아픔과 군사기지의 어두운 면을 관광 산업이 가려주게 된 ‘밀리-투어리즘(militourism)’의 역사를요. 밀리투어리즘은 태평양학 연구자 테레시아 테아이와(Teresia Teaiwa)가 1994년에 제안한 개념으로, “군사 및 준군사 세력이 관광 산업의 원활한 운영을 보장하고, 동시에 그 관광 산업이 배후의 군사 세력을 은폐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군사관광복합체로 번역되기도 하고요. 여기에 더해 일본의 비교문화학자 카오리 타카다(Karoi Takada)는 베트남 전쟁 시기에 제트 터빈 엔진으로 구동되는 항공기의 등장이 밀리투어리즘을 한층 가속화시켰다고 말하는데요. 미군을 위해 구축되었던 군사-관광-항공 복합체가 태평양 횡단 항공 노선의 개설로 확장되면서, 하와이와 오키나와를 군사화와 관광화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두 섬의 역사는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습니다. 본래 섬에 거주하며 고유의 문화와 역사, 가치를 만들어 낸 네이티브 하와이안 카나카 오이위(Kanaka ʻŌiwi) 그리고 류큐인(琉球)이 있었다는 것. 그러다가 제국주의 시대, 혹은 그것보다도 더 이전에 미국과 일본에 의해 선주민들의 땅이 강탈당하고, 오래도록 지켜온 고유의 문화는 금지되었으며, 왕국이 폐지되고, 미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에 동의 없이 합병되었던 것이 그렇습니다. 인기 있는 관광 체험 코스가 된 하와이의 ‘돌(Dole) 파인애플’ 농장과 오키나와의 사탕수수 농장은 이러한 식민 역사의 배경을 딛고 있습니다.
커다란 세계 전쟁들 속에 하와이와 오키나와는 격전지였습니다. 수많은 존재들이 죽음을 맞은 땅이지만, 자본은 그 죽음마저도 관광산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하와이의 펀치볼 국립묘지와 진주만에 세워진 USS 아리조나 기념관은 “‘정의로운 전쟁’에서 희생을 치른 미국 육해군 병사들을 추모하는 동시에 경계심을 통해 미국의 국가 안보를 강화함으로써, 하와이를 미국의 전쟁 문화 속으로 통합하는” 기능을 합니다(Takada, 2024). 하와이 왕국과 원주민들이 겪은 폭력을 역사 속으로 은폐하는 것이죠. 관광 산업은 또한 하와이 공동체가 기억과 언어, 주권을 재생산하는 핵심적인 문화적, 정치적 도구인 ‘훌라(Hula)’를 단순한 공연 예술로 격하했습니다. “저항과 거부(ʻAʻole), 그리고 ʻāina(땅)에 대한 사랑과 책임(aloha ʻāina)을 드러내는 문화적 실천”인 훌라를 환대의 춤으로 상품화한 것이죠. ‘하와이는 환대와 즐거움의 장소’라는 이미지와 함께요(Aikau & Gonzalez, 2019).
한편, 오키나와의 민중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 이후 스스로 ‘오키나와 평화 박물관’을 일구어냈습니다. 오키나와 대학교와 함께 뜻을 모은 이들은 그 땅에서 스러져간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기억하고 애도하고자 했습니다. 그 애도의 명단에는 미군과 일본군은 물론, 강제로 끌려와 희생되어 역사 속에 방치되었던 남한과 조선의 청년들까지 온전히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본토에서 밀려온 거대 기업들은 미군 전용 럭셔리 호텔의 화려함을 본떠 이른바 ‘미국 서부 해변 스타일’의 리조트들을 해안가에 짓기 시작했습니다. 오키나와가 품은 전쟁의 상흔 위에 ‘제2의 하와이’라는 이름으로 관광산업을 덧칠한 것입니다.
하와이와 오키나와의 햇살은 참으로 따사롭습니다. 하지만, 이들 섬의 아름다움만을 즐기기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아픔과 드러나지 않은 진실들이 많습니다. 미군 기지가 배출하는 갖가지 오염 물질로 인한 피해, 전투기 및 헬리콥터 소음 피해, 미군에 의한 강력 범죄, 연합 군사 훈련 중 해양에 무차별하게 버려지는 군함과 미사일들, 주민 1인당 관광객 6명이라는 관광 과밀화로 인한 환경 오염과 주거비 상승 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권리, 평화롭게 살 권리를 침해 받은 경험이 하와이와 오키나와의 주민들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캠프페이지 기회를 통해 하와이와 오키나와를 불편하게 여행할 용기를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혹은 호쿨라니 아이카우(Hokulani K. Aikau)와 버나데트 곤잘레스(Vernadette Vicuña Gonzalez)의 제안처럼 관광객으로서 ‘원주민이자 비원주민인 우리의 고향을 찾아오지 않는 것’, 즉, 관광적 상상력을 거부하고, ‘그들’의 문화적 실천에 대한 점령과 식민화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 편을 택할 용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이나(ʻāina, 땅)와 와이(wai, 물)가 포에(poʻe, 민중과 생명체들)를 지속적으로 부양할 수 있으려면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다시)배워야” 하니까요.
참고자료
Hokulani K. Aikau & Vernadette Vicuña Gonzales (2019), Detours: A Decolonial Guide to Hawaii, Duke University Press.
Karoi Takada(2024), Jet age Militourism in Hawai‘i and Okinawa during the Vietnam War, The Journal of Transport History
Teresia Teaiwa(1999), “Reading Paul Gauguin’s Noa Noa with Epeli Hau ‘ofa’s Kisses in the Nederends: Militourism, Feminism, and the “Polynesian” Body,” Vilsoni Hereniko and Rob Wilson (eds.), Inside Out: Literature, Cultural Politics, and Identity in the New Pacific (Lanham MD: Rowman and Littlefield).

/ 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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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가연님 글 너무 잘 읽었어요! 야밤에 열렸던 세미나가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오늘 마침 하와이 민중들 투쟁 훌라를 배우러가는데!!!!!! 이 글을 읽은 건 우연이 아닌거같아요! E nā kini o ka 'āina e ala mai (이 땅의 사람들이여, 깨어 일어나라!)
gayeon
끄아~ 운명이네요!! 한나님이 읽어주시니 더욱 감사해요🤗🤗투쟁훌라라니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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