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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와 함께 살아가기

2026.05.13 | 조회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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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해안 마을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거대한 변화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사람들은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해 조용하고 느긋한 삶을 떠올리곤 하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기후 변화로 인한 바다의 변화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밀려오고, 항구는 매일같이 공사가 이어진다.

우리 마을은 2010년대 초반, 마을 발전을 위해 원자로를 닮은 거대한 LNG 기지 건설을 유치했다. 도시로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고 어업마저 지속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가 규모의 인프라 사업을 통해 마을의 활로를 찾자는 취지였다. 이는 유치를 추진한 사람들의 청사진이었고, 실제로는 연세를 드신 대다수의 주민들은 몇 년 전 폐업한 마을 목욕탕을 다시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찬성했다. 그렇게 상상 속의 동네 목욕탕과 시멘트로 이루어진 거대한 인프라가 맞바뀌었다.

사업이 시작된 지 15년이 흘렀다. LNG 기지는 완공되었고 항만도 크게 확장되었다. 그 결과 매일같이 모래와 시멘트가 하역되며 먼지 바람이 날린다. 그러나 정작 약속했던 동네 목욕탕은 아직도 지어지지 않았다. 대신 중앙 정부의 다른 사업을 통해 보육 시설과 수영장이 포함된 거대한 SOC(Social Overhead Capital,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들어섰고, 목욕탕은 올해가 되어서야 그 건물의 일부로 마련되었다.

목욕탕과 LNG 기지는 둘 다 인프라다. 인프라스트럭처란 삶의 기반이 되는 물질적·제도적 구조를 뜻한다. 그러나 인프라는 언제나 특정한 형태의 삶만을 지탱한다. 동네 목욕탕이 밭일과 생업에 지친 어르신들이 모여 서로의 삶을 나누고 돌봄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인프라라면, LNG 기지는 도시 아파트 거주민들에게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신재생에너지로 분류되어 광역자치단체 차원의 그린워싱에 활용되는 인프라다. 정작 우리 마을처럼 작고 인구가 적은 지역에는 도시가스 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LNG 시설을 유치했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인프라를 언제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프라는 근대 국가의 형성과 함께 등장했고, 더 나은 미래라는 청사진을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울에 살고 싶어 하고 작은 어촌에는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 역시 인프라의 풍요와 결핍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놓치는 점은, 인프라가 삶을 편리하게만들 수는 있어도 그것을 자동으로 더 좋은 삶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프라는 무엇이 더 좋은 삶인지 스스로 묻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인프라를 설계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명한 전제로 놓여 있을 뿐이다.

인프라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정한 인프라는 특정한 집단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부담은 다른 곳으로 이전된다. 쓰레기 매립장과 소각장, 발전소와 데이터센터, 화장터와 골재·건재 업체 같은 필수 시설들이 대표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인프라를 대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에 짓기 위해 동원된 홍보 문구들은 점점 더 세련되어졌다. 지역 발전, 경제 활성화, 청년 일자리, 보상금 지급, 문화체육센터 건립, 관광산업 육성, 부동산 가치 상승 같은 말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마을에 필요한 인프라는, 앞서 이야기한 목욕탕처럼 계속 미뤄지거나 끝내 지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더 나은삶이고 미래인지를 이런 홍보 문구에만 맡겨둔다면, 우리 마을에는 빈집과 빈터만 늘어날 뿐이다. 결국 세워지는 거대한 인프라는 모두의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프라는 점점 더 자본의 사적 소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지도 앱, 결제 앱, 건강관리 앱, 공유작업 플랫폼, 생성형 AI 같은 애플리케이션과 프로그램은 이제 현대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반, 즉 인프라로 기능한다. 우리는 SNS와 지도, 결제 시스템이 결합된 플랫폼을 통해 약속 장소를 찾고, 음식을 주문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한다. 여기에 국가는 공문서 확인이나 신원 인증 같은 기능까지 연결한다. 그러나 공공재처럼 기능하는 이러한 인프라의 소유권은 대부분 사기업에 있다. 우리가 세상과 타인,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규정하는 이 인프라들은 어느새 더 나은 삶을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문화이론가 Lauren Berlant은 인프라를 커먼즈를 가능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관계적 시스템으로 정의했다. 오늘날의 인프라가 특정한 삶의 방식만을 지탱하도록 설계된다는 것은, 결국 그 인프라를 통해 형성될 수 있는 커먼즈의 범위를 축소하는 일이다. 인프라의 민영화, 앱의 인프라화, 수익이 되지 않는 기반시설의 포기 같은 현상들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인프라는 단지 자본의 도구가 아니라, 기후위기와 ()종적·사회적 불평등 속에서도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발명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인프라가 가진 정치성이다.

우리의 몸은 수십 조 마리 미생물의 삶을 지탱하는 인프라가 된다. 또 누군가에게는 돌봄의 인프라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바위는 다양한 동식물과 균류, 지의류의 삶터가 된다. 이러한 인프라는 더 나은 미래라는 환상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 생존하고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이미 자연은 인프라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가 겸손하게 배울 차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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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근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바닷가에 살며 고사리를 좋아하는 퀴어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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