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즐겨드시나요? 저는 미군이셨던 이모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스팸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짭조름하고, 독특한 풍미 때문에, 당시 시중에 나왔던 다른 햄 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 두고 먹기도 좋아서, 요즈음에도 종종 먹게 되는데요.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친숙하게 소비되는 스팸은 괌과 태평양 섬의 주민들에게는 식품 그 이상의 의미로 존재합니다. 특히 괌은 세계에서 하와이 다음으로 스팸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매년 평균 1인당 16캔 이상 소비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요. 다양한 맛의 스팸이 출시되고, 스팸 요리 경연대회가 있을 만큼 스팸을 사랑하게 된 태평양 섬에는 어떤 역사가 숨어 있을까요?
괌 차모로족과 사모아 선주민들은 가금류를 길들이고, 코코넛, 토란 같은 작물을 재배하면서 오래도록 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에서 신선한 먹거리를 채취하고, 먹기 좋게 가공하는 과정은 영양가도 풍부했지만, 그 작업 과정에서 소비되는 칼로리량도 많아서 섬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이었어요.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일본군은 괌 지역의 식량을 대규모로 몰수했고, 미군은 일본으로부터 괌을 탈환하기 위해 폭격을 퍼부어 괌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섬의 3분의 2를 미군이 장악해버리면서, 땅과 바다에 의지하여 삶을 영위하던 주민들은 졸지에 터전과 일자리를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먹거리를 구할 방법도 없어졌을뿐더러, 생전 처음으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직업을 가져야 했죠. 이러한 상황에서 미군이 군 저장고에 가득했던 통조림을 공급해 준 것은 ‘구원’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이 통조림 중 대표적인 제품이 스팸¹이었고요. 괌 역사학자 앤 페레즈 하토리(Anne Perez Hattori)에 따르면, 괌 주민들 중 일부가 스팸을 보고 ‘감정적인 반응’을 느끼는 것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게 해준’ 미국의 용맹과 그 결과로 얻은 ‘자유’를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차모로족의 땅과 목숨을 희생한 대가인데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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