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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힘을 아는 사람 / 가연

2025.03.18 | 조회 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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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슬래시

평화와 커먼즈의 렌즈로 세상을 봅니다.

주일 미군 기지의 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 곳, 오키나와.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이는 미군기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오키나와 반환 50주년이었던 지난 2022년 5월,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지역으로 이전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여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출신의 진시로 모토야마(Jinshiro Motoyama, 이후 진시로)님의 이야기입니다.

2019년 2월 24일에 진행된 주민투표 피켓을 들고 있는 진시로 모토야마
2019년 2월 24일에 진행된 주민투표 피켓을 들고 있는 진시로 모토야마

진시로님의 고향 기노완시에는 전투기 훈련이 상시 벌어지는 주일미군 해병대 후텐마 기지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오키나와는 전쟁이 끝나고도, 미군의 관리하에 남았고, 일본에 주권이 넘어간 1972년 이후에도 미군 기지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오랜 주둔 역사만큼 미군 기지와 관련된 범죄와 사고들도 끊이지 않았는데요. 시 전체 면적의 4분의 1에 달하는 후텐마 기지는 시내 정중앙에 떡 하니 위치해 그 위험성과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결국 1995년에 일어난 주일 미군의 여학생 납치 및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후텐마 기지를 완전 철수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이듬해인 1996년에 후텐마 기지의 반환이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현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현 헤노코 지역에 이전하겠다고 밝혔지요. 헤노코 앞바다를 매립하는 일을 감수하며 미군 기지를 오키나와에 유지하겠다는 미군과 일본 정부의 결정은 한때 철회되었지만 여전히 강행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요 입장 중 하나는 오키나와가 한반도 및 대만과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이에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 그리고 중국과 대만 사이의 무력 충돌에 대비해야 한다는 ‘안보상의 이유’이지요. 미군기지가 주둔한 지역의 안보는 무참히, 그리고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국가의 안보를 위해, 그리고 만약의 전쟁을 준비하며 기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시로님이 동료 시민들과 ‘2019 오키나와 주민 투표’를 조직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위협에 맞선 주민들의 목소리가 ‘국가 안보’라는 명목 아래 묵살당하는 일을 멈추어야 했으니까요. 주민 투표는 의사결정권자들에게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을 반대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틀이기도 했습니다.

2019년 2월 24일에 진행된 오키나와 주민 투표는 오키나와 유권자의 52%가 참여했는데요. 헤노코에 기지를 이전하는 것을 찬성한다, 반대한다, 그리고 ‘어느 쪽도 아니다’라는 선택지를 두고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참여한 주민 중 72%가 반대표를 던졌죠. 오키나와 유권자의 25%를 넘어선 이 결과는 오키나와현의 조례에 따라 중앙 정부와 미국에 전달되도록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총리였던 아베는 투표 다음 날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기지 이전을 더 늦출 수는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민들을 대의할 의무가 있는 의사결정권자가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수렴된 시민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해버린 것이에요. 투표 결과가 법적인 강제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였죠.

진시로님이 주민 투표가 끝나고 3년이 지난 후 단식 투쟁을 벌인 것은 일본 정부가 오키나와 현민들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했지만, 미군 기지의 주둔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라며 동료 시민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2022년 5월 15일은 오키나와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반환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에 일본 헌법을 적용하고,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기지의 비율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 국민과 정부에게 묻고 싶었어요. 도대체 무엇을 '기념'하는 날인지 말이죠."

2022년 5월, 진시로님은 일본 총리 공관 앞에서 단식 투쟁을 했다. Photo by Mika Kurahara
2022년 5월, 진시로님은 일본 총리 공관 앞에서 단식 투쟁을 했다. Photo by Mika Kurahara

그로부터 다시 1년여 시간이 지난 지금, 오키나와 주민들의 결정이 미친 효과는 옅어졌고, 중국을 동북아시아의 안전상 위협으로 상정한 미국과 일본은 주일 미군 기지를 대만 해협에 가까이 배치하며 기지의 존재를 더 뚜렷이 만들고 있습니다. 선출된 의사결정권자들에 비해 ‘모두’가 가진 결정의 힘은 억울하리만큼 작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힘이라고 스스로 내려놓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진시로님은 ‘서로’가 가진 힘을 짚어냅니다. ‘모두’의 목소리는 몇몇 선출직 의사결정권자들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힘이 되고, 동시에 몇몇 의사결정권자들이 ‘모두’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의견이 ‘모두’가 결정권을 포기하지 않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요. 그러면서 넓은 범위의 시민들이 기지 문제에 접속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합니다. 진시로님은 가까운 미래에 일본 전국을 대상으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두고 국민 투표를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더불어 시민들이 기지 문제를 비롯해 자신들의 일상에 관여된 여러 이슈들에 대한 국민 투표를 손쉽게 제안할 수 있는 법적인 시스템 또한 구상하고 있다고 해요.

“기지를 옮기거나 철수하게 만드는 데 근본적인 요소는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행동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나 법을 만드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다양한 일상을 사는 시민들이 기지 문제에 접속할 수 있는 느슨한 경로들을 열어놓는 일의 중요성 또한 짚습니다. 진시로님이 오키나와 주민 투표가 있었던 2월 24일을 기념하는 ‘224 뮤직 페스티벌’을 네 해째 조직하고 있는 이유도 그중 하나입니다.

“오키나와의 교수님과 연구원들, 아티스트들과 함께 뮤직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해에는 경제와 자치, 헤노코 기지 문제, 대만 위기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술가 중에는 미군기지나 평화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런 아티스트가 이번 음악제에 참여한다면, 팬들은 미군기지를 포함한 오키나와의 사회 문제에 대해 알게 되죠. 이 이슈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가 마련되는 거에요. 사람들이 이 입구를 지나가면 관련된 이슈를 계속 배우거나 공부하게 되죠. 음악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매우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2015)’을 쓴 사회심리학자 하랄드 벨처는 메타 위기를 직면한 지금 같은 시대에 변화는 개개인의 욕망을 자제하거나 국제 정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행위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장차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와 관련한 민주주의적 문제’ 즉 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인 중간 차원에서 벌어지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변화에 문화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야말로 다차원적인 위기가 더 구체화되지 못하도록 함께 막아내는 길이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진시로님은 변화를 위한 방향성을 그려내는 문화적인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입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견뎌내거나 혹은 그 반대로 국제적인 차원에서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그 사이의 문화적인 영역에서 모두의 힘을 엮어내고 있으니까요. 문화적 행위를 통해 권력을 커머닝함으로써, 평화를 커먼즈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오키나와 사람입니다. 일본 여권을 갖고 있지만, 저는 스스로를 일본인이 아니라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속한 공동체는 오키나와입니다.”

 

/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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