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 온 지 4년이 됐다. 코로나가 모든 것을 멈춰 세우던 시절, 전세 사기까지 겹치며 서울에서의 삶을 더 이상 붙잡을 여력이 없었다. 미세 먼지와 교통 체증 속이 아니라, 드넓은 자연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좀 조용히 살고 싶었다. 오래 오래, 여기서. 나처럼 그렇게 이주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떤 이들은 한 달만 살아보겠다고 왔다가 일 년을 살았고, 어떤 이들은 어촌 유학으로 왔다가 정착했다. 나는 처음부터 눌러 앉을 생각으로 왔다.
첫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60명 남짓 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지만 걸어가기엔 멀어서 스쿨버스가 집 앞까지 온다. 전교생 돌봄과 방과후를 운영해서 아이는 4시 반쯤 집에 돌아온다. 따로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돌봄의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처음엔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선생님이 아이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여겨주시는 게 느껴졌고, 반 친구들과 1학년 새학기부터 꾸준히 매달 등산을 해서 2학년 11월엔 울산바위 원정 6시간 대장정을 해냈다. 함께 성장하고 돈독해지는 경험. 서울에서는 쉽게 누리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니 아이는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드럼과 태권도, 배드민턴 선수단까지 하고 싶어 했다. 경제 상황 상 태권도 학원 하나 정도 보낼 수 있었는데 집과 학교 근처에는 학원이 없다. 옆 동네 속초까지 나가야 한다. 결국 매일 차를 몰고 아이를 픽업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사실 서울에서도 픽업 차량들이 학원가에 진을 친다고 하니 이 정도는 그럴 수 있지 싶기도 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병원이 멀다는 것. 큰 병원은 특히 멀어서 아이가 아플 때면 긴장이 됐다. 공연이나 전시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지역에서 그런 기회는 정말 귀하다.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에 대한 갈증이 쌓였다.
그럴 때면 버스와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대학로에서 연극도 보고, 국립박물관도 가고, 놀이공원도 가고, 비건 페스티벌도 가고, 수만 명이 모인 기후정의행진에도 참여했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풍성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을 때마다 도시를 찾아 갔지만 매번 이렇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서울을 동경하며 지방 생활을 버티는 삶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됐다. 도시를 배회하다 보면 살고 있는 지역에 애정을 느끼기도 힘들었다.
지금 나는 숙소를 운영한다. 부부가 함께 시작했지만 남편이 직장을 구하면서 청소, 세팅, 예약 관리, SNS 홍보, 그리고 4시 이후 귀가하는 아이 돌봄까지 대부분의 일이 내 몫이 됐다. 숙박업도 엄연한 공적인 일인데 업무의 패턴은 가사노동과 너무 닮아 있어서, 체크아웃과 체크인 사이 제한 시간 안에 청소를 끝내고 나면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경력 단절과 긴 독박 육아 속에서 서서히 멍들어갔던 시간이 되감기 됐다. 숙소 일은 연휴, 주말, 아이들 방학 때가 가장 바쁜데, 바로 그 시간들이 아이들과 더 잘 보내고 싶은 시간들이기도 했다. 그 어긋남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딱히 털어놓을 곳도 없어서 고립감을 느꼈다.
그 사이 지역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매매가가 서울과 별 차이 없다는 신축 아파트들이 바닷가 옆에 줄지어 들어서고, 관광객을 위한 카페와 식당이 골목마다 들어찬다. 문화예술회관이나 전시관 같은 인프라는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만 정작 공연이나 전시 프로그램이 부족해 시설 이용률이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결국 관광객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속초와 고성의 상권이 관광객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주민을 위한 문화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나 역시 그 구조 안에서 수입을 얻고 있다. 땅값을 올리고 원주민의 자리를 좁히는 흐름에 나도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 아이러니가 때로 나를 불편하게 했다. 오래 오래 살고 싶어서 왔는데, 이런 방식으로 이 지역에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까?
답이 없는 고민들과 스멀스멀 잠식하는 고립감에서 나를 건져낸 건 뜻밖에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었다. 속초의 독립서점 완벽한 날들에서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독서모임 '가벼운 나날'에 문을 두드렸다. 4년 전 봄이었다. 함께 책을 읽고 삶을 나누는 언니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우울감에 허덕이며 서울만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안전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고, 서울이 아니어도 풍성한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서울을 떠남으로써 오히려 열리는 다양한 삶의 실험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책 한 권으로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과 더불어, 물리적 생산성이라고는 없는 그 시간이 주는 깊은 사유와 연대가 삶을 어떻게 해방시키는지를 매번 체감했다.
작은 모임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용기가 생겼고 숙소에서 고유살롱을 열었다. 숙박 손님들과는 길어야 몇 마디 나누는 정도가 전부였지만, 살롱에 참여한 분들과는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나눌 수 있었다. 자그마한 2인 숙소에 새로운 활기와 이야기들이 머물렀다. 이런 만남들을 통해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가 지켜내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지 좀 더 깊고 넓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관광객을 맞이하는 일과 주민으로서 살아가는 일 사이 어딘가에서, 내가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윤곽이 잡혀갔다.
재작년 여름, 속초 밤골 마을에서 진행하는 전시 프로젝트에 우연히 참가하게 됐다. 속초와 고성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세 명이 직접 어린이 전시를 기획했다. 관광 위주의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주민들을 위한 문화 예술 기회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내 아이도 그 전시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바다와 숲, 함께 살아가는 지구 생명들을 담은 그림과 수공예 작품들을 들고 도슨트로 나선 아이의 전시 제목은 '세상을 조율하는 놀이터'였다.
전시 기획자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문화예술을 누리기 위해 바깥으로만 배회하다 보면 지역에 애정을 갖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지역을 사랑하기 위해 이 실험을 시작했다고.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부족하다고 탓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나도 무언가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 같은 것이 생겼다.
서울에서 하던 일이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일이었다. 그걸 좀 살려보고 싶었다. 고성문화재단 소식지 인터뷰 제안을 받아 시작했고, 그 뒤로도 관심 있는 분들께 직접 인터뷰를 요청해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하기도 했다.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누군가의 이야기 앞에 앉을 때, 오랫동안 납작해져 있던 무언가가 다시 일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소소한 목표가 생겼다. 이 지역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이다. 왜 여성인가. 뚜렷한 이론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여성으로서 이 지역에서 아이를 돌보고, 교육을 책임지고, 숙소를 운영하며 살아오면서, 그 무게를 온몸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돌봄의 공백이 생길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문화적 고립을 가장 조용히 견디는 사람이 누구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나보다 훨씬 오래, 다른 방식으로 이 지역을 살아온 여성들은 어떻게 버텼을까. 어떻게 살아왔을까.
관광객의 시선으로 소비되고, 부동산 개발의 논리로 재편되고, 외부의 언어로 정의되는 지역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나 역시 그 구조 안에 있으면서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 안에서 묵묵히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기록되지 않는다면, 지역은 모두의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자들의 것이 될 뿐이다. 그래서 같은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만나며,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는 방식으로. 녹음기를 켜고, 받아쓰고, 다시 읽으며, 그 삶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고 싶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했던 그 말처럼.
여성 어민, 군인, 군부대 옆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는 주부, 실향민, 도서지역 학교의 교사, 환경운동가, 예술가, 지역문화 활동가 등 동해와 DMZ가 동시에 보이는 이 땅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여성들. 지역의 역사를 말할 때, 그 이름들이 불려 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기획단계에 있고, 고성문화재단의 지원사업으로 올해 11월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글쓰기 주제를 듣고 고민이 많았다. 주류에서 미끄러지고 비껴나간 존재들을 글 속에 다 그러모을 능력은 없어서 ‘나’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했다. 그 '모두' 안에 오래 살아온 여성들이, 이주해 온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며 고립감을 견뎌온 여성들이, 그리고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포함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이야기가 기록될 때, 지역은 비로소 조금 더 모두의 것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문슬아(스라봉)
강원도 고성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민박을 운영합니다. 일상에서 길어올린 마음과 갈등을 글로 쓰고, 지구가 끝나가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 고유하고 근사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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