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삶에 닿는 가장 가까운 정치

동네 정치가 필요하다

2026.05.13 | 조회 41 |
0
|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정치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봄은 꽃의 계절이 아니라 선거의 계절이다. 5년마다 대선, 4년마다 총선과 지선. 여기에 각종 보궐선거까지 더하면, 선거가 없는 해가 확률적으로도 훨씬 적다. 대선은 5월에, 지선과 총선은 6월에 치르니까 봄은 늘 선거를 알리는 신호가 된다. 나 역시 4월이 되면 벚꽃보다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중에서도 지방선거가 보여주는 풍경은 좀 다르다. 한 명만 고르면 되는 대선, 지역구 후보 한 명과 비례대표 정당 두 개만 찍으면 되는 총선과 달리 지선은 투표용지가 일곱 장이다. 광역단체장, 교육감, 기초단체장, 도의원, 시의원, 도비례, 시비례. 당연히 후보도 가장 많고, 선거의 그물코도 가장 촘촘하다. 4년마다 지선이 돌아오면 거리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목 좋은 건물에는 대형 현수막을 두른 후보 사무실이 들어선다. 길거리에서는 온갖 선거 아이템을 몸에 장착한 후보들이 시민들에게 한껏 허리를 숙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지선의 투표율은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낮고 심지어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0.93%로, 2018년 제7회에 비해 무려 9.27%포인트나 하락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지선은 50% 이하로 내려앉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국민의 절반이 투표하지 않은 대표를 선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우리는 제대로 마주하고 있을까?


낮은 투표율의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적어도 지선에 관해서는 '정치 효능감'이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쉽게 말해,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 비해서 지역의 단체장이나 교육감, 지방의원을 뽑는 지선은 유권자들이 체감하는 효능감이 확연히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후보가 너무 많다.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 후보까지 내려가면 솔직히 내 지역의 지방의원이 누구인지 아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지선에서 가장 많이 선출하는 사람이 바로 그 지방의원, 특히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서 일해야 하는 기초의원이다. 지난 선거 기준으로 2,988명의 지방의원이 당선되었고, 이번에는 3천 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뽑히고 나면? 언론과 미디어는 지방의회나 지자체의 정치적 역동성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가끔 외유성 해외연수니 뇌물 수수니 하는 비리와 스캔들로만 지방의원이 뉴스에 등장할 뿐이다. 가장 많은 인원을 뽑는 선거에 가장 낮은 투표율. 가장 가까이에 있어야 할 정치인인데 가장 낮은 인지도.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방의원은 정당 공천없이 무공천으로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방의원 선거는 2006년 이전까지 정당 공천 없이 치러졌다.

무공천을 지지하는 논리는 이렇다. 현재 양당 구도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사실상 당선이 확정되는 지역이 수두룩하다. 주민을 위해 일할 사람이 아니라, 당내 공천을 잘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뽑히는 구조다. 당내 공천은 어떻게 받느냐? 양당 모두 '시스템 공천'을 천명하지만, 지역위원장을 겸임하는 현직 국회의원에게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지역 국회의원이나 당내 파벌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무공천으로, 정당의 영향없이 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후보를 뽑자, 이건 꽤 합리적으로 들린다.

다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공천이 사라지면 후보는 정당이라는 정치 학습의 기회와 경로를 잃고, 홍보 채널도 없어진다. 결과적으로 지역 내에서 이미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조가 된다. 정당의 이름없이 혼자 힘으로 선거를 치르려면 돈과 인맥이 필수가 되니까.


나는 무공천이라는 해법이 결국 정당 정치를 더 취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정당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는 제도다. 정당이 지역과 주민 곁에, 동네 골목길까지 뻗어 있을 때 비로소 시민의 일상과 정치가 연결된다. 무공천은 바로 그 연결을 끊어버린다. 기초의원을 무공천으로 돌리면 정당은 풀뿌리 기반을 잃고, 광역의원이나 국회의원 같은 '공중의 정치인'만 남게 된다. 지역 현장에 발 딛지 않는 정당은 더욱 고립되어 권력 경쟁에만 몰두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시민들은 정당에 더 관심이 없어진다. 시민의 관심과 견제에서 멀어진 정당은 더더욱 이합집산과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악순환이다. 정당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정당을 약화시키면, 정당이 약해진 만큼 시민과의 거리가 더 벌어지고, 그 거리만큼 불신은 더 깊어진다. 정당 정치가 우리 민주주의의 핵심 근간이라면, 이걸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지 아예 회피해버리면 안 된다. 무공천은 해결이 아니라 회피에 가깝다.


그러면 대안은 뭘까.

원론적으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선거와 정당,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건강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의 목소리가 더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원론을 넘어서, 무공천보다 더 확실하게 지역 주민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지역정당이다.

지역정당은 한국에서 사실상 불법이다. 정당법은 정당의 설립 요건으로 '수도 소재 중앙당과 5개 이상 시·도당, 시·도당별 1,000명 이상의 당원'을 요구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등록이 불가하므로 특정 지역만을 기반으로 한 정당은 만들 수 없다.

다만 변화의 조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2023년 9월 헌법재판소는 이 전국정당 요건에 대해 판단하면서,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에 단 1명이 모자라 합헌이 유지되었지만, 과반이 넘는 재판관이 "정당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전국 규모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올해 4월에는 여야 합의로 기초단체 단위에 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게 하는 정당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사실상 지구당 부활로 읽히는 이 변화는, 정당법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당이 우리 선거와 정치의 기초적인 문법이라면, 지역민들의 자유로운 결사로 만들어진 정당이야말로 지역의 요구를 가장 잘 담아내고 가장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정당이 무공천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생각해보자. 춘천의 캠프페이지 문제를 커먼즈적으로 해결하자는 사람들이 모여 "캠프페이지를모두에게"라는 정당을 만든다고 해보자. 정당이니까 당원도 모집할 수 있다. 정당 연설회도 열 수 있다. 거리에 현수막도 걸 수 있다. 당원들이 낸 당비로 정치교육도 하고, 무엇보다 선거 때 후보를 낼 수 있다. 양당의 눈치 때문에, 공천 때문에 어떤 의견도 제대로 개진하지 못하는 그런 후보가 아니라, "캠프페이지를 시민의 품으로 돌리겠다"고 정확히 말하는 후보를 내세우고, 그것으로 표를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

지역정당이라고 하면 지역 이기주의나 극우 세력의 결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실적인 지적이다. 소선거구제가 사실상 유지되고, 비례대표제가 충분히 확대되지 않고, 위성정당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지역정당만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믿는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들이 스스로 결사하고, 정당이라는 문법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정치 시스템도 건강해진다.

상상해보고 싶다. "캠프페이지를모두에게"당과 "춘천레고랜드폐지"당이 연합해서 선거를 치르는 모습. 원주에서는 "원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당이 돌봄 정책을 새롭게 제시하고, 홍천에서는 "홍천풍천리잣나무최고"당이 양수발전소 건설을 끝까지 막아내고, 삼척에서는 "삼척청년기후긴급행동"당이 석탄화력발전소의 문을 닫으며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을 이끌어내는 모습. 그리고 이 모든 당들이 서로 연대하고 인적·물적 교류를 하며, 총선과 대선에서도 함께 대응하는 모습을. 황당한 꿈일까? 나는 이런 상상이야말로 우리 정치에 가장 필요한 종류의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하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지역은 필요가 교차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나,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의 나, 직업과 커리어를 가진 나. 이 모든 정체성이 겹쳐지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 단위가 바로 지역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경직된 양당 중심인 선거 제도 위에서 지선 투표율이 떨어지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내 생활과, 내 신념과, 내 관계와 공동체를 정말로 대변한다고 느끼는 정치인이 없다면, 내 한 표가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효능감을 느낄 수 없다면, 가장 가까워야 할 지선은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낮은 관심 속에 가라앉을 것이다.

이걸 해결하려면, 사람들의 구체적인 필요, 즉 안정적인 일자리, 아이를 맡길 곳, 아플 때 쉴 수 있는 권리, 살 만한 집, 혐오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를 가장 먼저 약속하는 우리 동네 정치인이 생겨야 한다. 지역정당은 그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은 정치라는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이 고민을 안아야 하고, 그다음은 시민들이 같이 고민해줘야 한다.

지선의 계절이 또 돌아왔다. 투표용지 일곱 장을 앞에 두고,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이 선거가 정말 내 삶과 관련이 있긴 한 걸까?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더 많은 사람들이 만드는 더 다양한 정당들 안에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동네에서 시작하는 정치, 골목에서 자라나는 정당.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상상 아닐까.

 

첨부 이미지

최상희

정의당 강원도당 사무처장. 최근까지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으로 일했다. 나고 자란 강원도 춘천에서 지역운동, 지역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더슬래시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더슬래시

평화와 커먼즈의 렌즈로 세상을 봅니다.

뉴스레터 문의journal@theslash.online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