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때로는 알려지지 않은, 예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을 때, 그러한 불안감은 두려움으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과학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 자연의 현상을 신의 분노로 해석하고 불안해하며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말이죠. 요즘 시대에 번개가 치거나 폭풍이 불어올 때 신의 가호를 빌며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그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두려움은 과거에 많은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한 힘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요.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을 동력으로 삼는 영역이 있습니다. 국가가 강력한 군사력을 토대로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 안보’가 그렇습니다. 지난해 말, 불현듯 밤하늘에서 발견된 ‘로켓 같은 것’ 때문에 술렁였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군은 전국의 상공에서 목격된 이 미상 물체가 안보상의 이유로 사전에 알리지 못한 ‘로켓 발사체 실험’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공식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그 빛이 무엇이었는지, 왜 그런 물체가 하늘에서 포착되었는지, 군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불안했던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안보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접근이 제한된 정보와 이를 빌미로 휘두르는 두려움의 정치는 국제 사회의 위계가 더해진 미군기지에서 극대화됩니다. 북한은 물론 일본과 중국 등 동북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군사적인 긴장감을 한껏 높이고 있는 지금, 미군은 이미 주둔하고 있는 기지들을 재배치하는 등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이미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움직임을 사전에 조율하지도, 널리 알리지도 않습니다. 어느 날 ‘그렇게 결정되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알 수 없는 움직임이 그 결정에 참여하지 않는 대다수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보편적인 정의로 안보는 ‘위협이 없는 상태’라고 하는데요. 이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 혹은 불안하지 않은 상태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역설적인 지점은 ‘안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비밀에 부치는 안보의 행태가 불안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안보의 목적과 배치된다는 것이에요. 참 이상하지요. 안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지 않는 많은 사실들, 그리고 여러 결정들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계속 ‘불안’하다는 것이 말입니다.
2023년 1월 11일, 미국과 일본은 외교-국방장관(2+2) 회담을 통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미일간의 안보동맹을 재확인했습니다. 이 회담의 공동 발표문은 중국을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도전(Strategic challenge)’으로 인식함을 명시하며, 지역의 안전을 해치는 중국의 행동을 비판하고, 기시다 정권의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군사력 증강 정책의 일환으로써, 일본의 반격 능력 보유를 명시한 안보 3문서 개정을 환영하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언급하면서 미일 동맹이 ‘인도·태평양지역의 평화·안전과 번영의 주춧돌(cornerstone)’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일은 동맹 관계를 확장하고 최적화한다는 방향성에 따라 재일 미군기지 재배치 계획을 공표했는데요. 오키나와현에 있는 미 해병대를 2025년까지 상륙작전이 가능한 ‘해병연안연대’(MLR)로 재편하고, 요코하마에 위치한 미군 시설 ‘요코하마 노스독(North Dock)’에 소형 양륙정 부대를 신규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미군 부대 재배치는 중국군 미사일 사거리에 포함되는 일본 난세이 제도*와 대만 해협에 대한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부대와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목적이어서 중국에 대항한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미일 두 국가는 요코하마 노스독 신규부대 배치 사실을 당일까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요코하마시조차 당일에야 요코하마 노스독에 소형 양륙정 부대가 새로 편성되고, 280여 명의 미군이 상주한다는 결정을 통보받은 것입니다. 1946년부터 미군의 보급창으로 사용되고 있는 요코하마 노스독 기지는 요코하마시와 시의회가 매년 조기 반환을 요청하고 있지만, 해당 부대의 편성으로 반환 가능성은 더 낮아졌습니다. 본래 군수 물자 ‘보관 장소’였던 것이 ‘부대 거점’으로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이죠.
춘천의 미군기지 캠프페이지에 전술핵이 배치되었을 때 춘천의 주민들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작은 마을에 사드를 배치할 때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미군은 ‘한국의 주권을 보호하고 적들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반도에 배치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어 체계’라며, 지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를 배치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하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격’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안보와 자국의 안보를 핑계로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은 기꺼이 미국이 주도하는 체스판의 말이 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제3해병원정군의 제임스 비어먼(James Bierman) 사령관은 지난 1월 8일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은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여 일본과 필리핀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으며, ‘대만 분쟁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한 대대적인 병력 개편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과 필리핀 등지에 ‘군사작전 구역(theater)’을 설치하고 있다고 밝혔지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전쟁을 위한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알고 보면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짜여진 판에 맞추어 수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미군이 그리고 여러 나라의 군대들이 양산하는 결정들은 일상에서 알아차리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국가와 군대가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안전을 보장하는 영역에서 제외해버렸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국가가, 무기가 모두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약속만 반복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윤석열 정부 출범과 더불어 유래없던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되더니 이제는 매우 일상적인 훈련처럼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군사행동이 증가할수록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높아진 긴장은 또 다른 군사행동을 부릅니다. 동북아시아의 전쟁위기가 더욱 고조되는 있는 상황입니다.
전쟁이라도 일어날까 두려운 상황에, 시민들이 택할 수 있는 ‘수’는 그리 많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전쟁의 시그널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동료 시민들과 공유하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 이 전쟁위기가 더 심화되기 전에 동북아시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전쟁의 준비를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게 공유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렇게 조기경보를 울리는 일은 국가가 제한하고 있는 안보에 대한 접근을 조금씩 열어젖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난세이제도: 일본 규슈의 최남단인 가고시마에서 대만을 잇는 해역에 일렬로 자리한 길이 1200㎞의 도서군

/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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