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캠프페이지 기획은 밀리투어리즘의 시선으로 하와이의 역사를 읽는 '디투어(Detour)' 의 경험을 담습니다.
몇 년 전, 하와이에서 학부 생활을 하던 중 카힐 카지히로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다. 교수님의 권유로 디투어(DeTour)에 참여했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을 하와이의 역사와 군사시설을 둘러보는 답사 프로그램 정도로만 생각했다.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장소를 방문한다는 점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 대학원에서 하와이사 수업을 들으면서 그날의 풍경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식민주의와 군사화(militarization), 그리고 그 역사가 어떻게 기억되고 재현되는지를 배우면서 과거에 스쳐 지나갔던 장소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보았던 것은 단순한 군사시설도, 아름다운 풍경도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 제국주의가 하와이의 공간을 어떻게 재편했는지 보여주는 흔적이었고, 서로 다른 역사적 기억이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같은 장소였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자 공간 역시 전혀 다르게 읽혔다.
디투어는 바로 그 시선을 바꾸는 투어였다.

이올라니 궁전에서 시작해 캠프 스미스, 레드힐 대량 연료 저장 시설, 하나케하우 농장, 그리고 진주만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얼핏 보면 서로 무관한 장소들을 연결하는 답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투어가 끝날 무렵에는 각각의 장소가 하나의 역사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미국의 군사화는 군사기지만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하와이의 정치와 환경, 경제, 그리고 주민들의 일상을 새롭게 조직해 왔고, 그 흔적은 오늘날의 공간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공간사(Spatial History)라고 부른다. 공간은 단순히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 아니라 권력과 사회적 관계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며, 공간사는 그 흔적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디투어는 역사책보다 먼저 공간을 보여주고, 공간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도록 이끈다.
그 가운데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곳은 캠프 스미스 전망대다. 당시의 나는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진주만의 풍경에 감탄했다. 그러나 카지히로 교수님은 아름다운 풍경보다 먼저 그 공간의 의미를 설명하셨다. 이곳은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INDOPACOM)의 심장부이며, 하와이가 미국의 태평양 전략을 지탱하는 핵심 거점이라는 것이다. 교수님은 하와이를 거대한 군사 문어의 머리(head of the octopus)에 비유했다. 문어의 촉수가 오키나와와 괌, 한국, 필리핀, 호주로 뻗어나가듯 하와이는 미국 군사 네트워크 전체를 연결하는 중심축이라는 설명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바라본 풍경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더 이상 아름다운 바다만이 아니었다. 자연처럼 보였던 공간은 사실 군사 전략에 의해 조직된 공간이었고, 관광객인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풍경만 소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시선은 자연스럽게 밀리투어리즘(militourism)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흔히 관광과 군대를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와이에서는 두 요소가 오랫동안 서로를 정당화하며 발전해 왔다. 관광산업은 하와이를 안전하고 평화로운 낙원으로 소비하게 만들고, 군대는 그 낙원을 지키는 존재로 재현된다. 반대로 군사기지는 애국심을 체험하는 관광지로 기능한다.

진주만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수많은 관광객은 USS 애리조나 기념관을 방문하며 미국의 희생과 승리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곳이 원래 Ke Awalau o Puʻuloa(케 아발라우 오 푸울로아, 진주만)라는 이름을 가진 원주민들의 삶과 신앙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은 쉽게 접하기 어렵다. 디투어는 이 익숙한 풍경을 전혀 다른 순서로 읽게 만든다. 일반적인 관광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디투어는 1893년 하와이 왕국의 전복에서 출발한다. 같은 장소를 방문하더라도 어디에서부터 역사를 시작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 지점에서 기억사(Mnemohistory)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기억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가 선택하고 배열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진주만 역시 그러하다. 박물관과 메모리얼은 미국의 희생과 영웅주의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미국 중심의 전쟁 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반면 1893년 하와이 왕국의 전복이나 원주민들의 반병합 운동은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머문다.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중심에 놓을 것인지가 달라졌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디투어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투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던 역사를 다른 순서로 읽게 만든 경험에 가까웠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디투어는 기억의 연대기를 다시 배열하는 역사 수업이었다.
레드힐 연료 저장 시설 역시 잊기 어려운 장소였다. 국가 안보를 위한 핵심 시설로 알려진 이곳에서 교수님은 반복된 연료 유출과 식수 오염 문제를 이야기하셨다. 군사주의는 눈에 보이는 기지뿐 아니라 환경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어 방문한 하나케하우 농장에서는 군사시설로 훼손된 토지를 다시 전통 농업 공간으로 복원하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토지를 복원하는 일은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었다. 원주민의 역사와 기억을 다시 공간 위에 새기는 일이었으며, 공간의 탈군사화는 곧 기억의 탈식민화이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내가 참여했던 디투어는 단순한 답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같은 장소를 다르게 읽는 법을 배우는 역사학의 현장이었다. 공간사는 군사기지가 하와이라는 섬을 어떻게 재편했는지를 보여주었고, 기억사는 왜 어떤 역사는 기념되고 어떤 역사는 주변으로 밀려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밀리투어리즘은 이러한 공간과 기억의 정치가 관광을 통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드러내는 개념이었다.
오늘날에도 하와이는 여전히 낙원이라는 이미지와 미국의 최전선이라는 전략적 이미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몇 년 전의 나는 그 풍경을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그 길을 걷는다면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역사를 읽게 될 것이다. 디투어가 바꾼 것은 하와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어쩌면 공간사와 기억사를 함께 읽는다는 것은 낙원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그 낙원이 어떤 역사 위에 세워졌는지를 다시 걸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권예준
미국 하와이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에서 아시아학(학사)와 역사학(석사)을 공부했다. 현재 같은 대학 역사학과의 박사과정에 있다. 한국 근현대를 중심으로 환경사와 젠더사, 문화기억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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