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여기서 떨어지면 탈락이야. 시~작!”
도로 위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난간으로 올라와 다닥다닥 붙는다. 한 발만 디딜 수 있는 좁은 턱 위에서 난간을 간신히 붙잡고 걸음을 내딛는다. 누구는 낑낑대며 게처럼 옆으로 걷고, 누구는 개미처럼 부지런히 발을 교차하며 옮긴다. 조금 컸다는 아이들은 방아깨비처럼 날쌔게 뛰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모두 다 폴~짝! 아직 키가 작은 아이들은 “선생님, 손잡아 주세요~” 하면서 그제야 뒤따라가던 나를 찾는다.
오늘의 교실인 강으로 가기까지 아직 멀었는데, 넘어야 할 장애물은 자꾸 더 생긴다. “여기 선은 두발로 뛰어넘어야 함!” 그러면 뒤따라오던 아이들은 어쩜 한 명도 반대를 하지 않고, 저 멀리서부터 도움닫기를 해서 희미한 선을 힘껏 뛰어넘는다. 구름 그림자에만 들어가야 살 수 있는 구간도 생기고, 느닷없이 “시~작!” 하는 소리가 들리면 “와아아아-!!!” 하면서 일제히 앞으로 뛰어간다. 오늘의 교실이 강이든, 운동장이든, 강당이든, 과학실이든, 언제나 아이들은 나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쌤~ 쫌만 놀고 시작해요. 네???”

처음 아이들의 작은 투정을 들었을 때는, 아량이 넓고 착한 선생님인 것처럼 굴고 싶어서 “그래~ 10분만~” 하고 대답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오늘 할 수업을 머릿속으로 다시 되뇌며 시계를 몇 번이나 흘깃거렸다. 단호하지 못한 성격 탓인지, 나도 그 10분이 숨 고르기에 좋았어서인지, 수업 시작 전 종종 10분 정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방과후 교사로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무렵에 아이들이 무얼 하는지 하나 둘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쪽에서는 “야! 공 넘겨!” 하면서 공을 뻥뻥 차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우리 옆돌기 연습하자~”하면서 가벼운 몸들을 휙휙 넘긴다. 어떤 아이는 어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고, 몇몇은 술래를 잡느라 뱅글뱅글 뛰어다닌다. 그리고 속닥속닥 비밀 이야기를 하는 두 명과 “오늘은 좀 쉴래요...”하면서 벌러덩 누워버리는 아이까지... 어느 날은 문득 그 모습이 별이 퍼엉- 하고 폭발해서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엄청난 에너지와 해방감! 이토록 완벽한 조화!
흔히 평화라는 단어에는 차분하고, 조용하고, 잔잔한 장면들이 어울림직해 보인다. 그런데 어린이와 평화가 합쳐지면? 우르르 쾅쾅! 번쩍번쩍! 와글와글! 정반대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이것이 평화가 아닐까? 충분히 놀지 못한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했던 어느 날, 어깨부터 입꼬리까지 추-욱 늘어져서 점점 초점이 풀리는 눈망울들을 바라보는데 내가 아주 못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들을 메마르게 해서 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무엇이 먼저여야 할까? 주어진 수업 시간에 대한 책임감도, 열심히 준비해온 수업 내용들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도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의 폭발적인 생명력 앞에서는 내세워서는 안 되었다. 아이들의 자유, 해방, 평화는 실컷 놀아야만 찾아오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자유 놀이 시간, 각종 예체능 시간, 체험 학습 시간이 충분하지 않나'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처음 작은 학교에 방과후 교사로 들어갔을 때, 아이들의 수업 시간표와 학사 일정을 보고 이곳 아이들은 여유롭게 지내겠거니 짐작했다. 학교에서 각종 공예도, 춤과 악기, 심지어 골프와 우슈까지 배우는 것을 보면서 ‘내가 듣고 싶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학교에서의 수업은 문자 그대로 ‘수업’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배워야’ 한다. 그건 아무리 방과 후에 진행되는 수업이라도 마찬가지다. 내용을 국어, 수학, 영어가 아닌 놀이와 예체능으로 바꾸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이미 갖추어진 시간과 공간, 재료와 방법이 일방적으로 요구된다. 빡빡하게 채워진 ‘자유 놀이’ 활동 속에서 아이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자기들끼리 규칙을 정할 수도 없고, 원하는 도구와 재료를 가져올 수도 없고,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속닥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실은 내가 바로 아이들로부터 재미를 뺏어버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생태 놀이’ 방과후 교사로 아이들 앞에 섰던 첫 학기, 나는 교사로서의 임무를 다하고자 열심히 놀이를 개발해 갔다. 나뭇가지로, 돌멩이로, 꽃잎으로, 이렇게 저렇게 놀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고 매번 품을 들여 자연물을 줍곤 했다. 그림책과 색종이까지 꾸러미로 엮어 짜잔-하고 펼쳐 놓았는데, 웬걸...? 한 시간 내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던 때와는 달리, 아이들의 흥미는 쉽게 사그라들었고, 어떤 때는 심지어 “쌤, 재미없어요. 딴 거 해요.”라는 적나라한 말을 듣기도 했다.
“아, 그,,, 그래...? 뭐 하고 놀까?” 하고 멋쩍게 되물으면 아이들은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 돌멩이를 옮겨오고, 바위 틈의 들꽃과 조약돌을 가져와 약재와 보물을 만들고, 멀리 있는 수돗가에서 낑낑대며 물을 담아와 진흙으로 담을 쌓았다. “쌤 이거 써도 돼요?” 하면서 수업 자료로 가져온 긴 대나무 막대기도 야무지게 챙겨간다. 그다지 활동적이지 않은 아이들도 어디 구석에서 예쁜 돌멩이를 줍느라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아이들은 그날만 존재하고 사라질 교실을, 저 마다의 색깔대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 나는 저 꽃들이 피어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재료들을 가져다주면 되겠구나. 그래, 꽃들아 마음껏 피어라!’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노는 모습에서, 그 무엇보다 평화로운 꽃밭이 겹쳐져 보였다. 만들어 온 교구를 꽉 쥐고 있던 내 손에 스르르 힘이 풀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이의 평화는 노는 것이다. 놀이는 어찌 가르칠 수 없고 가르쳐서도 안 되는데, 그렇다면 나는 방과후 선생으로서 무얼 하지? 고민 끝에 나는 아이들이 그날 그날 만들어갈 놀이동산의 최고 책임자가 되기로 했다. “오늘은 이곳에 비밀기지를 만듭니다!”라고 말하면, 나의 사랑스러운 직원들(?)은 “이야아!!!” 하며 제 역할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돌을 나르고, 흙을 퍼 오고, 천막을 친다. 책임자인 나는 어슬렁거리며 역할을 찾지 못한 아이에게는 역할을 만들어주고, 각각의 아이들에게는 그때마다 필요한 도구와 기술을 알려준다. 강가에서는 고동 잡기 일이, 숲 속에서는 나뭇가지 창 만드는 일이 추가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작은 교실 구석구석에 아찔하고 발칙한 놀이 기구들이 만들어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평화의 모습들을 떠올려본다. 그중 어린이의 평화가 가장 통통 튀는 매운맛이지 않을까? 어린이의 마음을 잊어버린 어른에게는 그것이 무질서함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질서를 지키는 중이다. 실컷 뛰고, 구르고, 마음 상하고, 화해하고, 다시 규칙을 만들고, 상상한 것을 만들어내면서 철드는 중이다. 그래서 어린이의 평화를 불러오는 주문은 단순하다. “얘들아 아~ 노올 자아~!” 골목마다 이 주문이 쩌렁쩌렁 울려 퍼질 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먼지
지리산과 섬진강, 남해 바다의 품에 안긴 하동에 살고 있습니다. 고쳐 지은 집에서 요가를 하고 이야기를 짓습니다. 마을과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많이 웃고 가장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저보다 더 많이 웃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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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
글 읽고 있으니 그 은밀한 놀이동산에 잠시 초대된 것 같아요. 설레는 마음으로 읽고 갑니다! (꽃게걸음으로 가다가 옆돌기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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