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여성, 군인, 그리고 전쟁

말할 자격 / 김엘림

2025.04.04 | 조회 282 |
0
|

10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공병 출신의 공학도 친구와 ‘지뢰 제거’를 놓고 격론을 벌이게 됐죠. 마침 저는 그 전에 모 시민단체에서 민북지역을 조사하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보고서의 대인지뢰 파트 작성을 담당했던 터였습니다. 그는 지뢰 제거가 매우 위험한데다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면서 M14(일명 ‘발목지뢰’) 제거는 불가능하다, 민북지역 지뢰 제거는 300년 400년이 걸린다는 한국군의 입장을 옹호했습니다. 저는 지뢰 제거가 위험하고 복잡한 일은 맞지만, 한국군의 방식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국제적인 수준과 동떨어져 있다고 반박했어요. 연구 당시 인터뷰했던 지뢰 제거 사업가의 해외 지뢰 제거 사례도 이야기해 보았지만, 제 말은 그에게 하나도 가닿지 못했습니다. 저는 군대에 간 적도, 갈 일도 없는 영원한 ‘미필’ 여자였으니까요. 그는 공병 출신인 자신을 앞에 두고 어린 미필 여성인 제가 지뢰 제거에 대한 견해를 내세우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그때의 격론은 으레 있었던 술자리 갑론을박 중의 하나로 지나갔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꼭 그만 그런 반응을 했던 것도 아닙니다. 제가 군인이 어쩌고, 안보가 어쩌고 하는 말을 꺼내면, 그것이 말이든 글이든 혹은 눈빛이나 표정으로도 ‘흐린 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종종 느낄 수 있었거든요. ‘군대도 안 갔다 와본 게’로 시작되는 그와 같은 반응은 이해하기 싫으면서도 또 한편 이해가 되기도 했어요. 저는 그 와중에 ‘안 간 건 사실이지 암’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대신 그 뒤에 꼭 한 마디를 덧붙이는 거죠. ‘안 갔는데 그래서 뭐? 군대 안 가면 아무 말도 하면 안 되나? 사람들이 꼭 국가대표만큼 운동 잘해서 선수들 욕하고 그러나?’ 하고요. 

구독자만 읽을 수 있어요

이 콘텐츠를 읽으려면 로그인 후 구독이 필요해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여군, 여성에 갇혀버린 / 김엘림

남자만큼, 아니 남자보다 더 뛰어나야 했던 그 시절 여군들은, 그래서 진짜 군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제 답은 ‘그렇다’이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다’입니다. 이게 무슨 궤변이냐 하

2025.03.27·기획/여성, 군인, 그리고 전쟁·조회 508

조금도 멋지지 않은 / 김엘림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한 편지가 있습니다. ‘학도병의 편지’ 혹은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어요. 2010년 개봉했던 <포

2025.04.04·기획/여성, 군인, 그리고 전쟁·조회 320

군대와 가정, 동시에 사랑하진 말라고요? / 김엘림

굳이 군대를? 하필 사랑을? 그렇지만 어떻게 군대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잠시 접어두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각기 다른 것들을 사랑하곤 하지요. 그리고 우리는

2025.04.04·기획/여성, 군인, 그리고 전쟁·조회 350

까라면 까? / 김엘림

“까라면 까” 살면서 이 말 한 번쯤 안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농담으로든 진담으로든,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듣고, 또 하곤 합니다. 좀 더 길게 풀어보자

2025.04.04·기획/여성, 군인, 그리고 전쟁·조회 350

침묵을 듣는 길

어떤 영화는 객석의 조명이 내려가는 순간부터 괜스레 한번 호흡을 고르게 되곤 하죠. 혼란과 불안이 내리깔렸던 탄핵 선고 하루 전날, 전국 각지의 140곳 상영관에서 8,000명이

2025.04.09·기획/여성, 군인, 그리고 전쟁·조회 518

이제는 다르다고 말하기 위해서 / 김엘림

요즘은 어쩐지 어떤 글도, 그림도, 영상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80주년을 맞은 광복절과 75년이 흐른 6·25, 올해로 벌써 여덟 번째를 맞는다는 일본군‘위안부’ 기림의

2025.08.20·기획/여성, 군인, 그리고 전쟁·조회 392
© 2026 더슬래시

평화와 커먼즈의 렌즈로 세상을 봅니다.

뉴스레터 문의journal@theslash.online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