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객석의 조명이 내려가는 순간부터 괜스레 한번 호흡을 고르게 되곤 하죠. 혼란과 불안이 내리깔렸던 탄핵 선고 하루 전날, 전국 각지의 140곳 상영관에서 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편의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그 많은 상영관들은 이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이 모여 만든 관객추진단이 직접 열었다고 하고요. 영화 <목소리들>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네 명의 제주 4·3 피해 여성과 한 명의 4·3 연구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연구자 조정희 씨의 안내를 따라 영화는 아름답고 슬픈 제주의 자연 풍광, 조금은 투박한 애니메이션,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들을 이리저리 오가며 4·3 당시 여성들의 경험을 담아냅니다. 특히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77년이 흐르도록 공식 피해로 집계된 바 없었던 젠더기반폭력의 문제들입니다. 법률이 정한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는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후유 장애가 남은 사람 또는 수형인(受刑人)”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 체계하에서 성폭력이나 조혼, 강제결혼 같은 제주 여성의 경험들은 그동안 공식적인 조사나 기록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겁니다.
잠시 고백해 보자면, 저는 4·3에서 당연히 성폭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왔던 것 같습니다. 이 씁쓸한 추정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너무 당연히 있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나 알려지지 않았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일단 모두 다 알기는 아는 사실 아닌가?’ 이렇게요. 4·3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이 벌써 25년 전의 일이니, 하는 생각으로 잘못된 지점에서 행복회로를 돌려버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4·3보다도 앞서 민주화운동으로 국가의 공식화가 이루어진 5·18조차도 성폭력 피해 관련 최초의 공론화는 2018년에서야 이루어졌다는 현실을 잠시 잊고 말이죠.
다른 많은 폭력의 경우가 그러하듯 4·3 당시의 젠더기반폭력 또한 아무도 몰랐던 사실은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알 사람은 다 아는, 그렇지만 알아도 말할 수 없고 알아선 안 되는 사실로 오래 남아있었겠지요. 이러한 분위기는 피해자들의 말이 겨우 세상 밖으로 나오고서도 많은 이들에게 들리지 못한 까닭이 되었을 겁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4·3 피해자들의 증언 채록은 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시작된 셈이었는데도요. 일례로 4·3에 대한 여성의 기억서사를 연구한 박상란(2019)이 검토한 여성 증언록들만 보아도 그 발행 시기가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로 다양합니다. 홍난선 씨는 2006년에 이미 제주4·3연구소가 개최한 ‘4·3증언 본풀이 마당’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강간 사건을 공개적으로 증언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목소리는 침묵 되어 왔다, 들리지 않아 왔다’라는 말이 2025년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우리가 선 이곳의 풍경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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