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SS IS MORE 나의 오늘을 위해 너의 슬픔을 살다

며칠 전, 뉴욕에 사는 줄 알았던 시애틀의 옛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어요. '📨 괜찮아? 이태원 뉴스 보고 아니겠지 하면서 걱정돼 연락해. 보면 연락줘.' 단 두 줄의 짤막한 내용이었는데요, 슬픔 한복판에 도착한 그 반가움의 메일, 뭔가요.🥲 삶의 비극이란 대체 뭐지 또 한 번 삶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되었는데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와주기도 하는 게, 때론 지독한 아픔이기도 해요. 이번 사고가 제기한 과제, 반성, 나아가 앞으로의 다짐이란 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이란 늘 어느새 내일을 위한 씨앗이 되어있곤 해요. 도쿄의 할로윈은 12만명이 밀집했음에도 무사고로 끝났다 하는데요. 그래서 더 잘하고 못했다가 아니라, 분명한 건 인간이란 실패가 아닌, '그 후' 회복되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일 거에요. 어느새 11월, 또 한 번의 '시작'이 시작하고 있잖아요.🌱 구독자님, 안녕한가요.

 🌼 2022.10.31 슬픔이 내일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 

구독자님, 🍬할로윈 뭔가요. 유래가 무엇이었건 본고장의 풍습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분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평소보다 조금은 다른 템포와 텐션으로 살아볼 수 있는 날이란, 사실 그만으로 충분하다고도 느끼는데요. 어찌된 일인지 남은 건 슬픔이 한 가득이에요. 사실 이 얘기 하지 말까, 할까 정말 많이 망설였는데요. 중요한 건, 그 후를 살아가는 '아픔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일본에서는, 특히 도쿄의 시부야는 얼마 전까지 할로윈으로 악명높은 거리였거든요. 매년 크고 작은 사고가 벌어졌고, 심지어 지난 해에는 죠커 분장을 한 20대 남자가 케이오센 열차 안에서 불을 지르고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무려 17명의 승객이 중경상을 입었어요. 갑작스런 불에 열차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거든요. 그래서 이후 일본에선 열차 내 CCTV 설치는 서둘러 확대했고, 경비를 강화하며 올해는 '분장승객승차금지(仮装客乗車禁止)라는, 전례없는 강력한 조치를 내놨거든요. 실제로 지난 10월 31일 할로윈 당일 개찰구 앞에선 역무원에게 '승차 거부'를 당하는, 그래서 화장을 지우려 화장실로 돌아가는 승객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고도 해요.

그래도 축제인데 너무한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사람 사는 일이란 게 알 수 없잖아요. 무엇보다 혼자가 아닌 여럿, '군중' 안에 있을 때의 사람이란, 그에 대해 우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하지만 인간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존재인지라, 이후 시부야의 할로윈 경비 태세는 정말 촘촘하게 진행됐어요. 시부아구와 스크램블 교차로 인근의 상인회, 그리고 경찰이 힘을 모아 보다 필요하고 적절한 조치를 실시한 건데요. 가장 대표적으로 2019년엔 구(区) 차원에서 노상 음주의 제한과 인근 상점의 알코올 판매를 제한하는 조례를 가결, 실시했거든요. 예상치 못한 혼란과 폭행, 그리고 거리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는데요. 사실, 이번 이태원 역시 TV에 비치는 셀 수 없이 많은 쓰레기가 참 미워 보였거든요. 그를 이유로 이번 사고의 원인을 국민성이라 꼬집는 기사까지 나왔어요. 평소 한국에 비판적인 '다이아몬드'는 대놓고 '이태원 압사사건 한국인 국민성이 원인 중 하나'란 타이틀의 기사를 내놓았거든요.

이유가 아니라 반박하고 싶으면서도 사실 그렇지 않기도 한지라 수긍을 하면서도 죽음 앞에 고작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우린 과연 무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할 수 있다면 보다 나은 '그 후'를 살아가는 일이라 느껴요. 도쿄에선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박 유령 모양의 쓰레기 봉지를 배포해 '줍고싶은 쓰레기' 운동을 실천하고, 할로윈 주말이 낀 4일간 시부야 구 소속 주민 실행위 주최로 '쓰레기 제로 대작전(ごみゼロ大作戦)'이란 걸 벌였거든요.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 위해 매일같이 5백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참여, 준비된 모두 2천 장의 목장갑이 동이 났다고 해요. 축제라는 것, 축제라 부르지 않는다 해도, 모든 일이란 다 '전과 후'를 함께 살펴야 하는 거라 생각해요. 더불어 한켠에선 할로윈에 쓰고 이제는 불필요한 물건을 나눔하는 부스도 마련되었다 하거든요. 할로윈, 그 딱 하루가 우리 일상이기 위해선 아마 이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 '군중의 모럴'은,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앞서 이야기한 다소 편향적 '다이아몬드'의 기사는 일본과 달리 한국의 사고가 참사로 이어진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누어 분석했는데요. 그 중에는 귀담아 들을 이야기도 있어요. 먼저 국민성이라고 하는 것, 그 배경엔 자연 재해가 압도적으로 많고 적은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재해 사정이 있어요. 말하자면 '재해 대국'이라고까지 불리는 일본에선 그만큼의 재해를 대비하기 위한 매뉴얼이 일반화, 일상화 되어있는 것에 반해,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만일에 벌어진 사고, 사건에 대응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 더불어 이런 경우 더 위험한 건 사고의 슬픔이 전적으로 피해자 몫이 되어버린다는 점이에요. 하다 마요 기자는 "한국에서는 재해와 같은 사건에 대한 일반적 공통 인식이 미비하기 떄문에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슬픔을 통해 교훈을 얻는 건 피해자의 유족, 주변 사람들 뿐이다."라고 말했어요. 개인적으로 일본의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유산은 '공통된 아픔의 기억'이라 느끼는데요. 함께 힘들고 슬퍼해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내일에 대한 대처 능력, 즉 회복력이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때로 매우 중요해지거든요. 

그리고 이러한 재해, 슬픔에 대한 경험, 그를 받아들이는 감수성의 미묘한 차이가 앞으로의 재해를 대처하는 일상, 나아가 행정 안에서도 드러나기 마련이에요. 하다 기자는 한 예로 인파를 통솔하는 경찰관의 멘트에도 주목하는데요. 한국에서는 '지금 바로 귀가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반면, 일본의 경찰관은 '앞 사람에 맞춰서 천천히 귀가해주세요'라고 말한다는, 아나운스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인데요. 정말 별 거 아닌 차이 같지만 전자는 서로 서둘러 집에 가려는 사람들로 혼란이 빚어지지만, 후자의 경우 앞 사람과 보조를 맞추기 떄문에 혼란을 피울 수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또 드러나는 건 어김없이 공중 도덕의 실천 여부겠죠. 소위 '밀어라'라는 말. 이번 압사 사고에서 가장 묘한 키워드가 되어버렸는데, 한국민성이 서로 먼저 가려는 경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혼자가 아닌 군중, 함께 있을 때 그건 인간 본래의 본성이라고, 2001년 효고현(兵庫県) 아카시시(明石市) 하나비 축제 압사 사건의 교훈에서 작성한 '혼잡로 경비 태세(雑踏警備の手引き)'가 이야기하고 있어요.

효고현 아카시시 하나비 대축제 압사 사건은, JR 효고센 아사기리역(朝霧駅) 육교 위에서 축제 장소로 이동하려는 사람과 역으로 향하는 이들이 엇갈리며 일부가 넘어져 11명의 사상, 247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참사였거든요. 당시 아카시시는 안전을 지킨다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이유로 질타를 받았고, 이후 그 사고의 교훈을 바탕으로 '혼잡로 경비 태세(雑踏警備の手引き)'란 걸 만들었어요. 사고의 원인, 책임 소재 등은 물론 군중의 현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고찰이 담겼는데요. 사람이 다수의 타인과 함께 섞이는 장소에 있게되면, 경박성(軽薄性,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무책임성, 흥분성(興奮性, 감정이 단순해져 흥분하기 쉬워지는), '폭력성, 직정성(直情性,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즉각적인 결과를 얻으려 하는 본능), 부화뇌동(타인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쉽게 감염, 나아가 따라 행동하는)의 경향이 드러난다는 내용이에요.

사람이 아닌 사람'들', 좀 무섭게 느껴지나요. 다만, 여기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우린 '군중'이란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그렇기에 비난 비판을 하기 보다는, 서로를 분석, 알아가야 한다는 게 아닐까요. 다시금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준비, 조치가 필요하겠지만, 그 모든 건 미움을 동반하지 않는, 너와 나를 떨어뜨리지 않는 배려와 공존의 가치를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요. 갈수록 시부야의 할로윈은 쓰레기가 줄었다 하지만, 오늘의 그런 시부야를 가능하게 한 건 아픔에서 깨우친 너와 나의 교훈 덕분이었거든요. 슬픔은 분명, 그렇게 조금 더 성장한, 탄탄해진 내일을 위해 눈물을 흘려요. 

 👩🏼‍🤝‍👨🏽 2022.10.11 '모두의 내일'에 이르는 ONE MORE STEP 

구독자님, 10월 11일은 무슨 날일까요. 아마 누군가의 생일일 수도, 결혼 기념일, 혹은 조금은 슬픈 날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서로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인데요, 그 10월 11일은 '국제 커밍아웃 데이'이기도 해요. 1987년 워싱턴 DC에서 게이 레즈비언 퍼레이드가 열린 날임과 동시에, 이후 LGBT 관련 단체들이 그를 계기로 무수히 생겨나기 시작하며 기념비적인 날이 되었어요. 이듬해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아이버그와 LGBT 활동과 존 오레어리에 의해 공식적으로 '커밍 아웃 데이'라 제정되었는데요. 자신의 성적 아이덴티티를 커밍아웃하는 용기, 그런 각오를 응원하는 취지를 가져요. 그런데 그런 슬프고도 기쁜 날, 일본에선 좀 볼썽사나운 논란이 일었는데요. 바로 화장품 브랜드 '카호', 그리고 배달 스시 체인점 '긴노 사라(銀のさら)', 그에 더해 일본 자위대 오사카 지방 협력 본부가 자사 트위터에 그를 활용한 몰이해한 광고를 게재했거든요.

커밍아웃 데이라면, 스톤월 항쟁부터 100여 년의 역사를 갖는 자유와 평등의 날. 그를 이용한 PR이라면 꽤나 섬세한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했을텐데요. '자위대'의 경우, 자신들의 캐릭터를 홍보한다며 '오늘이 커밍아웃 데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커밍아웃하는 계기가 되는 날이냥. 마모루(캐릭터)도 커밍아웃 할기다. '실은..포복 전진 특기양!'라거나(오사카 지역색을 살려 그것도 사투리로), '카호'는 자사의 샴푸 메리트(メリット)를 선전하며 '실은...#논실리콘 샴푸에요. #국제커미아웃데이니까 여러분 모를 것 같은 거 커밍아웃 해봤습니다'거나, '긴노 사라'는 '긴노 사라는, 사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시작됐다. #카밍아웃의 날'라거나. 그야말로 커밍아웃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 발언들이었는데요. 물론 하나하나 본다면, 그 날이 10월 11일이 아니라면 별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여기에 '커밍 아웃'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나요.

결국, 해당 트윗들은 비판을 받으며 이후 삭제와 사과가 이어졌는데요. 대부분은 알지 못했다, 투고한 담당자가 커밍아웃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등..짜맞춘 것처럼 똑같은 말들을 반복했어요. '카호'의 홍보 담당자 왈 '부끄럽게도 국제 커밍아웃 데이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무지로 인해 사려가 결여된 투고를 해버리게 된 점, 죄송합니다." 한 마디로 철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 벌어진 일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바로 이 부분이 문제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과제라 느껴지기도 해요. '자위대'는 논평을 내고 "지금까지는 LGBTQ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지만, 이번 일을 교훈으로 국제 커밍아웃 데이에 대해 정보를 공유함과 동시에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체재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 의미로 성적 마이너리티 관련 정보를 발신하는 'fair'의 마츠오카 소우시 씨의 말을 가져와 보려 하는데요.

말의 의미란 결코 사전에 적힌 정의가 전부가 아니고, 상대에 대한 이해에서 비로서 전해져요. 그리고 무엇보다, 책임을 동반하는 게 바로 말 아닐까요.

 🌈 길 잃은 모든 이를 위한 '내일' 

구독자님, 11월의 시작 안녕한가요. 생각지도 못한 비극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와 요 며칠 정신이 좀 없었던 것도 같은데요. 이번 레터 역시 사실은 예정에 없던 주제로 스케쥴도 다소 돌발적으로 준비해 보내요. 이번 할로윈 사고를 두고 참 많이들 많이 이야기하지만, 저 역시도 뭐가 어떻게 왜 잘못되었는지 수도 없이 중얼거려 보기도 했지만, 죽음이란 것 앞에서 과연 어떤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다만, 근래 일본과 비교하는 몇몇의 기사들을 보며 그 조차 핀트가 조금은 엇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몇 글자 적어보았어요. 산다는 건 언젠가 알지 모를 비극을 함께하는 일이기도 해서, 결국 중요한 건 '그 후'의 설계일 것 같은데요. 타인의 아픔이란 건 사실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어느 하나 없다 느껴요. 지난 11월 1일 일본에선 도쿄가 지자체 중 10번째로 '파트너십 선서 제도'를 체결하기도 했어요. 가족은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관계를 인정하는 내용인데요, 분명 수 많은 희생과 슬픔, 아픔의 결실이겠죠.

이번 레터 중 '다이아몬드'의 기자가 했던 말, 한국은 공통의 슬픔 의식이 일본에 비해 미비하다는 것. 이 말이 자꾸 맘에 남는데요, 그저 자연 재해랄지, 대규모 사고와 같은 슬픔을 (일본에 비해) 많이 아파보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를 계기로 일상 생활 속에 타인과 나, 그 거리를 새삼 되새겨보는 시간은 어떨까요. 주제넘게도 154명의 죽음 앞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어쩌면 우린 그만큼의 슬픔, 그런 교훈을 배워갈지 몰라요. 오늘 저녁 보았던 케네스 브래너의 유작같은 자전적 영화 '벨파스트'는 이런 말을 남기고 끝나요. '남은 이들과 떠난 이들, 그리고 길 잃은 모든 이들을 위하여'. 결국 세상은 또 한 번의 내일을 개척하는 법. 슬픔은 놔두고 가는 게 아니에요. 씨앗이 되어요.

📫 이번 금요일 밤레터는 11월 5일, 바로 다음 날 저녁에 발행할게요. '밤에 보는 뉴스 '야후 재팬' 읽어드립니다' #69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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