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서부터 가까이 작게 그리고 다시 보기, 등잔 밑을 바라보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옷장엔 어느덧 무거워진 외투들이, 침대 위에도 부쩍 두터운 이불과 침구류가, 혹은 개인적으로 화장실엔 자그만 난로가 온기를 데울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계절이 지나는 시간, 일상은 의외로 크고도 작은 곳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알게 모르게 어쩐지 자꾸만 움츠리게 되는 어깨와 가슴. 겨울이 오고있는 걸까요? 11월, 어느덧 딱 한 달만이 더 남아버린 2024년이 더욱 그렇게 하게하는 걸까요. 11월, 어느 시인은 이 달은 유독 마음이 분주해지는 계절이란 말을 하기도 했는데, 묘하게도 11월이란 말 안에는 어딘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준비했지만 완성되지는 못한 그러니까 미완의, 동시에 앞으로의 마음 가짐을 다잡아 볼 수 있을 만큼의 쓸쓸함이 내포되어 있다고도 느껴져요. 다분히 11이란 숫자가 가져다주는 어감이랄지, 단정하게 1을 두 번쓰고 마무리되는 글자의 특성 때문이면서도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오래 전 영심이가 노래하던 그 노랫말 속 하나를 우리는 분명 잊지 않고 기억하고있거든요.

핸드 크림으로 유명한 일본의 제약 회사 ‘유스킨(ユースキン)‘이 지난 9월 가을철을 맞이해 보다 농후하고 보습에 탁월한, 무엇보다 미피 모양 보틀의 보디 크림을 내놓았어요. 180그람 대용량에 크림의 색은 노랑이라고도 하는데 계절의 온도, 그건 곧 마음의 너비와 피부가 아닌 눈으로 확인하는 온기의 컬러이기도 할 테니까요. 1을 나란히 두 번 써서 11. 구독자님, 알고 있었나요? 이상하게도 한 해의 두 번째로 마지막 달에 우린 새삼 너와 내가 되어보아요.

 🥛 동네 목욕탕을 거점으로 마을을 재생하는 법

이후, 오후가 되면 다시 거리로 나와 짤막한 산책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또 다시 ‘토나리’에 들러 1층 식당에서 맥주와 함께 저녁을 맞이한다. 월세 3만엔에 ‘토나리’ 이용 금액 다달이 2만 2천엔. 줄곧 동네에 있지만 일상이 해결되었고, 집에만 있었던 것 같은데 집 밖에서도 살고있다. 무엇보다 5만엔을 크게 넘지 않는 선에서 생활이 가능하다. 만연한 초-인플레 시대에 이건 대체, 무엇에 의한 삶의 구성이라 할 수 있을까. 야마가타시(山形市)에서 태어나 이후 도내에서 일하는 건축가 K씨는 10년 전 즈음 이곳 코엔지로 이주한 뒤 삶이 부쩍 풍요로워졌다고 이야기한다.

🛁 센토를 계승하는 오래된 도시의 '집이 아닌 마을에 살다'

한달에 약 50만원. 고월세 고물가 시대에 고정 비용이 단 5만엔. 이 놀랄 숫자를 유지하는 K 씨의 어딘가 유유자적한 이 하루는 어떻게 가능할까. 혹,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 아니 그보다 대체 어디일까요. 지난 3월 일본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2024년 공식 일본 도쿄 평균 지가에 의하면 주거지는 전년 대비 7%가 상승해 평균 100만엔 대를 돌파했는데요, 그런 가운데 카토 씨의 이 저렴한 청구서는 새삼 소박하기만 해요. 어딘가 진짜 ‘집’에 살고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객실에 욕실은 없어도 그만큼 저렴한 캡슐호텔적 라이프 스타일의 실천이기라도 한 걸까요. 

하지만, 현재 건축가로 일하며 도시 커뮤니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간 하기도 한 K 씨, 이름을 공개하면 86년생 카토 유이치의 어딘가 이 아침 드라마다운 일상은, 사실 묘한 특징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먼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현관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오며(센토에서 몸을 씻기위해), 동시에 집 밖으로 별로 벗어나지도 않으면서(재택 근무와 동네 식당의 활용) 대부분의 일과는 마무리되거든요. 그러니까 집에서 멀어지고, 또 멀어지지 않아요.

이를테면 집에 없는 욕조를 동네 센토에서 대체해 사용하고, 충분치 않은 부엌 및 요리 환경을 거리의 식당에 신세를 지며 해결하는 셈인데요, 얼핏 갓 상경한 대학 신입생의 일과를 훔쳐보는 듯도 싶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이와 같은 카토 씨의 삶의 방식이란 자연스레 마을과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집에 욕조가 없기 때문에 부러 동네 센토를 찾고, 부엌 요리 공간이 협소해 마찬가지로 이웃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달리 말하면 집에서 부족했던 것을 마을에서 채워나가는 방식이에요. 3만엔 짜리 집에 사는 남자의 어찌할 수 사정에 의한 일일 테지만, 자연스레 밖에서의 지출이 늘어나며 마을의 경제도 꿈틀대요. 카토 씨는 ‘전 욕조 없는 3만엔 짜리 집에 살고있지만, ‘토나리'에 지출하는 회비는 제게 월세랑 다를 바 없어요.’라고 이야기했는데요, 그리고 중요한 건 ‘삶이 더 충실해졌죠.’ 바로 이 말 아닐까요.

그런데 카토 씨의 이러한 선택의 배경을 보면, 사실 이건 3만엔 더하기 2만 2천엔과 같은 단순한 셈법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근래 도시 과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건 지역 곳곳의 ‘빈 집' 문제이고, 코로나 이후엔 EC에 밀려 위기에 처한 지역 상권과 갈 수록 문을 닫는 상점들, 그리고 사양 산업이라 불리며 시대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동네의 센토는 그야말로 해결되지 못한 숙제잖아요. 

더불어 재택 근무라는 전에 없던 일의 선택지를 경험하며 구축하게 된 집을 중심으로 한 로컬 라이프는, 카토 씨의 이 ‘동네에 살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요. 대부분의 끼니를 동네 식당에서 해결하는 그의 식생활까지 더해보면 최근 급증하는 배달료 문제로 시끄러운 도심의 점심 시간이 떠오르고 마는데요.

그러니까 건축가 카토 유이치가 이와 같은 ‘동네에 살기’를 ‘하고 있는 건 자신의 좀 별난 취향의 라이프를 구현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고, 요즘 코엔지 그 동네엔 ‘센토를 기점으로 하는 마을 만들기', 곧 센토에 의한 마을 재생 의프로젝트가 한창 확장하고 있어요. 소위 말해 센토를 매개로 한 ‘지근거리적 도새 개발의 사례 그 첫번째 코엔지’에요. 사업적 가능성이 더이상 보장되지 않아 사양 산업인데, 이게 무슨 말일까요. 

하지만 카토 씨는, ‘코엔지를 하나의 집으로 간주하고 센토를 거점으로 마을 곳곳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이라고 센토 기반의 마을 재생에 대해 설명해요. ‘코엔지를 커다란 ‘집’으로 상정하고 마을에 사는 듯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싶어요.’ 말하자면 ‘집이 아닌 마을에 살다.’ 어쩌면 여기에 힌트가 숨어있을지 모르겠어요. 역세권, 숲세권, 상권 기존의 도시 개발이라면 자본을 따라가기 마련이거늘, 센토를 간직한 그곳에선 그 오랜 일상을 따라 마을이 다시 일어나요. 그러고보면 엄마아빠 손에 붙들려 아침 일찍 동네 목욕탕에 다녀왔던 주말 오후, 우리 일상도 조금은 유유자적했던가요? 어느 작은 도쿄 마을에서 이들은 이제, 집이 아닌 마을에 살기 시작했어요.

 🧺 센토가 아닌, 센토가 있는 마을에 주목하다 

카토 씨의 ‘동네에 살다’, 어떤가요? 사실상 주소만 집에 두고있을 뿐 집과 그리고 집밖에서 사는 카토 씨의 하루는 여전히 주말 드라마의 어느 한 장면을 보는 것도 같은데요, 하지만 이는 사실 어떤 부족함, 불편함, 혹은 그런 결핍과 충분치 못함에서 빚어진 하나의 대안, 곧 시대의 아픔과 같은 내일이기도 해요. 

먼저 그의 아파트는 3만엔이란 초저가이지만 욕실에 욕조가 부재하고, 주방 또한 요리를 할 정도의 공간이 충분치 못해요. 반면 동네의 식당이나 빈집들은 사업을 유지할 정도의 매출(곧 사람)이 턱없이 줄어버렸고, 곧 남는 잉여 공간이 널널하죠. 다만 더이상 용도의 쓰임이 지속 가능하지 못한 상태인데요. 특히나 코로나 국면을 지나며 자영업자들의 가계부, 그야말로 크나큰 타격을 입었잖아요.

그런데 카토 씨와 코엔지 사이의 이 묘한 공생에 가까운 라이프 스타일은 동네와 주민 사이 부족한 것들을 서로 매워가는 상생과 같거든요. 더욱 흥미로운 건 지금 코엔지에선 이를 메인으로 하는 마을 재생 계획이 현재 진행중이라는 사실인데요. 정말로 다른 무엇도 아닌, ‘동네 목욕탕’을 중심으로 마을이 재정비되고 있어요. 

건축가 카토 유이치는 2019년 올해로 89년을 맞는 센토 ‘코스기유’의 3대 사장 히라마츠 유스케, 그리고 센토 단골 손님들과 함께 ‘센토 구라시(銭湯ぐらし)’란 걸 발족, 2년 뒤엔 ‘코스기유’ 바로 옆 자리에 이름도 그를 의미하는 ‘코스기유 토나리(小杉湯となり)’를 완성하거든요. ‘코스기유’의 오너 히라카츠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노후된 아파트를 철거 직전 개조해 만들어낸 3층짜리 센토 기반 공유 스페이스이고, 앞서 말했듯 카토 씨의 2만엔 맨션을 보충해주는 생활 인프라 시설이자, 이후 ‘센토식 마을 재생’ 프로젝트의 거점으로 작동하게 되는 곳이에요, 애당초 센토 하나만으로도 시설의 노후화, 경영진의 노령화 나아가 수요 급감까지 골치거리가 태산인데, 뭐 이런 ‘부채의 라이프’가 또 있을까요. 지난 10년간 일본에선 도쿄에서만 모두 4백 여곳의 센토가 문을 닫았어요.

다만, 쇼와 8년 개업해 89년쨰 센토를 이어가는 ‘코스기유’의 3대 히라마츠 유스케 씨는 ‘욕조 없는 맨션’에서의 일상이란 수백 년 역사가 증명해왔듯 분명한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해요. 곧 욕조는 없지만 동네 가까이의 센토를 이용하며 충분히 잘 살았던 일상엔 그만큼의 이유가 있고, 그를 포기하지 않고 연구, 계승하기를 택했다는 건데요. 이를테면 ‘욕조 없는 아파트(風呂なしアパート)’가 아닌, ‘센토가 가까운 아파트(銭湯付きアパート)’로의  전환이고, 그 가능성을 파기 시작한 스토리에요. 그래서 여기서의 방점은 센토가 아닌, 센토가 있는 동네(일상)에 놓여요.

그래서 2020년 문을 연 ‘코스기유 토나리’를 보면 거의 모든 것들이 센토에 들러 목욕을 하기 전과 후를 중심으로 설계가 됐어요 겉으로는 평범한 공유 스페이스같이 보여도 알고보면 센토다움, 센토 전후의 시간이 곳곳에 궁리되어 있거든요. 즉 1층은 목욕을 마치고 가볍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라운지 겸 식당을, 2층은 일이나 업무 전후 릴랙스겸 목욕을 할 수 있는 환경의 코워크 스페이스, 그리고 3층은 좀 더 프라이빗하게 개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예약제 개인실로 만들었는데요. 무엇보다 지근거리에 동네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다는 생활권과 함께 완성되는 묘하게 열린 공간이에요. 그리고 이후 이는 마을 재생의 확장 샘플로서 기능하게 돼요.

 🚰 센토다움으로 다시 살아나는 오랜 동네의 가능성 

하지만 2020년이라고 하면 코로나 초기, 원격 근무가 급증하며 오피스 밖 오피스가 늘어나던, 그 한 장면처럼도 느껴지잖아요. 단, 여기엔 센토를 즐기는 일상, 센토는 문을 닫아도 센토스러움의 일상은 지속 가능하다는 믿음, 그를 구현하는 궁리가 밀도 높게 작동하고 있는데요. 곧 변형된 센토의 사용법이 회사를, 출근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나의 일상을 보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에요. 센토가 아닌 센토스러움(銭湯らしさ)을 통해 센토가 있는 일상을 지켜가기 위한 실천인거죠. 그리고 이를 확장,빈집 투성이의 마을을 채워넣는, 재생하고 있는 게 현 코엔지의 센토 중심 마을 재생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빈집 문제, 근래 지역 소멸로까지 이어지는 이 심각한 사회 과제를 ‘센토스러움’이 대신한다고요? 대중탕이라 하면, 목욕하고 바나나나 딸기 우유 하나 먹으며 돌아왔던 게 전부같은데, 이곳에서 센토는 그렇다면 대체 뭐일까요. 

히라마츠와 자칭 센토 마니아이기도 한 건축가 카토 씨는 입을 모아 ‘센토는 인류 역사상 흔치 않은 세미 퍼블릭의 공간입니다’라고 말해요. 혼자가 아닌 다수의 퍼블릭, 어딘가 조금은, 43Ć쯤 온탕 기운이 느껴질까요. 심지어 히라마츠 씨는 ‘센토는 일상 속 비일상, 여백의 공간이란 의미에서 스타벅스가 경쟁자’라고 까지 하는데요, 이 말의 공감 여부를 떠나 이렇다면 이거 충분히 가능성 있는 도전 아니겠어요?

‘스타벅스’는 일본에서도 국내에서도 매장이 계속 늘어만가 2023년 기준 일본은 1901곳, 그리고 한국은 전년 대비 118곳이 늘어 1893곳에나 달해요. 인구 크기 감안하면 오히려 한국에 ‘센토스러움’의 가능성이 3배는 더 높은 걸까 싶어지기도 하는데, 이에 뒤질세라(?)  ‘코스기유’는 20년 ‘토나리’를 시작으로 이듬해 ‘코스기유 하나레(はなれ)’, 그리고 23년 또 한 채의 욕조 없는 아파트를 개조한 ‘유-파트(湯パート)’까지, 코엔지 곳곳에 센토적 공간을 설계, 지도를 새로 쓰고 있어요. 모두 다 비어있던 민가이거나 아파트이고 현재는 사람이 그리고 각종 마을 행사가 빈번하게 열리죠. 그야말로 센토적 마을 재생의 현재형, 식어가던 탕의 물은 지금 다시 달아오를지 모르겠어요.

결국, 센토다운 마을 재생이라는 건 센토스러움을 통한 '지근거리 생활권'의 자기 완결성을 갖춰가는, 동시에 확증해내는 일일 거에요.

 🔓 코로나와 센토, 중거리적 거리감과 세미-퍼블릭 

그런데 좀 의아해져요. 센토, 곧 동네의 대중 목욕탕이란 국내 한국도 그리고 일본 역시 점점 사양화, 마을에서 자리를 감추고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지난 해 일본의 ‘위생노동성'이 발표한 전국 센토(銭湯)의 수는 계속 줄어 단 3천 곳이고, 국내 역시 2022년에만 전국 곳곳 5천 9991곳이 영업을 종료해 피크였던 2004년 9천 970이었던 탕들은 현재 단 6천 곳에 불과해요. 대부분 집들이 욕실에 욕조 하나쯤 갖추고 사는 시절, 하지만 당연한 일인 거겠죠?

다만, 코엔지, 그리고 ‘코스기유’가 그리는 비젼, 또 한 번의 100년을 바라보는 계획에 이는 비단 삶의 환경이 변화했을 뿐인 이야기에요. 전후 생겨나기 시작해 100년 넘는 역사를 갖는 일본의  센토에서 중요한 건 단지 하루의 피로로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하는 게 아니라, 마을의 커뮤니티 곧 지근 거리의 관계망이거든요. 즉, 센토란 마을의 공중 위생 시설이자 정서적 인프라였어요. 

실제로 센토에서 나고 자란 히라마츠 씨는 이와 같은 걸 가리켜 ‘센토적 거리감’이라 표현했는데, 그러고보면 어릴 적 엄마아빠 따라 갔던 목욕탕 대청 마루에 앉아 소담소담 이야기 주고받던 어르신들, 기억하나요. 말하자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중거리적 거리감의’이 바로 센토가 가진 정서적으로 편안했던 관계의 거리인 셈이에요. 

그러니까 이는 곧 집에 욕조가 없는 만큼 센토엔 관계가 자라고 이는 곧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이 되어줄까요. 동시에 목욕을 하는 기능이거나 특정 용도로서의 공간이 아닌, 사람을 모이게 하고 서로 인사하고 대화하며 관계하게 하는 ‘장’으로서의 센토를 강조하고 있는 건데요. 그러고보면 우린, 외로워서 센토에 가나요? 실제로 앞서 이야기했던 ‘센토 구라시’는 그를 실천하기 위한 1년이기도 했어요. ‘코스기유’와 건축가 카토 씨 그리고 단골 손님들이 모여 만든 ‘센토 구라시’는 센토를 지켜내기 위한 모임의 이름이자, 오래돼 철거 직전의 아파트(현 ‘토나리’)에 센토를 좋아하는 다종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함꼐 모여 살아보는 프로젝트의 명칭이기도 했거든요. 센토를 경유한 ‘함께 살아보기’의 실천, 이만한 ‘살아있는관계’가 또 있을까요.

‘센토 구라시’가 발족한 2년째, 히라마츠와 카토 씨는 월세 0엔, 단 그만큼의 가치를 제공할 것이란 조건으로 입주자를 모집했어요. 얼핏 근래 빈집 문제로 근심 깊은 지역에서 유치하는 청년 주택 프로젝트와 비슷해 보이는데, 단 여기엔 ‘센토 재생’이란 명백한 목적이 있어요. 그리고 실제 크리에이터, 작가, 뮤지션, 교수, 혹은 주부나 대학생 등 센토를 좋아하는 열 네 명의 사람들이 그야말로 욕조 없는 아파트의 입주민이 되어 ‘센토 옆에 사는 아파트’의 일상을 경험(실험)하게 됐어요. 

언젠가 동네 목욕탕에서 군고구마를 구워먹고 댄스를 이벤트를 열고 공연을 한다는 즉, 센토의 딴짓과 뻘짓에 관한 이야기, 어쩐지 들어본 적 있지 않나요. 2020년 전후, 일본에선 전국 곳곳에 센토가 문을 닫는 가운데, 그와 반대로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어 탕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 ‘탕의 경험’이 확산, 트렌드가 되었거든요. 이후 ‘사우나 붐’에 가려 다소 희미지기는 했지만, 문 닫기 바쁜 센토 업계에 공중 위생이 아닌 커뮤니티 장으로서 센토가 주목받은 주효한 장면이라 할 수 있어요.  

‘센토 구라시’는 2021년 주식회사로 법인화, 모두 세 개의 테마 센토를 기점으로 하는 ‘마치 즈쿠리(まちづくり, ‘마을 재생)’, 탕을 중심으로 한 ‘모노 즈쿠리(ものづくり, 상품 기획과 개발), 그리고 센토와 탕 주변의 코토 즈쿠리(ことづくり, 이벤트 및 활동 기획 등)’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 (코로나)위기와  '사이 기회'에서 찾아낸 센토, '마을이 되다' 

그렇다면 이렇게 센토에서, 정작 센토는 망해가는 가운데 딴짓을 가능하게 했던 건 무엇일까요. 역설적이게 이는 2020년 시작된 전대미문의 위기 코로나 국면과 엮이며 도리어 의미를 드러내요, 앞에서 히라마츠 씨가 언급했던, 1년간의 ‘욕조 없는 아파트’에 생활하며 얻어낸 꺠우침, ‘딱 좋을 정도의 센토만의 거리감’이란, 코로나 이후 우리가 직면했던 나가지도 집에만 있지도 못하던 그  딜레마적 거리감과 오버랩되고 있거든요.

코로나 무서워 멀리 가지도, 그렇다고 집에만 틀어 박혀 있기도 참 힘들었던 그 때, 반대 급부마냥 부상했던 게 바로 동네 상권이에요. 차 타고 외식을 하지 못하는 만큼 배달이 늘어났고 더불어 ‘#우리 동네 뭐 있다 없다’ 와 같은 해시 태그가 유행할 정도로 집 반경 500m 즈음의 생활권이 주목을  받았어요. 

그리고, 센토의 거리감이 정확히 여기서 벗어나지 않아요. 멀리 외출은 조심스러워도, 센토 생활권이라면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거죠.

히라마츠 씨가 말하길 ‘이름은 몰라도 본 적은 있는 ‘얼굴만 아는 사이의 축적’으로 만들어지는 거리감, 이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는 아니에요. 걱정없이 안심하고 이동, 생활할 수 있는 반경의 일상을 포함하는데요. 아는 사람인 만큼 신뢰감이 작동하겠죠.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 더해지는 게 센토란 알고보면 암묵적 ‘셀프 서비스’의 환경이라는 것. 히라마츠 씨는 ‘센토는 어디에도 없는 자율형 셀프 서비스가 작동하고 있는 곳’이라 설명을 해요. 

뭔말인가 싶기만 한데 실은 매우 단순하고 당연한 이야기에요. 엄마아빠 따라 갔던 대중 목욕탕에서 무엇 하나 안내를 받았던 기억, 우리 모두 아마 없어요. 주변 사람을 보거나, 함께 온 엄마, 아빠에게 몸을 맡기며 그곳의’ 규칙’을 배워왔던 게 사실일텐데요, 그러니까  불특정 다수가 세대를 망라해 오고가며 서로의 ‘안내자’가 되어주는 게 곧 ‘센토'의 커뮤니케이션이었던 셈이에요. 

하지만 대중 목욕탕, 당장 감염도 높을 것 같아 몸 사리게 되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감시자이자 안전망이 되어준다는 것,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뼈저리게 느꼈던 방역 생활의 기본이자 작은 일상의 소중함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이런 센토 아닌 ‘센토란 환경’이 가르쳐 준 일상의 터전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세상이 변해도 별로 바래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히라마츠 씨는 장소가 아닌 ‘센토라는 환경’은 곧 마을에 남아 지속되는 자산이라고 했어요. 곧 마을 재생의 거점으로서 타당성을 갖추는 셈이고, 충분히 지속 가능한 공간의 힘이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죠.

 🤸🏻 쓸모를 다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 아마도 그렇게 사는 것 

대다수 집들이 욕실에 욕조 하나 쯤은 갖추고 사는 시절에 동네 목욕탕, 만에 하나 그 센토(대중탕)에 남은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현재 코엔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을 재생이란, 바로 그러한 보이지 않던 혹은 알아차리지 못한 센토의 부가가치, 곧 커뮤니케이션 장이자 마을의 정서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쌓아올리는 그림일텐데요, 단 하나 그래서 확실히 말해볼 수 있는 건 이와 같은 재생의 마을에 쓰여지는 일상 또한 전과는 사뭇 다른, 패턴과 사이클, 스타일의 라이프를 가지고 온다는 점일 거에요. 즉, 생활자의 일상과 마을 재생은 이곳에서 그 궤를 정확히 같이해요. 곧 ‘매을에 산다’는 건 동시에 ‘마을과 함께 살다’의 의미가 되기도 해요.

앞서 K 씨가 집에서 일어나 다시 잠들기까지 대부분의 하루를 마을에서 소비하는 것과 같이, 그리고 이는 마을과 관계하는 일상이고 나아가 집에서 하던 일을 집 밖, 마을에서 하는 보다 넓은 반경 내의 생활이 시작했음을 의미하는데요. 2023년 기준 코엔지의 인구는 15만, ‘코스기유’가 위치한 키타구(北区) 3쵸메의 경우 단 5천 명 생활권 내에서, 그리고 이건 하나의 ‘집’으로서 구현이 되기도 해요. 카토 씨가 주축이 되어 구상한 ‘코엔지 5개년 프로젝트’는 본인 자신의 실생활을 그대로 반영하듯 집 안의 기능을 마을로 오픈, 분산·공유하는 방식으로 마을의 지도를 새로 짜는 얼개를 가져요.

‘코엔지란 마을을 집에 빗대어 집의 기능을 마을 곳곳에 분산하다’는 건, 실제 카토 씨의 3만엔짜리 맨션(+토나리 월정액권 2만 6천엔)에서의 삶 그대로이고, 동시에 이는 센토가 남겨준 유산, ‘센토스러움’을 마을 곳곳에 뿌리 내리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코엔지에서 ‘코스기유’는 마을의 욕실로, ‘토나리’는 식당이거나 서재, 그리고 ‘하나레’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습실’로 ‘집 밖의 집’이 완성되어 가고, ‘코엔지 5개년 프로젝트’는 이를 점차 외부로 확장해 ‘코엔지란 마을을 (나의 또 하나의) 집처럼 즐길 수 있는 생활의 시작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확실히 집밖에서 생활의 절반 이상이 이루어진다는 것, 곧 타인과 관계하는 일상인 것이잖아요. 달리 말해 점점 더 소원해지는 도시 생활 내 관계의 문제가 해소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나아가 집의 무언가의 기능을 대신 자처한다는 건 다름아닌 죽어있던 장소(빈집이거나 빈점포)가 살아난다는 기회까지 내포하고 있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센토 구라시’는 앞으로 동네의 빈 창고를 활용해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아틀리에나 빈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더불어 1박 할 수 있는 침실과 같은, 이름도 수상한 ‘중간 관계’적 인프라를 늘려 갈 예정이에요. 코엔지 역에서 반경 500m,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필요한 만큼의 일상이 그렇게 일어나고 있어요.

 🌓 센토가 제기하는 더하기가 아닌, 뺄셈으로서의 마을 재생을 생각하다 

생활의 패턴이 다면화되어 가는 시절,  오래돼 쓸모를 잃었던 센토가 오히려 미래 시대의 생활 방식을 보조하는 아이러니한 풍경. 철거 직전 센토가 비어있는 집들을 채워가며 문제를 해결해가는 다분히 수상한 현상. 즉, 마이너스 플러스 제로가 아닌, 마이너스 마이너스 플러스인, 일종의 뺄셈이 지금의 도쿄를 만들어요.

부족한 것에 또 부족한 것을 더해 가능한 제 3의 것을 산출하는 이를테면 뺄셈의 개발법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조건 크고 높고 더하기에 몰두해온 기존 도시 개발을 떠오릴면  정반대의 잠재성을 모색하는 일이고, 이야말로 체험해보지 않은 삶의 방식, 중간 거리 일상의 시작은 아닐까요. ‘센토 구라시’는 근래 코엔지 뿐 아니라 지역 곳곳 빈집이나 건축 재생 컨설팅으로도 사업을 확장, 야마가타현(山形県)의 빈 집을 킷사뗑을 겸하는 이벤트 스페이스로, 사가시(佐賀市)의 폐교는 다목적 합숙소로 개조하는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게 가능한 건 오래전 언젠가 마을에 센토 하나쯤 없던 지역, 아마 없을 테잖아요. 

참고로 지난 4월엔 도쿄의 하라주쿠 복판 그것도 상업 시설 내에 ‘코스기유 2호점’이 문을 열었는데요, 이게 무슨 MZ 놀랄 소식인가요? 하지만 동네의 공통 자산으로서 센토는, 이제 막 시작을 시작하려 하고 있어요.

빈집을 채워간다는 건 곧 도시에 남은 유산의 미래적 자원화, 지근거리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노력에 다름 아나에요. 센토 아닌 센토스러움은 그렇게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어요. 즉 사양 산업이라는 센토가 쓸모를 잃고 없어질 위기의 빈집에 새로운 용도와 사람을 찾아주고, 결과 마을은 이제 괜찮아지는 셈일텐데요. 그곳에서 우린 아마 집 밖에서도 일하거나 집을 나와 혼자가 되거나 지역과 어울리며 주말을 보내고 있을까요? 덩달아 우리의 고질적인 집값 문제도 별로 어렵지 않게 풀릴 것만 같아요.

거주자, 생활자의 입장에서 마을의 욕실, 식당, 라운지를 이용한다는 건 ‘마을에 집을 하나 더 갖는 일’이라고 실제 5년째 경험자 카토 씨는 이야기해요. 이 다소 별난 ‘집이 아닌 마을에 사는’ 생활 방식에 어쩌면 우리 동네의 과제 해결법, 보이지 않던 내일이 꿈트고 있을까요. 현재 80면 정도가 정회원인 ‘토나리’는 주기적으로 회원을 모집하고, 빈집의 개수 이후 새로운 시설이 생겨날 수록 그 수도 함께 늘어나는데. 즉, 앞으로의 마을이 사람을 품어내는 방식이지는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현 ‘코스기유 토나리’의 멤버이기도 한 프리랜서 작가 니시노 씨의 한 줄 평으로 마무리를 해볼까 해요. ‘센토가 있는 일상에선 뭐든지  마음가는 대로 하루가 흘러가는 기분이 가장 큰 메리트에요.’ 그러고보면 동네에서의 생활감, 바로 이런 거 아니었을까요.무리하지 않는, 적당히 자유롭고 적당히 제한적인. 멋지고 화려한 메트로폴리탄은 아니어도, 딱 필요한 만큼의 모든 것. 지금 도쿄엔 마을과 공생하며 일어나는 어딘가 목욕탕 냄새가 나는 라이프스타일, ‘작은 도쿄’가 시작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곳에선 모두가 집이 아닌 ‘마을에 살아요.’

 🍴 그래서 우리의 11월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이제와 하는 이야기이지만 구독자님, 올해 11월의 빼빼로데이 얼마 만큼 주고 받았을까요? 단풍이 지고 은행이 바람에 날리는 일 빼면 별 다를 게 없는 매년 이 즈음이면 고작 모 과자 회사의 쵸코 과자에 조금은 거리가 활기를 갖는데, 이상하게도 어쩌면 이거 추운 겨울 대비하기 위한 모종의 발렌타인 그리고 화이트데이와 비슷한 감각의 지정일은 아니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빼빼로보다는 포기를, 그 중에서도 극세 과자를 선호하는데 누군가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고민하고, 전해주는 마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거리는 아주 조금 따뜻해질 테니까요. 그리고 이건 다시 한 번, 용기와 희망을, 온기와 사랑을 잊지 말자는 의미의, 이 연말 이미 많은 것들이 마침표를 향해 달리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별 거 아닌 하지만 다소 거창한 의식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꼭 빼빼로가 아니어도 좋을 11월, 구독자님 일상의 마침표는 어디 즈음 달려가고 있을까요. 

🙇🏻‍♂️ 부쩍 뜸해진 레터 발행과 관련, 깊은 사과 말씀 드립니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달을 맞이해 기분을 달리하고 다시금 레터 정상 가동 약속 드려요.

🎼 그리고 '작은 도쿄'가 시작하다는 이후, 시모키타자와 하라쥬쿠 진구마에, 그리고 야에스 미드타운과 아자부 힐즈 등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 다음 레터는 또 한 번의 11월의 주말에 찾아올게요 

山手線’s 뉴스 배달부

SNS's and more

에세이란 건 참 범위가 넓지요?! 

가장 개인적인 글의 아카이빙, 혹은 brunch 

퍼블리에서의 작업들 

'폴인'에 기록한 '도쿄를 바꾸는 공간들, 2021' 

22년의 07월, 책을 만들었어요 두 번째 자기출판, 13월의 아침

📧 monoresqu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