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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불친절 나에게 너무 친절한 사람들

안부와 선물과 밥 한 끼에 담긴 마음

2026.11.06 | 조회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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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아침부터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조금 쌀쌀하네요.
올해 여름은 유독 더워서 도대체 언제 지나가나 했는데 계절은 언제나 매정한 애인처럼 '안녕'이란 말도 없이 뒤도 보지 않고 떠나갑니다. 이번 가을은 유독 짧게 느껴지네요.

오늘은 조금 짧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러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절 아는 분들은 종종 저에게 좋은 사람이라 말하는 데 말이죠.

저는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 주변에는 저를 참 잘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가 되면 연락을 하고, 선물을 보내고, 밥을 사줍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 뭘 해줬지 싶을 만큼 친절합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합니다. 이렇게 계속 받기만 해도 되는 건가 싶어서요.

저는 원래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남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같이 고민했고, 도움이 필요하면 먼저 나서기도 했습니다. 굳이 제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에 마음을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물론 그러다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제 앞가림부터 해야 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몇 번 겪었습니다. 함께할 날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먼저 떠났습니다.

그렇게 아끼던 것들을 하나둘 잃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더 잃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스스로 마음을 접은 것 같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또 잃을까 봐,
애정을 쏟으면 또 떠나갈까 봐.

무관심한 척하는 게 편해졌습니다. 먼저 연락하는 일도 줄었습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두려웠습니다. 또 그만큼의 빈자리를 견뎌야 할까 봐 망설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잘 지내냐고.
밥 한번 먹자고요.

제가 무슨 좋은 소식을 전한 것도 아니고, 그분들에게 특별히 잘해드린 것도 없었습니다. 연락이 뜸해진 저를 먼저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무심하게 굴어도 그냥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이요.

언제나 절 기다리는 젤리 보고 가세요.
언제나 절 기다리는 젤리 보고 가세요.

오래전에 받은 선물 중에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제가 좋아할 것 같다며 한 작가님이 보내주신 책입니다. 읽어보니 정말 제 취향이었습니다. 다른 지인께서는 노트와 굿즈를 보내주시고, 나중에는 전시 초대권도 챙겨주셨습니다.

책을 고르다가 제 생각을 해주셨다는 게 좋았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지, 하고 기억해주셨다는 것이요. 저는 그분이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그분은 제가 좋아할 만한 것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던 때에는 직접 자수를 놓아 보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제가 그날 세 번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후가 되기 전에 이미 세 번 웃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그림을 보내주시면서 그리는 과정까지 영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그림 속에 숨어 있는 돼지를 찾아내고 또 웃었습니다. 그날 웃었다고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웃었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오늘 몇 번이라도 웃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손을 움직였고, 그 선물이 도착한 날 저는 정말로 웃었습니다. 그분의 바램이 제 마음까지 움직인 것 같습니다.

함께 먹었던 밥도 잊을 수 없습니다. 큰 이별을 겪고 며칠 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했을 때였습니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그게 목으로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괴로웠습니다. 누군가를 그렇게 아프게 보내고도 나는 밥을 맛있게 먹는구나 싶었습니다. 살기 위해 먹는데 죽고 싶었어요.

곁에 계시던 어르신은 이것저것 챙겨주시며 이럴 때 일수록 더 잘 먹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걱정하지 않는다고요. 그말에 울컥하는 마음으로 밥을 꼭꼭 씹어 먹었습니다. 사람 첨 별거 아니지요. 저는 그냥 밥을 먹었을 뿐인데 누군가를 조금 안심시킬 수 있다니 말이죠.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자나깨나 밥은 챙겨 먹고 다니라고 하셨던 말씀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귀찮은 날에도 어떻게든 따듯한 밥을 해 먹이셨던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셨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됩니다.

첨부 이미지

영화 〈오토라는 남자〉에는 아내를 잃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남자가 나옵니다. 무뚝뚝하고 까다롭습니다. 주차부터 분리수거까지 자기 기준에 어긋나는 것은 그냥 넘어가지 못합니다. 아내가 떠난 뒤에는 자신도 더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이웃들이 자꾸 그의 생활에 들어옵니다. 음식을 들고 찾아오고, 공구를 빌리고,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합니다. 특히 마리솔은 오토가 퉁명스럽게 군다고 물러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를 챙기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당당하게 청합니다. 때로는 그의 고집에 맞서기도 합니다.

오토에게도 다시 할 일이 생깁니다. 마리솔에게 운전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돌봐줍니다. 집에서 쫓겨난 청년에게는 잘 곳을 내어주고, 집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이웃을 위해 나섭니다. 처음에는 귀찮게만 보였던 사람들이 어느새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이 됩니다. 아이들은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마지막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마리솔에게 차를 남기면서도 남편에게는 운전대를 맡기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끝까지 오토답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까다로운 당부 속에도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그래도 자신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 문을 두드리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먼저 떠난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던 삶에,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일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남은 공터에도 어느새 풀이 돋아납니다. 옷깃을 여미게 하던 찬바람이 그곳에 씨앗을 데려왔을지도 모릅니다. 오토의 공허했던 마음에도 이웃들이 건넨 온기가 조금씩 자리 잡습니다. 이제 그에게도 내일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첨부 이미지

우리는 무엇을 가족이라고 부를까요?

나를 챙겨주는 사람.
나도 챙겨주고 싶은 사람.

함께 보내는 날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오래오래 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
그 사람들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굳이 가족이라는 말을 꺼내본 적은 없지만, 제가 힘들 때 그분들이 해주신 일들을 생각하면 다른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는 더 잃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곁에 있는 분들을 생각하면, 이분들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다가 웃었던 날들이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까지 접고 싶은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원래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밥을 먹이는 걸 좋아했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못하지만요. 좋아하는 사람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다음에는 뭘 해주면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좋아한다는 음식은 기억해두었다가 또 만들었고요.

언젠가 제 마음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남의 일에 오지랖도 살짝 부리는 날이 온다면 저를 챙겨주셨던 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날은 제가 먼저 연락드리고 싶습니다. 좋아하시는 음식을 여쭤보고, 오실 시간에 맞춰 밥을 짓고 싶습니다. 늘 제 안부를 물어주시던 분의 요즘 이야기를, 그날은 제가 좀 오래 듣고 싶습니다.

한 끼로 그동안 받은 마음을 다 갚을 수야 없겠지요.
그래도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또 먹으러 오겠다고 해주시면 더 좋겠고요.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보내고 싶은 날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잘 살아왔다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여러분이 저를 잘 살아가게 만듭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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